[법륜스님] 갑자기 남편을 잃은 슬픔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문
저의 신랑이 얼마 전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요새 49재를 지내는 중이고요.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많이 힘듭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는지요? (울면서 질문)
▒ 답
정말 함께 살던 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면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옆에서 위로한다 해도 위로가 잘 안 될 겁니다.
저 분을 위해서 다같이 합장합시다. (대중이 모두 함께)
"왕생극락 하옵소서~ _()_"
"왕생극락 하옵소서~ _()_"
"왕생극락 하옵소서~ _()_"
제가 두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붓다담마(Buddha Dharma),
즉 부처님 지혜의 말씀.
소위 '깨달음'이라는 측면에서 말씀을 드리고 싶고
두 번째는 불교의 신앙,
즉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돌아가신 분, 그 분이 부모든 남편이든 아내든 자식이든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에 잠겨 있다는 것.
이 또한 번뇌입니다.
슬픈 이유를 대자면,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안 슬플 수가 있느냐.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 죽었는데 어떻게 안 슬플 수가 있느냐.
여러가지 이유를 댑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우리 마음이 짓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걸 보면, 저런다고 무슨 도움이 되느냐..
이렇게 생각하지만 본인은 괴롭습니다.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이것은 괴로워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고
이것은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고,
이것은 화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만
거기서 한 생각 벗어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구가 생긴 이래로, 생명이 생긴 이래로,
사람이 생긴 이래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겠어요?
저 나뭇잎이 얼마나 많이 떨어지고,
새로 나고, 떨어지고 하듯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했겠느냐, 이 말씀입니다.
저 바다의 파도가 생기고 사라지고, 생기고 사라지고 하는데
그 파도 하나하나에 집착하면
늘어났다고 좋아하고 소멸했다고 슬퍼하지만
바다 전체를 보면 바다는 생겨남도 없고 소멸함도 없고
다만 출렁거릴 뿐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움이 트고 떨어지고 하는 것을,
그 하나하나 나뭇잎에 집착하게 되면
가을이라 슬프고 봄이라 기쁘고 하지만..
그 나무 전체를 볼 때는 그냥 하나의 생명작용에 불과합니다.
오늘 우리가 개별생명 하나하나를 보면
나고 죽음에 기쁨과 슬픔이 있지만
큰 생명의 바다에서 보면
저 물결이 출렁거림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집착을 놓아라' 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죽으면 불교에선 어디 간다고 그래요?
좋은 세상에 태어난다고 어디?
극락세계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럼 극락은 이 세상보다 좋은 곳입니까 나쁜 곳입니까?
좋은 곳이죠..
그럼 좋은 곳에 가는 건, 좋은 일입니까 나쁜 일입니까?
좋은 일이죠.
그런데 왜 좋은 곳에 간다고 믿으면서
왜 슬퍼합니까? 좋은 일인데..
슬퍼한다 이 말은, '안 갔으면 좋겠다' 이 말 아닙니까?
'좋은 곳에 가지 말라' 이겁니까? 모순이죠.
또, 사고로 돌아가셨든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든
병으로 돌아가셨든
어쨌든 현실은 지금 돌아가셨어요 안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셨죠.
그런데 돌아가신 분을 계속 생각하면서 울면,
첫째로 내가 기뻐요 슬퍼요? 슬프지.
행복해요 불행해요? 불행하지.
첫째로 나한테 안 좋습니다.
두 번째, 그럼 나한텐 안 좋지만 돌아가신 분한텐 도움이 될까?
자, 내가 슬퍼한다 괴로워한다는 건, 가지 말라는 겁니다.
그럼 이미 몸을 떠났는데,
가지 말라고 자꾸 잡으면 그럼 뭐가 돼요?
무주고혼이 되겠죠?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외로운 혼령, 무주고혼.
내 슬픔이 돌아가신 분을 '무주고혼'으로 만든다 이겁니다.
이게 잘하는 짓입니까 못하는 짓입니까?
못하는 짓이지..
그래서 이것은 화를 자초하는 겁니다.
나에게도 나쁜 것이요, 그 분에게도 나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할까?
몰라서 그렇습니다.
왜 이렇게 할까? 집착 때문에 그렇습니다.
담배를 피는 사람이,
끊으면 건강에 좋은데도
그걸 끊지 못하는 것은 담배에 집착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 습관에 중독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니 제일 좋은 방법은
어떤 이유로 돌아가셨든 돌아가셨으면
(합장하고) '안녕히 가십시요 _()_' 해야 합니다.
약간 좀 매몰차 보입니까? (웃음)
이것이 돌아가신 분에게 최고로 좋은 것이며,
돌아가신 분에 대한 나의 최고의 예의입니다.
그러니 (합장하고) '안녕히 가십시요 _()_' 해야 합니다.
어디로? 극락세계로.
그래서 우리가 살아계실 때 잘 해야 합니다.
그러다 돌아가시면 (합장하고)
'안녕히 가십시요 _()_' 해야 합니다. 웃으면서.
육조 혜능대사께서 돌아가실 때, 많은 제자들이 울었습니다.
그러니까 혜능대사께서 뭐라 하셨냐 하면..
"너희들은 내가 어디로 가는 줄 모르는구나.
그러니 너희들이 울지.
너희들이 만약에 내가 가는 곳을 안다면 울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을 땐 갈 줄 모르고, 간 뒤엔 어디로 간 줄 모르니까
살아 있을 땐 갈등하고, 돌아가신 뒤엔 슬퍼하고,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어리석게 살아서,
살아 계실 때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신 지금에라도 지혜로워져서
이 슬픔을 오래 간직해선 안됩니다.
윤회를 한다고 하면 적어도 49일 안에는 윤회를 해야겠죠?
그런데 저렇게 자꾸 울면 49재가 끝나도 천도가 안됩니다.
스님이 보내주는 힘보다 울며불며 잡는 힘이 더 셉니다.
그러니 제물을 많이 차리고,
의식을 거창하게 하는 그 어떤 천도보다도
가장 좋은 천도는 (합장하고)
'안녕히 가십시요 _()_' 하는 겁니다.
이게 가장 좋은 천도입니다.
또, 그 분이 돌아가셔서 만약 내려다보고 있다고
가정을 한번 해 본다면
내가 아이들 데리고 남은 가족들하고
꿋꿋이 사는 게 보기 좋아 보이겠어요 아니면
늘 울면서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게 보기 좋아 보이겠어요?
그러니 그 분을 위해서도 내가 웃으며 사는 게 좋습니다.
나를 위해서나 그 분을 위해서나 웃으며 사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법문을 들으면 정신이 좀 들다가도,
그 사람 생각하면 또 눈물이 나고..
이건 뭐 어쩔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 때마다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짓을
마치 마약중독자가 마약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듯,
그러나 그 때마다 빨리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해마다 제사 지내고, 성묘가고
그거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슬퍼하지 말라 이 말입니다.
우리도 돌아가신 부처님 늘 생각하죠?
그러나 슬퍼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얘기의 요점은 '슬퍼하지 말라'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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