信解品(신해품) 第四
3. 비유에서 법을 밝히다 (2)
그리고 저희들은 여래의 지혜를 모든 보살들에게 열어 보여서 설하여 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저희들은 이일에 아무것도 바라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는 사리불이라든지 목건련, 이런 훌륭한 부처님의 상수제자와 같은
자기들보다도 더 수준 높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하고
우리는 그 수준이 안 되니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이렇게 했든가 봐요.
그러니까 보살들에게 열어 보여 연설해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저희들은 이 일에 아무것도 바라는 마음이 없었다. 이렇게 고백을 하죠.
우리가 다 그렇게 살지요.
사실은 뭐 바로 내 옆에 또 내 이웃에 나와 같은 불교를 믿는 사람이
자기가 불교를 신행하고 공부하는 것 보다 훨씬 좋은 불교, 고급 불교,
첨단 불교, 또 그야말로 부처님의 본심에 가까운 그런 불교를 공부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분명히 봅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분의 수준이야’ 이렇게 생각해 버리고
더 이상 그 사람처럼 보다 높은 경지로 올라갈 생각을 안 했다는 거죠.
왜냐하면 저희들이 소승법을 좋아하는 것을 아시고
방편으로 저희들의 근기(根機)에 맞춰서 설하셨지만
저희들은 스스로 참다운 부처님의 아들인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아주 중요한 대목이죠.
부처님 근기에 맞추어 이야기 하다보니까 그렇죠.
그런데 참다운 부처님의 아들인 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것은 보살들이나 또 자기보다도 훨씬 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가르침이다, 이렇게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어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아니고 누가 또 부처님의 그런 그 깊은 뜻과 높은 경지를
이어 받아서 실천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십대제자, 뭐 사대성문 사리불 이런 분들이 못하면
아무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죠. 사실 솔직히... 그런 일입니다.
그러니까 남의 일이다, 이건 뭐 프로들만의 일이다, 스님들만의 일이다,
출가인들의 일이다, 그렇게 생각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견해다 라고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드라도 부처님 같은 이런 위대한 성인을 만났을 때
우리는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되고
우리들의 소견은 보다 더 넓고 밝아져야 된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갖추고 있는 본래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는 일이지
크게 다른데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제서야 저희들은 세존께서 부처님의 지혜에 대하여
아끼는 것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부처님이 아낄 리가 있습니까? 어림도 없죠.
그러면은 제일 아주 못난 죄, 법을 아끼는 죄에 떨어집니다.
돈을 아끼거나 무슨 재산을 아끼는 것은 큰 죄가 아니예요.
그런데 법을 아낀다, 진리의 가르침을 아낀다고 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부처님은 그런 죄인 노릇을 할 까닭이 없죠.
그 까닭은 저희들이 본래부터 참으로 부처님의 아들이면서도
다만 소승법만을 좋아 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저희들이 큰 법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부처님께서 저희들에게 대승법(大乘法)을 설하여 주셨을 겁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했을 텐데 우리 근기가 그렇다보니까 부처님께서 근기에 맞추어서
결국은 우리들에게 소승법을 설한 것입니다.
결코 우리 허물이지 부처님 허물은 아니다 하는 그런 의미를
여기서 잘 나타내고 있죠.
참 우리의 이런 시간은 삶에 있어서 아주 훌륭한 선택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최고의 경전이라고 이 법화경의 참뜻을 우리가 깊이 이해해서
많은 분들에게 바르게 좀 전해 주셨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간절합니다.
웬고 하니, 법화경을 신행하면서 그 좀 삿되게 된 그런 예를 사실 많이 봐요.
다른 경전공부 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법화경 공부하다 삿되게 되는,
삿된 생각을 하는 그런 예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니까 좋은 경전일수록 바로 이해하기가 그렇게 쉬운 게 아닌가 보죠.
어째든 우리가 이런 좋은 시간을 마련해서 공부하고 있는 이 보람을
우리는 한껏 수용해야 하고 또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야 되지 않겠나 하는
그런 생각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 경(經)에서는 오직 일불승(一佛乘) 만을 말씀 하십니다.
예전에는 보살들 앞에서 성문들은 소승법을 좋아 한다고 나무라셨으나,
그러나 부처님은 참으로 대승으로써 교화 하셨습니다.
그동안 늘 그렇게 소승 좋아 한다고 나무랐다는 거죠.
그래 분명이 말하는데 오직 일불승만을 말씀하십니다.
일불승이 뭡니까?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인 부처의 경지, 하나인 부처의 삶뿐이라는 거죠.
그러므로 저희들이 본래부터 바라는 마음이 없었는데
이제 법왕(法王)의 큰 보배가 저절로 굴러 들어와서 부처님의 아들로써
당연히 얻어야 할 것을 얻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산문으로 자신들의 그동안 부처님께 귀의하고
쭉 공부 해오고 그러면서 생각 했던 점, 열반이라고 하는 문제,
그 다음에 보살들을 가르치는 어떤 수준의 문제, 처음들은 것은 아니죠.
그러나 그것을 남의 일로 생각 했었다 하는 것.
상수 제자가 되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는 것,
이런 것들이 사실은 문제가 많죠.
여기 와서 그래도 그런 것들을 다 뉘우치고 아주 궁자의 비유라는
명비유로 들어가면서 그 다른 사람의 본보기가 되게 하는 것은
이건 대단한 이야기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게송으로 다시 설하다, 법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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