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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블레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작성자폭주기관차|작성시간04.02.15|조회수864 목록 댓글 16

라블레,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민희식옮김, 을유문화사, 1982

[*다른 책을 읽다가 너무도 궁금해했던 라블레의 책을 제본해 준 올멕에게 먼저 고마움을 표합니다. 고마워...^^;;]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로 묶여진 이 책은 사실은 각기 다른 5권으로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연대기이다. 라블레(1483?∼1553)가 처음 발표한 책은 먼저 제 2書인 <팡타그뤼엘>(1532년) 그당시 프랑스에서 회자되던 가르강튀아 연대기에 견주어 나온 작품이다. 이 제 2서<팡타그뤼엘>에 이어 팡타그뤼엘의 아버지 가르강튀아의 연대기인 제 1書 <가르강튀아>(1534년)이 나온다. 그로부터 12년 후 제 3서를 발표하게 된다. 그리하여 제 1서 <가르강튀아>, 제 2서 <팡타그뤼엘>, 제 3서<팡타그뤼엘> , 제 4서 <팡타그뤼엘>, 제 5서 <팡타그뤼엘>로 구성된다. 이 책들은 끝없이 개혁을 요구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인해 교회의 탄압을 받게되었다. 제 4 서 역시 자기 검열을 거친 후 출판하지만 금서 조치 된다. 그리고 제 5 서는 사후에 발표된 작품으로 진위여부가 아직도 판가름나지 않았다고 한다.

라블레의 이 작품에 대해 정리를 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너무도 방대하고 박식한 작품이다.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저다 라블레를 살펴보고, 작품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얘기해본다.
라 드비니에에서 태어난 라블레는 푸아투 수도원에서 그 지방 출신의 시인과 법률가들이 모이는 문예 살롱을 드나들면서 이교(異敎)의 고대문화에 큰 감동을 받아 혼자서 그리스어를 배워 시를 습작하였다. 그후 수도원 생활를 접고 파리 등 여러도시를 돌아다니면서 학문을 닦아 몽펠리에 대학에서 개업의 자격을 얻는다. 프랑스 르네상스 사조의 중심지인 리옹 시립병원에 의사로 근무하면서 <제 2의 서 팡타그뤼엘>(1532년)를 익명으로 발표한다. 그후 1534년 <팡타그뤼엘> 전권에 해당하는 <제1의 서(書) 가르강튀아>(1534)를 발표했다. 그해 가을에 시작된 복음주의와 종교개혁운동을 탄압하는 강권의 파급이 두려워 라블레는 리옹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사이 개혁운동 사상탄압을 고려하여 삭제하고 교정하여 개정판을 간행했지만 책들은 금서처분 명령을 받는다. 결국 12년이 지나, 1546년 <제 3 서 팡타그뤼엘>을 본명으로 발표하나, 즉시 금서로 취급받아 국외로 망명하게 된다. 그리고는 1552년 <제 4서 팡타그뤼엘>이 발표된다. 하지만 발표 즉시 파리대학 신학부의 고발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1553년 1월 라블레는 사제직을 사퇴하는데, 다음해 파리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1562∼1564년에 걸쳐 <제5 서 팡타그뤼엘>이 출판되는데, 처음에는 최초의 16장이 그 다음에는 전체가 유작으로서 출판되었다. 하지만 전체 또는 일부가 위작이라는 의문을 남기고 있다. 이 밖에도 라틴어로 쓴 <육상모의전기(陸上模擬戰記)> 등의 소품과 몇 편의 서간도 있다. 프랑스 르네상스의 여러 문제를 취급한 휴머니스트로서 중세 신학자제도를 비판하여 인간성의 진보와 학문에 대한 신뢰를 고취한 그의 공적은 매우 크다. 잠깐 살펴보았다. 라블레의 삶은 신학에서 어학으로, 그리고 의학으로, 다시 작가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원하는 방향에 따라 차분히 진행시킨 인생 아니었을까?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 보여주는 목마른 자인 전형적인 인간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에 대해 실제로 읽는 것을 제외하고는 달리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오래된 문학적 자양분으로 영어권의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스페인어권에는 세르반테스가, 프랑스어권에는 이 라블레가 있지 않을까?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방해 요인이 몇가지 있다. 첫째는 기본적으로 성경에 대한 세심한 이해부족이고, 두번째는 그리스 철학사를 비롯한 철학사에 대한 이해부족이다. 거기에 그 당시 프랑스에서 배웠고 통용되었을 다양한 언어적 교감의 빈곤이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즐겁게 웃고 즐길 수 있지만, 인물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여러 언어를 차용하는데, 모르기에 주해을 참고하며 읽어야했다. 이렇게 철학과 문학과 신학이 총망라된 채, 인간이 쓰는 언어로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단어들로서 표현된 작품으로도 한편 생각된다. 간간히 등장하는 어떤 어떤 종류의 나열에 관해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온전한 이해는 어렵지만, 라블레라는 인간의 상상적인 글쓰기에 감탄하고 읽는 동안 웃는다. 그 지리하고도 의미없어 보이는 듯한 무훈극과 모험담에도 역시 감탄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까지 상상적이고 허구적인 재미를 추구해야하는 존재일까?


이 책의 주인공들 역시 이름의 어원이 있다. 가르강튀아의 이름의 어원과 팡타그뤼엘의 이름의 어원은 공히 마시고 싶다(갈증)와 연관된다. 가르강튀아는 태어나면서, '마시고 싶어! 마시고 싶어!(96쪽)'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이것을 듣고 그 가르강튀아의 끔직하게 큰 목소리에 대해 '참 너는 크구나! (Que grand tu as!)(96쪽)'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입에서 최초로 나온 말에서 작명하는 고대 헤부르의 관습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팡타그뤼엘이란 이름의 유래다. '팡타(Penta) 만물이라는 뜻이고 그뤼엘(gruel)은 아가렌어로 목마르다는 뜻으므로, 그 탄생에 있어 전세계가 고갈된 뜻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며, 또 미래를 바라보는 신통력으로 이 유아는 후일 목마른 인종을 정복할 것이라고 하는 생각도 있는데, 그것은 곧 다른 징조에 의해서 입증되었다.(222쪽)'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이름을 통해서 살펴보더라도,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된 지류는 '마시고 싶다'와 '목마르다'의 이름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과연 무엇에 목말라 있는가? 물론 이 작품에서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인간 해방을 위한 술과 먹는다에 대한 갈증이다. 하지만 파고 들어가보면, 인간의 끝없는 뭔가(어딘가)를 향한 갈망에 대해 마시고 싶다와 갈증으로 표현한 듯하다. 이 작품을 흔히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거대인간을 통해 보여진 인간정신의 부흥이라고 말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 1書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아버지인 가르강튀아의 탄생이 보여지고, 그를 교육하기 위해 파리로 유학을 떠나보낸다. 파리에 도착하여 시민들을 놀라게 하는 일화가 보여지면서도 역시 웃음이 시종일관 떠나지 않는 가르강튀아의 삶이다. 나중 가르강튀아의 역사는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을 통해 더욱더 거대영웅적인 면모가 보여진다. 사소한 밀전병 때문에 벌어진 전쟁은, 상황을 알아 보지도 않고 어이없는 전쟁을 일으키는 신경질 투성이 피크롤콜왕때문이다. 이 전쟁에서 거인족 가르강튀아는 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 서에서도 시종일관 웃음과 모험과 마시고 갈망하는 삶이 보여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즐거운 순간들의 연속이다. 마신다는 것과 갈증에서 뭐가 먼저냐는 질문을 한참 던지는 연회에서 가르강튀아는 태어난다. 다르는 것에서, 뛰어남만이 아닌 차이의 웃음을 선물한다. 끝부분에서 벽이 없는 텔렘 수도원이 보여지는데, 그들의 생활방침은 '네가 원하는 바를 하라(205쪽)'이다. 개개인이 각기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는 세상이야말로 진정 이상적인 종교국가가 아닐까를 질문하게하는 이상적인 수도원에 대한 표현으로 생각하게 된다.


<제 2書 팡타그뤼엘>

팡타그뤼엘의 탄생에서 비롯된다. 학문수양을 위해 파리유학이 보여지고, 나중 세상의 모든 언어를 알고 있는 듯한 파늬르주와의 만남이 보여진다. 그리고는 이 제 2서에서는 가르강튀아가 다스리는 나라를 유토피아 왕국이라고 명명한다. 이 2서에서는 거인이면서도 학문적 자질이 남다른 팡타그뤼엘의 저력이 맘껏 보여진다. 솔로몬의 재판과도 같은 부분이 있는데, 원고와 피고의 주장이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안 되는데 팡타그뤼엘은 멋진 재판을 해냈다고 나와있다. 인간의 복잡한 송사보다도 더 복잡한 법률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읽기는 하는데, 여전히 팡타그뤼엘의 판결이 나는 이상하다.하지만 원고와 피고는 둘다 만족하고 떠난다. 특히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나온다. 죽은 암캐의 자궁에서 추출한 물질을 파늬르주가 자신이 일방적으로 열정을 품게 된 귀부인의 옷에 뿌려 개들이 행렬을 이뤘다는 부분에서는 그 과장됨에 어이없는 웃음이 극에 달했다. 가장 먼저 완성되었지만, 지금에 와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서사적 구성과 팡타그뤼엘, 가르강튀아, 에피스테몽, 파뉘르즈의 면모가 제대로 보여진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팡타그뤼엘이 어떻게 아프게 됐고 어떻게 나았는가 부분에서는 요즘 영화에서 차용한 듯한 내용이다. 위가 아파서 마실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게 된다. 이는 곧 생명체의 죽음 아니겠는가? 먹고 마시자고 태어난 인간이라는 라블레적 견해서 보자면 말이다. 하긴 인간의 활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먹는 것과 배설 아니겠는가? 이에 대한 대처법으로 하제와 이뇨제를 사용하는데, 치료의 주방법이 특이하다. 거인이니만큼 통 속에 들어있는 사람들이 삽을 들고 입 안으로 들아가서, 위로 아래로 청소하는 것이다. 상상력의 무한함이다.

<제 3書 팡타그뤼엘>
이 3서 부터는 파뉘르즈가 보다 중심에 놓인다. 실수가 많고 회의하고 갈팡질팡하는 파뉘르즈를 중심에 둔 듯한 작품이다. 디프소트와의 전쟁에서의 어이없는 승리 후 파뉘르주는 이긴 보답으로 살미공탱의 영주가 된다. 파뉘르즈는 3년동안에 살미공탱의 예산을 다 써버리고 빚까지 진다. 이에대해 인간관계란 대차관계의 유지라고 억지스레 얘기하는 파뉘르즈의 모습에서도 우린 웃게 된다. 매번 흥미롭고 어이없는 파뉘르즈의 모습이다. 후반부에서는 제 3서에는 파뉘르즈가 결혼을 해야하는가를 묻는 과정이 등장하는데 그것도 가관이다. 결혼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누구랑 할 것인가가 아닌, 다만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를 중점토의한다. 그에 대한 답을 호메르스와 베르질리우스의 점, 몽점, 팡주의 무당과 상의하기도 하고, 수도자의 쟝의 권유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게 의미없을 수도 있는 질문(자신이 하고 싶고 한다로 결정하면 되는데 말이다)을 던진다. 끝없이 질문하는 모양새가 즐겁긴하다. 역시 인간이란 자고로 일을 만들고 일을 즐기는 부류인가보다. 한데 여기에서 그가 결혼을 할까 생각하는데, 거기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바로 코퀴가 될까봐서이다. 코퀴Cocu란 부인을 다른 남자에게 뺐기는 남편을 말하는데, 얼마만큼 여자에 대한 신의가 없는지도 알 수 있다. 어찌됐든 결국 결론은 없다.

<제 4書 팡타그뤼엘>
제 4서는 바크부크(헤브루어로 甁를 가르키는데, 병을 비울 때 나는 소리를 따서 말한 것)에게 신탁을 물으려고 항해한 일에서 시작하는 여러 섬들을 경유한 무훈서사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상하고 신기하고 놀라운 섬들의 연속이다. 많이 놀랍고 신기한 체험들이다. 이 부분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양을 팔라는 파뉘르주의 말에 양의 질만을 말하는 본론에서 벗어나는 말을 하는 상인 앞에서 파뉘르주는 결국 한 마리의 양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그러자 수없는 양들이 양의 속성상 따라하면 죽을 줄 모르고 바다로 들어가는 부분에서였다. 결국 양의 주인까지 들어간다. 이렇게 만든 사람은 바로 파뉘르즈다. 자신의 맘에 안들면 어떻게든 골탕먹이는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제2서에서 팡타그뤼엘의 무리에 만나는 부분이 있다. 이대 파뉘르주는 자신이 알고 있는 수없이 많이 언어를 나열한다. 그가 그러는 이유는 그의 현학적인 허세를 뽐내기 위해서였다. 그가 굶주리고 도움이 필요한 인물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않는가의 마음이 근본에 깔려있다. 결국 도움이 필요한 파뉘르주는 최후에 가서야, 보여줄 것을 다 보여준 후 불어로 말한다. 하여튼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을 나중 다시 읽게 될때는, 이 파뉘르주에 초점을 맞추어 읽게 될 것 같다. 팡타그뤼엘보다 흥미로운 인물이다.

<제 5書 팡타그뤼엘>

진위여부가 의심되는 부분이지만, 작가의도가 직접적으로 내비쳐지는 부분이다. 지하로 내려가는데, 여사제 바크부크가 파뉘르즈를 그 술병신에게 데려간다. 그를 이끌고 가는 것은 또한 불을 밝히는 안내자(리크노비앙Lychnobiens-초롱불빛으로 사는 사람)가 보여지는 부분에서, 안내와 즐김이 되는 책이 되길 바라는 작가 의도로 읽는다. 이 작품의 주제가 될 수 있는 문장이다.

'이 글을 맛보고, 이 아름다운 고대의 예언자는 한 권의 책을 먹고 이의 끝까지 꼭 차도록 학문을 몸에 지니게 되었습니다. 지금 , 이것을 한 잔 마시면 간장(肝臟)에 이르기까지 학문을 몸에 지니게 되십니다. 자, 입을 벌리십시오.(816쪽)' Trinch(마시라)

그리고 라블레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하는 교훈적인 내용이 들어있는 또 하나의 문장이다.
'모든 철인과 고대의 현자들도 더없이 확실하고 또 즐겁고 성스러운 지식의 길을 걷고 예지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필요로 했으니까요. 즉 신의 이끄심과 반려자인 인간입니다.(823쪽)'
신만이 중심이 되었던 중세에서, 신의 이끔과 더불어 반려자로 존재하며 그 신을 따르는 인간의 중요성를 작가는 말한 듯하다.


간략하게 책을 알아보았다. 책을 읽어가면서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질문은 역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것이다. 인간이란 태어난 이상 생존을 전제로 한다. 생존을 위해서 물질적인 갈망이 있고, 그 물질적인 존재만이 아닌 정신적인 성장과 존재를 위해 지적인 갈망이 필요하게 된다. 거기에 인간은 마시고 갈망해서 취했던 것을 반드시 배설(표현)해야하는 존재다. 그래서 먹는 것만큼이나 배설과 연관된 얘기가 많이 등장한다. 그 생존과 배설로부터 인류의 순환고리를 위해 존재해야하는 전제조건이 있다. 새로운 인간이 탄생해야한다는 것인데, 바로 차별화된 남과 여의 존재다. 한데 문제는 순환의 한쪽 고리인 여자를 중세에 얼마나 간과하고 살았던가를 곳곳에 살필 수 있다. 심지어는 팡타그뤼엘의 탄생에서는 너무도 큰 팡타그뤼엘이 태어나면서 어머니는 죽어버리기까지 한다. 엉덩이만이 존재하는 여자로 비쳐지는 작품 안의 여자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작품을 따라 흘러가보면, 그러한 생각이 변하는 듯 보인다. 작품이 진행될수록 여자의 다른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제 4의 서, 제 5의 서에서 더욱 확연해진다. 섬들의 오디세이아는 이국의 왕들을 주로 여왕으로 표현하고 있고, 나중 여사제의 등장으로 끝을 장식한다는 데서 찾는다. 너무 좋게 보는 변화의 물결일까?

왜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의 거인족이 그 당시에 그토록 유행할 수 있었을까? 신 중심의 사회에서 그것이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인간중심으로 바꿔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래서 거인족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중심에서 시작한 이 작품도 후반부로 갈수록 가상이지만 인간 군상이 보여지는 것이고, 파뉘르주 중심으로 그려보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를 읽고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태어난 날도 아버지 그랑구지아(거대한 목구멍)와 어머니 가르가멜은 연회가 한창이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목이 마른 것이 먼저인가 마시는 것이 먼저인가를 질문을 주거니 받거니하는 연회에서였다. 태어나자마자 가르강튀아도 마시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인간이기에 필요한, 아니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어떤 것에 대한 더한 갈증으로서의 갈망을 생각한다. 조금은 지리한 감도 있고, 내가 읽기는 읽었나 싶은 마음이 솔직한 마음이다. 읽었는데, 재미와 어처구니 없는 모험담으로 뭉텅이 진 느낌이다. 라블레와 작품을 하나로 모아보려는 마음이 들었다면 분명 몇 번을 읽고서야 이 곳에 뭔가 흔적을 남겼을테지만,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는 그저 읽는 동안의 즐거움만이도 되지 않을까로 생각하며 몇 자 남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 대해 어이없다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읽고 나서는 무한한 상상력을 지닌 인간이란 생각이 압도적이다.

더불어 웃는 존재로서의 인간임을 새삼 느낀다. 그에 대해 라블레의 사상이 모아진 <가르강튀아> 의 독자에게 중에 이런 문장이 있다.
'눈물 흘리기보다는 웃는 것이 낫다.
웃는 것이 人間의 本性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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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모모 | 작성시간 04.01.21 네, 알아봤더니 만초니 작품도 번역이 진행중이라지요. 제가 제본하는 걸 좋아하기는 합니다만 새로 번역이 되면 이중으로 비용이 들지요. 마술적 사실주의는 제가 올린 후안 룰포의 <뻬드로 빠라모>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고 앞에 글을 조회해보니 출처를 밝히고 퍼온 글이 가끔 보이기도 해서 따로 올려본 것인데,
  • 작성자모모 | 작성시간 04.01.21 카페 규칙이라고 하시니 자진 삭제토록 하겠습니다. 그나마 며칠 기간을 주셨으니 관심이 있는 분들을 다 읽으셨으리라 봅니다.
  • 작성자프로이트 | 작성시간 04.01.22 글 잘 보았습니다....전 약간 비관주의 경향의 사람인데...'눈물흘리는 것보다는 웃는 것이 낫다.'는 마지막 문장을 보다가 프로이트가 한 말..."울지않기 위해 웃는다.",가 갑자기 자유연상돼서...썰렁...
  • 작성자폭주기관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1.23 우연에 대해서는 책을 읽어가는 삶이라면 카페에서의 무늬가 많이 겹쳐질 겁니다. 저도 자주 경험하거든요.^^그런 우연과도 같은 조우에서 이 카페에 대한 모모님의 애정 또한 커질라나요....^^ 부러움에 대해서는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니 다행입니다...
  • 작성자폭주기관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4.01.23 그리고 티보가의 사람들은 안읽었는데요... 모모님에게는 아주 소중한 책이군요... 의외의 곳에서 발견하는 교차점이 있다면, 짐작과 다른 합집합으로 인정해야하는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오해에서 비롯된 대화의 시작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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