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녹색의 집>에 대하여 (파트롱 님)

작성자kundera|작성시간02.09.18|조회수202 목록 댓글 0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은 처음이라,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적 정서와 그의 독특한 내용 구성력에 낯설음을 안고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그의, 시공간성의 경계가 불분명한 이야기 전개ㅡ같은 단락 내에서도 준비도 없이 전환대는 장면과 다른 공간에서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대화들ㅡ는, 불편했는데, 아무런 표지가 없는 시골길을 맞딱리는 기분이랄까. 허나, 차라리 지금에 와서는, 약간은 지루하기도 한 이야기를,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던 것도, 무작정 시골길을 내리걷듯이, 이야기 외에는 신경쓸 게 따로 없는 이유이다.


<녹색의 집>에서 주목할 것은 바로 '녹색의 집'의 정체이다. 작품을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친 고발 소설로 단순하게 분류한 역자의 평을 따른다면, 녹색의 집은 단순히 매음굴로서, 부조리의 상징이라는 결론을 넘어설 수 없다. 하지만 녹색의 집을 지은 돈 안셀모가 사람들에게 깊은 추앙을 받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미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또 다른 상징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 마지막에서, 안셀모와 보니화시아의 대화에서 잠깐 언급되었듯, '녹색'은 밀림의 색깔, 즉 자연의 밀림을 뜻한다. 밀림은 라틴 아메리카인들에게 보편적인 향수를 담고 있으며, 녹색의 집은 그러한 민족의 정서가 반영된 정신적인 결과물인 것이다('정신적인'이라 한 것은 면면히 이어져 흐른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녹색의 집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지만, 있었다는 확신을 완고히 하기 위한 목적이지, 부정을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들이 은근히 삐우라(도시)인이 되기보다는 망가체리아(시골)인으로 남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원주민들을 이용한 고무 착취와 기독교의 유입으로 인한 강제적인 개종으로 이어지는, 모더니티의 수용은 파괴되어가는 밀림과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민족적 유대감의 변질을 초래할 따름이다. 가르시아 신부와 안셀모의 대립도 결국은, 모더니티와 반-모더니티의 갈등이다. 파괴와 저항. 이 양자의 줄다리기는 결국 안셀모의 죽음과 동시에 가르시아 신부의 암묵적인 화해로 끝을 맺는다. 누가 승자인가? 가르시아 신부도 결국, 기독교인이기 이전에, 망가체리아인임을 실토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작가는, 망가체리아인의, 밀림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그리 순탄치 않음을 냉정하게 말하고 있다. 밀림녀인 보니화시아의 애타는 목소리는, 모더니티의 맛을 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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