뻬드로 빠라모, 후안 룰포, 정창 옮김, 민음사, 2003. 12. 15 펴냄.
중심화자인 후안 쁘레시아도가 어머니 돌로레스의 유언을 듣고 생부인 뻬드로 빠라모를 찾아가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는 물꼬를 튼다.
- 꼬말라에 왔다. 이곳은 내 어머니의 남편 뻬드로 빠라모라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마을이다. (7쪽 첫 문장)
쁘레시아도가 뻬드로 빠라모를 아버지라고 칭하지 않고 '내 어머니의 남편'이라고 한 것은 죗값을 톡톡히 치러야 한다고 생전의 어머니가 귀가 닳도록 되뇌던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이라기보다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강한 부정을 의미한다고 보아진다.
- 나는 내 어머니의 남편인 뻬드로 빠라모라는 사람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꼬말라에 왔다. (8쪽)
이 작품에서는 특히 쁘레시아도가 죽은 시점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즉 꼬말라에 온 것이 쁘레시아도의 죽은 영혼이라는 견해와 꼬말라에 와서 죽었다는 견해로 나뉘었다. 룰포는 인터뷰에서 쁘레시아도가 꼬말라에 도착할 때는 살아있었으나 꼬말라에서 죽는다고 했다고 하는데 곳곳에서 모호함이 드러난다.
- 나를 사라지게 만들었던 운무 같은 것을. 그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본 어떤 것이었다. (81쪽)
여기에서 쁘레시아도의 죽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바로 쁘레시아도와 도로떼아가 무덤 속에서 나누는 대화가 나오기 시작하지만, 도니스 남매의 집에 머무르던 쁘레시아도가 왜 갑자기 마을 광장에서 죽음을 맞이했는지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 도로떼아 아주머니, 나를 죽인 것은 속삭임이었어요. (82쪽)
꼬말라가 유령들이 득실대는 곳임을 깨달은 쁘레시아도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본격적으로 뻬드로 빠라모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쁘레시아도가 뻬드로 빠라모의 또 다른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마부의 소개로 도냐 에두비헤스를 만나는 장면 뒤에 뻬드로 빠라모의 어린 시절이 잠깐 끼어 드는 것을 시작으로 뻬드로 빠라모의 이야기가 무시로 삽입되기 시작한다.
도냐 에두비헤스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어머니의 신혼생활은 뻬드로 빠라모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드러나게 한다. 결국 돌로레스가 애정도 없는 결혼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그리운 언니를 찾아 뻬드로 빠라모를 영원히 떠나게 되지만 뻬드로 빠라모의 반응은 역시나 냉담하다. 그래서일까, 아들에게 회고 형식으로 들려주는 돌로레스의 음성이 잔잔한 여운을 남겨준다.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가 땅을 가로채기 위해 어머니 돌로레스에게 일부러 청혼을 했다는 사실과 또리비오 알드레떼의 땅을 빼앗기 위해 잔인하게 교살을 하고 시신까지 수습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일련의 사실들을 쁘레시아도가 알게 돼 분노하는 것으로 설정하지 않고 행정소송대리인 풀고로 세다노와 뻬드로 빠라모의 과거로 처리하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쁘레시아도의 아버지에 대한 무관심과 함께 과거에 전혀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뻬드로 빠라모의 독립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 "기대할 게 없소. 저놈은 나중에 나를 외면할 놈이오. 나는 자식 농사에 실패했소." (53쪽)
이처럼 뻬드로 빠라모는 아버지 루까스 빠라모에게도 인정받지 못했고 아들인 쁘레시아도의 관심도 얻지 못한다. 하물며 분노까지도. 룰포는 뻬드로 빠라모라는 한 인간을 통해 철저한 고독을 그리려한 것은 아닐까.
후반부로 가면서 더더욱 혼란스럽게 등장하는 각종 독백이나 대화가 시간의 흐름을 무시하고 있지만 읽는 동안 별로 의식을 하지 않게 된다. 룰포가 '구조에 역점을 두고 쓴 작품'이라고 할만하다.
- 풀고르 씨, 당신은 그 여자가 이 세상이 준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소? 한때 나는 그 여자를 영원히 잃었다고 생각했소. 하지만 이제 다시는 놓치지 않을 거요. (119쪽)
쁘레시아도는 무덤 속에서 한 여자(수사나)의 끊임없는 중얼거림을 듣게 된다. (나중에 이 중얼거림은 수사나가 죽은 뒤 뻬드로 빠라모에게 전가된다.) 도로떼아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뻬드로 빠라모의 마지막 부인이자 단 한 명의 연인 도냐 수사나의 이야기는 뻬드로 빠라모의 지독한 사랑을 보여준다. 파산한 광산업자이자 수사나의 아버지인 바르똘로메 산 후안은 자기 자신과 수사나의 앞날을 예견하면서도 딸의 신변을 염려해서 뻬드로 빠라모를 찾아간다.
- 그 여자는 혼자 있어야 하고, 혼자 사는 사람을 우리가 돌보는 일은 당연지사 아니겠소? (120쪽)
결국 바르똘로메는 뻬드로 빠라모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유령이 되어 딸을 방문한다.
수사나가 자신의 연인 플로렌시오와의 사랑에 대해 탈진이 될 때까지 중얼거리는 동안 그것을 듣고 있어야하는 뻬드로 빠라모는 수사나라고 생각하면서 계집아이와 살을 섞으며 "하지만 어떤 여자는 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152쪽)라고 부르짖는다. 수사나는 왜 뻬드로 빠라모를 그토록 원망하며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 두고 봐. 나는 팔짱을 낀 채 굶어서 죽어 가는 꼬말라를 지켜보리라. (162쪽)
수사나의 죽음 후 삶의 지표를 잃어버린 뻬드로 빠라모는 자신의 땅에서 사람들을 쫓아내고 곳간에 쌓인 곡식들까지 몽땅 태워버린다. 땅이란 땅은 죄다 황무지로 변해버리고 남자들은 목구멍에 풀칠할 만한 곳을 찾아 마을을 떠나가기 시작한다. 처자식은 물론이고 세간까지 맡기고 떠난 사람들은 처자식은 고사하고 고향마저 잊어버린 듯 꼬말라에 돌아오지 않는다. (113쪽 도로떼아가 쁘레시아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서)
- 뻬드로 빠라모는 메디아 루나 (뻬드로 빠라모가 거주하는 대농장)의 거대한 대문 옆에 놓여 있는 낡은 팔걸이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제 막 어둠의 끝자락이 걷히고 있었지만 그는 의자에서 일어날 생각조차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밤새 뜬눈으로 뒤척이던 그가 밖으로 나온 지 세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는 잠을 자지 않았다. 잠자는 것도. 아니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 있었다. (164쪽)
끝까지 뻬드로 빠라모의 곁을 지키던 다미아나가 죽은 아내를 땅에 묻기 위해 돈을 빌리러 온 가는귀먹은 아분디오의 비수에 맞아 쓰러지는 것은 곧 이어질 뻬드로 빠라모의 죽음을 암시한다.
- '모두들 똑같은 운명을 선택하고 그렇게 가는 거야.' (171쪽)
1인칭과 3인칭 화자가 수시로 번갈아 등장하고 독백과 회상을 뒤섞어 자칫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뻬드로 빠라모의 고독과 수사나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이 주가 되지만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유령들의 대화나 독백이 독립된 서사를 제공하고 있다.
오직 자식을 갖겠다는 일념하나로 평생을 살아왔던 '쩔뚝이' 도로떼아가 쁘레시아도의 무덤 속에서 쁘레시아도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쁘레시아도의 양팔 사이에 끼어 안겨있는 것이 잠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멈추게 했으며,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채 친남매가 부부관계를 맺는 도니스의 이야기와 뻬드로 빠라모가 수많은 아들 중에서 렌떼리아 신부로 인해 유일하게 인정하고 곁에 두었던 아들 미겔 빠라모가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망나니짓을 일삼다가 자신이 아끼던 말 때문에 죽게되자 주인을 찾아 헤매 다니는 짐승의 슬픈 말발굽소리가 도냐 에두비헤스의 귀에 들려오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또 한 작품이 계속 연상되었다. 1988년에 발표되어 스페인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스페인 현대소설 훌리오 야마싸레스(Julio Llamazares)의 <낙엽비>(원제는 노란비 La Lluvia Amarilla)이다. 스페인 북부 피레네 산맥 속의 눈 덮인 작은 고산 마을, 그 마을의 마지막 생존자의 시각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 엇갈려 표현된다. 죽음과 고독사이의 혼란, 현재보다는 과거가 더 생생하게 그려지고 과거 속에 빠져 든 서술자는 현재와 과거를 구분하지 않고 과거의 일을 현재 시제로 이야기함으로써 고독한 삶을 살아있는 고통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수사나의 죽음에서 사비나의 죽음이 겹쳐졌으며 유령들이 떠돌고 있는 꼬말라에 젖어있는 동안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은 '아이니엘'이 떠올랐다. 꼬말라는 마르께스의 <백년의 고독>에서 창조한 '마꼰도'의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후안 룰포는 <뻬드로 빠라모> 이후 긴 침묵으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몽환적인 분위기와 시적인 문장이 어우러져 현실과 비현실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이 작품도 먼저 접했던 그의 단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감상을 안겨주었다. 특히 이 작품은 까를로스 푸엔떼스의 <아르떼미오 끄루스의 죽음>과 함께 혁명소설로 다루어진다고 하는데 그의 단편 <우리에게 땅을 주었습니다>에서 '심지어는 검은 까마귀도 살지 않을 땅'을 농민들에게 떠 안기고는 그들이 공격해야 할 대상은 대지주들이지 땅을 준 정부가 아니라면서 서면으로 제출하기를 요구하는 뻔뻔스런 정부의 정곡을 찔렀던 것에서 렌떼리아 신부가 끄리스떼라 반란에 가담하기까지의 심리묘사와 뻬드로 빠라모에게 물뱀 다마시오가 렌떼리아 신부 편에 서야할지 반대편에 서야할지 갈등하는 것으로 처리했다.
라파엘 꼰데는 한 칼럼에서 '<뻬드로 빠라모>는 모든 문학의 자식이며, 요약이며, 정점이다. <뻬드로 빠라모> 이후, 후안 룰포가 아무 것도 발표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룰포는 영원히 소모되는 기적으로부터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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