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통신문에서 레르몬토프의 ‘마지막’ 시 <나 홀로 길을 나선다>에 대해서 몇 마디 언급했는데, 나는 이 50번째 통신문에서도 그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한다. 유리 미하일로비치 레르몬토프(1814-1841)에 대해서 말이다. 푸슈킨에게서는 ‘기념비’란 테마가 시인 자신에게서조차 주제화되며, 그의 ‘예언’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탄생 100주년(1899년), 사망 100주년(1937년), 탄생 200주년(1999년) 등이 매번 성대하게 치러진 반면에, ‘고독’의 시인 레르몬토프는 그의 문학적 ‘유언’(<나 홀로 길을 나선다>)에 걸맞게 언제나 혼자였다.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 되던 1914년에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사망 100주년이 되던 1941년엔 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2차대전은 1939년에 발발하지만, 소련은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던 독일의 공격을 받고 나서야 뒤늦게 비로소 참전한다). 해서, 러시아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시인/작가이자 러시아 낭만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국 러시아에서 한번도 제대로 기념되지 못했다(그의 지명도에 비추어보면, 거의 미스터리한 일이다). 그리고 올해는 그의 탄생 190주년이 되는 해였지만, 역시나 그와 관련된 행사들은 (내가 아는 한) 치러지지 않았다(체홉 사망 100주년에 묻혀서). 그저 문학신문의 기념 기사 한 자락 정도.
하다못해 2주전 일요일에는 그의 탄생 190주년을 기념하여 대표작인 <우리시대의 영웅> 등이 ‘문화채널’에서 영화로 방송됐지만, 그날 따라 나는 저녁 늦게야 TV프로그램을 확인했다(그의 탄생일은 1814년 10월 3일이다. 2일 밤인데, 보통 3일로 기록한다. 이게 구력일 것이기 때문에, 지난 17일이 신력에 따른 생일이었을 것이다. 결투로 인한 사망은 1841년 7월 15일. 황제 니콜라이 1세는 그의 죽음에 대해서 “개죽음이로군!”이라고 간단히 언급했다. 한편 최초의 레르몬토프 전기는 파벨 비스코바트이의 것이며 1891년에 나왔다. 이 책은 올해 재출간됐다). 나는 레르몬토프를 전공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게 ‘무심하게’ 지나쳐버린 일이 한동안 내 마음을 갉아먹었다.
사실 그에 대한 본의 아닌 ‘홀대’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의 조국’ 한국에서는 레르몬토프를 거의 읽을 수가 없다. 지난 1999년에 전집이 간행된 푸슈킨과 다르게 그나마 우리말로 번역/출간된 레르몬토프의 시집과 소설 <우리시대의 영웅>(한길사, 조선대출판부)은 진작에 품절되었다(<우리시대의 영웅>은 영어 중역본도 나와 있었지만 역시 품절. 참고로 영역본 <우리시대의 영웅>은 나보코프가 그의 아들과 함께 옮긴 것이다). 그의 드라마 <가면무도회>도 <러시아희곡1>(열린책들)에 들어가 있지만, 이 책 또한 품절인 걸로 안다(그의 <가면무도회>는 지금도 모스크바의 무대에 올려지고 있으며 이번 시즌에 포킨이 연출한 고골의 <외투>와 함께 내가 가장 보고 싶어하는 레퍼토리이다).
해서, 아마도 당장에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레르몬토프는 내가 아는 한 없을 듯하다(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건대출판부에서 나온 작가론 <레르몬토프>를 소략한 대로 참조할 수 있다). 요컨대, 그는 우리말로 쉽게는 읽을 수 없는 시인/작가인 셈이다(참고로, 레르몬토프의 러시아어 전집은 2권짜리에서 10권짜리까지 다양하며, 보통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4권짜리 전집이다. 한편, 푸슈킨과 마찬가지로 그는 장교시절에 포르노그라피적인 시들도 썼는데, 그런 시들만을 따로 묶은 <성인을 위한 레르몬토프>도 올해 출간됐다. <성인을 위한 푸슈킨>과 함께. 두 책 모두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도색화보들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 한국에서라면 도색잡지로 분류돼 판금될 만한 책들이다).
해서, 생전에나 사후에나 고독한 그의 운명과는 비록 다소 걸맞지 않아 보일지라도, 약소하지만 이 50회 통신문은 (무심코 지나친 그의 생일을 기념하여 뒤늦게) 그에게 바치고자 한다(이런 걸 뒷북이라고 한다. 하지만, 마음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뒷북이라도 치는 것이다). 이건 며칠 전에 작정한 것인데, 좀 전에 혼자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해치우기로 했다. 그렇다고 새로 무슨 글을 쓰는 건 아니고(그럴 형편이 안되므로), 이전에 쓴 글을 약간 편집하는 정도이다(휴식시간 동안 그 일이 끝나기를 바란다).
글은 주로 레르몬토프의 ‘연애시’에 대한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푸슈킨과의 대비 속에서 레르몬토프를 이해하기 때문에, 푸슈킨의 연애시에 대해서도 언급될 것이다. 사실 레르몬토프가 시인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되는 것은 1837년 푸슈킨을 죽음을 권력층의 ‘음모’로 비판한 시 <시인의 죽음>을 발표하면서이다. 푸슈킨의 죽음에 부친 시이면서도 정작 푸슈킨이란 이름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그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시인이 죽었다! - 명예의 노예 -
헛소문과 비방으로 쓰러졌다,
가슴에 복수의 열망과 총알을 박은 채,
당당한 머리를 숙이고 쓰러졌다!
시인의 영혼은 사소한 모욕의
불명예를 참지 못하고,
그는 세상의 소문에 대항하여 일어섰다
혼자서, 예전처럼... 그리고 살해당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는 이 일로 유배당하며, 그에 대한 황제의 미움은 거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이후에 불과 4년을 더 살았을 뿐이다. 레르몬토프 전공자들이 흔히 하는 얘기지만, (레르몬토프와 마찬가지로) 27살에 죽었다면 역시나 총각으로 죽었을 시인 푸슈킨(1799-1837)의 문학적 명성이 레르몬토프를 크게 앞지르진 못했을 것이며, 고골(1809-1852)은 <검찰관>(1836) 공연의 스캔들로 아마 상심해서 죽었을 것인바 아주 재미있고 재능 있는 ‘괴짜’ 정도로 기억됐을 것이고, 톨스토이(1828-1910)는 자전 3부작이나 끄적거리다가 문학사의 여백으로 사라져버렸을 것이며,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 또한 페트라셰프스키 사건(1848)으로 말미암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렸을 것인바 고골의 아류 작가 정도로 기억됐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것도 다 팔자인 걸 어떡하랴…
낭만적 시인에게서 상실의 경험을 말하고자 할 때, 동경의 대상이나 정치적 자유의 상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랑의 상실이다. 프로이트가 상실에 대한 반응태도로서 애도와 우울증을 말할 때에도 일차적인 자료가 되었던 것은 사랑의 대상에 대한 정서적 몰입과 그 대상의 상실로 인한 정서적 충격의 처리 방식이었다. 상실에 대한 두 가지 반응 태도를 다룬 프로이트의 <애도와 우울증>(1917)을 간단히 정리하면(우리말 프로이트전집에는 <슬픔과 우울증>으로 번역돼 있다), 애도와 우울증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에 들어선 어떤 추상적인 것, 즉 조국, 자유, 어떤 이상 등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다. 중요한 차이점은 우울증의 경우에 자기 존중감, 즉 자기애가 급격하게 추락한다는 것이다.
애도의 경우에는 일단, 현실성 검사를 통해서 드러난 사실, 즉 사랑하는 대상이 이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대상에 부과되었던 모든 리비도를 철회시켜야 한다는 요구를 점차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상실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지만, 우울증은 상실한 대상과 자신을 무의식적/나르시시즘적으로 동일시함으로써 대상 상실이 자아 상실로 전환된다. 그리고 대상과 자아 사이의 갈등은 동일시에 의해 변형된 자아와 자아-이상으로서의 초자아 사이의 갈등으로 변모되고, 이것은 대상화된 자아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낳으면서 급격한 자기애의 상실, 곧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 일반적인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낭만주의 시인에게서 사랑의 대상은 강렬한 희열과 시적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거꾸로 그 상실은 그만큼의 정서적인 충격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충격이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시세계에서 어떻게 형상화되며 또 처리되는 것일까?
먼저 모든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을 자신의 의무로 간주하기도 했던 ‘사랑의 시인’ 푸슈킨의 경우, 돈주앙 목록이 얘기될 만큼 사랑은 일상적인 경험이었는데, 그런 만큼 그 대상의 상실도 그에겐 드물지 않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경험, 즉 사랑의 상실 혹은 사랑의 종결을 주제화하고 있는 시들 가운데, 먼저 <모든 것이 끝났다>(1824)를 보도록 하자.
모든 것이 끝났다: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너의 무릎을 껴안고,
나는 애처롭게 호소했었지.
모든 것이 끝났어요 - 너의 대답을 듣는다.
다시는 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을 것이다,
너를 우수로 괴롭히지도 않을 것이다,
지난 일들은 아마도 다 잊게 되겠지 -
사랑이 날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넌 젊고, 너의 영혼은 아름다우니,
또 많은 사람들이 널 사랑하게 되리.
전체 10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내용상 (ⅰ)우리의 사랑은 모두 끝났다(1-4행), (ⅱ)나는 너와의 사랑을 잊을 것이다(5-8행), (ⅲ)다른 사람들이 너를 사랑해주길 바란다(9-10), 세 부분으로 돼 있다. (ⅰ)에서의 핵심적인 내용은 ‘관계’의 상실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끝났다”란 고백이 ‘나’와 ‘너’ 두 사람 모두에게서 발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확정적이다. 그러한 상실에 대한 ‘나’의 반응태도는 무엇인가? 그것이 (ⅱ)의 내용인데, ‘나’는 더 이상 자신을 기만하지 않겠다는 것은 관계의 종결이라는 ‘현실’을 기만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너’를 괴롭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7-8행에서 얘기되는 것은 일종의 체념이다. ‘지난 일들’ 즉 ‘너’와의 사랑은 곧 잊혀지게 될 것이며, 이 ‘사랑’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함으로써 ‘나’의 실패를 정당화한다. 때문에, 이미 종결된 관계를 다시 회복한다거나 계속 유지시켜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이 시에서는 배제된다. 이러한 체념의 바탕에서 마지막 9-10행의 바람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너’는 아직 젊고 아름다우므로 (‘나’ 말고도) 다른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게 되리라는 바람은 거꾸로 ‘나’ 자신에 대한 바람의 완곡어법으로도 읽힌다. 이러한 내러티브의 진행은 전형적인 애도적 서사의 그것이며, 푸슈킨 사랑시의 전범적인 예를 제시한다.
F(애도적 사랑) = (나∩너) → (나∪너) → (나/너∩다른 사람)
(※공식에서 ∩는 연접(連接), ∪는 이접(離接)을 표시한다)
이러한 공식을 전형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또 다른 시가 푸슈킨의 대표적인 사랑시인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1829)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 어쩌면 사랑은 아직도,
내 가슴에서 아직 다 꺼지지 않았는지도.
하지만, 그 사랑이 당신을 더는 괴롭히지 않을 거라오.
나는 당신을 무엇으로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소.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 말없이, 아무런 희망없이,
때론 수줍게, 때론 질투에 괴로워하며.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 그토록 진실하게, 그토록 부드럽게,
신이 당신을 다른 이로부터(도) 사랑받게 해주길 바랄 만큼.
이 유명한 시에서 가장 주된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것은 ‘고백의 진의성 여부’이며 전통적으로 이 시는 “폭풍 같은 사랑을 사욕 없는 애정으로 가라앉혀 놓은” “가장 도덕적으로 숭고한 시”로서 읽혀져 왔고, 또 “사랑의 과거형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현재 진행중인 사랑을 고백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지배적이다. 하지만, 고백의 진의성/진정성 여부는 우리가 판단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건 당사자인 푸슈킨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정념은 판단의 주체인 이성에게 있어서 타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다만 레르몬토프와 대비되는 푸슈킨에게서의 사랑의 공식이다.
이 시는 내용상으로는 세 차례 반복되는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를 기준으로 세 단락으로 나뉠 수 있다. 첫번째 단락(1-4행)에서 얘기되는 것은, 당신에 대한 과거의 나의 사랑이 현재에도 아직 조금은 남아있는 듯하다는 것. 그런데, 그 남아있는 사랑이란 건 ‘어쩌면’에 의해서 수식되듯이 확실하지는 않은 사랑이다. 그 사랑의 불꽃이 “아직 다 꺼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라는 건 그래서 중의적이다. (ⅰ)나의 사랑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ⅱ)하지만, 나의 사랑은 꺼져간다. 여기선 (ⅰ)이 강조되는 듯하지만, 푸슈킨에게선 시간의 방향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론 (ⅱ)의 과정이 더 우세하게 될 것이다. 즉, 꺼져가던 불꽃이 다시 되살아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그것은 또 다른 사랑이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 서정적 화자가 증언하고 있는 것은 한 사랑의 시작도 중간도 아닌, 종결장면이다.
시에서 세 차례 반복되는 ‘사랑했소’에서도 ‘사랑했다’는 내용만큼 강조되어야 할 것은 ‘사랑했다’는 과거시제이다. 이때의 ‘사랑’은 한때 ‘당신’에게 집중되었던 열정의 에너지(=대상 리비도)가 이미 회수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조금 남았다는 걸 확인하는 정도의 사랑이다. 때문에 그 사랑이 당신을 더 이상 괴롭히지는 않을 거라는 3, 4행의 진술은 상당히 이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화자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어떤 행동의 원동력이 되기에 ‘다 꺼져가는 사랑’은 너무 모자라는 사랑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분(5-6행)에서 묘사하고 있는 건, ‘나’의 사랑의 방식이다. 아무런 말없이,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고백없이(이 시는 뒤늦은 사랑고백이다), 아무런 희망없이, 그러니까 짝사랑이 받아들여질 거라는 희망없이, 혼자서 수줍어하고 애태우면서, 질투에 괴로워하면서 사랑했다는 것이다. (푸슈킨답지 않은) 이런 짝사랑의 잔여물이 ‘당신’을 괴롭힐 리는 더구나 만무하다(질투에 괴로워할 때도 아무일 없지 않았는가?).
세 번째 부분(7-8행)에서 반복해서 다루고 있는 것 또한 자신의 사랑의 방식이다. 내가 과거에 “신이 당신을 다른 이로부터(도) 사랑받게 해주길 바랄 만큼” 관대하게 사랑했기에, 현재 당신이 다른 이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 관대함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건 “그토록 진실하게, 그토록 부드럽게”이다. 여기서 8행과 더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 것은 ‘그토록 부드럽게’일 것이다. 내가 만일 강압적으로, 강렬하게 당신을 사랑했다면, ‘나’는 ‘당신’의 사랑을 얻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 진술에는 전제돼 있다. 이러한 전제는 물론 허세를 포함하는 것이다. 신이 당신을 다른 이로부터 사랑받게 해주도록 기원했다는 진술도, 여성을 사랑의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견이 반영된 것이다. 아마도 ‘당신’은 아무런 말도, 희망도 없는 사랑 대신에, 아주 당연한 일이지만 결연하게 다른 사랑, 다른 남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나’의 부드러운 사랑이란 건 이런 ‘결과’로부터 사후적으로 투사된 것일 따름이다.
결론적으로 이 시에서 강조/부각되고 있는 것은 시인의 겸손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방식이다. 사실상 이 시에서 ‘당신’에 대한 묘사는 전적으로 부재하며, 전체 내용은 “나는 이러이러하게 당신을 사랑했소”라는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따라서 ‘가장 도덕적으로 숭고한 시’라는 식의 평가는 과장된 것이다. 사랑의 불꽃이라는 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들해지고, 꺼져가기 마련이다. 그것이 현실원칙이며, 푸슈킨은 그것을 승인하고 수용한다. 다만, 그가 생각하는 것은 사랑의 방식, 사랑의 자세일 뿐이다(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이러한 방식/자세에서 과거의 사랑, 혹은 사랑의 상실은 애도의 대상이다.
이러한 푸슈킨의 사랑의 시학과 대조되는 것이 레르몬토프의 <우리는 헤어졌지만>(1837)이다. 이 시는 푸슈킨의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의 성격을 갖고 있기에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된다(이 시는 김연경의 한 단편소설에도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그녀의 데뷔소설집 참조). 먼저, 시의 전문을 읽어보기로 하자.
우리는 헤어졌지만, 너의 초상을
나는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좋은 날들의 창백한 환영처럼
그것은 내 영혼을 들뜨게 한다.
그래서 새로운 열정에 빠졌어도
나는 그 초상을 그만 사랑할 수 없었다.
버려진 사원도 여전히 사원이고,
쓰러진 우상도 여전히 신이니까!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와 마찬가지로 8행으로 돼 있지만, 레르몬토프의 시는 2연으로 나뉘어져 있는 게 특징적인데, 이 시는 레르몬토프의 후기시이면서 그의 사랑의 시학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레르몬토프식의 낭만적 사랑의 공식을 간결한 정식화를 통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그 공식이란 무엇인가?
먼저, 1연의 1, 2행에서 “우리는 헤어졌지만, 너의 초상을/ 나는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에서, ‘너의 초상’은 시 <천사>에서 ‘(노래)소리’가 천사의 부분대상이었듯이, ‘너’의 부분대상이고 중간대상이다. 차이는 청각(‘소리’)에서 시각(‘초상’)으로 감각질이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중요한 것은 (수동적으로는) ‘그것’만이 ‘나’에게 ‘남겨졌다’는 사실이고, (능동적으로는) ‘나’는 ‘그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각인’ 때문에, ‘우리’는 헤어졌지만, 완전히 헤어진 것은 아닌 이중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즉 ‘나’는 ‘너’를 상실했지만, ‘우리’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너의) ‘초상’이 1연에서의 핵심어이다.
1연의 3, 4행은 그것(=초상)이 갖는 기능/효과를 얘기하는바, 그것은 “좋은 날들의 창백한 환영처럼” ‘나’를 즐겁게 하고 들뜨게 만든다. 즉 ‘너’는 이제 없지만, ‘너’의 효과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여기서 대구를 이루는 2행과 4행은 <나(주어) - 그것(목적어)>의 관계가 <그것(주어) - 나의 영혼(목적어)>의 관계로 전도되는 걸 보여준다. 이것은 ‘나’와 ‘그것(초상)’이 대등하게 서로를 규정한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그것’이 <나-너>라는 시적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 ‘너’의 자리를 온전하게 대체함을 뜻한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라는 객관적 사실이 그 관계를 지속시키고자 하는 ‘나’의 주관적 의지에 의해서 어떻게 반박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1연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2연을 시작하는 접속사 “그래서”는 1연에서의 초상의 효과가 계속 이어짐을 뜻한다. ‘우리’가 헤어진 후에 ‘나’는 새로운 상대를 만나서 열정에 빠졌지만, 여전히 ‘나’는 ‘그것(너의 초상)’을 싫증 내거나 내칠 수 없다는 것. 아니 오히려 새로운 열정은 지난날의/과거의 열정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2행은 논리적으로 1연의 2행에 이어진다. “나는 너의 초상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고, 나는 그것을 그만 사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3, 4행은 그 이유이다. 버려진 사원이 여전히 사원이고, 쓰러진 우상도 여전히 신이 것처럼, 떠나간 ‘너’는 여전히 ‘나’의 사랑이라는 것. 이 마지막 두 행은 1831년의 시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에서 그대로 인용한 일종의 자가-인용이다. 이 두 편의 시는 그의 시작에서의 변용과정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시의 전문은 이렇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지난날
열정과 고통의 꿈은 덧없이 지나가 버렸어.
하지만, 너의 모습은 내 가슴에
아직도 살아있네, 비록 아련하더라도.
또 다른 몽상에 빠져들어도
나는 그 모습 여전히 잊을 수 없었다네.
버려진 사원도 여전히 사원이고,
쓰러진 우상도 여전히 신이니까!
가장 큰 차이점은 <우리는 헤어졌지만>과는 달리 이 시는 단연으로 돼 있다는 점이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는 헤어졌지만>의 연 구분은 분명한 시적 전략의 산물이이다. 1-6행까지의 모티브는 두 시에서 고스란히 반복된다. 그 모티브는 3단계로 구성된다. (ⅰ) “(이젠)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 “우리는 헤어졌어” (ⅱ)“하지만, 너의 모습은 내 가슴에 아직 살아 있어” → “하지만, 너의 초상을 나는 가슴에 간직하고 있어” (ⅲ)“또 다른 몽상에 빠졌어도 나는 너를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네” → “새로운 열정에 빠졌어도 나는 너의 초상을 그만 사랑할 수 없었네” 즉 두 시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은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이다.
이 사랑의 비결은 그것이 덧없는 열정이 아니라 종교적 열정이라는 데 있다. 두 시에서 공통적인 7, 8행에서 시인은 사랑의 대상을 ‘사원’과 종교적 ‘우상’에 비유한다. 이 종교적 대상의 절대적 가치에 비하면, “버려졌다”거나 “쓰러졌다”거나 하는 대상의 가변적 상태는 대상이 갖는 본질적인 속성이 아니라, 부수적이고 비본질적인 속성이다. 때문에 그러한 가변적 상태에 의해서 대상과의 관계가 규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너’의 명사적 관계에서도 ‘너’의 상실은 그 관계구조 자체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단지 ‘너’의 부분대상이 ‘너’의 자리를 대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너’란 대상의 상실이 현실적으로는 회복 불가능하더라도 말이다. 여기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전형적인 우울증적 징후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라고 다소간 열정적으로 시작한 푸슈킨의 시가 결국엔 사랑의 종결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반해서, 단도직입적으로 “우리는 헤어졌소”라고 사랑의 종결을 확인하면서 시작한 레르몬토프의 시는, 역설적으로 종결되지 않는 사랑에 대한 확인(“쓰러진 우상도 여전히 신이니까!”)으로 끝나고 있는 것에서 두 시의 차이, 두 시인의 사랑관의 차이는 확인된다. 이 차이는 ‘나-너/당신’ 관계에 있어서 ‘나-너’(<우리는 헤어졌지만>)와 ‘나-당신’(<나는 당신을 사랑했소>)의 차이를 우연적이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레르몬토프의 <우리는 헤어졌지만>에서 ‘너’를 상실한 이후의 ‘나’는 ‘너’의 부분대상인 초상을 내면화하면서(가슴에 간직하면서) 자신과 동일시한다. 사실 ‘너’라는 대상의 상실 이후의 사랑의 구조는 ‘나-너’가 아니라 ‘나-나’이다. 일종의 자기애인 것이다. 그런데, 이 자기애의 대상은 ‘너’의 부분대상을 자기화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엔 어떤 자기분열이 내재돼 있다. 물론 이 시에서는 그러한 자기애의 애증적인 성격은 아직 묘사되고 있지 않다. 그것은 과거의 열정과 새로운 열정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라는 양상으로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것이 레르몬토프의 낭만적 사랑의 공식이며 그것은 <상실→각인→우울>의 패턴으로 정리될 수 있다.
푸슈킨의 애도적 내러티브에 대응하는 레르몬토프의 우울증적 내러티브는 그의 (연애)서정시들에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가? 두 편을 더 분석해 보기로 한다. 먼저, 사랑에 대한 레르몬토프의 기본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시로 <1831년 6월 11일>(1831)의 단장(斷章) 12번을 보라(비망록 형식의 이 시는 32개의 단장으로 구성돼 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은 사랑을 믿지 않고
그것에 행복해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사랑은
들끓는 피가 만들어낸 욕망이고,
두뇌의 혼란이거나 꿈의 환영이다.
나는 사랑을 정의내릴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가장 강렬한 열정이다!- 사랑은
나에게 불가피하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서 사랑했다.
8행의 이 시는 내용상 사랑에 관한 ‘사람들’의 태도를 말하는 전반부(1-4행)과 ‘나’의 태도를 말하는 후반부(5-8행)로 나뉜다. 이 태도는 서로 대조되는데, ‘세상 사람들’이 사랑을 믿지 않고, 그것을 허위적인 ‘욕망’이나, ‘두뇌의 혼란’ ‘꿈의 환영’ 등으로 정의하는 반면에 ‘나’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강렬한 열정’이며, 따라서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한다. 17세에 씌어진 시이지만, 시인은 이미 자신이 마음의 전력을 다해서 사랑한 경험이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에 근거해 볼 때, 아직 명확히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사랑은 ‘가장 강렬한 열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가 짧은 생애의 마지막에 씌어진 시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을까? 1841년작인 <아니야, 나는 너를 열렬히 사랑하지 않아>이다.
아니야, 나는 너를 열렬히 사랑하지 않아,
너의 빛나는 아름다움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야:
네게서 내가 사랑하는 건 과거의 고통과
스러져간 나의 젊음이야.
때때로 너의 눈동자를 오랫동안 응시하며
내가 너를 바라볼 때,
나는 비밀스런 대화를 나누지만,
나는 너에게 진심을 말하지 않는다.
나는 어린시절의 여자친구와 말한다;
너의 모습에선 다른 모습들을 찾고,
살아있는 입술에선 오래 전부터 말이 없는 입술을,
눈동자에선 이미 꺼져버린 눈빛을 찾는다.
이 시는 표면적으론 현재의 ‘너’에 대한 반(反)사랑 고백이지만, 심층적으론 부재하는 과거와 과거의 연인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시이다. 말하자면, 이 시에서의 사랑은 푸슈킨의 경우처럼 ‘변화하는/움직이는 사랑’이 아니라, ‘변치 않는/고정된 사랑’이다. ‘나’의 사랑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붙박여 있다. 그것을 압축하고 있는 것이 1연의 내용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그건 ‘너’를 통해서 ‘나’의 ‘과거의 고통’과 ‘스러져간 젊음’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의 ‘너’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매개이다. 그리고 1연의 내용을 부연하고 있는 것이 2연과 3연이다. 2연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은 1연의 1-2행이다. 즉 ‘나’는 ‘너’의 눈동자를 바라보지만, 정작 내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너’가 아니다.
이어서 3연이 반복하고 있는 것은 1연의 3-4행인데, ‘내’가 사랑하는 ‘과거의 고통’이 어떤 내용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물론 그 고통이란 건 사랑의 실패와 상실로 인한 고통일 것이다. 그 사랑의 대상은 3연에서 ‘어린시절의 여자친구’로 되어 있다. 어린시절로 한정돼 있는 ‘그녀’와의 사랑은 어린시절로의 회귀만큼이나 불가능한 사랑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랑이 포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현재의 연인의 모습에서 끊임없이 과거의 흔적과 상처를 찾아 나선다. 그런 의미에서, ‘너의 모습’과 ‘입술’ ‘눈동자’는 모두 부재하는 사랑의 대상을 대신하는 부분대상들이고, 그 흔적들이다.
이 시에서는 사랑의 대상이 둘 등장하지만, 이 둘은 겹쳐지면서 궁극적으로 단일한 대상에 대한 집요한 사랑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 사랑의 현실적인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우울증적이다. 이 우울증적 사랑은 다음과 같이 공식화될 수 있을 것이다.
F(우울증적 사랑) = (나∩그녀) → (나∪그녀) → (너↔나=그녀)
이 공식에서 세 번째 항의 ‘너’는 현재를 주관하는 현실원칙이자 과거에 대한 불가능한 집착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초자아이다. 물론 이 초자아의 (금지)명령은 이 시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니야”라는 시의 서두는 그러한 명령을 전제로 한 반응이다. 표면적으로 그것은 ‘너’의 질문/요구에 대한 응답이지만(“당신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 심층적으론 현실원칙의 수락에 대한 요구를 내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부정적인 대답이 나타내주는 바와 같이, ‘나’는 그러한 요구/명령에 부정적이다. 여기서의 ‘나’는 ‘현재의 나’를 ‘그녀에 대한 기억’ 그리고 ‘과거의 나’와 동일시하는 ‘나’이다. 이 시의 주체는 이렇듯 현실성 요구의 대변자로서의 (숨어있는) 초자아와 그에 대해 완강하게 거부하는 자아 사이의 분열적 주체인바, 레르몬토프의 사랑시들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건 이러한 주체이다.
참고로, 이러한 사랑의 원형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레르몬토프의 1830년 7월 8일 일기의 한 대목이다: “내가 열살 때 이미 사랑을 알았다고 하면 누가 믿어줄 것인가? 우리 대가족은 카프카즈의 온천에 간 적이 있었다. 할머니와 숙모, 사촌누이들과 함께였다. 그 한 귀부인이 딸을 데리고 사촌누이들을 방문하곤 했다. 여자애의 나이는 아홉 살. 나는 그곳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녀가 예뻤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이미지는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 이미지가 마음을 끌었는데,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기억나는 것이, 한번은, 어느 방으로 뛰어 들어갔는데, 그녀가 그 방에서 사촌누이와 인형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때는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이해를 못했지만, 그것은 아마도 강렬한 열정이었던 듯하다. 비록 어린아이의 열정이었더라도 말이다. 그것은 진실한 사랑이었고, 그때 이후로 나는 그러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아! 불안한 첫 열정의 한 순간이 무덤에까지 나의 이성을 괴롭힐 것이다! 그렇게도 이른 나이에!...”(이 일기에서 얘기되는 카프카즈 여행은 1825년의 일이므로, 레르몬토프의 나이 11살 때쯤의 일이다. 이 첫사랑의 에피소드에서도 그는 여자애 자신보다는 ‘그녀의 이미지’에 더 이끌린다. 이 이미지가 그에게 각인되고, 그것이 사랑의 흔적으로 남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에피소드는 레르몬토프에게서 사랑의 ‘원초적 장면(Primal Scene)’이라 할 만하다.)
정리하자면,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시들에서 나타나는 사랑과 그 상실에 대한 시적 형상화가 상실에 대한 정념적 반응태도로서 각각 애도적 유형과 우울증적 유형에 대응한다(푸슈킨에게서 사랑은 변화하고 성숙해가는 것이며, 레르몬토프에게서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푸슈킨의 사랑은 보다 현실적, 리얼리즘적이며 레르몬토프의 사랑은 구제불능으로 낭만적이다). 덧붙여 지적하자면, 푸슈킨적 유형이 언제나 매개적(=3항적)이라면, 레르몬토프적은 언제나 무매개적(=2항적)인바, 그것은 애도와 우울증의 공식이 필요로 하는 구성적인 조건에 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애도는 주체(S)와 두 대상(O1, O2)을 필요로 하는 3항적 모델이며, 우울증은 초자아(S)와 자아($)의 대립을 바탕으로 하는 2항적 모델이다)…
04. 10. 26.
P.S.1. 어쨌든 편집을 한 시간 이내에 끝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다(그리고 목표했던 50번째 통신문도 예상보다 빨리 해치우게 돼서. 이제 나머지 통신문들은 ‘선택적’이다). 나의 관심은 두 시인의 정념(사랑)에 대한 태도를 대비적으로 공식화/이론화하는 것이었으며, ‘애도적 사랑’과 ‘우울증적 사랑’이란 명명이 암시하듯이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 일반성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발몽적 사랑(=욕망)과 돈주앙적 사랑(=충동)의 대비만큼 말이다.
나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러시아 근대문학, 혹은 근대문학 일반을 그 정념적 태도에 있어서 애도적 유형과 우울증적 유형으로 일반화하고자 하는 욕심도 갖고 있다. 그것은 물론 좀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참고로, 가라타니 고진이 자주 드는 ‘단독성’의 사례도 실연이나 사별 같은 상실의 경험이다. 나는 그가 자신의 실연을 숙고하다가 단독성이란 것을 ‘고안’해냈을 거라는 심증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그는 푸슈킨이 아니라 레르몬토프 계열인데, 그렇다면 그가 한때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짐작에 아마 우울증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푸슈킨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단독성’에 대한 집착은 좀 우스운/유치한 얘기이다. “그토록 진실하게, 그토록 부드럽게” 사랑했다면 말이다. 반면에 그런 논리를 레르몬토프적인 관점에서 반박하자면, <봄날의 간다>에서 유지태의 대사를 빌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할 수 있니?”).
나는 9년 전 가을에 레르몬토프에 대한 글을 허겁지겁 쓴바 있으며, 작년 가을에도 역시 또 다른 글을 쓴바 있다(둘 다 푸슈킨과의 비교를 주제로 한 것이었지만). 애초 대학원 시절에 그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건 내가 그의 나이 또래였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젊음의 한 철을 그와 함께했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그보다 너무 많은 나이를 먹어버렸다(그래서 이젠 푸슈킨 또래가 되었다). 나는 그의 고독을 사랑했지만, 이젠 불가피하게 그의 고독에 동참하지 못한다. 푸슈킨과 마찬가지로 나에겐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해서, 이젠 도스토예프스키의 나이를 먹을 때까지 이래저래 부지런을 떠는 수밖에 없겠다.
앞으로 10년 후인 2014년은 레르몬토프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3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의 탄생과 고독은 그때만큼은 제대로(?) 기념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그에게 나도 좀더 떳떳하게 손을 내밀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번역서나 연구서 한두 권쯤은 그에게 헌정할 수 있을 테니까(짐작에 한국에서 그럴 만한 사람은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그는 비록 내 생애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한때 내 젊음의 주인공이었으므로 그 정도의 대우는 받을 만하다…
P.S.2. 여기까지 읽어온 당신이라면 두 곡의 노래를 보너스 트랙으로 들어도 좋을 듯하다. 그건 조관우의 <님은 먼 곳에>와 설운도의 <다 함께 차차차>이다. 나는 물론 <님은 먼 곳에>를 더 좋아하지만, 내가 노래방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는 <다 함께 차차차>이다. 그건 전자가 따라 부르기에 너무 어렵고, 그나마 후자가 나의 어설픈 가창실력에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님은 먼 곳에>를 부른다는 기분으로 <다 함께 차차차>를 부른다. 전자가 ‘분위기 죽이는’ 노래라면, 후자는 ‘분위기 살리는’ 노래이다. 그 노래는 (실연으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의 기쁨’을 흥겨운 리듬에 실어 우리에게 주입시킨다. 이렇게 말이다. “잊자, 잊자, 오늘만은 미련을 버리자, 울지 말고 그래 그렇게- (다 함께 차차차)”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 되던 1914년에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사망 100주년이 되던 1941년엔 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2차대전은 1939년에 발발하지만, 소련은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던 독일의 공격을 받고 나서야 뒤늦게 비로소 참전한다). 해서, 러시아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시인/작가이자 러시아 낭만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국 러시아에서 한번도 제대로 기념되지 못했다(그의 지명도에 비추어보면, 거의 미스터리한 일이다). 그리고 올해는 그의 탄생 190주년이 되는 해였지만, 역시나 그와 관련된 행사들은 (내가 아는 한) 치러지지 않았다(체홉 사망 100주년에 묻혀서). 그저 문학신문의 기념 기사 한 자락 정도.
하다못해 2주전 일요일에는 그의 탄생 190주년을 기념하여 대표작인 <우리시대의 영웅> 등이 ‘문화채널’에서 영화로 방송됐지만, 그날 따라 나는 저녁 늦게야 TV프로그램을 확인했다(그의 탄생일은 1814년 10월 3일이다. 2일 밤인데, 보통 3일로 기록한다. 이게 구력일 것이기 때문에, 지난 17일이 신력에 따른 생일이었을 것이다. 결투로 인한 사망은 1841년 7월 15일. 황제 니콜라이 1세는 그의 죽음에 대해서 “개죽음이로군!”이라고 간단히 언급했다. 한편 최초의 레르몬토프 전기는 파벨 비스코바트이의 것이며 1891년에 나왔다. 이 책은 올해 재출간됐다). 나는 레르몬토프를 전공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게 ‘무심하게’ 지나쳐버린 일이 한동안 내 마음을 갉아먹었다.
사실 그에 대한 본의 아닌 ‘홀대’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의 조국’ 한국에서는 레르몬토프를 거의 읽을 수가 없다. 지난 1999년에 전집이 간행된 푸슈킨과 다르게 그나마 우리말로 번역/출간된 레르몬토프의 시집과 소설 <우리시대의 영웅>(한길사, 조선대출판부)은 진작에 품절되었다(<우리시대의 영웅>은 영어 중역본도 나와 있었지만 역시 품절. 참고로 영역본 <우리시대의 영웅>은 나보코프가 그의 아들과 함께 옮긴 것이다). 그의 드라마 <가면무도회>도 <러시아희곡1>(열린책들)에 들어가 있지만, 이 책 또한 품절인 걸로 안다(그의 <가면무도회>는 지금도 모스크바의 무대에 올려지고 있으며 이번 시즌에 포킨이 연출한 고골의 <외투>와 함께 내가 가장 보고 싶어하는 레퍼토리이다).
해서, 아마도 당장에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레르몬토프는 내가 아는 한 없을 듯하다(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건대출판부에서 나온 작가론 <레르몬토프>를 소략한 대로 참조할 수 있다). 요컨대, 그는 우리말로 쉽게는 읽을 수 없는 시인/작가인 셈이다(참고로, 레르몬토프의 러시아어 전집은 2권짜리에서 10권짜리까지 다양하며, 보통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4권짜리 전집이다. 한편, 푸슈킨과 마찬가지로 그는 장교시절에 포르노그라피적인 시들도 썼는데, 그런 시들만을 따로 묶은 <성인을 위한 레르몬토프>도 올해 출간됐다. <성인을 위한 푸슈킨>과 함께. 두 책 모두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도색화보들이 잔뜩 들어가 있어서, 한국에서라면 도색잡지로 분류돼 판금될 만한 책들이다).
해서, 생전에나 사후에나 고독한 그의 운명과는 비록 다소 걸맞지 않아 보일지라도, 약소하지만 이 50회 통신문은 (무심코 지나친 그의 생일을 기념하여 뒤늦게) 그에게 바치고자 한다(이런 걸 뒷북이라고 한다. 하지만, 마음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뒷북이라도 치는 것이다). 이건 며칠 전에 작정한 것인데, 좀 전에 혼자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해치우기로 했다. 그렇다고 새로 무슨 글을 쓰는 건 아니고(그럴 형편이 안되므로), 이전에 쓴 글을 약간 편집하는 정도이다(휴식시간 동안 그 일이 끝나기를 바란다).
글은 주로 레르몬토프의 ‘연애시’에 대한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푸슈킨과의 대비 속에서 레르몬토프를 이해하기 때문에, 푸슈킨의 연애시에 대해서도 언급될 것이다. 사실 레르몬토프가 시인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되는 것은 1837년 푸슈킨을 죽음을 권력층의 ‘음모’로 비판한 시 <시인의 죽음>을 발표하면서이다. 푸슈킨의 죽음에 부친 시이면서도 정작 푸슈킨이란 이름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그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시인이 죽었다! - 명예의 노예 -
헛소문과 비방으로 쓰러졌다,
가슴에 복수의 열망과 총알을 박은 채,
당당한 머리를 숙이고 쓰러졌다!
시인의 영혼은 사소한 모욕의
불명예를 참지 못하고,
그는 세상의 소문에 대항하여 일어섰다
혼자서, 예전처럼... 그리고 살해당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는 이 일로 유배당하며, 그에 대한 황제의 미움은 거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이후에 불과 4년을 더 살았을 뿐이다. 레르몬토프 전공자들이 흔히 하는 얘기지만, (레르몬토프와 마찬가지로) 27살에 죽었다면 역시나 총각으로 죽었을 시인 푸슈킨(1799-1837)의 문학적 명성이 레르몬토프를 크게 앞지르진 못했을 것이며, 고골(1809-1852)은 <검찰관>(1836) 공연의 스캔들로 아마 상심해서 죽었을 것인바 아주 재미있고 재능 있는 ‘괴짜’ 정도로 기억됐을 것이고, 톨스토이(1828-1910)는 자전 3부작이나 끄적거리다가 문학사의 여백으로 사라져버렸을 것이며,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 또한 페트라셰프스키 사건(1848)으로 말미암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버렸을 것인바 고골의 아류 작가 정도로 기억됐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것도 다 팔자인 걸 어떡하랴…
낭만적 시인에게서 상실의 경험을 말하고자 할 때, 동경의 대상이나 정치적 자유의 상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랑의 상실이다. 프로이트가 상실에 대한 반응태도로서 애도와 우울증을 말할 때에도 일차적인 자료가 되었던 것은 사랑의 대상에 대한 정서적 몰입과 그 대상의 상실로 인한 정서적 충격의 처리 방식이었다. 상실에 대한 두 가지 반응 태도를 다룬 프로이트의 <애도와 우울증>(1917)을 간단히 정리하면(우리말 프로이트전집에는 <슬픔과 우울증>으로 번역돼 있다), 애도와 우울증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에 들어선 어떤 추상적인 것, 즉 조국, 자유, 어떤 이상 등의 상실에 대한 반응이다. 중요한 차이점은 우울증의 경우에 자기 존중감, 즉 자기애가 급격하게 추락한다는 것이다.
애도의 경우에는 일단, 현실성 검사를 통해서 드러난 사실, 즉 사랑하는 대상이 이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대상에 부과되었던 모든 리비도를 철회시켜야 한다는 요구를 점차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상실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지만, 우울증은 상실한 대상과 자신을 무의식적/나르시시즘적으로 동일시함으로써 대상 상실이 자아 상실로 전환된다. 그리고 대상과 자아 사이의 갈등은 동일시에 의해 변형된 자아와 자아-이상으로서의 초자아 사이의 갈등으로 변모되고, 이것은 대상화된 자아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낳으면서 급격한 자기애의 상실, 곧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 일반적인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낭만주의 시인에게서 사랑의 대상은 강렬한 희열과 시적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거꾸로 그 상실은 그만큼의 정서적인 충격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충격이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시세계에서 어떻게 형상화되며 또 처리되는 것일까?
먼저 모든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을 자신의 의무로 간주하기도 했던 ‘사랑의 시인’ 푸슈킨의 경우, 돈주앙 목록이 얘기될 만큼 사랑은 일상적인 경험이었는데, 그런 만큼 그 대상의 상실도 그에겐 드물지 않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경험, 즉 사랑의 상실 혹은 사랑의 종결을 주제화하고 있는 시들 가운데, 먼저 <모든 것이 끝났다>(1824)를 보도록 하자.
모든 것이 끝났다: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너의 무릎을 껴안고,
나는 애처롭게 호소했었지.
모든 것이 끝났어요 - 너의 대답을 듣는다.
다시는 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을 것이다,
너를 우수로 괴롭히지도 않을 것이다,
지난 일들은 아마도 다 잊게 되겠지 -
사랑이 날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넌 젊고, 너의 영혼은 아름다우니,
또 많은 사람들이 널 사랑하게 되리.
전체 10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내용상 (ⅰ)우리의 사랑은 모두 끝났다(1-4행), (ⅱ)나는 너와의 사랑을 잊을 것이다(5-8행), (ⅲ)다른 사람들이 너를 사랑해주길 바란다(9-10), 세 부분으로 돼 있다. (ⅰ)에서의 핵심적인 내용은 ‘관계’의 상실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끝났다”란 고백이 ‘나’와 ‘너’ 두 사람 모두에게서 발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확정적이다. 그러한 상실에 대한 ‘나’의 반응태도는 무엇인가? 그것이 (ⅱ)의 내용인데, ‘나’는 더 이상 자신을 기만하지 않겠다는 것은 관계의 종결이라는 ‘현실’을 기만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너’를 괴롭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7-8행에서 얘기되는 것은 일종의 체념이다. ‘지난 일들’ 즉 ‘너’와의 사랑은 곧 잊혀지게 될 것이며, 이 ‘사랑’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함으로써 ‘나’의 실패를 정당화한다. 때문에, 이미 종결된 관계를 다시 회복한다거나 계속 유지시켜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이 시에서는 배제된다. 이러한 체념의 바탕에서 마지막 9-10행의 바람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너’는 아직 젊고 아름다우므로 (‘나’ 말고도) 다른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게 되리라는 바람은 거꾸로 ‘나’ 자신에 대한 바람의 완곡어법으로도 읽힌다. 이러한 내러티브의 진행은 전형적인 애도적 서사의 그것이며, 푸슈킨 사랑시의 전범적인 예를 제시한다.
F(애도적 사랑) = (나∩너) → (나∪너) → (나/너∩다른 사람)
(※공식에서 ∩는 연접(連接), ∪는 이접(離接)을 표시한다)
이러한 공식을 전형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또 다른 시가 푸슈킨의 대표적인 사랑시인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1829)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 어쩌면 사랑은 아직도,
내 가슴에서 아직 다 꺼지지 않았는지도.
하지만, 그 사랑이 당신을 더는 괴롭히지 않을 거라오.
나는 당신을 무엇으로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소.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 말없이, 아무런 희망없이,
때론 수줍게, 때론 질투에 괴로워하며.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 그토록 진실하게, 그토록 부드럽게,
신이 당신을 다른 이로부터(도) 사랑받게 해주길 바랄 만큼.
이 유명한 시에서 가장 주된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것은 ‘고백의 진의성 여부’이며 전통적으로 이 시는 “폭풍 같은 사랑을 사욕 없는 애정으로 가라앉혀 놓은” “가장 도덕적으로 숭고한 시”로서 읽혀져 왔고, 또 “사랑의 과거형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현재 진행중인 사랑을 고백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지배적이다. 하지만, 고백의 진의성/진정성 여부는 우리가 판단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건 당사자인 푸슈킨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정념은 판단의 주체인 이성에게 있어서 타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다만 레르몬토프와 대비되는 푸슈킨에게서의 사랑의 공식이다.
이 시는 내용상으로는 세 차례 반복되는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를 기준으로 세 단락으로 나뉠 수 있다. 첫번째 단락(1-4행)에서 얘기되는 것은, 당신에 대한 과거의 나의 사랑이 현재에도 아직 조금은 남아있는 듯하다는 것. 그런데, 그 남아있는 사랑이란 건 ‘어쩌면’에 의해서 수식되듯이 확실하지는 않은 사랑이다. 그 사랑의 불꽃이 “아직 다 꺼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라는 건 그래서 중의적이다. (ⅰ)나의 사랑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ⅱ)하지만, 나의 사랑은 꺼져간다. 여기선 (ⅰ)이 강조되는 듯하지만, 푸슈킨에게선 시간의 방향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론 (ⅱ)의 과정이 더 우세하게 될 것이다. 즉, 꺼져가던 불꽃이 다시 되살아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그것은 또 다른 사랑이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 서정적 화자가 증언하고 있는 것은 한 사랑의 시작도 중간도 아닌, 종결장면이다.
시에서 세 차례 반복되는 ‘사랑했소’에서도 ‘사랑했다’는 내용만큼 강조되어야 할 것은 ‘사랑했다’는 과거시제이다. 이때의 ‘사랑’은 한때 ‘당신’에게 집중되었던 열정의 에너지(=대상 리비도)가 이미 회수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조금 남았다는 걸 확인하는 정도의 사랑이다. 때문에 그 사랑이 당신을 더 이상 괴롭히지는 않을 거라는 3, 4행의 진술은 상당히 이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화자의 의지와는 무관하다. 어떤 행동의 원동력이 되기에 ‘다 꺼져가는 사랑’은 너무 모자라는 사랑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분(5-6행)에서 묘사하고 있는 건, ‘나’의 사랑의 방식이다. 아무런 말없이,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고백없이(이 시는 뒤늦은 사랑고백이다), 아무런 희망없이, 그러니까 짝사랑이 받아들여질 거라는 희망없이, 혼자서 수줍어하고 애태우면서, 질투에 괴로워하면서 사랑했다는 것이다. (푸슈킨답지 않은) 이런 짝사랑의 잔여물이 ‘당신’을 괴롭힐 리는 더구나 만무하다(질투에 괴로워할 때도 아무일 없지 않았는가?).
세 번째 부분(7-8행)에서 반복해서 다루고 있는 것 또한 자신의 사랑의 방식이다. 내가 과거에 “신이 당신을 다른 이로부터(도) 사랑받게 해주길 바랄 만큼” 관대하게 사랑했기에, 현재 당신이 다른 이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 관대함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건 “그토록 진실하게, 그토록 부드럽게”이다. 여기서 8행과 더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 것은 ‘그토록 부드럽게’일 것이다. 내가 만일 강압적으로, 강렬하게 당신을 사랑했다면, ‘나’는 ‘당신’의 사랑을 얻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 진술에는 전제돼 있다. 이러한 전제는 물론 허세를 포함하는 것이다. 신이 당신을 다른 이로부터 사랑받게 해주도록 기원했다는 진술도, 여성을 사랑의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견이 반영된 것이다. 아마도 ‘당신’은 아무런 말도, 희망도 없는 사랑 대신에, 아주 당연한 일이지만 결연하게 다른 사랑, 다른 남자를 선택했을 것이다. ‘나’의 부드러운 사랑이란 건 이런 ‘결과’로부터 사후적으로 투사된 것일 따름이다.
결론적으로 이 시에서 강조/부각되고 있는 것은 시인의 겸손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방식이다. 사실상 이 시에서 ‘당신’에 대한 묘사는 전적으로 부재하며, 전체 내용은 “나는 이러이러하게 당신을 사랑했소”라는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따라서 ‘가장 도덕적으로 숭고한 시’라는 식의 평가는 과장된 것이다. 사랑의 불꽃이라는 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들해지고, 꺼져가기 마련이다. 그것이 현실원칙이며, 푸슈킨은 그것을 승인하고 수용한다. 다만, 그가 생각하는 것은 사랑의 방식, 사랑의 자세일 뿐이다(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이러한 방식/자세에서 과거의 사랑, 혹은 사랑의 상실은 애도의 대상이다.
이러한 푸슈킨의 사랑의 시학과 대조되는 것이 레르몬토프의 <우리는 헤어졌지만>(1837)이다. 이 시는 푸슈킨의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의 성격을 갖고 있기에 더욱 관심의 대상이 된다(이 시는 김연경의 한 단편소설에도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그녀의 데뷔소설집 참조). 먼저, 시의 전문을 읽어보기로 하자.
우리는 헤어졌지만, 너의 초상을
나는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좋은 날들의 창백한 환영처럼
그것은 내 영혼을 들뜨게 한다.
그래서 새로운 열정에 빠졌어도
나는 그 초상을 그만 사랑할 수 없었다.
버려진 사원도 여전히 사원이고,
쓰러진 우상도 여전히 신이니까!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와 마찬가지로 8행으로 돼 있지만, 레르몬토프의 시는 2연으로 나뉘어져 있는 게 특징적인데, 이 시는 레르몬토프의 후기시이면서 그의 사랑의 시학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레르몬토프식의 낭만적 사랑의 공식을 간결한 정식화를 통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그 공식이란 무엇인가?
먼저, 1연의 1, 2행에서 “우리는 헤어졌지만, 너의 초상을/ 나는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에서, ‘너의 초상’은 시 <천사>에서 ‘(노래)소리’가 천사의 부분대상이었듯이, ‘너’의 부분대상이고 중간대상이다. 차이는 청각(‘소리’)에서 시각(‘초상’)으로 감각질이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중요한 것은 (수동적으로는) ‘그것’만이 ‘나’에게 ‘남겨졌다’는 사실이고, (능동적으로는) ‘나’는 ‘그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각인’ 때문에, ‘우리’는 헤어졌지만, 완전히 헤어진 것은 아닌 이중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즉 ‘나’는 ‘너’를 상실했지만, ‘우리’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너의) ‘초상’이 1연에서의 핵심어이다.
1연의 3, 4행은 그것(=초상)이 갖는 기능/효과를 얘기하는바, 그것은 “좋은 날들의 창백한 환영처럼” ‘나’를 즐겁게 하고 들뜨게 만든다. 즉 ‘너’는 이제 없지만, ‘너’의 효과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여기서 대구를 이루는 2행과 4행은 <나(주어) - 그것(목적어)>의 관계가 <그것(주어) - 나의 영혼(목적어)>의 관계로 전도되는 걸 보여준다. 이것은 ‘나’와 ‘그것(초상)’이 대등하게 서로를 규정한다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그것’이 <나-너>라는 시적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 ‘너’의 자리를 온전하게 대체함을 뜻한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라는 객관적 사실이 그 관계를 지속시키고자 하는 ‘나’의 주관적 의지에 의해서 어떻게 반박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1연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2연을 시작하는 접속사 “그래서”는 1연에서의 초상의 효과가 계속 이어짐을 뜻한다. ‘우리’가 헤어진 후에 ‘나’는 새로운 상대를 만나서 열정에 빠졌지만, 여전히 ‘나’는 ‘그것(너의 초상)’을 싫증 내거나 내칠 수 없다는 것. 아니 오히려 새로운 열정은 지난날의/과거의 열정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2행은 논리적으로 1연의 2행에 이어진다. “나는 너의 초상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고, 나는 그것을 그만 사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3, 4행은 그 이유이다. 버려진 사원이 여전히 사원이고, 쓰러진 우상도 여전히 신이 것처럼, 떠나간 ‘너’는 여전히 ‘나’의 사랑이라는 것. 이 마지막 두 행은 1831년의 시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에서 그대로 인용한 일종의 자가-인용이다. 이 두 편의 시는 그의 시작에서의 변용과정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시의 전문은 이렇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지난날
열정과 고통의 꿈은 덧없이 지나가 버렸어.
하지만, 너의 모습은 내 가슴에
아직도 살아있네, 비록 아련하더라도.
또 다른 몽상에 빠져들어도
나는 그 모습 여전히 잊을 수 없었다네.
버려진 사원도 여전히 사원이고,
쓰러진 우상도 여전히 신이니까!
가장 큰 차이점은 <우리는 헤어졌지만>과는 달리 이 시는 단연으로 돼 있다는 점이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는 헤어졌지만>의 연 구분은 분명한 시적 전략의 산물이이다. 1-6행까지의 모티브는 두 시에서 고스란히 반복된다. 그 모티브는 3단계로 구성된다. (ⅰ) “(이젠)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 “우리는 헤어졌어” (ⅱ)“하지만, 너의 모습은 내 가슴에 아직 살아 있어” → “하지만, 너의 초상을 나는 가슴에 간직하고 있어” (ⅲ)“또 다른 몽상에 빠졌어도 나는 너를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네” → “새로운 열정에 빠졌어도 나는 너의 초상을 그만 사랑할 수 없었네” 즉 두 시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은 끝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랑이다.
이 사랑의 비결은 그것이 덧없는 열정이 아니라 종교적 열정이라는 데 있다. 두 시에서 공통적인 7, 8행에서 시인은 사랑의 대상을 ‘사원’과 종교적 ‘우상’에 비유한다. 이 종교적 대상의 절대적 가치에 비하면, “버려졌다”거나 “쓰러졌다”거나 하는 대상의 가변적 상태는 대상이 갖는 본질적인 속성이 아니라, 부수적이고 비본질적인 속성이다. 때문에 그러한 가변적 상태에 의해서 대상과의 관계가 규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너’의 명사적 관계에서도 ‘너’의 상실은 그 관계구조 자체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단지 ‘너’의 부분대상이 ‘너’의 자리를 대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너’란 대상의 상실이 현실적으로는 회복 불가능하더라도 말이다. 여기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은 전형적인 우울증적 징후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라고 다소간 열정적으로 시작한 푸슈킨의 시가 결국엔 사랑의 종결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반해서, 단도직입적으로 “우리는 헤어졌소”라고 사랑의 종결을 확인하면서 시작한 레르몬토프의 시는, 역설적으로 종결되지 않는 사랑에 대한 확인(“쓰러진 우상도 여전히 신이니까!”)으로 끝나고 있는 것에서 두 시의 차이, 두 시인의 사랑관의 차이는 확인된다. 이 차이는 ‘나-너/당신’ 관계에 있어서 ‘나-너’(<우리는 헤어졌지만>)와 ‘나-당신’(<나는 당신을 사랑했소>)의 차이를 우연적이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레르몬토프의 <우리는 헤어졌지만>에서 ‘너’를 상실한 이후의 ‘나’는 ‘너’의 부분대상인 초상을 내면화하면서(가슴에 간직하면서) 자신과 동일시한다. 사실 ‘너’라는 대상의 상실 이후의 사랑의 구조는 ‘나-너’가 아니라 ‘나-나’이다. 일종의 자기애인 것이다. 그런데, 이 자기애의 대상은 ‘너’의 부분대상을 자기화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엔 어떤 자기분열이 내재돼 있다. 물론 이 시에서는 그러한 자기애의 애증적인 성격은 아직 묘사되고 있지 않다. 그것은 과거의 열정과 새로운 열정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라는 양상으로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것이 레르몬토프의 낭만적 사랑의 공식이며 그것은 <상실→각인→우울>의 패턴으로 정리될 수 있다.
푸슈킨의 애도적 내러티브에 대응하는 레르몬토프의 우울증적 내러티브는 그의 (연애)서정시들에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가? 두 편을 더 분석해 보기로 한다. 먼저, 사랑에 대한 레르몬토프의 기본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시로 <1831년 6월 11일>(1831)의 단장(斷章) 12번을 보라(비망록 형식의 이 시는 32개의 단장으로 구성돼 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은 사랑을 믿지 않고
그것에 행복해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사랑은
들끓는 피가 만들어낸 욕망이고,
두뇌의 혼란이거나 꿈의 환영이다.
나는 사랑을 정의내릴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가장 강렬한 열정이다!- 사랑은
나에게 불가피하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전력을 다해서 사랑했다.
8행의 이 시는 내용상 사랑에 관한 ‘사람들’의 태도를 말하는 전반부(1-4행)과 ‘나’의 태도를 말하는 후반부(5-8행)로 나뉜다. 이 태도는 서로 대조되는데, ‘세상 사람들’이 사랑을 믿지 않고, 그것을 허위적인 ‘욕망’이나, ‘두뇌의 혼란’ ‘꿈의 환영’ 등으로 정의하는 반면에 ‘나’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강렬한 열정’이며, 따라서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한다. 17세에 씌어진 시이지만, 시인은 이미 자신이 마음의 전력을 다해서 사랑한 경험이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에 근거해 볼 때, 아직 명확히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사랑은 ‘가장 강렬한 열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태도가 짧은 생애의 마지막에 씌어진 시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을까? 1841년작인 <아니야, 나는 너를 열렬히 사랑하지 않아>이다.
아니야, 나는 너를 열렬히 사랑하지 않아,
너의 빛나는 아름다움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야:
네게서 내가 사랑하는 건 과거의 고통과
스러져간 나의 젊음이야.
때때로 너의 눈동자를 오랫동안 응시하며
내가 너를 바라볼 때,
나는 비밀스런 대화를 나누지만,
나는 너에게 진심을 말하지 않는다.
나는 어린시절의 여자친구와 말한다;
너의 모습에선 다른 모습들을 찾고,
살아있는 입술에선 오래 전부터 말이 없는 입술을,
눈동자에선 이미 꺼져버린 눈빛을 찾는다.
이 시는 표면적으론 현재의 ‘너’에 대한 반(反)사랑 고백이지만, 심층적으론 부재하는 과거와 과거의 연인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시이다. 말하자면, 이 시에서의 사랑은 푸슈킨의 경우처럼 ‘변화하는/움직이는 사랑’이 아니라, ‘변치 않는/고정된 사랑’이다. ‘나’의 사랑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붙박여 있다. 그것을 압축하고 있는 것이 1연의 내용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그건 ‘너’를 통해서 ‘나’의 ‘과거의 고통’과 ‘스러져간 젊음’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의 ‘너’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매개이다. 그리고 1연의 내용을 부연하고 있는 것이 2연과 3연이다. 2연에서 반복하고 있는 것은 1연의 1-2행이다. 즉 ‘나’는 ‘너’의 눈동자를 바라보지만, 정작 내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너’가 아니다.
이어서 3연이 반복하고 있는 것은 1연의 3-4행인데, ‘내’가 사랑하는 ‘과거의 고통’이 어떤 내용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물론 그 고통이란 건 사랑의 실패와 상실로 인한 고통일 것이다. 그 사랑의 대상은 3연에서 ‘어린시절의 여자친구’로 되어 있다. 어린시절로 한정돼 있는 ‘그녀’와의 사랑은 어린시절로의 회귀만큼이나 불가능한 사랑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랑이 포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현재의 연인의 모습에서 끊임없이 과거의 흔적과 상처를 찾아 나선다. 그런 의미에서, ‘너의 모습’과 ‘입술’ ‘눈동자’는 모두 부재하는 사랑의 대상을 대신하는 부분대상들이고, 그 흔적들이다.
이 시에서는 사랑의 대상이 둘 등장하지만, 이 둘은 겹쳐지면서 궁극적으로 단일한 대상에 대한 집요한 사랑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 사랑의 현실적인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우울증적이다. 이 우울증적 사랑은 다음과 같이 공식화될 수 있을 것이다.
F(우울증적 사랑) = (나∩그녀) → (나∪그녀) → (너↔나=그녀)
이 공식에서 세 번째 항의 ‘너’는 현재를 주관하는 현실원칙이자 과거에 대한 불가능한 집착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초자아이다. 물론 이 초자아의 (금지)명령은 이 시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니야”라는 시의 서두는 그러한 명령을 전제로 한 반응이다. 표면적으로 그것은 ‘너’의 질문/요구에 대한 응답이지만(“당신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 심층적으론 현실원칙의 수락에 대한 요구를 내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부정적인 대답이 나타내주는 바와 같이, ‘나’는 그러한 요구/명령에 부정적이다. 여기서의 ‘나’는 ‘현재의 나’를 ‘그녀에 대한 기억’ 그리고 ‘과거의 나’와 동일시하는 ‘나’이다. 이 시의 주체는 이렇듯 현실성 요구의 대변자로서의 (숨어있는) 초자아와 그에 대해 완강하게 거부하는 자아 사이의 분열적 주체인바, 레르몬토프의 사랑시들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건 이러한 주체이다.
참고로, 이러한 사랑의 원형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레르몬토프의 1830년 7월 8일 일기의 한 대목이다: “내가 열살 때 이미 사랑을 알았다고 하면 누가 믿어줄 것인가? 우리 대가족은 카프카즈의 온천에 간 적이 있었다. 할머니와 숙모, 사촌누이들과 함께였다. 그 한 귀부인이 딸을 데리고 사촌누이들을 방문하곤 했다. 여자애의 나이는 아홉 살. 나는 그곳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녀가 예뻤는지 어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이미지는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 이미지가 마음을 끌었는데,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기억나는 것이, 한번은, 어느 방으로 뛰어 들어갔는데, 그녀가 그 방에서 사촌누이와 인형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때는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이해를 못했지만, 그것은 아마도 강렬한 열정이었던 듯하다. 비록 어린아이의 열정이었더라도 말이다. 그것은 진실한 사랑이었고, 그때 이후로 나는 그러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아! 불안한 첫 열정의 한 순간이 무덤에까지 나의 이성을 괴롭힐 것이다! 그렇게도 이른 나이에!...”(이 일기에서 얘기되는 카프카즈 여행은 1825년의 일이므로, 레르몬토프의 나이 11살 때쯤의 일이다. 이 첫사랑의 에피소드에서도 그는 여자애 자신보다는 ‘그녀의 이미지’에 더 이끌린다. 이 이미지가 그에게 각인되고, 그것이 사랑의 흔적으로 남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에피소드는 레르몬토프에게서 사랑의 ‘원초적 장면(Primal Scene)’이라 할 만하다.)
정리하자면, 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시들에서 나타나는 사랑과 그 상실에 대한 시적 형상화가 상실에 대한 정념적 반응태도로서 각각 애도적 유형과 우울증적 유형에 대응한다(푸슈킨에게서 사랑은 변화하고 성숙해가는 것이며, 레르몬토프에게서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푸슈킨의 사랑은 보다 현실적, 리얼리즘적이며 레르몬토프의 사랑은 구제불능으로 낭만적이다). 덧붙여 지적하자면, 푸슈킨적 유형이 언제나 매개적(=3항적)이라면, 레르몬토프적은 언제나 무매개적(=2항적)인바, 그것은 애도와 우울증의 공식이 필요로 하는 구성적인 조건에 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애도는 주체(S)와 두 대상(O1, O2)을 필요로 하는 3항적 모델이며, 우울증은 초자아(S)와 자아($)의 대립을 바탕으로 하는 2항적 모델이다)…
04. 10. 26.
P.S.1. 어쨌든 편집을 한 시간 이내에 끝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다(그리고 목표했던 50번째 통신문도 예상보다 빨리 해치우게 돼서. 이제 나머지 통신문들은 ‘선택적’이다). 나의 관심은 두 시인의 정념(사랑)에 대한 태도를 대비적으로 공식화/이론화하는 것이었으며, ‘애도적 사랑’과 ‘우울증적 사랑’이란 명명이 암시하듯이 나는 그것이 어느 정도 일반성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발몽적 사랑(=욕망)과 돈주앙적 사랑(=충동)의 대비만큼 말이다.
나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러시아 근대문학, 혹은 근대문학 일반을 그 정념적 태도에 있어서 애도적 유형과 우울증적 유형으로 일반화하고자 하는 욕심도 갖고 있다. 그것은 물론 좀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참고로, 가라타니 고진이 자주 드는 ‘단독성’의 사례도 실연이나 사별 같은 상실의 경험이다. 나는 그가 자신의 실연을 숙고하다가 단독성이란 것을 ‘고안’해냈을 거라는 심증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그는 푸슈킨이 아니라 레르몬토프 계열인데, 그렇다면 그가 한때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짐작에 아마 우울증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푸슈킨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단독성’에 대한 집착은 좀 우스운/유치한 얘기이다. “그토록 진실하게, 그토록 부드럽게” 사랑했다면 말이다. 반면에 그런 논리를 레르몬토프적인 관점에서 반박하자면, <봄날의 간다>에서 유지태의 대사를 빌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할 수 있니?”).
나는 9년 전 가을에 레르몬토프에 대한 글을 허겁지겁 쓴바 있으며, 작년 가을에도 역시 또 다른 글을 쓴바 있다(둘 다 푸슈킨과의 비교를 주제로 한 것이었지만). 애초 대학원 시절에 그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건 내가 그의 나이 또래였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젊음의 한 철을 그와 함께했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그보다 너무 많은 나이를 먹어버렸다(그래서 이젠 푸슈킨 또래가 되었다). 나는 그의 고독을 사랑했지만, 이젠 불가피하게 그의 고독에 동참하지 못한다. 푸슈킨과 마찬가지로 나에겐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해서, 이젠 도스토예프스키의 나이를 먹을 때까지 이래저래 부지런을 떠는 수밖에 없겠다.
앞으로 10년 후인 2014년은 레르몬토프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3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의 탄생과 고독은 그때만큼은 제대로(?) 기념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그에게 나도 좀더 떳떳하게 손을 내밀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번역서나 연구서 한두 권쯤은 그에게 헌정할 수 있을 테니까(짐작에 한국에서 그럴 만한 사람은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그는 비록 내 생애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한때 내 젊음의 주인공이었으므로 그 정도의 대우는 받을 만하다…
P.S.2. 여기까지 읽어온 당신이라면 두 곡의 노래를 보너스 트랙으로 들어도 좋을 듯하다. 그건 조관우의 <님은 먼 곳에>와 설운도의 <다 함께 차차차>이다. 나는 물론 <님은 먼 곳에>를 더 좋아하지만, 내가 노래방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는 <다 함께 차차차>이다. 그건 전자가 따라 부르기에 너무 어렵고, 그나마 후자가 나의 어설픈 가창실력에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님은 먼 곳에>를 부른다는 기분으로 <다 함께 차차차>를 부른다. 전자가 ‘분위기 죽이는’ 노래라면, 후자는 ‘분위기 살리는’ 노래이다. 그 노래는 (실연으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의 기쁨’을 흥겨운 리듬에 실어 우리에게 주입시킨다. 이렇게 말이다. “잊자, 잊자, 오늘만은 미련을 버리자, 울지 말고 그래 그렇게- (다 함께 차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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