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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책의 바다

라캉 읽기 입문(2)

작성자로쟈|작성시간03.01.17|조회수661 목록 댓글 0
"라캉 읽기 입문(1)"('책의 바다' 5번)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라캉'을 검색하면 27권의 책이 뜬다(알라딘의 경우). 소위 라캉 관련서들인데, 그의 주저인 <에크리>가 번역출간되면 라캉과 정신분석학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라캉 열풍이 푸코나 들뢰즈 열풍에 버금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라캉이 제시하는/권유하는 삶(욕망의 윤리학)이 '노마드'적 삶처럼 대안적일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뿐더러(이러한 의문은 슬라보예 지젝 또한 <향락의 전이>에서 던지고 있다), 다른 것 이전에 기본적으로 그는 읽히지 않는 저자이기 때문이다. <에크리>(1966)는 20세기가 산출한 가장 난해한 텍스트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최근에 번역중인 <에크리>의 한 꼭지를 교정할 기회가 있었다. 역자가 누구인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라캉 전공자 대열에 집어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 추정되었고, 기대 반, 의혹 반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곧 기대를 접어야 했다. 물론 라캉 텍스트 가운데에서도 난해한 축에 속하는 '정신병' 관련 글이었는데, 거의 읽히지 않는다는 점에서만 라캉을 닮은 텍스트였다. 혹시나 그것이 나의 속단은 아닐까 하여 이후에 다른 관련서들에서 부분역돼 있는 부분들과 대조해 봤지만, 가장 수준이 낮았다. 예컨대, 딸과 엄마의 '이자관계(혹은 양자관계)'쯤으로 번역되어야 할 내용이 '이원성' '이원적 관계'로 번역되는 식이다. 그리고 라캉식 구조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에 대해서도 역자는 별반 읽은 거 같지 않았고, 언어학자 '예스페르센'을 '제스퍼슨'이라 옮기는 걸로 봐서 언어학 일반에 대해 무지해 보였다.

참고로 '전환사' 혹은 '전이사'로 번역되는 야콥슨의 'shifter'를 대개의 인문서 역자들은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데, <에크리>의 역자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이정우 선생도 아사다 아키라의 책을 번역하면서 '운반자'라고 번역했다. shifter가 무슨 유전자라도 된다는 말일까? 요는 아무도 야콥슨을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엄연히 우리말 번역서까지 있는데도 말이다.

해서 <에크리> 교정은 아주 재미없는 일이 돼 버렸는데, 그나마 얻은 소득이 있다면, 정신병에 대한 다른 자료들을 읽은 것이다. 특히 다리언 리더도 적극 추천한 바 있는 바이스 벤베뉴토/로저 케네디의 <자크 라캉의 저작The Works of Jacque Lacan>을 구해서 읽는데, 이름값을 하는 책이다.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번역은 아니지만, 김종주의 <라캉의 정신분석 입문>(하나의학사)도 참고할 수 있겠다. 그리고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는 글로는 <라캉의 재탄생>에 실린 홍준기의 '프로이트로의 복귀'이다. 물론 얼마간 사전 지식이 필요할 듯하지만, 우리말로 읽을 수 있는 라캉 해설로는 가장 친절하고 자세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라캉 관련서로는 가장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하다(책값이 비싸서 포인트가 더 많이 누적되겠지만.)

그리고 권할 만한 것은 역시 브루스 핑크의 <라캉과 정신의학>(민음사)이다. 원저 자체가 잘 씌어진 책이지만 우리말 번역도 훌륭한 편이다(본문과 참고문헌의 역자가 다른 걸 빼곤). 그리고는 역시 다리언 리더의 만화책 <라캉>(김영사)과 맬컴 보위의 <라캉>(시공사) 정도를 읽어두는 것이 좋겠다. 맬컴 보위의 책은 전공자가 아닌 전문번역가의 번역이지만, 전문가의 번역보다는 오히려 잘 읽힌다. 다만 초심자가 읽기에는 다소 어려울 듯하다. 오래전에 사두고 읽지는 않았지만, 루디네스코의 라캉 전기 <자크 라캉1,2>(새물결)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단 루디네스코의 말을 다 신뢰할 수는 없다는 게 다리언 리더의 견해이다).

나의 경험으로는 라캉과 같은 저자는 믿을 만한 책(참고서)를 자신이 소화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보는 게 더 도움이 된다. 그리고 뭔가 바탕이 마련되면, 이후에 좀 응용된 책들을 읽어나가는 것이다. 그때 적합한 책들이 지젝의 책들이다. 하지만, 지젝에 대해선 누누이 지적했듯이 번역 수준에 유의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이제 (빠르면) 올 하반기나 내년쯤에 나올 <에크리>를 고대해보면 되겠다. 라캉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이론서 가운데) 당신이 읽지 못할 책은 거의 없게 될 것이다!...

덧붙임: 페터 비트머의 <욕망의 전복>(한울, 2000)이 빠졌다. 인터넷 검색의 맹점인데, 라캉 연구서이지만, '라캉'을 검색해서는 뜨지 않는다. 역자는 홍준기씨인데, 대학원 시절의 번역서이서인지 기대에 좀 못미친다는 인상을 받지만,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이며 좋은 책이다. 단, 초심자에겐 다소 어렵다. <라캉의 재탄생>에 실린 홍준기의 글을 읽고 어느 정도 감을 잡은 다음에 읽어나가는데 좋을 듯하다.

그리고 이전에도 언급한 바 있는 딜런 에반스의 <라캉 정신분석 사전>(인간사랑, 1998). 질님의 지적대로, 이 에반스가 <감정>(이소, 2002)의 저자이기도 한 바로 그 에반스이다(궁금하신 분은 그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시라). 진화심리학으로 방향을 틀어서 감정에 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고 현재는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는데, 놀라운 건 <라캉 정신분석 사전>이 그가 20대 후반에 쓴 처녀작이라는 사실. 사전으로 '입봉'하는 학자는 서구에서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그의 변에 따르면, (난해한) 라캉을 좀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정리한 게 사전이 됐다고 한다. 그건 지젝의 경우도 유사한데, 그 또한 (난해한) 라캉을 좀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대중문화, 특히 영화텍스트에 적용해 본 거라고 한다(우리는 라캉을 이해하기 위해서 뭘 할 수 있을까?) 하여간에 이 사전 또한 여러 모로 요긴하다. 하지만, 믿어도 좋을 만한 번역은 아니기 때문에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또 몇몇 번역어 선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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