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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그 불만 : 나쓰메 소세키,『산시로』읽기

작성자쌍수대인|작성시간03.05.21|조회수3,821 목록 댓글 0

*나쓰메 소세키,『산시로』, 최재철 옮김, 한국외대 출판부, 1995.

1. 소세키, 혹은 문명과 그 불만

나쓰메 소세키의『산시로』는『그 후』,『문(門)』과 더불어 이른바 소세키 초기삼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소세키 소설의 전반적인 전개과정을 두고 볼 때,『산시로』의 위치는 특이하다.『산시로』이후의 작품들, 가령『그 후』,『문』,『마음』,『한눈팔기(道草)』,『행인(行人)』등이 인간과 인간사이의 존재론적 소통 불가능성과 단절, 의식과 자연의 대립 등을 어둡게 그리고 있다면,『산시로』는 앞의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관적이다. 하지만 창작 시기상『산시로』는 골계적인 작품인『나는 고양이로다』,『도련님』다음에 위치한다.『도련님』의 주인공 '나'의 무모함과 어리석음은『산시로』에 와서는 주인공의 상황판단에 대한 미숙함으로 대치되고,『도련님』의 해학적 요소는『산시로』의 메피스토펠레스적 인물인 요지로에게 이어진다.『산시로』는 보통 메이지 말기, 근대의 교육제도가 확립·정착되고 난 이후의 시골출신의 젊은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삶과 사랑, 방황을 그린 작품이라고 평가받지만, 소세키 소설의 계열에서 보면,『산시로』의 주인공 산시로는『그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와 같은 존재론적으로 불안한 고등유민(高等遊民)의 삶을 예비하고 있다. 한편,『산시로』는 일본 문단의 자연주의가 확립된 시기의 또 다른 '청춘'의 모습을 다룬 소설, 예를 들면《문학계》동인이었던 기타무라 도코쿠나 작자인 그 자신을 다룬 시마자키 도손의『봄』, 무사노코지 시네아쓰의『한심한 짝사랑』등과도 변별되는 지점을 가지고 있다.『산시로』에는 히로타 선생처럼 문명 비판적 감각을 가진 자가 등장, 그보다 아래세대에 있는 산시로와 그의 동료들의 미성숙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는 관점이 살아있지만,『봄』이나『한심한 짝사랑』에는 그러한 비평적 거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른바 그 당시에는 이미 확립된 언문일치를 통해 확고하게 자리잡은 내면과 그런 내면이 드러나는 문학이 의미 있을 뿐이었다.
말하자면『산시로』에서 중요한 것은 히로타 선생의 발언으로 대표되는 근대문명과 그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되는 비평적 요소이다. 러일전쟁(1905)이 끝나고 3년 후에 연재되는『산시로』에는 러일전쟁 직후의 시대풍조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러일전쟁 직후인 메이지 38년에 씌어진 「전후 문학계의 추세」에서 소세키는 러일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회복된 후에도 "공전(空前)의 대전승국이라는 명예를" 획득한 일본이 실제로는 "평화의 전쟁에서는 패배했다"고 말한다.

문명은 갈수록 번성에 번성을 거듭할 뿐이었는데, 그건 서양으로부터 수입된 문화로 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혜택을 받으면 또 그만한 보수를 치르는 것이 세상 이치인 것 같이 우리도 그들(서양-인용자)에게 다소 침식당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경향은 전 분야에 공통된 것으로 정신계의 학문은 물론이고, 예의범절, 음식, 풍속의 말단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서양의 문화를 준거로 하여 따른다고 하는 식이 되었다. 요컨대 풍속과 인정(人情)이 이질적인 서양이 주축이 되어 온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이러한 평화의 전쟁에서는 패배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소세키의 이러한 발언은 러일전쟁 직후의 일본인들의 전반적인 정신의 상승 분위기에 편승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그 발언에는 동시에 대전승국(大全勝國)으로서 서양과 동등한 자리에 올라서고 난 후 서양이라는 타자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져버리고 그저 승승장구하는 근대 일본의 문명을 바라보는 불편함이 내재해 있다. 소세키는 "자신자각(自信自覺)의 힘"이라고 불렀던 정신의 자립이라는 과제는 일본이 서양과 동등한 위치에 서서 문명국 반열에 올라섰다고 해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말을 빌면, 소세키에게 "<문명의 도구>는 <자신을 억압하는 도구>이고, <자신을 축소시키려는 것>"이며, "소세키의 삶을 참을 수 없는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이 가진 존재의 축소감이다. 아마 이것은 자의식의 문제가 아니며, 또 그의 의식은 이런 존재가 가진 축소감의 근원이라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다." 말년의 강연문「나의 개인주의」에서 소세키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결과 얻은 것은 문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었고, 문학이라는 "그 개념을 근본에서부터 자력으로 완성하는 것 이외에 달리 나를 구원해 줄 길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소세키는 이때 모방과 흉내내기에 급급한 근대인 일반의 정신 풍조라는 타인본위(他人本位)에 맞서서 자기본위(自己本位)를 주창하는데, 자기본위는 단순히 타인의 의식과 구별되는 자기의식이 아니며, 오히려 그런 자기의식을 만들어내는 토대인 물질문명의 압박에 대한 강렬한 이질감을 정신에 새겨 넣는 일이다.『산시로』에서 이러한 자기본위의 사상은 히로타 선생이 산시로와 같은 동세대 청년들을 '노악가(露惡家)'라고 부르며 비판할 때 등장한다. 한편,『산시로』가 씌어지던 시기는,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일본문단에서 이른바 자연주의라는 문예사조가 휩쓸 때였고, 소세키는 당대 문단에서 일찌감치 거리를 둔 채로 작품을 쓰고 있었다. 시마자키 도손의『봄』에는 기타무라 도코쿠의 세대들이 메이지 20년대 자유민권운동의 마지막 세대로 출현, 이른바 "비분강개"의 에토스를 공유하고 있다가 청일전쟁(1895) 직후 각각 국가주의나 내면적 "번민"으로 갈라져 가는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일본근대문학은 이 시기에 비로소 성립되는데, 그것을 뒷받침한 언문일치는 "번민이 그 자체의 논리와 정조로 표현되기 위한 내적 요청으로서" 모색되었고, 언문일치와 근대문학은 그런 국가 확립의 보조적 장치가 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언문일치와 근대문학이 자명한 이치로 통용되던 때에 소세키는 이런 자명함에 의문을 던진다. 자명함에 의심을 던지는 일, 그것은,『산시로』에서 히로타 선생의 신랄한 문명비판을 듣고 산시로가 비평을 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말할 때의 '비평'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이 비평은 다른 말로 하면, 문명에 대한 불만을 품는 행위이다.
교양소설의 측면에서 볼 때,『산시로』는 개인의 자기 결정성의 이상과 사회화의 요구 사이의 통합, 개인의 사회화라는 교양소설의 봉합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코 모레티가 유럽 교양소설에 관한 그의 연구에서 로트만의 논의를 빌어 온 구분에 따르면,『산시로』는 플롯상 '분류'의 원칙, 즉, 서사가 다양한 통합과정을 통해 결말에 이르는 목적적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산시로』는 '분류'와 함께 주목되는 플롯의 또 다른 측면, 열려진 결말, 미완성에 해당하는 '변형' 쪽에 놓인다.『산시로』에서 주인공이자 미숙한 시골뜨기 청년 산시로가 그의 앞에 자명하게 주어진 근대 세계의 중앙부에 내던져진 채 학습하고, 사랑하고, 우정을 맺고, 방황하는 일련의 과정을 교양=형성의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소세키에게 그것은 주어진 근대 세계 자체에 의문을 품는 근본적 행위에 의해 균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 근대의 불구, 불구의 근대

산시로가 고향인 쿠마모토를 떠나 동경으로 가는 기차간에서 한 여자, 그리고 후에 히로타 선생으로 밝혀지는 낯선 사내와 만나는 대목은 작품 전체의 윤곽을 틀 잡는다. 기차에서 만난 여자와 하룻밤을 동숙한 후에 산시로는 그녀로부터 "당신은 어지간히 배짱이 없는 분"(10쪽)이라는 말을 듣고, "23년간의 약점이 한꺼번에 노출된 듯한 기분"(11쪽)을 느낀다. 그녀의 등장은 산시로가 "과감하게 좀 더 가보는 편이" 좋았을 뻔했지만, 막판에서는 두려움을 주는 동경에서의 막연하고도 불안한 현실을 예고한다. 낯선 여자와의 하룻밤에서 예고된 현실과의 부단한 접촉과 실패의 과정이라는 이야기의 한 축이 나중에 미네코와의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연애의 플롯으로 이어진다면, 낯선 사내와의 만남은 어머니의 편지로 표상되는 고향과의 완전한 단절, 그리고 히로타 선생과 도서관과 강의실, 과학자 노노미야, 문학청년 요지로 등의 세계로 대표되는 교양형성의 과정을 예고한다. "그러나 이제부터 일본도 점점 발전하겠지요"라는 산시로의 말에 히로타 선생은 불길한 응답을 한다. "망하고 말거요(...)얽매이면 안돼. 아무리 일본을 위한다고 해도 지나친 편애는 오히려 해를 미치게 될 따름이지."(18쪽) 이 말 이후 산시로는 비로소 고향을 떠나왔다는 느낌과 함께, 동경으로 상징되는 근대의 소용돌이 속에 몸을 담그게 된다. 이른바 과거를 등지고 빛나는 미래를 향하는 시간만이 산시로 앞에 놓여있다. 하지만, 산시로의 자기형성과정은 그리 간단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학에 가기 위해 일정한 교육과 학습을 거쳐왔다고 자부했던 그는 여자의 말 한마디에 "마치 불구로 태어난 것 같다"고 느낀다. 불구의 느낌. 히로타 선생 앞에서 강변한 일본이라는 사회의 발전과 산시로가 거기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해 온 23년 간의 삶은 결코 평행선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 물론, 산시로가 이런 불쾌하고도 막연한 깨달음을 곧바로 인정하기보다는 동경의 시가를 보면서 근대 문물의 부단한 활력과 유동성에 먼저 이끌린다는 점에서 확실히 그는 근대=젊음이라는 등식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건설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대단한 활력이다."(19쪽) 이러한 근대의 활력은 지하의 어두운 실험실에서 거듭되는 망원경 실험만 되풀이하면서도 "이래뵈도 당사자의 머릿속은(...)전차보다도 훨씬 심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하는 노노미야의 세계나 요지로가 "꿈을 꾸고 있는 사이", 현실에 "어느 샌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하는 문단의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산시로는 이처럼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는 세계에 참여하지 못하고 수수방관한다. 앞서 말한 '불구의 느낌'이 지속되는 것이다.

세계는 이처럼 동요한다. 자신은 이 동요를 보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 가담할 수는 없다. 자신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는 하나의 평면에 나란히 있으면서, 아무데도 접촉하고 있지 않다. 그리하여 현실의 세계는 저와 같이 동요하며 자신을 남겨두고 가 버린다. 몹시 불안하다.(...)메이지(明治)의 사상은 서양의 역사에 나타난 300년 간의 활동을 단 40년 동안에 되풀이하고 있다.(20쪽)

근대라는 급행열차에 뒤늦게 합승한 자의 초조함과 불안, "자신을 남겨두고 가 버린다. 몹시 불안하다"는 느낌을 만회하기 위해 산시로는 고향의 선배인 노노미야군과 만나는 등 자신보다 먼저 동경에 도착한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거나, 주어진 대학 강의를 듣기도 한다. 그리고 대학의 한 연못가에서 사토미 미네코, "입센의 인물과 닮은"(128) 여성을 만나게 되고, 그 계기를 통해 그녀와 가까워진다. 이 모든 행위는 다른 이들보다 근대 세계에 입성하는 행위가 늦는데서 생기는 어떤 지연을 만회하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이러한 지연은 결코 메꾸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산시로는 대학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여백에 적힌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점차로 깨닫게 된다.

판에 박은 듯한 강의를 듣고, 판에 박은 듯이 안일하게 졸업해 나가는 그대들 일본의 대학생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천하의 맹꽁이다. 그대들은 자주성이 없는 타이프 라이터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욕심쟁이 타이프 라이터다. 그대들이 행하는 바, 생각하는 바, 말하는 바, 끝내 절실한 사회의 활기와 무관하도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판에 박은 듯할 것이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판에 박은 듯 할 것이다.(43쪽)

산시로에게 일시에 "뭔가가 깨우쳐진 듯한 느낌"을 준 위 구절에서 '자주성이 없는 타이프 라이터'라는 표현은 의미심장하다. 타이프 라이터, 이 말은 산시로가 그토록 앞질러서라도 달려가고 싶었던 화려한 근대의 부정적 이면을 암시하며, 타이프 라이터에 해당하는 기존의 일본의 대학생, 청년과는 변별되는 또 다른 청년의 상을 간접적으로 제시하도록 한다. 또한 산시로가 학교나 강의실에서 결코 얻지 못한 자신의 불구의 느낌의 원인에 대한 질문을 의탁할 만한 조력자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 히로타 선생과의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된다. 산시로는 히로타 선생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세 개의 세계에 대해 근본적인 인식을 한다. 첫 번째 세계는, 어머니와 "메이지 15년 이전의 향내"로 대표되는 고향의 세계로, 그곳은 당장은 돌아갈 마음이 없는 "현실도피처"와 같은 곳이다. 두 번째 세계는 먼지 묻은 책과 과학, 연구 등이 있는 노노미야와 히로타 선생의 세계이다. 산시로는 이 두 번째 세계를 통해 자기형성의 중요한 계기인 예술과 교육을 전수 받는다. 세 번째 세계는 자신의 "개성을 완전"(77쪽)하게 실현하고 "인격적 감화"에 도움을 줄 많은 여성들이 자리잡은 세계로 산시로는 이 세계에 대해 가장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다.

3. 청년 산시로의 수업시대 : 교육과 연애 vs 결혼

우선『산시로』에서 그려지는 메이지 말기의 청년의 상은 소설의 6장, 크게 학생집회소의 연설과 만찬회, 그리고 "커다란 일장기와 영국 국기가 나란히 입구에 걸려있는"(138쪽) 육상 운동회 모임에서 제시된다. 그러나, 이때의 학생집회소나 육상 운동회 모임은 자유민권 운동기의 장사적 실천의 일환인 운동회와 연설, 대중선동의 역할에 부응하지는 않는다. 육상 운동회 모임은, 요지로에 따르면 "경기보다 여자 쪽을 보러 갈 가치가 있"는 것으로 다소 그 의미가 변질되어 제시되며, 학생집회소의 만찬 역시 정치적 모임이라기보다는 출판과 관련되어 있는 문예동인 모임에 가깝다. 학생집회소의 만찬회에서 요지로는 입센이 현대사회제도의 결함을 가장 분명하게 느낀 존재라고 하면서, 모두들 차츰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진 한 젊은이의 연설.

정치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옛날 일이다.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도 과거의 일이다. 자유란 단지 이들 표면에 나타나기 쉬운 사실을 위해서만 쓰이는 전유물은 아니다. 우리들 신시대의 청년은 위대한 정신의 자유를 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운을 만났다고 믿는다.
우리는 구식 일본의 압박에 견딜 수 없는 청년이다. 동시에 새로운 서양의 압박에도 견딜 수 없는 청년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공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하에 살고 있다. 새로운 서양의 압박은 사회상으로나 문예상으로나 우리 신시대의 청년들에게 있어서는 구식 일본의 압박과 마찬가지로 고통이다.(135-6쪽)

구식 일본과 새로운 서양의 압박이라는 이중구속 속에서 정신의 자유를 논하는 새로운 청년상에 대해 요지로뿐만 아니라 산시로도 박수를 보낸다. 그는 "갑자기 신시대의 청년이라는 자각이" 강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강한 것은 자각뿐이고 몸 쪽은 본래 그대로"(138쪽)인 듯한 여전한 느낌을 떨치지 못한다. 새로운 미래를 다짐하는 청년상을 제시하는 조급하고 불안한 청년들, 그러나, 이들은 미네코의 표현을 빌면, "스트레이 쉽stray sheep"(116쪽), 길 잃은 어린양이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산시로와 그의 친구들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히로타 선생이라는 존재이다.
히로타 선생은 메이지 20년대를 보낸 구세대로 요지로에 의해 "위대한 어둠"(73쪽)이라는 별명을 지닌 인물로, 산시로의 대학생활과 같은 근대일본의 제도적 확립을 마무리한 자유민권운동 세대의 마지막에 위치한 사람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어떤 대학이나 학회에 몸담지 않은 자유사상가로 세상을 방관하는 듯한 태도를 지니며 살아가지만, 시대의 주요한 비평가로, 산시로나 요지로 등 새로운 세대의 청년상에도 일정한 견제 역할을 하면서 균형감을 제공한다. 히로타 선생의 가르침은 크게 1)국화 인형전에서 구걸하는 거지를 두고 동정심에 관해 나누는 대화, 2)위선자/노악가, 타인본위/자기본위라는 개념으로 변화하는 세대에 관해 나누는 대화, 3)물리학과 자연주의의 관계에 대한 대화로 요약될 수 있다. 그 중에서 두 번째, 위선자/노악가, 타인본위/자기본위에 관한 히로타 선생의 가르침은 곧바로 산시로 세대의 청년의 의미에 대해 심사숙고하도록 요청한다. 히로타 선생이 말하고자 한 요점은 이것이다. 요컨대 타자본위에서 자기본위, 그리고 위선에서 노악 등으로 하나의 시대정신이 극단에서 극단으로 변하는 흐름에서 어느 하나에 경색됨이 없이 균형감각을 유지하라는 충고이다. 한편으로 그런 충고는 근대의 강렬한 빛만을 추수하는 전반적인 세태를 거스를 수 있는 '위대한 어둠'의 힘 또한 근대에는 필요하다는 뜻으로 보인다. 히로타 선생의 일련의 가르침을 통해서 산시로는 불구로 태어났다는 느낌을 확실한 자기인식으로 만든다. 하지만, 산시로에게는 추구해야 할 또 하나의 세계, 미네코로 상징되는 여성의 세계가 놓여있다.

산시로는 멍하니 있었다. 이윽고, 작은 목소리로 "모순이다."라고 말했다. 대학의 공기와 저 여자가 모순인지, 저 색채와 그 눈매가 모순인지, 그렇지 않으면 미래에 대한 자신의 방침이 두 갈랫길로 모순되어 있는 건지, 또는 매우 기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모순인지,-이 시골출신의 청년에게는 이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뭔가 모순이었다.(27쪽)

숲을 산책하다가 우연하게 마주친 여성(사토미 미네코)을 보면서 산시로가 또 하나의 세계를 인식하는 순간이다. 이 세계는 산시로가 기차간에서 우연히 만난 여성에게서 받았던 충격, "현실세계의 번갯불"(21쪽)의 연장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산시로가 가장 열렬하게 추구하지만, 그만큼 잡히지 않는 안개와도 같은 세계이다. 산시로와 미네코의 만남은 산시로의 우유부단함과 머뭇거림 때문에 연애의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결국 미네코가 다른 사람과 결혼함으로서 일방적으로 끝이 나고 만다. 그러나 산시로의 우유부단함과 머뭇거림이 결코 그의 개인적 인격이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산시로의 주저함은 곧 근대 세계의 체험에 내재한 모순, 마음으로는 신청년이라고 느끼지만 몸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편차와 간극에서 비롯된 것이다. 산시로의 이런 태도는 미네코와 만날 때 가장 잘 드러난다. 자신이 신여성 미네코만큼이나 현대적이지 못하다는 데서 오는 불일치, 거기서 산시로는 매번 미네코와 함께 있을 때마다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산시로가 요지로에게 빌려준 돈을 되찾기 위해 다시 돈을 빌리러 미네코를 찾아가 두 사람이 대면하는 장면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결코 다가갈 수 없는 두 청춘남녀 사이에 놓인 어떤 장막을 암시한다.

산시로가 절반쯤 감각을 잃은 시선을 거울 속으로 옮기자, 거울 속에 미네코가 어느 사이엔가 서 있다. 하녀가 닫았을 거라고 생각한 문이 열려 있다. 문 뒤에 걸려 있는 커튼을 한 손으로 밀친 미네코의 가슴 윗쪽이 또렷하게 비치고 있다. 미네코는 거울 속에서 산시로를 보았다. 산시로는 거울 속의 미네코를 보았다. 미네코는 빙긋 웃었다.(173쪽)

미네코는 산시로가 보는 거울 속에 자리잡고 있고, 산시로 역시 미네코의 거울 속에만 나타난다. 따라서 산시로의 머뭇거림에 미네코가 "마권을 맞추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맞추는 것보다 어렵지 않나요? 댁은 색인이 붙어 있는 사람의 마음조차 맞추어 보려고도 하시지 않는 태평한 분인데."(176쪽)라고 원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물론, 산시로는 거울 속에 들어있는 이 해답을 결코 움켜쥐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것을 다른 곳에서 "운명"(206쪽)이라고 이름 붙인다. 미네코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하라구치는 자신의 예술론을 피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소세키 자신의 예술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하라구치의 이 말은 산시로와 미네코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극과 불일치를 결말짓고 있다.

"게다가 표정이라 해도……" 하고 하라구치씨가 다시 시작했다. "그림쟁이는 말이지, 마음을 그리는 게 아니야. 마음이 밖으로 표출된 걸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가게(드러난 것)만 실수 없이 관찰하면, 재산(내면)은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뭐 그래두는 거야. 가게로 엿볼 수 없는 재산은 화가의 담당영역 밖이라고 체념해야만 하는 것이지. 그래서 우리들은 육신만 그리고 있지.(...중략...)그래서 이 사토미씨의 눈도 말이야, 사토미씨의 마음을 그릴 양으로 그리고 있는 게 아니야. 그저 눈으로 그리고 있어."(221쪽, 강조-인용자)

사람의 마음은 어떤 언어와 표현으로도 직접적으로 재현불가능하며 단지 그 마음이 드러나는 외적인 표면에서 겨우 유추할 수 있을 따름이다. 산시로와 미네코라는 관계를 놓고 본다면, 위의 예술론은 일종의 관계의 비극으로 정리된다.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심리(마음, 내면)가 아니라, 그런 심리를 불투명하고 알 수 없게 만드는 관계 사이의 근원적인 가로막힘이다. 예술이란 두 관계, 내면과 표면이 불일치하는 장막을 그리지만, 결국 근원적인 어둠을 남겨놓을 수밖에 없다는 염세주의. 하라구치의 말을 빌면, '가게로 엿볼 수 없는 재산은 화가의 담당영역 밖이라고 체념해야만' 한다. 히로타 선생의 말을 빌면, "신문의 사회면 기사는 열에 아홉은 비극이다."(211쪽) 이런 인식은『산시로』이후의 소세키 작품의 비극성을 예고한다.『그 후』의 다이스케는 남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자연'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밀고 나가다 파멸 직전에 다다른다.『문』의 소스케는 아내의 옛 애인이 돌아오자 참선하기 위해 도피하며,『마음』의 선생은 친구를 자살에 이르게 한 죄책감을 고백한 후 자신도 자살한다.『행인』에서 이치로는 '종교와 자살, 광기'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그 결과 광기를 선택한다. 전시회장에 남편을 동반한 채 등장하는 결혼한 미네코를 보며 산시로는 요지로에게 미네코가 모델인 그림 '숲 속의 여인'에 대해 제목이 나쁘다고 품평한다. 스트레이 쉽을 연신 중얼거리는 산시로의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장면은 애매하다. '숲 속의 여인' 대신에 '스트레이 쉽'이 그림의 진정한 제목이라면 결혼을 선택한 미네코는 일종의 타협을 한 셈이 된다. 그림의 미네코가 현실의 미네코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미네코의 돌아섬으로 산시로는 자신이 행복과 결합보다는 혼란과 방황을 선택했음을 깨닫는다. 그제서야 수수께끼 같던 외래어 스트레이 쉽의 의미는 해독되는 듯 하다. 산시로는 아마도 조금은 성숙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해석하면,『산시로』는 말 그대로 청춘소설이다. 하지만, 그의 방황은 이제부터 시작이 아닐까? 산시로와 미네코의 엇갈림이라는 '운명', 즉 근대의 체험 그 자체에서 발생한 무거운 운명이 산시로의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미네코의 돌아섬, 타협의 형식, 결혼이라는 또 다른 근대적 제도의 문제와 진정으로 맞서야 하지 않을까? 스트레이 쉽의 의미는 여기에 놓여있는 것이 아닐까? 이때 미네코를 제외한 소설의 등장인물 모두 독신자라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리고 소설의 후반부에 올 수록 미네코의 혼담을 둘러싼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도 주목해볼 만 하다. 히로타 선생, 노노미야, 하라구치 모두 나이든 독신자이다. 산시로 뿐만 아니라 노노미야도 미네코를 사모했으며, 하라구치는 미네코로부터 신용을 잃었다. 그녀는 다른 남자를 선택한다. 미네코의 말을 빌면, 히로타 선생, 노노미야 모두 "다 큰 미아(迷兒)"(115쪽)에 불과하며, 그 밖의 인물들은 모두 스트레이 쉽이다. 그들 모두는 미네코 쪽에서 보면, "책임을 회피"(116쪽)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책임을 회피하고 있을까? 이러한 불투명한 질문을 안은 채로 청년 산시로의 수업시대는 일단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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