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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의 네 가지 풍경 : 지하련,「도정(道程)-소시민」읽기

작성자쌍수대인|작성시간03.10.20|조회수529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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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의 네 가지 풍경 : 지하련,「도정(道程)-소시민」읽기
-지하련,「道程」(『道程』, 백양당, 1948)

잘 알려진 것처럼 지하련(본명 이숙희)의「도정」(《문학》, 창간호, 1946. 7)은 조선문학가동맹 제정 1946년도 문학상 소설부문 당선작인 이태준의「해방전후」와 당선을 놓고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소설이다.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이라는 함석헌의 언급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해방전후」와「도정」은 급작스럽게 찾아온 해방 후의 혼란스러운 풍경을 각각 소설가와 전향 지식인의 관점에서 묘사한 작품들이다.「해방전후」와「도정」과 함께 해방 공간을 묘사한 또 다른 소설로 채만식의「민족의 죄인」과 허 준의「잔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네 작품이 묘사한 해방공간의 풍경에 대해 기술해 보자.

채만식의「민족의 죄인」(1948)의 주인공은 과거, 친일을 했던 자신의 행적을 친일을 하지 않았다고 자부하는 한 속물적인 작중인물에 비추어 착잡하게 반성하는 소설이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의 아들이 친일파 선생의 수업을 거부하는 동맹휴학에서 혼자 빠져 나온 것을 무섭게 타이르는 장면은 꾀나 희극적이다. 그 과제, 친일파의 척결과 해방현실의 이면에 자리잡은 친일적 유산과의 급속한 단절과 새로운 민족문화 이념을 세운다는 일.「민족의 죄인」은 일제 말기에 궁핍과 병고에 시달리면서 생활인의 의무 때문에 친일의 유혹에 넘어갔으나 해방이후에는 그러한 과거와 정면으로 맞대면해야 하는 지식인의 내면풍경인 부끄러움, 죄책감 등등이 다소 위악적으로 묘사된 소설이다.

허 준은 자신의 삶의 내력이 그러했듯이 소설「잔등」(1946)에서 만주에서 출발 기차와 도보, 군용트럭으로 고향에 도착하기까지의 여러 개의 '길'을 통해 해방직후의 아수라장과 같은 이산(離散)의 풍경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특히 굶주리며 쫓겨가는 일본인 모자(母子)에게 국밥을 건네주는 간이역 식당의 노파가 보여주는 동정심은 이념간의 갈등과 민족적 이해관계의 맞은 편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인간성에 대한 작가의 깊은 열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태준의「해방전후」는 해방직전, 태평양 전쟁말기에서 일본의 패전이 확실시 될 때, 일제의 문화정책에 최소한으로 동조하지 않기 위해 시골에 내려가 낚시질로 소일하던 작가의 실제 체험이 반영된 작품이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몰락한 한학자나 이조 말기의 삶의 잔상(殘像)을 간직하고 있는 선비들의 모습은「해방전후」에서도 친일의 경력이 있는 서술자 자신과 그가 몸담고 있는 해방현실의 왜곡된 면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임무를 띠고 나타난다.

지하련의「도정」은 6년 간 옥살이를 하고 전향한 후 급작스레 해방을 맞은 소시민적 지식인 석재가 전향에 따른 죄책감과 양심의 갈등을 겪으면서 공산당으로의 투신을 통해 새로운 삶의 희망을 모색하기까지의 '도정(道程)'을 그린 소설이다. 앞서 예로 든 해방공간을 그린 세 편의 소설과 비교해 볼 때,「도정」의 탁월한 점은 우선 소시민적 지식인의 양심과 자기반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직조해낸 데 있다. 석재는 "나는 타락한 것이 아닌가?"(24쪽)라는 자조적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며 양심을 지킨다는 자신의 윤리감각마저도 허위의식이 아니었던가 반성한다. 그는 "소위 그 "양심"이란 어금길에서 제깐엔 스스로 고민하는 척 몸짓하며 살어온 사람들"(29쪽)속에 자신도 끼어있었다는 점을 통렬히 느끼면서 세상의 속악함으로부터 자신만 면제되어 있다고 느끼는 '아름다운 영혼'의 자기기만을 고발한다. 양심이 그저 한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은 도덕적 감각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는 인간성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야말로「도정」의 탁월한 주제의식이다.

해방 후 공산당의 주요간부로 일하는 속물적 인간 기철과의 대면에서 석재가 느낀 갈등은 진정한 윤리의식과 양심이 무엇인지를 밝혀준다. 석재는 기철과의 대면을 통해 석재가 투신하려는 공산당이 기철이 세운 것을 알지만, "기철을 비난하는 것은 곧 당의 비난이 되는 것"(40쪽)이라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다. 당 가입서에 "小 뿌르조아"라고 쓴 후, "나는 나의 방식으로 나의 "小市民"과 싸호자"(41쪽)고 결심하는 석재의 도저한 자기반성은, 한편, 복화술을 구사하는 작가 지하련이 그린, 그녀의 남편이자 전향자였던 해방이후의 임화의 내면풍경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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