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읽기(1)

작성자쌍수대인|작성시간02.09.19|조회수557 목록 댓글 0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읽기(1)

 

[Photo: Walter Benjamin, 1937]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arcades portrait

(아케이드 상가)

*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아케이드 프로젝트Das Passagen-Werk>, 조형준 옮김, <<세계의 문학>>, 2002년 봄호, 통권 103권, 민음사, 2002, 69-146쪽.

1. 책과 운명

1930년대부터 시작한 19세기 자본주의의 전사(前史)인 방대한 <아케이드 프로젝트>(이하 <아케이드>) 작업에 대한 벤야민의 기대는, 벤야민의 전기작가 베른트 비테가 인용한 벤야민의 말에 따르면,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용기를 포기하지 않게 한, 유일하지는 않더라도 본질적"인 희망이었다(베른트 비테, <발터 벤야민>, 안소현·이영희 옮김, 역사비평사, 1994, 162쪽). 이 프로젝트는 부분적으론 아도르노가 있던 <사회조사연구소>에 발표되기도 했지만, 벤야민의 때 이른 죽음(1940)으로 말미암아 그의 프랑스 친구인 조르주 바타이유가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깊숙이 묻어두게 되었고, 82년에 와서야 두 권으로 나뉘어 편집이 되었다. 벤야민의 이 방대한 프로젝트의 일부분은 발표 당시 아도르노에 의해 "마술과 실증주의의 교차로"이며 그 바탕엔 비변증법적 사고가 흐르고 있다고 하여 심하게 혹평을 받았다. 파시즘이 몰아치고 있던 30년대 후반 유럽에서 유대인 벤야민에게 이 원고의 발표는 곧 생계와 직결된 문제였지만, 일찍 망명하여 미국의 대기업의 지원을 받으며 라디오 프로젝트 연구에 몰두하면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쉬고 있었을 아도르노에겐 그런 벤야민의 절박한 사정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2. 상품형태의 마술에 홀린 현대 세계

벤야민의 이 <아케이드>의 심장부엔 최근에 국내에 번역된 벤야민에 관한 전기를 쓴 게르숌 숄렘에게 보낸 벤야민의 편지에 표현된 것처럼 맑스가 <자본>에서 언급한 "상품의 물신적 성격"에 대한 고찰이 중점적으로 놓여있다. 벤야민의 말을 들어보자. "졸저의 조사는 이처럼 문명을 물상화해서 표상하게 된 결과, 19세기로부터 유래한 새로운 형태의 행동들 그리고 이제 경제와 기술에 기반해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물들이 어떻게 환영들fantasmagories의 우주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려고 한다."(74쪽) 앞 문장과 아래 맑스의 상품의 물신적 성격에 관한 유명한 구절을 대비해 보도록 하자.

상품은 언뜻 보면 자명하고 평범한 물건으로 보인다. 상품을 분석해 보면 상품이란 형이상학적인 교활함과 신학적 변덕으로 가득찬 매우 기묘한 물건임을 알게 된다. 상품이 사용가치인 한에서는, 그 속성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관점에서 고찰하든 또는 인간노동의 생산물로서 비로소 이 속성들을 얻는다는 관점에서 고찰하든, 상품에는 아무런 신비한 것이 없다. 인간이 자신의 활동을 통해 자연 소재의 형태를 자기에게 유용한 방식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매우 명료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목재로 탁자를 만들면 목재의 형태는 변경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자는 여전히 목재이고 하나의 일상적이고 감성적 물건일 뿐이다. 그러나 탁자가 상품으로 나타나면 곧 그것은 하나의 감성적인 동시에 초감성적인 물품으로 전화한다. 탁자는 자기 다리로 땅을 딛고 설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모든 상품에 대해서는 거꾸로 서서 그 나무머리에서 탁자가 스스로 춤추기 시작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놀라운 환상들을 전개시킨다. (칼 맑스, <자본1-1>, 김영민 옮김, 이론과 실천, 1989, 100쪽.)

맑스는, 상품이 신비스럽고 형이상학적 비밀로 가득찬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상품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임노동 자체가 복잡한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처럼, 하나의 단순한 상품조차도 사회적 임노동의 복잡한 매개과정을 거쳐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상품이 시장에 나타나고 구매자가 그것을 볼 때, 상품은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자명하게 있었던 것처럼, 마치 구매자가 오기를 기다려 분주하게 채비하고 있다가 막상 구매자가 오면 조용히 자신의 광채를 뽐내는 것처럼, 그렇게 존재하게 된다. 하나의 상품은 구매자 앞에선 그 원산지, 수출, 노동, 가공, 운송 등등의 사회적 과정을 망각한 채, 존재하게 된다. 모든 상품의 기원은 바로 망각이고, 그 망각을 사람들로 하여금 인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마술이며, 그런 다음 그것이 원래 처음부터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보이도록 마술을 부려 만든 제 2의 자연이다. 상품은 망각, 마술, 자연의 '형태'를 띠고 존재하게 된다.
한편, 상품형태는, 프로이트의 표현을 빌면, 자신의 유년기를 철저히 잊고 있다는 점에서 상품 '무의식'의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하나의 상품(형태)에는 자본주의의 전사의 태곳적 무의식이 잠들어 있고, 그것은 가끔 꿈과 증상의 형태로만 표출되곤 한다. 그것을 만든 자본주의의 사회적 노동을 철저히 억압한 채.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세계 아래에서 상품을 사는 구매자나 판매자 모두는 깨어나기 힘든 이런 상품의 마술적 꿈에 홀려 있다. 상품 형태 혹은 상품 무의식은 자본주의 시장의 구매자(판매자)에겐 자신이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그 꿈속의 통찰조차 결국 또 다른 꿈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데서 철저하게 억압되어 있다. 인류에게 진보나 새로움, 유행 등으로 표상되는 것조차 상품 무의식의 억압된 표상들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가 아무리 새로운 것을 고대해도 그것은 항상 이미 존재하는 현실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새로움은 마치 새로운 유행이 사회를 젊게 만들 수 없듯이 인류에게 해방적인 해결책을 가져다줄 수는 없다."(75쪽) 근대는 베버의 말을 빌면 '세계의 탈마법화'를 통해 해방을 만끽했지만, 자본주의적 상품형태와 무의식이 만든 집단 신경증의 구성물, 즉 일종의 꿈의 원초적 형태인 신화에 다시 예속되고 만다. "자신들의 환영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세계-보들레르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것이 바로 <근대>이다."(96쪽) 19세기 마지막에 광기에 들린 니체나 파리 코뮌(1871)의 혁명가 블랑키가 부르짖은 '영원회귀'의 문제는 바로 이 상품 형태, 또는 무의식에 잠겨 인류 전체가 집단적인 꿈에 빠져있다는 것에 대한 정확한 반증이다. 패션도, 새로운 유행도, 진보를 후원하고 독려하는 갖가지 실증과학과 정치가의 연설과 전쟁조차도 매번 그 양상이 바뀌고 변화해도 근본적으론 자본이 걸어놓은 이런 집단적 최면 아래에서는 실제로는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에 불과하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영원회귀라는 관념은 역사적 사건 자체를 대량 생산된 제품으로 변형시켜 버린다"(126쪽)는 것이다. "선진 자본주의에서의 상품 생산의 변증법, 생산물들의 새로움(즉 수요를 위한 자극)에는 전례 없는 중요성이 부여된다. 이와 동시에 대량생산에서는 <동일자의 영원 회귀>가 드러난다."(116쪽) 그렇다면 최후에는 아마 영원회귀라는 관념조차 그러할 것이다. 곧 영원회귀라는 상품. 그런데 이렇게 태어난 영원회귀의 관념이 알려주는 최초의 진실이 있다. 영원회귀는 온갖 휘황찬란한 상품이 매순간 요염하게 자태를 꾸미며 구매자를 기다리는 대도시의 휘황찬란한 이면에는 무서울 정도로 정지해 고여있는 인류의 권태나 무기력증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유행이나 패션, 진보의 관념 등에 힘입어 자본주의의 축소판이자 상품들의 우주적 진열장인 세계 박람회가 열리는 대도시엔 매순간 재빠르게 유행을 뒤쫓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들과 분주한 발걸음들이 존재하지만, 한편 그 이면에는 실상 그것이 결국 자기 주변을 맴돌고 반복하는 꿈이며 변하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없다는 무상감을 통해 영원회귀의 관념을 어렴풋이 통찰한 우울한 신경증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은 기본적으로 무(無)-시간적이라고 말한다. 상품 형태, 혹은 상품 무의식을 기저로 하는 자본주의란 끊임없이 차이짓기를 통해 자신을 재생산하는 영원회귀의 신화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자기소외, "생에 대한 혐오 속으로 들어와 이것을 우울로 바꾸어놓는 새로운 효소"(134쪽)가 도시의 악취 나는 뒷골목이나 습기 가득 찬 골방에서 기생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겨나게 되었을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