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가야트리 차크라보티 스피박 : 식민지적 텍스트의 해체와 말 못하는 타자 인식하기
스피박은 영국 지배당시의 인도 태생의 여성으로 자신의 신분을 포스트식민지인, 인도의
카스트 계급의 일원, 독립국 인도의 시민, 페미니스트, 구식 맑시스트등으로 밝힌다. 그녀는 자신의 말대로 '이산(離散 diasporic)' 식민지인이라는 복합적인 주체이다. 또한 그녀가 데리다의『그라마톨로지』(1967)의 뛰어난
영역자이자 그 책의 중요한 번역자 서문의 저자라는 사실은 그녀가 해체론에도 충실한 비평가임을 알려준다. 스피박이 데리다에게서 빌려오는 것은 탈중심주의이다. 주체는 이미 해체되어 있지만, 늘 중심화를 피할 수 없다. 주체를 구성하는 작업은 무의식의 일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외면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주체는 어떻게 중심화되고, 그때 주체는 무엇을 억압하고 그렇게 되는가를 보여 주는 게 스피박의 작업이다. 물론 이때의
주체란 식민지적 주체이다. 그녀의 말을 빌면, "당신이 그토록 주의 깊게
그리고 명백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에 당신이 어떻게 피할 수 없이 연루되어 있는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스피박은 특히 제 1/3세계의 문학
텍스트 속에 제국주의적 기획이 얼마나 스며들어가 있는가를 철저한 읽기를 통해 해체, 재구성해 보인다.
「세 여성의 텍스트와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다소 난해한 글에서
그녀는 페미니즘의 정전처럼 인식되어온 샬롯 브론테의『제인 에어』를
제국주의를 합리화시키는 텍스트로 다시 읽고, 계몽주의의 어두운 이면을
폭로하는 공포소설인 메리 셀리의『프랑켄슈타인』을 남근에 억압되어 온
여성의 모성을 되살려내는 텍스트로 새롭게 독해한다. 또한 스피박은 브론테의『제인 에어』에 나오는 불우한 여자인 버싸 메이슨을 앙트와네트라는 주인공으로 새롭게 등장시킨 장 라이스의『드넓은 사르가소의 바다』가 아무리 새로운 페미니즘적인 텍스트로 보여도 결국엔 버싸를 대변한다(represent)는 입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밝힌다. 스피박의 말에 따르면 제국주의치하의 여성을 대변한다는 것은 제국주의의 기획과 페미니즘이 복잡하게 얽힌 공모관계를 풀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글은 요약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여기서는 단지『프랑켄슈타인』이 어떻게 계몽적/제국주의적 기획의 무모한 음모를 음산하게 폭로하는가하는 문제에 창조자로서의 여성이 이 폭로의 기획에 어떻게 참여하는가를 짧게 언급하기로
한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의 역할이 계몽의 폭력적인 면을 담당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그 괴물은 스피박의 용어를 빌면
"인공적 자궁"(G. 스피박,「세 여성의 텍스트와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윤정미 옮김,《외국문학》, 1992년 여름, 111쪽)에서 태어난 과학의 아들, 새로운 시대의 아담이다. (한편, 그 괴물은 흉칙한 외모처럼 과학/제국주의/계몽의 희생자 곧, 식민지인을 표상한다.) 그렇다면 계몽의 기획은 철저하게 남성중심주의의 산물인 것이다. 텍스트에서 여성의 역할은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텍스트 행간의 침묵과 비웃음으로 프랑켄슈타인의
불모성-여성의 자궁에 대한 과학이 갖는 두려움과 과학은 여성, 혹은 이브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무능력-에 대항한다.
스피박은, 호미 바바와는 다르게, 제국의 식민지인이 효과적으로 제국주의의 기획에 틈을 내어 전복의 정치를 실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한다.「하위주체(subaltern)는 말할 수 있는가」라는 글에서 그녀는 특히 제 3세계의 여성-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중으로 억압된 여성-이 제국주의의 계몽적 담론이나 가부장제의 담론을 통해서는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으며, 또한 이들을 대변하려 하는 제 1세계의 지식인이나 제 3세계의 지식인의 노력도 허위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장 리이스의『드넓은 사르가소의 바다』에
대한 비판적 읽기가 그러한 예다). 스피박이 때로 자신의 이전의 담론조차 분석대상으로 삼는다는 사실은 제 3세계의 지식인으로서 제 1세계의
최신의 담론을 습득한 자의 조건마저도 의심의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이중 구속의 상황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이러한 이중의 질곡을
풀지 않고 오히려 그런 조건을 만들어 내는 담론의 형성과정에 훼방을 놓아야 한다고 말을 한다. 스피박의 이러한 전략에 대한 비판은 그녀가 강조하는 제 3세계의 여성이외에도 무수히 억압된 또 다른 타자가 있으며,
이들을 모아 해방의 연합전선을 기획하는 일에 그녀가 너무 인색하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한 스피박은 제 1세계에 대해 비판적인 지식인-그/그녀가 어떤 출신이든간에-의 일정한 역할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이 스피박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3) 에드워드 사이드 : 텍스트를 세속화하기, 오리엔탈리즘의 해체
3-1) 텍스트는 세속적이다

데리다의 저서『그라마톨로지』엔 '텍스트의 바깥은 없다'라는 말이 씌어있다. 데리다의 이 말은 워낙 함축적이어서 대개 세계의 모든 현상은 언어로만 설명되며, 언어로 설명되는 현실 이외의 또 다른 현실을 구성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편으로는 이는 지금까지 무시해왔던
현실속에서의 언어가 가지는 근본적인 역할을 강조한 말로도 보인다.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바깥이라는 말에 강조를 두면 데리다의 말은 세계인식에 대한 인간의 한계를
잠정적으로 설정한다는 의미로도 보인다. 데리다에 따르면 이때 텍스트는
비단 언어로 구성된 모든 작품을 한정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화될 현실까지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텍스트 바깥은 없다라는 말은 현실을 무시하고 함부로 초월하려는 어떠한 기획도 상상적일 수 밖에
없으며, 더군다나 그러한 기획은 현실 속에서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도 나타난다는 경고문으로도 읽힌다. 데리다가 서양 중심주의에 내재한 음성
중심주의가 가지는 폭력성을 해체한 철학자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바이다. 음성 중심주의는 데리다의 말을 빌면 독백인데, 왜냐하면 음성을
강조하는 행위, 즉 목소리는 그것을 발화하는 바로 그 사람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을 하는 사람은 말하는 자기를 인식하는데 관심을 더 기울이기 때문에, 상대방(=타자)을 염두해 둘 여유가 없는 것이다. 서양 철학은 이렇게 해서, 비록 글로 씌여져 있지만, 본질적으로 음성중심적 행위를 강조했기 때문에 항상 타자를 자연스럽게 배제해 왔고, 그것이 현실에서는 제국주의적이며 인종중심적인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리다의 '텍스트 바깥은 없다'라는 말은 대단히 현실적인 컨텍스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드는 이 말을 받아들인 미국의 해체 비평가들이 데리다와는 무관하게
텍스트의 텍스트성에만 함몰되어 난해하고도 비의적(秘意的)인 해석만 전개시키고 있다고 비난한다. 미국의 해체 비평가들은 신비평을 극복하고
출발했지만, 신비평보다도 텍스트를 지나치게 꼼꼼하게 읽고, 무한한 해석적 다의성만을 인정, 본래 텍스트가 지향하고 있는 현실과의 맥락을,
신비평처럼, 무시했다는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텍스트를 전문적으로,
학자들만 다루는 영역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텍스트의 텍스트성을 성령처럼 받들면서 말이다. 사이드의 비판처럼 이럴 때, 텍스트의 "텍스트성은
소위 역사라고 불리우는 것에 대한 분명한 배제이며, 앙띠 테제이다."
내 입장을 말하자면, 텍스트는 세속적wordly이며 어느 의미에서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텍스트가 그것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순간에도 텍스트는 스스로가 위치하고 있고 해석되는 그 역사적
순간, 생활, 그리고 사회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에드워드 사이드,「세속적 비평」, 김성곤 옮김, 김성곤 편,『탈구조주의의 이해』, 민음사, 1988, 329쪽).
사이드의 입장은 분명하다. 텍스트는 신성시되거나 신비화되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라, 권력작용이 일어나는 세속의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 '텍스트의 바깥은 있다'. 따라서 비평(가)의 일도 세속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비평의 세속적 자리는 텍스트를 신성시하는 행위, 정전화하는 행위의 이데올로기적 실체를 폭로하고, 텍스트 내부의 정전화 할 가능성이 있는 요소들을 탈신비화시키는 시키는 데에 있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비평이란
또한 텍스트를 현실이나 역사 바깥의 진공상태에서 부단히 안으로 끌어오려는 구심적인 행위이면서 동시에 그 여파를 현실이나 역사로 투사하는
원심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은 항상 제자리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이동하며 자신이 있던 자리를 항상 탈구축하는(=해체하는
deconstructing) 운동이다.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의미에서의 해체적 비평이다.
사이드가 위와 같은 이론적 입장을 강력히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미『오리엔탈리즘』(1978)에서 세속적 비평의 작업을 충실히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양에 의해서 동양이라 불리는 곳에 대한 심미적인 글쓰기나
학구적인 연구가 어떻게 음험한 권력과정을 노출하고 있는지, 모든 지식이 어떻게 권력에의 의지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지에 대해 니체/푸코적인 의미에서의 문헌학적/계보학적인 탐색작업을『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철저하게 밝혀나가고 있다.
3-2) '오리엔탈'이라는 표상과 제국의 지배
『오리엔탈리즘』을 이끌어 나가는 사이드의 언어는 시종 분노에 찬 폭로에 가깝다. 배꼽춤을 추는 아랍의 여인을 묘사하는 네르발의 시에서 짐짓
점잔빼는 학구적인 민속학 논문에 이르기까지 오리엔탈에 대한 서양인들의 지칠 줄 모르는 탐색에 대해 때로는 비웃음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들끓는 저항으로, 냉정함으로 대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철저하게 그의
비판적인 지성에 의해 통제되고 구획된 채 서술되고 있다. 책의 서설에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문화적으로 또는 이데올로기적으로 하나의 모습을
갖는 언설/담론 discourse로서 표현하고 표상한다. 그러한 언설/담론은
제도, 낱말, 학문, 이미지, 주의주장, 나아가 식민지의 관료제도나 식민지적 스타일로써 구성된다.
간단히 말해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위압하기 위한 서양의 스타일이다(에드워드 사이드,『오리엔탈리즘』, 박홍규 역, 교보문고, 1991, 각각 13 및 16쪽).
결국 오리엔탈리즘의 주체는 서양이며 동양은 서양이라는 주체의 상상적,
지식적, 지배적 산물인 셈이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이 특히 제국주의의 침략이 노골화되는 18세기에 와서 갑자기 지배의 모습을 띠게 되었고 지금도 계속된다고 주장한다. 오리엔탈리즘은 단지 텍스트의 상상적 효과도 아니고,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노력도 오리엔탈리즘의 기획에 포섭될 정도로 강력한 현실로
존재한다. 오리엔탈리즘은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소비된다.
오리엔탈리즘에 의해서 구분된 동양과 서양도 사실 오리엔탈리즘의 담론적 산물이다. 이렇게 되면 서양은 자연히 이성, 합리주의 및 휴머니즘과도 같은 가치의 담지자로 인정되며, 여기에 비해 동양은 그러한 가치의
부재나 결핍과 연관지어 파악된다. 그런데 오리엔탈리스트의 동양에 대한
역사적 태도를 보면 이율배반적이다. 모든 오리엔탈리스트들은 현재의 동양은 무시하지만 아득한 과거로 존재하는 동양은 황금의 시대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특히 상상적 텍스트들을 만들어 내는 데에 귀재들인 시인과
작가들에게 동양은 낙원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들에게 오리엔탈리즘은 실제의 동양에 대한 탐구라기보다는 "작가와 작품을 인용하는 체계이다."
동양이라는 대상은 언제나 기존의 오리엔탈리즘의 텍스트를 통해서만 다시 담론화될 수 있는 것이다. 네르발의 동양에 대한 지리적/시적 산문은
라마르띤느의『동양 여행』과 상호 텍스트적 관계를 가지고 있고,『동양
여행』도 샤토브리앙의『여행기』를 인용하고 해석한 책이다. 샤토브리앙의 책은 이집트연구소에서 편찬한 23권의『이집트의 묘사』에 묘사된 동양이다. 이집트연구소를 세운 것은 이집트 원정을 나섰던 나폴레옹이 세운 것이다. 결국 오리엔탈리즘의 계보의 '시작(beginning)'엔 지배가 존재하는 것이다. 서로 무관한 듯 보이던 미와 지배도 이렇게 해서 공모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동양은 무역사적이고 전제적이며 스스로 대변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서양에 의해 '표상/대변/대표 represent'되어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대표할 수 없고, 누군가에 의해 대표되어야 한다. 그들의 대표자는 동시에 그들 위에 군림하는 권위로서, 그들의 지배자로서,
그리고 (...) 그들에게 위로부터 비와 햇빛을 보내 주는 무제한의 통치
권력으로서 나타날 수 밖에 없다(K. 맑스,「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프랑스 혁명사 3부작』, 임지현/이종훈 옮김, 소나무, 1991,
267쪽).
사이드도 인용하고 있는 맑스의『루이 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에 나오는 위 문장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맑스는 어떠한 계급도 구성하지 못한 분할지 농민에게 보나파르트가 그들의 대변자로 나서 준 다음, 그들의
세력을 이용, 권력을 잡게 되고 오히려 더 철저히 그들을 착취하는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폭로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분할지 농민 계급이라는 딱지가 일단 붙자마자 정말로 그들은 더욱 말 못하고 의사를 표출할 수 없는 계급아닌 계급으로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서양이 제 3세계를 지배해온 역사의 과정도 그렇다. 사이드는 다른 글에서 지금도 억압받고 신음하는 제 3세계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행동적인 지식인의 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는 스피박의 지식인의 민중의 입장에 대한 재현 불가능성에 대해 그것을 회의주의라고 반박하는 것과 같다: "재현하는represent인물로서의 지성인(...) 이러한 재현하는 인물이란 어떤 종류의
입장을 분명히 대변하는 사람, 그리고 모든 종류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대중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에드워드 사이드,『권력과 지성인』, 전신욱/서봉섭 옮김, 창, 1996, 46쪽)이다.
팔레스타인의 이주자로서 뼈아픈 경험을 한 사이드는 지식인으로서 맑스가 말한 재현/대표의 정치학을 전복시켜 지금도 팔레스타인인들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상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한편, 그들의 대변자가 되어 제국주의적 음모들과 맞서 싸우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비록 제 3세계 중 중동지역에 한정된 부분만 밝히고
있지만, 그가 제시한 오리엔탈리즘의 표상과 제국의 지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보편적인 현실이다. 아래에서우리는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제국주의의 길을 밟았던 일본의 지배의 역사와 그것에 긴밀히 얽힌 오리엔탈리즘의 또 다른 국면을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의『동양의 이상』(1903)에서 찾아보는 한편, 조선에 대한 일본인의 미적 표상이 어떻게 오리엔탈리즘과 더불어 제국의 지배와 연관되는지도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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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박서보 「No.1」캔버스에 유채 95×82cm 1957 개인 소장.
오른쪽. 마리솔(Marisol) 「가족」 혼합매체 210×166cm MoMA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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