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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논평 **

[화요논평](2008년 9월 23일) 정치신학의 기원으로서 모세 이야기

작성자아이온|작성시간08.09.23|조회수406 목록 댓글 0

다음은 학생들과 정치신학을 주제로 얘기할 목적으로 끄적거려 두었던 것이니 가볍게 읽으셨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정치신학이라는 주제로 다루었던 예수, 사도 바울, 카알 슈미트 및 아감벤으로 이어질 내용들 중의 한 꼭지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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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국가이론의 주요 개념들은 자체의 역사적인 발전 때문만이 아니라 체계적인 구조, 즉 이러한 개념들에 대한 사회학적 고려에 필요한 인식으로 인해 세속화된 신학 개념들이다. 사실 역사적인 발전 가운데에 그러한 개념들은 신학에서 국가이론으로 이행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컨대, 전지전능한 신은 전지전능한 법 제정자가 되었다. 법학에서 예외는 신학에서 기적과 유사하다.”1)


“처음부터 정치신학은 자신의 생활방식을 합리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정치신학은 신앙(faith)의 진리에 토대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정치신학은 모든 것을 이러한 진리에 예속시킨다.”2)

 

이집트인 모세


        위 인용문을 통해서 볼 때, 정치신학은 계시 신앙만큼이나 오래 묵은 것이며, 인간이 복종을 요구하는 신에 대한 신앙을 믿는 한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프로이트 『모세와 일신교, Moses and Monotheism』 trans. by Katherine Jones (New York: Vintage, 1967)를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3) 무신론적 종교관을 견지했던 프로이트에게 있어 종교는 집단 신경증(a collective neurosis), 즉 “아버지에 대한 동경” (longing for a father)이었고 그는 이러한 맥락에서 자기 조상의 종교 유대교를 분석해 나가기 시작한다.

        프로이트의 근원적인 질문은 “무엇으로 인해 실제 유태인들만의 특징적인 성격이 창조되었는가?”에 있었다. 그의 결론은 유태인의 정체성은 인간 모세의 창작이라는 것에 이른다. 그렇다면 모세는 누구였고 그가 무엇을 가져왔는가가 관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하나의 역사적인 가설이 필요하다.

        첫째, 모세는 유태인이 아니라,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이집트인이자, 고위 공직자 내지는 제사장이었으며, 필시 왕자의 신분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일 신앙의 열렬한 지지자였을 것이다. 사실 Moses라는 말은 어원학적인 근거상 이집트어에서 유래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유일신앙, 즉 국교로서 매우 배타적인 태양신은 1350년경 파라오 아멘호텝(Amenhotep) IV이 지배적인 종교로 만들었다.4) 이 파라오가 죽음으로써 18대 왕조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종교도 그 막을 내리게 된다. 이에 따라 야심만만하고 선지자적인 모세는 그의 모든 희망을 잃고 조국을 떠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새로운 나라에 전임 왕이 강요했던 유일신앙을 다시 부활시키기를 제안한다.

        둘째, 이러한 그의 결심을 실행하기 위해 Hyksos 시대 이래 이집트 노예였던 셈족에 의지한다. 자신이 그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 먼저 그들을 자유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다시 말해서, 아톤(Aton) 종교를 구하기 위해서 모세는 그 셈족을 데리고 나와 그들을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새 나라와 율법을 만들어준다. 무엇보다도 그는 셈족에게 훨씬 더 영적(spiritual)이고 추상적인 형태의 유일신앙의 종교를 주었다. 또한 셈족이 그들 민족 스스로를 타민족과 구분 짓고 자긍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혹은 이집트인들에 비해 열등감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모세는 이집트의 관습인 할례를 전해주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유태인들은 이러한 까다로운 율법과 믿음을 견뎌내지 못한 끝에 결국 들고 일어나 모세를 죽이기에 이른다.

        하지만 구약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그때에 참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모세가 백성을 진영에서 테리고 나오자, 그들은 산기슭에 서 있었다. 시나이 산에는 온통 연기가 자욱하였는데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그 위로 내려오셨기 때문이다. 그 연기가 가마의 연기처럼 계속 올라갔으며 온 산이 매우 심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뿔나팔 소리가 점점 더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하기 시작하니 참 하느님이 음성(in thunder)으로 그에게 대답하기 시작하였다.” (탈출기, 19: 16-19). 


위 인용문에 따르면, 신은 불 형태로 나타나고 천둥 속에서 말한다. 물론 불의 형태라 하는 것은 식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천둥의 소리 역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신성이란 쉽사리 어떤 존재 내지는 존재 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을 것이다. 이어서 탈출기(Exodus)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려가서 백성에게 경고하여, 그들이 여호와께로 뚫고 들어와서 보려고 하다가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이에 모세가 대답하기를, ‘백성은 시나이 산으로 올라올 수 없습니다. 당신이 이미 우리에게 경고하기를 신의 경계를 정하여 그것을 신성하게 하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탈출기 19: 21-24).


시나이 산의 분위기는 마치 카프카의 우화 “법 앞에서”의 경우에서와 같이 자못 위협적이고 폭력적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신 앞에서 떨면서 모세로 하여금 신이 그들을 죽이지는 말라고 간청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과 대면하는 모세의 얼굴은 빛을 발하고 있다. 모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러한 대면을 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숨기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그는 이러한 엄청난 정의를 소통하려는 신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정의는 무서운 결정의 순간에 듣는 이에게 명령한다. 그는 정의를 위한 이러한 부름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거절할 것인가? 첫 번째 대답은 한 목소리(univocal)에 긍정적이다. 다시 탈출기(Exodus)는 기록하기를, “모든 백성이 한 목소리로 대답하기를 ‘여호와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기꺼이 행하겠습니다.’ 하였다(all the people said with one voice, ‘all that he has spoken we will do; we will obey’). (탈출기 24: 3, 7).

        요컨대, 모세는 유태인들에게 아톤(Aten)의 영적인 종교를 부여했고 신성의 표현이자 그들을 다른 종족과 분리시킬 목적으로 할례를 소개했다. 유태인들이 후일 자랑하는 여호와 신은 모세가 그들을 선택된 민족으로 만들어 그들을 이집트로부터 데리고 나왔던 부분들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선택 행위와 새 종교의 선물을 통해서 그는 유태인을 창조하였다 볼 수 있다.

        셋째, 그러나 정작 이들 유태인들은 그들에 앞서 믿었던 이집트인들과 같이 아톤 종교의 매우 부담스러운 신앙을 거의 참아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러한 와중에 수십 년을 지나면서 모세는 아마도 군중 봉기가운데에 살해된 것이리라. 물론 그가 사라짐으로써 그의 가르침도 함께 저물게 된다. 이후 모세를 따랐던 다수의 이스라엘 종족들은 다시 이집트로 되돌아가고, 나머지는 오랜 방황 끝에  미디안(Midian) 땅 - 오늘날 팔레스타인과 아라비아 해안 서부 - 에 정착하고 있었던 다른 부족들과 합치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시 시나이 산에 있는 화산신을 숭배하게 되고, 급기야 이러한 원시신, 여호와(Jahve)는 유태인 민족의 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무렵 오랜 시간을 거쳐 온 모세의 종교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었다. 수 백 년 동안 억압가운데에서도 지켜온 전통에 힘입어 그들은 모세의 신을 여호와로 동일시하게 될 수 있었으며, 결국 모세를 미디안으로부터의 여호와를 이스라엘에 소개했던 제사장들과 동등하게 다루었다. 이후 모세의 종교는 여호와 신 안으로 녹아들어가게 되고 모세의 행적은 또 다른 모세라는 이름의 미디안 성직자에게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하여 여호와는 모세의 신이 가졌던 보편적이고 정신적인 특성들은 물려받아서 유대교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두 번째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야훼 종교를 가져다 준 사람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집트인 모세를 통해서 종교의 기원을 기술하기에 앞서서 모세와 관련된 그의 진리에 대한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그에게 있어서 진리는 영속적인 진리, 역사적인 진리 그리고 실제적인 진리(material truth)로 구분된다. 그는 실제적인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신뢰할만한 자료에 입각해야 할 것이라 본다. 그러나 사실 모세에 관한 자료 중 그 어떤 것도 신빙성이 없다할 때 이러한 실제적인 진리는 불가능하다. 그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은 역사적인 저작들과 가장 가능한 역사적인 전제들을 통해서 연역적으로 ‘역사적인 진리(historical truth)’를 모색해 보는 것이다.5)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역사적인 진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을 바로 접근해 가는 무엇이라 할 수 있는데, 가령, “실제로 모세가 누구였을까?”, “모세가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을 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와 같이 역사가들이 객관적 증거를 통해서 수립해 가는 종류의 진리라 할 수 있다.

        먼저 이러한 역사적인 정황을 드러내 주는 구약성서의 몇몇 구절을 가져올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모세는 진영 가까이 와서 송아지와 춤을 보게 되자, 분노가 타올라 즉시 그의 손에서 판들을 던져 산기슭에서 깨뜨렸다. 그런 다음 그는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로 태우고 가루가 될 때까지 그것을 바스러뜨린 후에 물 위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게 하였다…… 그들은 악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에 앞서 갈 신을 만드시오.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올라온 이 모세라는 사람,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우리가 도무지 모르기 때문이오.’…… 모세는 백성이 제멋대로 행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모세가 진영의 문에서 말하였다. ‘누가 여호와의 편에 있습니까? 나에게로 오십시오!’ 그러자 레위 자손이 모두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너희 각 사람은 자기 칼을 옆에 차라. 진영의 문에서 문으로 오고가면서 각자 자기 형제와 각자 자기 동료와 각자 자기와 절친한 친지를 죽여라.’ 그래서 레위 자손이 모세가 말한 대로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날 백성 중에 약 삼천 명이 쓰러졌다…… 그리하여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가서 말하였다. ‘아,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으로 신을 만들어 큰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나의 책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그러니 이제, 자, 내가 너에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여라, 보아라! 나의 천사가 너의 앞에 갈 것이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리라…… 한 순간에라도 내가 네 가운데로 올라가 너를 아주 전멸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너의 장식품을 몸에서 떼어서 내려 놓아라……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은 호렙 산에서부터 자기들의 장식품을 몸에서 떼어냈다…… 여호와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말을 기록하여라. 이 말에 따라 내가 너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그는 그곳에서 여호와와 함께 밤낮을 사십 일 지냈다. 그는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그분은 판들 위에 계약의 말씀, 곧 ‘열 가지 말씀’을 기록하였다.” (탈출기, 32-34).


        성서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프로이트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역사적인 진리는 “과거로의 회귀를 제공하는 진리truth that ‘brings a return of the past’”라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중시하는 특정한 역사적인 진리는 “원부 살해(the murder of the primal father)”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물론 역사상 전제적 원부가 그들 자손들에 의해서 살해당하고 먹어 삼켜진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는 이러한 신화와 같은 부분이 종교와 도덕성의 근원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모세 연구를 통해서 종교와 도덕의 근원에 대한 추론을 해가면서 다음 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우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연구배경을 다음 프로이트 말로부터 시작하자. “나의 관심은 자연과학, 의학 및 심리치료의 우회적인 경로를 평생 거쳐 온 연후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거의 사고를 제도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젊었을 무렵부터 나를 매혹시켰던 문화적인 문제로 되돌아 왔다. My interest, after making a lifelong detour through the natural sciences, medicine, and psychotheraphy, returned to the cultural problems which had fascinated me long before, when I was a youth scarcely old enough for thinking" (72).  


정치신학과 유일신의 기원


        잘 알려져 있듯이, 프로이트는 토테미즘이 종교가 인간의 역사에 나타난 최초의 형태이고, 이 최초 종교의 형태는 이미 사회적 규제와 도덕적 의무와 관련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토템과 타부 Totem and Taboo』라는 책에서, 원시인류의 정신세계와 강박신경증 환자사이의 사고과정 간에 유비를 발견하고 종교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 인류의 진화 초기단계에서 인간은 독재적인 ‘최초의 아버지’가 지배하면서 아들들을 배제하고 모든 여인을 혼자 소유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불만에 가득 찬 아들들은 연합해서 아버지를 살해하지만, 곧 아버지의 위대함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보복의 두려움에 대한 무의식적 죄책감을 갖게 된다. 결국 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의 여인들을 나누어가진 자녀들의 죄책과 강박관념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의 해결을 시도하며 아버지의 대용물이라고 할 수 있는 토템동물을 정하게 하였다. 이렇게 토템을 숭배하고 이에 대한 살해금지와 동족간의 살해금지 등 금기를 정하고 동족 내 다른 여인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게 하는 족외혼(exogamy) 관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토템숭배와 금기의 실천을 통해 아들들은 아버지를 죽인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모세가 그의 민족을 신성화시키기 위해서 위에 언급한 할례라는 관습을 소개한 그 저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원부가 그의 아들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것을 아들에 대한 일종의 거세(castration)의 벌로 본다면 모세가 요구했던 할례는 그러한 거세를 상징적으로 대체하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 년에 한번 토템종교 의례에서는 아버지의 절대적 힘을 아들들이 받아들이는 상징적 행위로 토템동물을 죽이고 먹는 것이 허용되었다. 이 때 토템조상과 금기들에 대한 양면성은 아버지를 제거하고 어머니를 소유하고자 하는 소원들에 대한 오이디푸스적 양면성과 관련되어 있다. 존경과 두려움의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토템조상의 힘은 한층 더 전이되어 아버지의 모습을 신성으로 승화시켜 종교에서의 절대적인 신의 원형이 된다. 전종교적 기원으로부터 이런 변형은 세대를 거쳐 나타난 토템식사의 진화에서 두드러진다. 동물의 신성하고 희생적인 죽음과 인간의 이것을 먹는 행위는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힌 희생을 기리는 성만찬 의식으로 이어진다. 즉 토템 식사는 사람의 죄책감 또는 원죄를 불러일으키며 종교와 윤리적 구속, 사회조직의 출발점이 되는 바로 그 두려운 행위를 기억하는 축제인 것이다.

        이처럼 프로이트는 종교의 기원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는 집단의 최초의 아버지를 죽인 그 범죄에 대한 죄의식이 무의식속에 남아있는 방식으로 이스라엘 민족 또한 모세의 죽음과 더불어 지속적인 죄책감을 갖게 되었고 기술한다. 거의 모든 민족이 운명적으로 그리고 트라우마적으로 갖게 된 억압이 궁극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유일하게 유일신앙의 뿌리를 갖게 하였을 것이라 본다. 이집트인이었던 모세의 처음 가르침은 이스라엘인의 무의식 안에서 잠재적인 힘을 갖고 있었고, 이것이 앞서 말한 과정을 통해 유일신론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프로이트가 말하는 원죄교리의 중요성은 그것이 무의식 안에서 최초의 아버지의 살인을 상징화하는 것이다. 이 원죄로부터의 구원은 희생적 죽음을 통하여 발견돼야 하는데 아들인 예수가 그 모든 죄를 짊어짐으로써 아버지 옆에서 그 자신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어 모세의 종교는 아버지 종교로, 기독교는 아들 종교가 되었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를 더 발전시킴으로써 그것의 파괴자가 되었다. 바울의 성공은 분명히 죄의식이라는 모티브를 떠날 수 없었던 구원을 통해서 가능했다. 또한 그들이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생각과 할례라는 의식을 포기한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종교가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는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프로이트는 개인의 신경증 발전과정-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방어기제-잠복기-신경증적 증세의 발발-억압된 것으로의 부분적 회귀” -을 검토한 후에 이렇게 개인의 삶에 일어난 것과 비슷한 과정을 인류 전체에 대해서 적용하려고 했다. 즉, 모세의 살해라는 트라우마적인 사건은 억압되고 잊혀졌다가 오랜 기간의 잠복기를 거친 후에 ‘억압된 것의 회귀(a return of the repressed)’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부 살해와 모세의 살해는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이러한 원부 살해는 역사적으로 반복된다고 본다. 프로이트는 처음부터 이러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염두에 두고 역사적 사건에 대한 그의 가정을 이야기 했을 것이다. 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장에서 서술했던 확인될 수 없는 역사적 사건 자체는 유대인의 특성과 그들의 종교에 대해 의미 있는 해석을 줄 수 없다. 그는 유대인들의 정체성과 일신종교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앞에 가정한 역사적 사건과 정신분석학적 해석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이트의 시도를 두고 프로이트가 종교를 단지 정신병적 증상의 문제로 단순하게 환원시켰다고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프로이트 자신 역시 종교의 기원이나 원동력과 같은 문제에 있어서 단순한 설명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정신 분석학자로서 개개인에 대한 신경증 연구로부터 배운 것들을 출발점으로 하여 종교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통찰력을 민족의 종교 생활과 같은 집단 현상에 적용하는 데에는 상상력이 동원 되어야하는 비약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프로이트가 보여주는 종교관은 무신론적이다. 그는 적극적인 무신론자임과 동시에 스스로 유태인이었음을 자랑스러이 여겼다. 그는 궁극적으로 신들을 인간의 창조물로 파악하였고, 나아가서 유태인들을 창조했던 자는 신이 아니라 인간 모세였다는 것이다. 즉 프로이트가 자신의 연구에서 본질적으로 의도하고 있는 바는 유태인 종교 전통의 역사적인 진리를 설명함과 동시에 인간들의 영혼의 동적인 갈등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철저히 역사적인 진리에 입각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종교에서 작동하는 동적인 갈등은 단순한 상부구조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 갈등은 문화적 현상에 의해서 형성되어온 개개인들의 복잡한 정신체계들을 통해서 구성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로이트의 모세에 대한 작업은 어느 정도 이드와 에고 그리고 슈퍼이고의 동적인 갈등에 대한 이해로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도덕의 발생, 양심의 정신적인 형성과정, 문화 업적과 정신적인 층위 이 모두 본능에 대한 단념을 요구한다. 이러한 과정에 기초한 역사적인 진리는 그래서 인간의 죄의식 (a sense of guilt)을 전제하고 있으며, 이를 동시에 격분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모세에게서 권위의 동학을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은 권위에 대한 내면화 과정에서 권위에 대한 심리적 양가 현상을 포착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프로이트가 문화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유태인 역사 과정에 있어서 유일신의 승리와 정신의 진보는 그간 유태인들이 “그들 스스로에게 비극적인 죄책감을 실어왔으며(have taken a tragic load of guilt on themselves)” “그것 때문에 너무도 많이 참회해 왔음” (have been made to pay heavy penance for it) (136)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돌을 맞아 살해되었던 모세가 대중들에게 죽어서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잠시 이에 대한 라캉의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을 보자. 라캉은 먼저 묻는다. 왜 프로이트는 모세를 필요로 했는가? 그리고 모세는 그에게 무엇이었던가? 우리는 왜 살해되었던 모세를 다시 재연할 필요가 있는가? 프로이트는 아버지들/지도자들을 검토하면서, 대부분 신화 텍스트에서 무의식적이 되었든 의식적이었든 간에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자기 어머니를 즐기는 것을 막을 목적으로 살해된다고 본다. 라캉적인 의미에서 아버지가 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이슈이다.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실제 아버지뿐만 아니라 동시에 실재계의 아버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모세와 유일신 Moses and Monotheism』에서 모세가 그의 백성들에게 신의 법을 전수한 후, 즉 부친살해 (부성적 쾌락)를 집단을 보전하는 것으로 위치 지운 후 살해되었다는 것을 의심한다고 본다. 그는 말하기를,


모세는 한계점이다. 왜 모세는 죽어야만 하는가? 프로이트는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모든 것들 가운데에 가장 풍요로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모세는 의심할 여지없이 억압을 통해서 예언자가운데로 되돌아 올 것이다.6)


프로이트가 심각히 의존했던 한 권위 있는 모세연구에 따르면, 모세를 살해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사람은 Hosea 라는 사람이었을 것이라 라캉은 추정한다. 라캉은 그에 의한 모세 살인 사건 “매춘znunim”으로 규정한다.7)  

        결국, 모세가 이집트 출신이고 특히 그의 살인의 트라우마가 집단의 무의식적인 잠재되어 있는 기억 말고는 오랫동안 억압되었고, 잊혀져 왔던 사실이 문제가 된다. 이는 오랜 잠복기를 거친 후에 “억압된 것의 귀환” (a return of the repressed) 으로 재현되고 모세의 암살과 같은 원부 살해는 역사적으로 계속된다고 본다. 이렇게 볼 때, 중요한 것은 모세의 살인이 아니라, 이것이 유태인들에게 가져다 준 트라우마적인 경험과 모세의 살해에 대한 트라우마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트라우마 중심의 모세 이해는 프로이트가 그리고 있는 유태인 종교의 역사와 인간의 신경증 발생 간의 유비의 토대가 된다. 프로이트가 그의 모세 책에서 궁극적으로 의도한 바는 유태인들이 생존하기 위해 수시로 접했던 수많은 불길한 위협에 대한 뼈저린 자각, 즉 유태인들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매우 곤란한 모세의 유산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유태인들의 트라우마적인 경험이 오늘날 뿔뿔이 흩어져 있는 유태인들을 하나로 엮어줄 수 있다고 프로이트는 이해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자신들이 직면한 가장 위태로운 역사적 상황이 유태적인 것이 아니거나 절망적인 것이 아니라, 모세와 같은 선지자적인 자신들의 전통을 통해서 보다 심원한 희망을 일구어 낼 수 있다고 파악한 것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반복은 억압 과정의 반복이며 그것은 “억압된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러한 것들이 유태인 전통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면,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 모세적인 전통 - 우리는 지금껏 경험했던 모든 파괴적인 요소와 반대급부에도 불구하고 현재 가장 참된 자산으로서 과거에 대한 가장 혁혁하고 생생한 요소들이 존속할 수 있는 사례들로 소개된다. But in this case [the Mosaic tradition] we are presented with examples of the survival of the most triumphant vital elements of the past as the truest possession in the present, despite all the destructive elements and counter-forces they have endured. (78).

  

맺으며


        위에서 보았던 것처럼, 느슨한 의미에서 정치신학이란 정치와 종교에 대한 가능한 모든 관계를 포괄한다. 그러나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신학은 신의 계시를 통해 갖게 되는 신앙에 토대한 정치이론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서 정치신학은 정치와 신학의 구조적인 친화성의 측면에서 1922/23년 독일법학자 한스 켈젠과 카알 슈미트의 논쟁을 통해서 순전히 법적인 텍스트로 소개되었다.8) 

        도대체 왜 정치신학이 문제인가? 오늘날 정치신학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이유는 이 개념은 처음부터 우리 자신의 생활양식에 대한 합리적인 정당화의 가능성을 부인한 데에 있다. 우리는 정치신학 믿음에 토대하고 진리가 가능함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즉 정치신학은 형식적인 진리보다 예외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신앙의 진리를 중시한다. 따라서 이 정치신학이 계시의 구속력을 경주하는 한, 이는 스스로 예속의 봉사의 지위를 갖는다. 계시에 복종하거나 이에 일관되기 위해 정치신학은 예속으로부터, 예속의 지지 하에, 예속을 위한 이론이 되고자 한다. 오늘날 이러한 정치신학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결속 내지는 근대의 세속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제시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비서구적인 유형의 정치-종교적인 래디컬리즘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최근 우리는 이러한 경향을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와 세계적인 테러리즘의 대립에서 다시금 목격하고 있다. 문명 세계와 테러리즘 사이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갈등의 근원은 종교나 문화의 차원이 아니라 여전히 전자와 후자의 정치이데올로기의 수준에서 발견된다. 신자유주의적인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정치적인 의제를 위한 매력적인 이데올로기적인 장치를 디자인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1) Carl Schmitt, Political Theology: Four Chapters on the concept of Sovereignty. trans. G. Scwab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2005), 36쪽.


 

2) Heinrich Meier, Leo Strauss and the Theologico-Political Problem (Cambridge: Th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85쪽.


 

3)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20세기 지성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한 프로이트가 그의 연구의 마지막까지 풀어내려 애썼던 과제중의 하나는 바로 종교에 관한 것이었다. 『모세와 유일신, Moses and Monotheism』은 프로이트의 마지막 작품으로, 종교-특히, 유일신교-의 근원과 유태인 민족만이 가진 특성의 기원을 찾아내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이 책을 출판할 즈음(1938), 독일을 중심으로 격정적으로 돌아가던 정세 때문에 비엔나에서 런던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었던 그가 이를 발표하게 되었을 때 겪게 될 냉대를 예상하면서까지도 이 글을 발표해야만 했던 그의 심중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4) 이 종교는 다신교나 우상숭배, 마술적인 요소나 사후세계를 강하게 부정하는데, 이것은 그 이전의 종교와 완전히 구분되는 특징이었다. 파라오는 후에 이 종교의 대한 열정 때문에 이름은 이크나톤(Ikhnaton)으로 바꾸기까지 했음에도, 그의 죽음 후에는 그의 종교는 이단으로 몰려 사라지게 되고 이전의 신들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5) 프로이트가 말하는 진리는 다음과 같다. “Truth is often very improbable, and factual evidence can only in small measure be replaced by deduction and speculations” (in Yerushalmi, Freud's Moses, 17에서 인용). 프로이트는 계속 말하기를, “We too believe that the pious solution contains the truth - but the historical truth and not the material truth” (Moses and Monotheism, 129).


 

6) J. Lacan, The Seminar of Jacques Lacan Book XVII: The Other Side of Psychoanalysis (NY: Norton, 2007), p. 111.


 

7) 그는 또 말하기를, “Addressing Hosea, this is the only thing it's about - his people have prostituted themselves definitely. Prostitution covers more or less everything that surrounds him, the entire text. What the master's discourse uncover is that there is no sexual relation. (……) Well then, one has the idea that our chosen people found themselves in a bit of pickle where things were very probably different, where there were sexual; relation. This is probably what Yahwe calls prostitution. In any case, it is quite clear that, if it is the spirit of Moses that returns here, it is not exactly an issue of a murder what has engendered access to jouissance.” 같은 책, 116.


 

8) 슈미트는 이전의 사상가들이 정치신학을 비판하려는 것과 반대로 자신의 정치신학에 대한 분석을 바쿠닌(Bakunin)으로부터 시작한다. 바쿠닌은 기존의 신학전통을 따르지 않고 러시아 무정부주의자의 도전에 화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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