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지와 칸트
**이가 수십년 전의 내 어록을 기억에 담고 있었네. 사실 이 말이 굉장한 의미를 담고 있지. 나중에 철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지만 아마도 칸트 윤리학의 핵심을 담고 있는 말이 아닌가 해. 말하자면 칸트의 선의지의 윤리학, 의무의 윤리학을 잘 드러내주는 말이지. 왜 인간은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나? 세월호 참사를 보더라도 비양심적인 선장 이하 선원들은 제 몸만 생각하고 빠져 나왔지만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려고 애썼던 몇몇 승무원들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잖아. 우리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도덕적으로 행동하라고 아이들에게 말을 할 수 있을까? 칸트의 도덕 철학은 현실의 이런 딜레마적 상황에서 빛을 발하고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우리는 도덕적으로 행동을 해야 한다고...도덕이 과연 무엇인가? 왜 우리는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는가?
칸트에 따르면, 도덕은 계산적 이성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타율적 강제는 더 더욱 아니라는 것이지. 도덕은 단순히 동정심이나 연민도 아니라는 것이고. 앞의 상황에서 선원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이것 때문에 안 돼, 저것 때문에 안 돼,because of" 하면서 자신들이 먼저 빠져 나올 이유를 찾았겠지. 이성은 항상 그런 이유를 찾아. 칸트는 그런 계산적 행동이 결코 도덕적 행동이 될 수 없다고 보았지. 먼저 빠져 나가야 겠다는 것은 이성적 판단 뿐이 아니라 본능적으로도 마찬가지이지. 사실 그런 긴급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남을 돕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상황에서 인간 본성의 자연적 경향은 너나 할 것 없이 두려움과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지. 가능하면 빨리 그러한 공포와 불쾌를 벗어버리고 싶어하는 것이 인지 상정이야. 결국 이성도 그렇고 본능도 그렇고 끊임없이 이유를 찾는거야. (because of...~ 때문에 안돼).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남을 생각하고 자기 몸을 희생시켜가면서 그들을 구하려고 애썼던 영웅들이 있잖아. 그들은 상황이 위험하다는 객관적 이유나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마땅히 승무원으로서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것이지. 그 한 없이 착한 마음, 그것이 선의지이고, 그것이 칸트가 말하는 도덕의 기초라는 것이고...
칸트는 도덕이란 계산적인 이성이나 본능적인 경향성을 넘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하려는 의지, 곧 선의지에 있다고 본거야. "이 세계 안에서, 아니 더 넓게 이 세계 밖에서라도, 우리가 제한 없이 선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선한 의지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칸트, 도덕형이상학의 기초). 그렇다면 선의지란 무엇인가? 선의지는 의무에 따르는 의지야. 이런 의무는 국민의 4대 의무같은 것과는 다르지. 그런 의무는 타율적 강제라 가능하면 누구든지 안 지키려고 하잖아. 납세의 의무가 있어도 기업인들은 늘 어떻게 하면 세금을 내지 않을까를 생각하잖아. 칸트가 말하는 도덕법칙이란 자유의지를 가진 우리가 스스로 세운 법칙이지. 이성적 존재로서 우리가 세운 일종의 자기 입법이라고 할 수 있지. 때문에 이런 법을 따른다는 것은 수동적인 타율(Heteronomy)이 아니라 아니라 자율(Autonomy)이지. 한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마땅히 따라야 할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심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행하는 행위이지.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된다는 선의지가 그들의 행위를 영웅적이고 숭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또 이런 영웅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그런 사회에 대한 지향을 잃어버리지는 않는 것이 아닐까? "인간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말고 목적으로 생각하라." (칸트의 정언 명령) 우리는 인간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목적의 왕국에 살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것이지. 사람의 생명을 단순히 숫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일상화된 이 비인간화된 시대에 칸트의 말이 밤하늘에 빛나는 보석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