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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메모

음악 혐오, 파스칼 키냐르

작성자tomato|작성시간17.07.20|조회수359 목록 댓글 0



음악 혐오

파스칼 키냐르, 

김유진 번역 

서울, 프란츠 2017



오랜 만에 파스칼 키냐르 책을 읽는다. 근래 읽은 소설의 세 인물에 오래 빠져들 것만 같은 자기검열의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일단 털고 싶은 수작이었다. 그런 사정이 인도하던 방식대로, 나는 그간 너무 놓아 만 둔 논픽션 몇 권을 읽는 것으로 숨을 돌려볼 것을 정했다. 황현산 선생의 밤이 선생이다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 혐오 그리고 간간이, 아이슬란드 관련 안내서들을 읽는다. 




표제만를 일별할 때 음악 혐오는 저자가 음악을 혐오해 그 청음의 괴로움에 관한 에세이처럼 느껴졌다. 나는 표제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다. 그러고 책장을 펼쳐 안으로 들어가, 차례에서, 장의 열 개 소제목들을 일람한 다음 첫 장의 소제목을 주목했다. 성 베드로의 눈물이 차례에는 쓰여 있었다. 키냐르의 음악 혐오를 믿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그것을 베드로의 비애로 읽었다. 이 무의식적이고 적극적인 곡해의 활동 상황 속에서 도드라지게 어떤 문맥을 이루는 것들이 뇌리를 지나쳐갔다. 괴이쩍지만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별안간 그 어떤 것들이 좋아졌다. 이 책 좋겠구나 싶어졌다. 초장의 첫 단락을 조심스레 읽어나갔다. 그렇지만 그 단락 몇 안 되는 문장들의 어느 부분에서는 탈구가 일어나는 소리 비슷한 소리를 냈다. 예상하던 순서와는 다르게 예상에서 이탈해 진행되어지는 독서. 그처럼 이상한 문장을 포함하는 육감이 순간 뇌리에 들었다. 당황스러움으로 이어지는 문장의 시각 정보였다. 책에서 시선이 떨어졌다.

문장들이 왜 이렇게 말이 어렵지? 하는 실감을 느끼며 그 단락을 몇 번 반복해서 읽었다. 그럼에도 그 단락 읽기를 이어서 보여야할 일별 조감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러한 어려움이 의심은 가도, 뭐 어쩌겠어, 어려운 책인가 보네. 하고 넘어갔다. 슬그머니 자기부정이 이마께에 비쳤다. 이 혼란상들은 다 뭐지?


그러하여, 내가 이 책을 다 읽긴 틀렸다. 그러나 책의 장정 디자인만은 잘빠져서 외양이 무척 아름답다―상품 디자인으로서 책의 인상 제고에 그래픽 기능을 다했다. 제작 원가 따위 아랑곳없이 소재들의 취사에 활수한 선택을 했다. 리넨을 사용한 하드카버나 고급지가 분명한 내지의 지류 등 소재 모두가 시감은 물론 손맛을 주는 데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의 선택이 두루 좋았다.

본문 조판 디자인 상태는 취향이 독자마다 다를 수 있는 문제이므로 생략한다―아무튼 본문 외양을 이중삼중으로 독자의 시선에 노출시키려는 노력은 가상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조판배열이면 질색하는 독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표지 책등 뒤표지의 시각효과 등, 이 책의 그래픽 처리는 매우 세련됐다.

표지 구성 문자들의 색상으로 비리디언 계열의 색상을 썼다. 그 바탕색 위에다 동박(銅箔)을 입힌 글자들을 압인하여 새겼다. 글자들은 붉다는 의식이 들지 않게 붉은빛을 띠어서 세련된 보색효과를 더한다. 그 효과는 바로 드러난다. 크기나 중량이 미세한 표제 활자에 세련미를 주면서 판독성에 이의를 달 수 없을 만큼 활자의 존재가 도르라지는 것이다. 더불어서, 출판사명 문자의 색상을 탄 회색 무광으로 처리 한 것 또한 나무랄 데 없는 디테일의 존재를 보여준다. 또 책갈피의 금색 띠도 다른 모양새들과 맞춤하게 어우러진다. 띠지 문자의 색상에 표지 바탕색을 가져다 쓴 것도. 이와 같은 그래픽 처리 능력은 요즘 소위 배운 디자이너들의 트렌드를 공유한다.

심오한 내용을 담은 논픽션 물을 심플하게 여실 수 있게 유도하는 그래픽 처리는 대단한 주의를 기울여 다뤄져야 한다. 포인트라면 이런 것이 될 것이다―디자인이 정말로 심플해선 안 된다는 것. 디자이너들이 그것에 성공했을 때 독자들의 감각에 저작물의 신뢰감이 받쳐진다. (이와 달리 픽션, 특히 장편소설의 외양으로는 정반대의 선택이 옳다. 디자인이 정말로 복잡한 것을 강조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소설의 복잡성을 정말 효과적으로 잘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거야? 


음악의 증오

제일장 베드로의 비애


우리는 극도로 손상을 입은, 내색 않고 우리들 안에 깊이 남는 것과 어린아이 같은 청각의 헐벗김을 천보(褓)로 가린다. 천보의 종류는 세 가지가 있다. 칸타타와 소나타와 시문.

이들은 노래이고 소리이고 말이다.

이 천보의 도움으로, 우리는, 타인의 청각에 우리들 신체의 법석을 들키지 않으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자신의 청각―어떤 뿌리 깊은 소리이며 신음―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역자 김유진의 이 단락 번역문은 아래와 같다.


음악 혐오

1장 성 베드로의 눈물


우리는 극도로 상처 입은 어린아이와 같은 유성(有聲)의 나체를, 우리 심연에 아무 말 없이 머무는 그 알몸을 그 천들로 감싸고 있다. 천은 세 종류다. 칸타타, 소나타, 시.

노래하는 것, 울리는 것, 말하는 것.

이 천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우리 몸이 내는 대부분의 소리를 타인이 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과 같이, 몇몇 음(音)들과 그보다 오래된 탄식에서 우리의 귀를 지켜 내려 한다.



이 책 첫 장은 수많은 그리스어와 라틴어 단어들이 인용된다. 이들은 대체로 고대의 외국어들―여간해서는 접근성 자체가 떨어지는 낯선 타자의 언어―로 작성된 고문에서 단어 형태로 단취되어 사용되었다. 이들은 궁극적으로‘노래이고 소리이고 말이’라는 음악의 유래를 해명하려는 저자가 동원한 설명어 속 단어들로 당연히 저자의 언어 습성을 반영하여 그의 말을 반영한다. 곧 저자의 스타일이 될 수 없는 것들이라는 말이다―저자의 생활어에 녹아든 외래어들―역자는 실제 프랑스어에 고대 그리스어나 로마어에서 유래한 단어가 많다고 각주를 달아 두었다―로 저자가 이 장에서 수많은 그리스 로마 단어들의 의미를 들어 음악의 유래를 설명하는 것은 프랑스 작문법에 따라 그들을 원용하는 것일 수 있다(한국어 한글에는 고대그리스·로마 단어들이 유래하지 않는다―프랑스의 전승 따위엔 무심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들이 낯설어서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타 지역 출신 세계문학 애호가들이 품을 법한 증오심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저자가 가장 잘 알 수가 있다. 이 시대 독자들은 그런 걸 작가들의 품성으로 들 수가 있다.

그럼에도 기왕의 예리한 통찰력을 경험했던 바, 저자의 책을 읽어온 우리 독자들은 이번에도 그의 문장들에서 글을 읽어내고 그의 언술을 통한 음악―노래이고 소리이고 말인 것―을 읽고 싶어 한다. 김유진 번역자는 단어에서 문장으로 글을 꿰어 책을 엮는 데 능숙한 문학자인데, 그가 이 장에서 번역문들을 엮는 핍진함이나 곡진함은, 즉 번역의 어려움은 다음과 같은 각주에서 어림잡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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