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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메모

전갱이의 맛, 권여선

작성자tomato|작성시간20.03.10|조회수733 목록 댓글 0

 


전갱이의 맛

권여선


아직 멀었다는 말

문학동네





 



가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아무와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응이란 말조차 하기 싫을 때 나는 가능한 한 빨리 지갑이나 휴대전화 등이 담긴 작은 파우치를 들고 그 자리, 그 상황을 빠져나온다. 포스트잇과 펜도 챙긴다. 커피나 음료를 주문할 때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묵언의 시간으로 들어갈 준비를 할 때면 어김없이 그와 함께 먹은 전갱이의 맛이 떠오른다. 나는 기가 막힌 얼굴로 그를 빤히 응시했고 그는 입꼬리를 길게 늘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땐 몰랐지만 그게 진짜, 우리가 나눈 진짜 첫 대화였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내가 변했다면, 하고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그건 아마 말을 못하게 되면서였을 거라고 했다. 나는 기운이 빠졌다.


“말을 못하게 됐다고?” 말을 못하게 됐다고 말하는 건 또 무슨 농담이니?“


식사를 주문하고 돌아온 그에게 좀 변한 것 같다고 말한 게 실수였다. 이혼하고 삼 년 정도 못 보다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수 있다.


그날 나는 오전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늦은 점심을 때우려고 식당 간판을 훑으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누군가가 계속 내 주변을 얼씬거리는 느낌에 쳐다보니 그였다. 웬일로 그는 먼저 알은체를 하지 않고 내가 먼저 알아보기를 기다리는 얼굴로 서 있었다.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싶어 횡설수설하는 나와 달리 그는 그저 벙긋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서로 점심을 먹지 않은 터라 그가 잘 아는 식당이 있다기에 따라간 길이었다.


농담은 아니고, 그는 또 뜸을 들이더니 재작년에 성대 낭종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아니, 뭐? 으음……”


나는 놀라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 간신히 억눌렀다. 이번에야말로 큰 실수를 할 뻔했다. 말을 못하게 되었다는 말을 미리 듣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성기 낭종 수술로 들었을 것이다.


“성대, 낭종, 그런 수술을 받았어? 지금은 괜찮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가 낯설었다. 우리는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고 짧은 결혼 끝에 이혼했지만, 나로서는 이십대 전부를 그와 함께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고작 삼 년 못 봤다고 그에게 이런 거리감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그가 정말 조금이라도 변해서 그런 걸까.


“그 수술 받으면 말을 못해?”


“못하는 게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해.”


“얼마 동안?”


단계가 있는데, 삼 주에서 사 주까지는 아예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응이라는 소리도 내면 안 된다고 했다.


“응도 안 된다고?”


“응 한번 해봐.”


“응.”


생각보다 성대가 많이 울리지 않느냐고 그가 물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응뿐 아니라 성대를 울리는 어떤 소리도 내면 안 된다고, 수술한 자리를 자극하면 다시 낭종이 생길 수 있는데 그의 경우엔 특히 조심해야 했다고 했다. 삼 주에서 사 주 동안 응 소리도 못 내는 상황이 어떤 건지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하물며 한번 얘기를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고 청산유수로 떠들어대던, 다변에 달변이었던 예전의 그를 생각하면 더욱.


“세상에, 그런 수술을 받은 줄은 전혀 몰랐네.”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여전히 성기 낭종 수술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못 만났으니까.”


어디서 전해들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럴 순 없었을 거라고 그가 말했다. 이런 얘길 누구한테 하는 건 처음이라고.


“아니, 왜?”


글쎄, 하더니 그는 무언가를 꼭꼭 씹듯이, 아무튼 처음이라고 했다.


그때 벨이 울렸고 그는 내게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고 일어나 ‘청송’이라는 팻말이 붙은 코너로 갔다. 그제야 나는 넓고 휑한 지하의 푸드코트를 둘러보았다. 자동 주문 기계에 주문을 입력하고 벨이 울리면 음식을 가져오는 방식이었는데, 손님이라고는 우리 말고 늙은 남자들 서너 팀이 있을 뿐이었다. 그중에는 낮술을 마시는 팀도 있었다. 철거를 앞둔 상가처럼 대부분의 음식 코너가 문을 닫았고 서너 군데만 영업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를 따라 들어올 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번듯한 오피스텔 건물의 지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침침하고 을씨년스러운 공간이었다.


그가 음식이 담긴 쟁반 하나를 가져와 내 앞에 놓고 자기 것을 가지러 갔다. 주문을 그에게 일임했던 나는 내 앞에 놓인 커다란 구운 생선을 보고 당황했다. 기껏해야 우동이나 돈가스, 비빔밥이나 김치찌개 정도를 상상했던 것이다. 그가 가져온 쟁반에도 똑같은 생선이 있었다.


“이게 뭐야?”


“아지야.”


“아지?”


우리말로는 전갱이 또는 각재기라고 한다고 그가 설명했다. 전갱이, 각재기?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생선이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네가 구운 생선을 좋아해서 시켰는데, 라고 했다.


“그건 그렇지만, 어떻게 아지, 전갱이, 각…… 이런 걸 시킬 생각을 했어? 고등어나 삼치도 아니고?”


“오늘은 아지가 좋다고 아주머니께서 그러셔서.”


“여기 단골이야?”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나는 줄곧 낯설게 여겨졌던 그의 고갯짓이 응도 못하던 삼사 주의 시간이 그의 몸에 남긴 흔적일 거라고 짐작했다. 젓가락을 들어 전갱이 살을 뜯었다. 적당히 칼집이 들어가 있어 헤집을 필요도 없이 큼직한 살점이 뚝 떨어졌다. 구운 전갱이 살을 먹고 나는 기가 막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도 젓가락으로 큼직한 살을 떼어내 밥 위에 얹어 먹고 있었다.


“너 참 잘 먹고 사는구나.”


그가 입꼬리를 늘이며 부드럽게 웃었다.


“부드럽고…… 맛있네.”


“네 입에 맞을 줄 알았어.”


우리는 전갱이구이와 밥을 먹었다. 미소된장국에 김치, 꽈리고추조림, 양상추샐러드가 전부인 찬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여기 술도 파느냐고 물으니 파는데 술값이 아주 싸다고 했다. 그래서 노인들이 대낮부터 죽치고 앉아 있는가 싶었다. 한잔 하겠느냐고 그가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조금 있다 회사에 들어가 봐야한다고 했다. 그에게 마시고 싶으면 마시라고 했더니 이제 낮술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 먹고 각자 접시에 남은 생선 잔해를 보니 분하게도 손까지 쓴 나보다 젓가락만 쓴 그가 가시를 더 섬세하게 발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음식 쟁반을 반납하고 돌아와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물휴지에 감싼 레몬이었다. 손에 눌러 바르면 비린내가 가실 거라고 했다. 이쯤 되자 그가 변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생선을 만진 손에 레몬을 눌러 발랐다.


뭐랄까, 나직하다 할까 침착하다 할까, 그러면서도 풍성하다 할까. 그런 그가 무척 낯선 만큼 나는 더 궁금했다. 재작년에 받았다는 성대 낭종 수술이 그에게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응도 못하는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그를 어떻게 관통해 지나갔기에,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생선의 맛처럼 그는 내게 이토록 부드러운 놀람을 선사하는가.



지상으로 올라오니 밖은 환하고 찬란했다. 9월이었고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사이였다. 퇴근 전에 회사에 들어가야 했지만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나는 예의를 갖춰 그에게 뭘 할 거냐고 물었고 그는 잠시 쉬었다 운동을 갈 거라고 했다.


“그럼 어디서 차나 한잔할까?”


그는 좋다고, 걸으면서 찻집을 찾아보자고 했다. 우리는 골목으로 들어가 한산한 주택가를 걸었다. 카페에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걷다 말고 고개를 휙 돌려 골똘한 표정을 짓기에 내가 왜 그러느냐고 물은 게 다였다. 그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음악소리 같은 걸 들은 모양인데 내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다정하지만 견고한 벽이 느껴졌다. 그와 말 없이 걷는 건 생전 처음 같았다. 우리는 카페의 2층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차는 내가 살게.”


내 말에 그가 고개를 저으며 뭘 마시겠느냐고 말했다. 조금도 위압적인 구석이 없는데도 그의 말을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그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게 순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생각 역시 도무지 낯설어서 얼떨떨했다. 예전의 나는 늘 그에게 저항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고, 그러다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졌고, 때로는 분해서 울기도 했다.


그가 1층에 내려가 주문한 차를 가지고 올라왔다. 나는 그에게 대학에 있는 친구와 선후배들의 안부를 물었다. 예전에 학부와 대학원을 다닐 때도 나는 주변 소식에 어두워 늘 그에게 뭔가를 묻곤 했다. 그때마다 뭐든 모르는 것 없이 척척 대답을 해주던 그가 의외로 고개를 젓거나 잘 모른다는 말을 했다. 내 말에 관심이 없는 건지 내가 안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겉도는 대화를 중단하고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삼사 주가 지나고 나면?”


그가 묻는 표정을 했다.


“그때까지는 응도 안 된다며? 삼사 주가 지나면 말을 해도 돼?” 그는 아, 하더니 삼사 주가 지나도 응, 아니, 정도는 되지만 서너 음절 이상은 안 된다고 했다.


“거참! 그럼 언제 말을 해?”


삼 개월쯤 지나면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고, 육 개월에서 일 년이 될 때까지는 성대에 무리가 가는 장시간 대화를 피해야 한다고 했다.


“대체 언제 정상인처럼 되는데?”


성대 상태를 봐서 허용치가 결정되는데 내 경우는, 하고 그는 말을 멈추고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일상적인 언어생활은 가능하지만 목을 많이 쓰는 일을 업으로 삼는 건 좋지 않다고 의사가 말했다고 했다.


“그럼 강의는?”


“못하지.”


“참, 박사논문은 썼고?”


그가 고개를 저었다. 


“왜? 말 못해도 논문 쓰는 데는 지장 없잖아?”


공부 그만뒀는데 모르느냐고, 남의 말 하듯 그가 물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뭐라고? 공부를 때려치웠다고?”


그가 슬쩍 웃었다.


“농담이지? 그럼 지금 뭐하는데?”


“사서 일을 준비하고 있어.”


“사서 일……? 도서관 사서 말이야?”


그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그가 공부를 그만두고 사서 일을 준비하는데 내가 그런 사실을 감쪽같이 몰랐다는 게 놀라웠고, 이혼한 사이에 모를 수도 있고 몰라도 되는데 왜 이게 이토록 놀랍게 여겨지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내가 말을 잃은 대신 이번엔 그가 제법 길게 말을 이어갔는데, 논문을 쓰는 중에도 그렇고 쓰고 나서도 그렇고 한동안 시간강사를 뛰어야 하는데 자신의 목 상태로는 어렵겠다 싶었다고 했다. 요즘은 대학마다 강의 전담이 있어서 강의에 올인하지 않으면 아예 강의를 못 맡게 되는 구조이기도 하고, 설사 교수가 되더라도 강의를 안 할 수는 없고, 연구교수라는 것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그런 자리는 극히 적은데다 대우도 천차만별이고 또 그게 강의만 안 한다 뿐이지 회의하고 보고하고, 기본적으로 말을 적게 하는 자리가 아니더라고, 심포나 강연이 있으면 인사 섭외하고 초청하느라 하루 종일 통화에만 매달려 있는 선생을 보기도 했다고, 그는 쉬엄쉬엄 말했다.


그의 말을 듣는 동안 흥분도 가라앉고 어느 정도 이해도 갔지만, 여전히 나는 공부를 그만둔 그를, 대학에 부재하는 그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교수와 강사, 조교와 석박사 들 사이의 복잡다단한 관계망의 중심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하루라도 그가 학교에 나오지 않으면 과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왜 하필 사서야? 사서는 말 안 해도 된대?”


비교적, 이라고 그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나하고 얘기한 건 괜찮은 거야?”


그는 괜찮다고, 목에 무리가 가는 것 같으면 자신이 알아서 그만 말하게 된다고 했다.


“그럼 그 얘길 해줘.”


그가 무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수술이 널 어떻게 변하게 만들었는지 하는 얘기.”


그가 입을 꾹 다물었다.


“듣고 싶어.”


그는 망설이다, 네가 듣고 싶다면 해볼게, 하더니 잘될지는 모르지만, 이라고 덧붙였다.



막상 얘기를 하려니까, 그는 이번에도 잠시 뜸을 들였는데 이것이야말로 그가 가장 크게 변한 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 예전에 그는 말 사이에 틈을 두는 법이 없었다. 그의 말은 묘한 활기와 확신에 차 있어서 그가 말을 시작하면 누구나 기대를 품고 경청할 준비를 했고 그 또한 그것을 알고 즐겼다. 그는 말의 강약과 리듬을 조절할 줄 알았다. 세고 독하면서 어딘가 유쾌하고 허풍스러운 데가 있는 그의 말은 좌중을 즐겁게 했고, 풍자나 비판 심지어 인신공격일 때조차 의외로 관대하게 수용되도록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젊은 군주처럼 점점 다른 사람들의 이의제기를 용납하지 않는 쪽으로 변해갔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부정적인 면은 우리 둘의 관계에서만 나타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그를 독선적이라고 비판하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 나만의 생각일 수 있다. 이혼하고 삼 년이 지나도 확실한 건 없다.


막상 얘기를 하려니까…… 순서가 잘 안 잡힌다고, 차근차근 순차적으로 떠오르지를 않는다고 그가 말했다.


“번개를 맞은 것처럼 번쩍, 그런 느낌이야. 그 묵언의 시간이……”


“묵언의 시간이라…… 묵언수행하고 비슷해?”


그렇긴 한데, 하고 그는 손을 모으고 생각하더니, 흔히 묵언의 시간이라고 하면 동굴 속처럼 고요한 시간을 상상하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어째서?”


“난 동굴 속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었으니까. 내가 말을 안 한 다고 세상이 더 고요해지진 않았으니까.”


“그건 그렇군.”


“오히려 더 시끄럽게 여겨지기도 했어. 나만 빼고 세상이 혼자 떠드니까.”


너 혼자 떠들고 세상이 잠잠하던 때에 비하면, 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를 비아냥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저 추방된 젊은 군주의 고독, 그 비슷한 게 상상되어 잔물결 같은 연민이 일었다.


“그날, 수술 받은 날 얘기부터 할게.”


그는 아침에 수술을 받고 늦은 저녁에 퇴원을 했다. 병원을 나와서 처음 만난 사람은 택시 기사였다. 차문을 열고 택시를 타자 기사가 어디로 가는지 물었고 그는 자신의 오피스텔 주소가 적힌 종이쪽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기사가 놀라더라고 했다. 가는 내내 그를 흘낏흘낏 살피는 기색이었지만 그는 설명할 방법이 없어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그땐 그게 참 답답하게 여겨졌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일도 아니었지 싶어.”


“왜? 무척 답답했겠구만.”


“그러니까…… 그때 내가 답답했던 건 해명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을 거야.”


“무슨 해명?”


“내가 원래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래, 너는 원래 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지. 너무 잘해서 탈인 사람이지.


“목 수술을 받고 잠깐 못하는 거다, 그런 해명. 지금 생각해보면 택시 기사에게 그런 걸 밝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나 싶은 거지.”


그래도, 하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나 싶었다. 어차피 말을 못하는 건 마찬가진데.


간단히 정리하면 힘든 건 크게 두 종류였어, 라고 그는 말했다.


“말을 하지 못해서 겪는 불편함과 말을 하지 말아야 해서 겪는 불편함.”


“그게 달라?”


“달라. 못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의 차이니까.”


말을 하지 못해서 겪는 불편함은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는 불편함이었다. 얘기를 나누지 못하니 아무도 만나지 않게 된다든지, 외출을 할 때는 늘 목에 수첩과 펜을 걸고 다니다 필요할 때면 자신의 요구를 적어 상대에게 보여준다든지 하는 것들. 그러다보니 사소한 물건을 사러 가도 근처 가게보다는 가급적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대형 마트에만 가게 되고, 외식도 자동 주문 기계가 있는 푸드코트에서만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까 거기도 가게 된 거라고, 라고 그가 말했다.


“아, 전갱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몇 번 가니까 아주머니가 이것저것 말을 시키더라고 했다. 오늘은 뭐가 좋다, 요즘은 뭐가 제철이다, 그런 얘기들. 그가 말을 못한다는 손짓을 하자 아주머니는 그를 불쌍히 여기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택시 기사 때와 달리 그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고, 뭔가 해명해야겠다는 답답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고, 그래서 단골이 되었다고 했다.


말을 하지 않으니까, 그는 또 잠시 쉬었다가, 내 안에서 뭔가 이상하게 예민한 감각이 생겨난 것 같았어, 라고 말했다.


“원해서 생겨난 게 아니고 그냥 생겨난 거야. 이를테면 개인마다 감당할 수 있는 감각의 에너지나 민감함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할 때, 한 감각이 억제되면 다른 감각이 계발되는 식이지. 예전 같으면 비슷하다고 여겼을 것들에서 무한한 차이를 식별하게 되더라고.”


“예를 들면?”


“택시 기사와 청송 아주머니의 반응 같은 것. 똑같이 측은하게 여기는 얼굴인데 다르게 느껴졌지.”


그는 이후로도 자신을 측은히 여기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수많은 스펙트럼을 구분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전달해야 할 요구를 쪽지에 적어 읽힐 때 그의 눈빛과 사소한 몸짓만 보고도 그게 독이 든 측은함인지 아닌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고.


“그건 그때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렇게 느낀 게 아닐까?”


이렇게 말하고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조용히 들어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음,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바람에 나는 놀랐다. 이런 선선한 인정이라니 허무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그의 말은 진심일까. 진심으로 내 말을 인정하고 수용해서 한 말일까.


내 복잡한 심사와 상관없이 그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해서 겪는 불편함은, 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말 비슷한 걸 해서 성대를 울리게 될까봐 주의해야 하는 불편함이었어.”


자다가도 잠꼬대를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든지, 길 가다 누군가와 부딪혀도 억 소리를 내면 안 된다든지 하는 것들. 그러다보니 사람 많은 곳을 피하게 되었고 술을 먹고 취해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낼까봐 술도 먹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아, 장난 아니네.”


“그런데, 사람은 또 적응을 하게 되더라고. 말을 못해서든 하지 말아야 해서든, 모든 게 익숙해지니까 견딜 만 했어. 별로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어. 정작 힘든 건……”


“뭐가 또 있어?”


그는 이제까지 말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자폐감이 서서히 엄습해왔다고 말했다. 엄습, 이라는 말에 나도 덩달아 가슴이 답답해졌다.



시작은 비였어, 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수술한 시기는 초여름이었는데 수술한 날 비가 왔다고 했다. 택시 차창 밖으로 비가 내리는 걸 보면서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게 답답하게 여겨졌다고 했다. 비 온다, 비 오네, 그런 말을 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 하는 정도의 느낌.


“그런데 곧 장마가 시작됐지.”


처음엔 사소하게 느껴졌던 답답함이 장마가 시작되자 불어난 급류처럼 그를 압도해왔다.


“하루 종일 비 오는 걸 보면서도 비 온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정말 죽을 것 같았어. 과장이 아니라 호흡이 가빠지고 가슴이 뻐근해져서 이러다 죽겠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어. 왜 이럴까, 이까짓 비가 뭐라고, 수도 없이 생각해봤지.”


그러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절망적인 자폐감이 비로 인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사람은, 사람이란 존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그렇게 감각하는 자체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더라고. 내가 지금 이걸 느낀다, 하는 걸 나에게 알려주지 못하면 못 견디는 거지. 어떤 식으로든 내 느낌과 생각을 내게 전달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감각이나 사고 자체도 그 자리에서 질식해버리고 마는 것 같았어.”


나는 잠깐 멍한 상태가 되었다. 그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말이란 게, 하고 그가 말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그동안 난 쉴 새 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해왔는데, 그 말을 사실 나도 듣고 있었던 거지. 그런 의미에서 말은 순수하게 타인만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던 거야. 그런데 말을 못하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말은 그럭저럭 포기가 되는데 나를 향한 말은, 그건 절대 포기가 안 되더라고.”


그는 자신이 느끼는 감각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그걸 자신에게 알려주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고 했다.


“내가 알 수 있게! 내가 알 수 있게!”


그래서 생각한 게 수화였다고 그는 말했다.


“당장 검색해서 비 온다는 말부터 찾아봤지.”

그가 말을 멈추고 물잔을 들었다. 문득 그의 목을 배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좀 쉬었다 얘기해.”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두 손을 가슴 높이로 들어 늘어뜨리더니 위아래로 두 번 움직였다.


“이게 비 온다는 말이야.”


나도 그의 흉내를 내어 두 손을 가슴 높이로 들어 늘어뜨리고 위아래로 두 번 움직였다.


“이렇게?”


“응. 물 안 마시고 그렇게만 해도 돼.”


“뭐? 물 마시는 것도 수화에 포함된다고?”


“응. 물이 내린다, 그런 뜻이니까.”


“그럼 물이 없으면 어떻게 해?”


그가 웃었다. 나를 만난 후 이렇게 밝게 웃는 건 처음이었다.


“이 바보야! 실제로 물을 마시지는 않아. 물 마시는 시늉만 하는 거지.”


“넌 왜 마셨어?”


“난 마침 목이 말라서.”


“이 사기꾼!”


그가 또 웃었고 나도 웃었다.


“그래서 수화를 배웠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수화라도 하니까 좀 덜 답답하고 나와의 소통에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어. 그래서 아름답다, 맛있다, 기쁘다 같은 몇 가지 수화를 찾아보고 그대로 해보기도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가 바라는 게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지.”


“성대 낭종 수술 한번 받고, 넌 참, 알게 된 게 많기도 하구나.”


“그런 셈이지. 내가 학습효과가 좀 좋잖아.”


“그렇게 생각해왔다니 놀랍군. 아무튼 그럼 네가 바라는 건 뭐였는데?”


이런 말을 주고받자니 한때 다정했던 시절의 그와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는 혹시 기존의 수화에 불만이 있는가 싶어서 자기 마음대로 수화를 만들어보기도 했다고 했다. 입을 벌리거나 고갯짓을 하는 등의 짧은 감탄사부터 시작해서, 맛있을 것 같다 싶을 땐 입을 두 번 다신다든가 뭘 좀 해볼까 할 땐 손을 맞잡는다든가 하는 식의 간단한 표현들을. 그러나 그렇게 직접 만들어낸 수화를 통해서도 그의 감각은 그에게 아주 조금밖에는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다고, 결국 기존의 수화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수화도 무척 미흡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수화는 말에 가장 가까운 건데 왜 나는 만족하지 못할까 이상했지. 그러다 또 알게 된 게……”


그가 잠깐 말을 멈추었고 나는 킥 웃었다.


“또 뭘 알게 됐어?”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지만, 하더니 그가 물을 조금 마셨다. 손을 들어 늘어뜨리거나 하지는 않는 걸로 보아 수화를 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내가 말을 원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것.”


말을 원하지 않다니. 말을 못하게 되어서 간절히 원한 게 말이 아니었다니.


“그럼 이번에 원한 건 뭔데?”


“나만의 말.”


그는 수화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약속이라는 의미에서 말과 같다고, 그런데 그는 타인과의 소통이 아니라 자신과의 소통을 원하고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그만의 말을 원했다고 했다. 그의 삶이, 그의 감정과 기억이 오롯이 담긴 말, 궁극적으로는 말 너머의 말.


“그게 뭐야?”


“이를테면 나만의 말을 만드는 식인데, 나의 첫 말은 당연히 비 온다였어.”


“어떤 건데?”


그는 얕게 한숨을 쉬더니 창밖을 바라보고 다시 나를 보았다.


“그거야?”


그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실망해서 외쳤다.


“그게 뭐야? 수화보다 더 빈약하잖아?”


“그렇게 보일 수도 있어. 사실 나만의 말은 내가 일부러 만들려고 해서 만든 게 아니야. 이미 있던 게 뒤늦게 발견된 거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한 비 온다는 말은, 비 온다는 말을 그리워하던 그때의 상태, 그때의 자세, 그게 그대로 비 온다는 말이 된 거야.”


“난 잘 이해가 안 되네.”


조금 부연 설명을 하자면, 하더니 그는, 창밖의 비를 보면서 턱을 조금 들고 몸에 서서히 힘을 빼고 팔을 늘어뜨린 채로 손가락 끝에 뭔가 맺히는 걸 상상하면서 손가락을 느릿느릿 움직여주는 것, 그게 바로 비 온다는 그만의 말이라고 했다.


“서서 말할 수도 있고 앉아서 말할 수도 있는데 서서 말할 때 좀더 비 온다는 감각이 잘 느껴져. 또 비가 세차게 오면 저절로 손가락 끝이 무겁게 느껴지면서 대신 움직임은 좀 빨라지지.”


나는 창밖을 보면서 턱을 조금 들고 몸에 힘을 빼고 팔을 늘어뜨리고 느릿느릿 손가락을 움직여보았다. 비 온다는 말을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일 때 그는 이런 자세로 비를 보며 앉아 있었던 걸까.


나만의 말은, 그가 힘주어 말했다.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기억되거나 발견되는 거야. 내가 어떤 언어를 간절히 원했던 순간을 기억하거나, 그 간절함이 생겨나는 순간을 발견해서 내 말로 삼는 거지. 그러니까 내 말들은 어원을 잃는 법이 없어. 최초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그 위에 다른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말 속에 삶이 깃드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때로는 뜻을 알 수 없는, 그저 표현으로 먼저 생겨난 말도 있고, 가끔 아주 외설적인 말도 튀어나와.”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외설적이라면 어떤……?”


내 표정에서 소심한 궁금증을 읽고 그가 웃었다. 아무튼 성대 낭종 수술을 받고, 라고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움찔했다. 성대 낭종에 반응하는 나의 움찔함도 나 혼자만의 외설적인 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어떤 식으로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을 조금씩 하게 되면서 내가 변했다는 걸 알았지. 예전처럼 말하지 않고 있더라고. 묵언의 시간이 번개처럼 번쩍 지나가고, 이동한 경로는 불타버렸지만, 나는 이미 다른 곳에 있게 된 거지. 그건 분명히 나만의 말과 관계가 있어.”


나는 좀 멍한 상태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그가 뜬금없이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를 아느냐고 물었다.


“나라가 망했는데 뭐 그런 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가 깨졌어도 산하는 그대로다, 뭐 이런 뜻으로 알고 있잖아. 그런데 난 그 말이, 나라가 깨지니 산하가 있음을 알겠다, 이렇게 읽혀. 내 경우가 그랬으니까. 나라는 시스템이 망가지고 나니까 내 속에 자연이 있음을 알게 된 거지.”


그가 손을 깍지 끼더니 그 위에 턱을 고이고 나를 바라보았다.


“왜?”


“이제 그만 얘기할게.”


“왜?”


“이렇게 말을 많이 한 건 오랜만이야. 목에 이물감도 느껴지고. 할 말은 다 했어.”


그는 그 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건 과연 또 무슨 그만의 말일까, 생각하며 나는 물끄러미 그를 보았다. 나의 이 바라봄도 나만의 무슨 말일까 생각하며.




“저거 봐!”


그가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2층 창에서 내려다보이는 골목 안쪽에서 삼십대 중반의 여자가 너덧 살 된 여자애의 손을 잡고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는 키가 크고 매우 뚱뚱했고 아이는 작고 뚱뚱하지 않았지만 까맣고 숱 맡은 머리칼을 하나로 묶은 모습이나 동글동글한 얼굴형이 여자와 꼭 닮아 누가 봐도 엄마와 딸임을 알 수 있었다.


“저 사람들 뭐?”


“가만. 애가 뭐를 해.”


그는 누가 들을까 두려운 듯 작게 속삭였다. 나도 덩달아 숨죽이고 기다렸다. 아이는 몇 걸음 걸어가다 말고 갑자기 기쁨에 차서 엄마를 올려다보더니 엄마 손을 자신의 조그만 두 손으로 감싸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고 엄마의 통통한 팔목에 몇 번이나 입을 맞추었다. 그런 귀엽고 돌연한 애정표현에 엄마는 그저 웃고 말았지만 나는 놀라운 선율의 음악을 들었을 때처럼 완전한 감동에 사로잡혔다. 그와 나는 마주보았다.


“이럴 땐 무슨 말을 하지?”


내가 물었다.


이건 처음 해보는 말인데, 하더니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응시하다 천천히 바로 했다. 나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응시하다 천천히 바로 했다. 우리는 다시 마주보았고 서로가 똑같은 감동 속에서 똑같은 의문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아보았다. 아이의 작은 몸에 넘쳐흐르는, 저 샘물처럼 퐁퐁 샘솟는 청량한 기쁨의 원천은 무엇인지, 우리도 한때 저런 기쁨에 몸을 맡기고 서로 사랑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은 언제 사라져버렸는지, 하는 것들……


카페를 나와 전철역까지 우리는 말 없이 걸었다. 전철역 앞에서 헤어질 때 내가 물었다.


“맛있을 때, 그땐 어떤 말을 해?”


“그건 맛에 따라 다른데.”


“아, 그렇겠군. 그럼 오늘 전갱이구이의 맛은?”


그가 천천히 입꼬리를 늘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역시 그랬군. 나는 딸꾹질하듯 짧은 숨을 내쉬었다. 그는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소리를 내는지 아는 얼굴이었다.


“내 말은 뭐 같아?”


“깔끔하게 납득이 됐다?”


내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조금 내밀자 그가 말했다.


“맞혔다?”


우리는 웃었고 마지막으로 악수를 했다. 내 손을 잡는 그의 손, 비 온다는 말을 할 때 빗방울이 맺힐 그의 손가락을 느끼니 견딜 수 없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말들이 손안에서 춤을 추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의 손을 놓고 돌아서면서 나는 주먹 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어깨를 펴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주먹 쥔 손으로 주머니를 아래쪽으로 꾹꾹 누르면서 또박또박 걸어갔다. 그때 나만의 첫 말이 탄생했다. 9월이었고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였다.




그에 비하면 턱도 없겠지만 나도 이제 나만의 말들의 목록을 가지고 있다. 묵언의 시간 속에서는 항상 나만의 말들이 태어난다.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도달하는 말들이 주는 기쁨을 알게 된 건 오로지 그의 덕분, 그의 성대 낭종 수술 덕분이다. 그 가 사서가 되었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어떤 말들은 뜻을 알 수 없는 채로 생겨난다고 그가 말했는데 정확히 그렇다. 어떤 감정이나 감각들은 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몸으로 표현되고 기억에 각인된다. 예를 들어 나는 아직도 내 첫 말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처음엔 ‘안녕’쯤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 뜻을 알고 싶어 가끔 주먹 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어깨를 펴고 허리를 곧추세우고 주머니를 아래쪽으로 꾹꾹 누르면서 또박또박 걸어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내가 그 말을 할 때, 그 말을 계속 진행시킬 때, 무엇인가가 드러나기보다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걷는 행위 속으로 사라지는 무엇이 보인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작게, 점점 작게, 주먹 쥔 손의 작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 희미하게 점멸하며 살아 있다. 모든 건 사라지지만 점멸하는 동안은 살아 있다. 지금은 그 모호한 뜻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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