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공무원이 꼭 답인가?

작성자어름산이|작성시간16.01.13|조회수9,868 목록 댓글 28

 


공무원이 적성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창의적이고 능등적인 업무보다 건조하고 반복적인 업무가 더 맞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저마다 적성과 소질이 다르니 각자의 직업 영역은 상호인정해 줘야 할 텐데, 뭐 요즘같은 현실에서 오히려 9급 공무원은 꽤 괜찮은 인상을 받고 있다.


난 9급 공무원을 마지 못해 하게 됐다. 평소 관심있는 직업도 아니었고 실제 뭘 하는지도 잘 몰랐다. 하고 싶은 게 따로 있었지만 나이도 많고 가능성도 낮아 미련은 갖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해서 공무원이 됐다. 근처에서 바닷가만 볼 수 있다면 그냥 한 20년 남은 거 소시민으로 살자 생각했는데 인생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것 같다. 바다가 내 영혼을 쉬게 하는 것도 한 두 이다. 지금 3년 차인데 올해 어떤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그냥 이 일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정년까지 계속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요즘 같은 상황이면 발광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매일 아침마다 눈을 뜨면 깊은 수렁을 헤매는 불행한 자신을 발견하니 이짓을 20년까지...글쎄...현대 사회가 병리 사회 아닌가? 과거 우울증이 이렇게 공식적인 질병이 된 시대가 또 있었을까. 어느 분 얘기처럼 옛날에는 병균이 밖에서 침투해서 사람이 죽었는데 이제는 안에서 마음의 병으로 사람이 죽는다고...물론 마음의 병도 결국 원인은 밖에서 제공되는 게 맞을 것이다. 대신 병균이 보이지 않는다는 차이이겠지...그리고 육체가 죽어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죽어간다는 차이이겠고...


그만 둔다면 '9급 공무원 절대로 하지마라'라는 책을 쓰고 싶다. 물론 그냥 하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9급 공무원이 결코 현재의 고통을 끝내는 마지막 탈출구나 인생 최대의 낙원이 아니라는 걸 젊은 친구들에게 충고해주고 싶다. 이런 이런 안 좋은 사례도 아주 많으니 시야를 넓혀라는 의미로 말이다. 어쩌면 이곳 현직 경험담들이 뭐 그런 기능을 할 테니 대단한 구상을 할 필요는 없겠고 나도 그냥 부정적인 경험들 하나 하나 더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9급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 게 중요한 건 밖에서 너무 포장됐기 때문에 반대급부로서의 작용이 필요하지 않나 싶은 생각에서다. 거품이라는 거다. 세상은 다양한 면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한면만 보면 잘못 보게 되는데 9급 공무원에 대한 인식이 바로 과도하게 좋은 쪽으로만 편향됐으니 부정적 견해가 보충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 없어(야근해야 하니) 대충 정리하면 이렇다. 참고로 개인적 견해이고 무수한 공무원 업무 중 한 곳에서, 그것도 고작 2년 정도 근무한 사람의 견해이니 객관성은 애초에 기대할 수 없다는 거 알고 읽기 바란다.


-  업무량이 결코 적지 않다.

경력이 쌓일수록 업무 흐름도 알고 반복되는 업무라 점점 수월해지지만 신규일 경우 누가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상관이 아니라 같이 들어온 동기형에게 메신저로 물어 배웠다. 돈과 관련된 업무도 있어 압박감은 더했다. 적지 않은 업무에 대해 책임만 떠넘기는 꼴이라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지금도 그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은데, 단순 업무라 업무가 이해가 되도 그게 많아지면 고역이 된다. 동전 10개 쌓기 쉽지만 그게 하루에 10억개 쌓는 게 되면 방법을 알아도 힘들게 된다.


새벽 세시까지 근 한달을 근무했다는 살인적인 경험담, 일 못하겠다고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면 울었다는 주위 공무원 얘기, 과도한 업무로 팔목의 인대가 늘어나서 원상복구 되지 않았다는 얘기, 과로사로 자살하는 얘기 등 과거의 경험이기도 하겠지만 이 직업 세계에서 듣는 얘기 중에 좋은 얘기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저녁이 있는 삶도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이상적인지도 의문이다.


공무원 업무 고차원적인 사고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고용주인 국가 차원에서도 아쉬울 게 없다. 할 사람은 많으니까. 할 사람 많은 일 중에 적정한 업무량이 주어진 일이 있던가?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9급 공무원 기본적으로 일 많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 겁많고 얌전한 공무원들이 노조 만들어 싸우고 해고되는 이유가 다 있는 거다.


- 일이 무미건조하고 단순하다. 창조성이 없다.

창조적이고 자율적인 일들이 얼마나 많겠냐마는 그냥 공문 날아와서 뭐 책상 몇개 알려 달려면 알려주고 건물 상태 어떤지 조사하라면 조사해야 하고...모든 게 자기가 직접 기획하고 알아서 적극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고 지시에 따라 하는 일이다. 그냥 자동화 되지 못한 부분들, 기계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최종 처리하는 기계의 보조자로 생각 들 때가 많다. 고위 공직자들은 어떤지 모르겠고 직렬에 따라 어떤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9급 말단은 보통 이러지 않을까 싶다. 뭐 6급이 되도 업무 영역 자체가 그렇다면 계속 그럴 것이다. 뭔가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가치를 창조해내고 싶은 사람은 애초에 지원하지 않는 게 맞다. 결국은 그만 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생 시간 낭비가 될 수 있다.


- 업무 분장이 상식적이지 않다.

신규인 나는 거의 내가 일을 다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시설 관리하는 사람들 일까지 한다는 생각에 부당하거나 모욕감을 느낄 때도 많고 상관들이 시설직 사람들에게 제대로 업무 요청을 못하고 눈치 본다는 생각도 든다. 그분들 하는 업무가 정해진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아 거의 하루에 평균 3시간이나 일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방학때는 뭐 하루종일 인터넷 써핑에 아주 지루해서 난리인데 나는 바빠 정신없어 난리다. 충분히 그들의 업무라고 볼 수 있는 시설 안전, 물품, 재산 같은 거까지 공문 작성하거나 할 때면 내가 바보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재주 부리는 곰 말이다. 참는 이유는 이일 계속 안 하고 지금 마음 수련 중이라고 생각해서 그렇다. 그만 두고 싶은 이유 중에 하나다. 에전엔 이런 부당함 쉽게 수긍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냥 피하고 웃고 만다. 계속 할 거 아니라는 위안으로...


-  사람 바보 만드는 집단주의 문화도 큰 문제다

사람이 어딜 가나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하기에 내 문제도 있겠지만 지방 특유의 배타성과 끼리끼리 집단주의 문화는 내 체질에 안 맞아 적응이 안 된다. 애초에 내가 고상한 인간인지 그들의 관심사에 호응 못하고 그들의 이야기 문화에 잘 섞이지 못하니 어느덧 난 유령 인간이 되어 있다. 아직 모르는 일도 많아 실수할 때면 마치 여럿이 달려 들 듯이 덤빈다. 계장이 그렇게 권위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뭔 일 있을 때마다 짜증이나 훈계부터 시작 하려 하니 어이가 없을 때가 많다. 오늘도 물품 업무에 대해 난 경험 많은 주문관에게 따로 전화해 확인해서 처리했는데 그게 순서가 맞냐며 짜증을 냈고 언성을 높이길래 실장 확인 전화로 결국 내 견해가 맞았는데 오히려 실장에게 본인 업무에 대해 좀 더 철저하라는 얘기를 들어 정말 어이가 없었다. 본인이 틀릴 수도 있고 알면 차분히 알려 주고 가르칠 생각보다 짜증과 훈계부터 시작하니 공무원이 어디 건설현장이나 공장과 무슨 차이가 있나 싶은 생각이다. 인간적 관계나 지식의 공유에 있어 상식적인 관계나 학습 과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꾸짖고 야단치기부터 한다. 살다가 참 이런 '상식적인 경우'도 다 본다. 조직문화 뭐 다 같을 수 없겠지만 공무원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유의하길 바란다. 인간 관계 힘들면 지옥이 될 수 있다. 밖은 지옥이란 얘기...안도 지옥이 될 수 있다.



대충 할 얘기는 했는데 시간이 없어 여기서 끝내야겠다. 쌓인 게 많은 건지...9급 공무원 떨어져 자살하는 사람도 나오고 오죽하면 그러냐 싶어 이해를 못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9급 공무원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국가직 지방직 대비 연습으로 치러갔다 우습볼 게 아니구나, 9급도 못 되면 대한민국 어떻게 사냐 바짝 긴장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여기서 경험한 거친 인간관계, 낡은 조직문화, 납득 안 가는 과도한 행정업무들 경험하면서 느낀 것도 많아 소득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건 내가 애초 여기 들어와서 얻으려는 가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이지.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대단히 인정 받는 인간은 아니었지만 나름 삶에 대해 긍정하고 자존감이 있었는데 참...여기와서 내가 이렇게 우스운 인간이 될지는 상상도 못했다. 처음부터 이상한 사람은 없다. 사람이 어느 조직에서 이상해 지면 그 사람 탓할 건 딱 하나라는 거다. 자기에게 맞는 곳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왔다는 거. 수영 선수가 축구 선수로 투입되면 스스로 바보가 되고 동료들에게도 욕을 먹게 된다. 사람은 자기가 맞는 곳에서 자기 기량을 발휘해야 한다.



인생에 대한 기대치나 능력이 다르니 9급 공무원이 하늘의 별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처럼 길바닥의 돌멩이 같이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직 젋다면 세상을 좀 더 넒게 바라보고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해라. 조금 더 능력이 된다면 이웃들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고 이 세상이 더 나아지는데 기여 할 수 있는 일들을 선택하고. 


이곳에서 직업이 인생의 80%이상 규정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만큼 직업이란 열심히 노력하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한다. 돈이나 타인의 시선 등은 두번째고 세번째고 그 다음이다.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닥치고 공무원이면 내가 쓰는 글을 또 다시 쓰고 있는 본인을 발견할지 모른다. 분명 불행한 일이다. 지금  이 글에 삶에 대한 어떤 희망이나 긍정, 가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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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루627 | 작성시간 16.03.03 직장 그만두고 공무원 셤준비하는데.. 참 많은생각이 드네요ㅠ.ㅠ 직장그만두기전에 이 글을 봤었더라면...ㅠ 나이는 이미 먹었고 경력도 단절되고 암울하네요.. 공부하기도 힘든데 내가 이만큼 시간과노력을 들일만한 직업인건지.. 걱정입니다 ㅠ 휴..
  • 작성자항상긍정무한긍정 | 작성시간 16.03.17 아버지가 공무원만큼 편하고 최고직업이 어딨냐고하셨는데.. 와전이었나보네요
  • 작성자sonyun | 작성시간 16.04.10 대기업 7년차 후 사직서내고 전임자가 질병휴직까지 낸 문제많기로 유명한 학교에 신규로 발령받아 두해째 일하고 있습니다. 공감이 되는 내용이네요 저의 업무분장과 비슷하니까요. 주위 환경도.
    맞아요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고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어젯밤 10년차 삼성 LG등 근무하는 친구들 얘기를 듣고나니 저역시 잠시 몇년전이라고 깜빡 잊었던 것 같더라구요. 분명 그 친구들이 말하는 피바람나는 현실의 모습은 저희보다 훨 비참합니다. 박봉에 과중한 업무라 해도 둘을 저울대에 놓고 보면 교행, 양호합니다. 물론 사회가 미쳐가고 있기때문에 비교우위인거죠. 봄날이 찾아올거예요. 화이팅하세요. ^^
  • 작성자우리까망이 | 작성시간 17.03.16 필력좋으시네요 잘읽고갑니다
  • 작성자승덕 | 작성시간 21.02.01 시설직은 일이 고되고 다 육체노동이라 정말 힘듭니다. 겨울에 엄청난 눈을 며칠만 치워 보세요 ~~
    온몸이 다 쑤시고 거의 하루종일 빈사상태입니다. 거기다 또 뭐 고치고 설치하고...
    직접 해보지 않고는 그 일의 애환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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