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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분한열정 작성시간11.07.08 님. 제가 참고로 더 자세히 과정을 말씀드리면..원래 중추원관제는 갑신정변때 나왔던 겁니다. 이때 서재필이 일본으로 피신갔다가 미국가서 세균학박사받고 난 후 쯤 때 조선에서는 2차 갑오개혁을 진행했었죠. 이때 대원군은 물러나고 친청파인 김홍집과 친일 세력인 박영효를 연립내각으로 만듭니다. 이때 박영효 머리에서 나오는것이 홍범 14조입니다. 박영효는 서재필을 복귀하게끔 제안을 해서 서재필이 조선에 오죠. 서재필은 일단 와서 할게 없고 똑똑은 하고 하니 정부 자금으로 만들어주다시피 한것이 독립신문입니다. 이후 정동 구락부(이상재,이완용,윤치호)와 관료세력인 남궁억도 참여해서 독립협회가 세력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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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분한열정 작성시간11.07.08 서재필이 입헌군주제를 워낙이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의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기조로 활동하니 고종이 볼때는 승질이 나죠. 그래서 추방 명령을 내리고 서재필은 이에 항거하는 차원과 입헌군주제와 의회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만민공동회를 합니다. 남궁억은 관료입니다. 친왕당파라고 할 수 있죠. 이들이 서재필에 맞서서 관민공동회를 주최합니다. 이때 헌의 6조가 나옵니다. 당연히 왕당파이므로 1조에 전제황권 공고히 할것을 강조하고 2조에 중추원의 기능을 의회제형식으로 하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