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참고하고 있는 교재에 아관 파천의 결과로 친러 내각의 성립 : 을미개혁을 추진하던 김홍집의 친일 내각이 무너지고, 이완용 박정양 이범진 등이 친러 내각이 구성되었다. 라고 되어 있는데요.
제가 이해하고 있는 것을 정리해 보면은,
2차 갑오개혁 이후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일본이 승리를 잡아서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로 요동반도와 타이완을 할양받았으나 러시아의 견제로 삼국 간섭이 있었고 이로 인해 일본은 굴복하여 청에 요동 반도를 반환하였고 조선에 대한 일본의 세력을 위축되어 제3차 김홍집 내각(친러내각)이 구성되는 여건을 조성하였다. 그 이후에 을미사변이 있었고 을미개혁으로 제 4차 김홍집 내각을 성립시켰다.인데요.
그렇다면, 친러내각이 삼국간섭 이후 구성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아관 파천 이후 친러내각이 성립된 것이 맞는지, 아님 총 2번의 친러내각이 성립되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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