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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한국사 심화 학습

조선초기 궁금한것들 질문좀 드릴게요..!

작성자꿈의music|작성시간17.02.16|조회수99 목록 댓글 4

조선초에는 상공업을 억제하고 농사중심 정책을 했는데
세종때에는 조선통보를 만들면서 화폐유통 하려고 했잖아요
여기서 궁금한게

1.세종은 화폐는 유통시키고싶지만 상공업을 억제해서 화폐가 활발히 유통되지 못한건가요??

2.또 조선초기 관학파는 부국강병을 위해 뭐든지 나라에 도움이 되는 건 과학이라든지 다 받아들였는데 상공업만 억제했다는건가요??

3.조선시대 과거제도중에 탐관오리아들, 재가한 여자의 아들과 손자, 서얼은 문과응시 금지인데 법적으로 과거는 양인이상이면 다 가능하잖아요?? 그럼 저사람들는 중인이어도 문과응시 못보는거고 일반 백성이나 향리같은사람들는 문과응시가 가능한건가요??

궁금한게 너무 많네요 ㅠ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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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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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제비와연꽃 | 작성시간 17.02.16 2. 조선 초기는 한.당유학적 요소도 있지만 성리학이 정착되는 시기입니다. 성리학은 농업 중심사회를 지향했기 때문에 상공업은 부진했습니다. 참고로 16세기 사농공상 평등을 주장하는 양명학이 전래되지만 이미 성리학이 심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발달하지 못했습니다.(사문난적이란 말의 내용을 보시면 주자의 성리학을 얼마나 맹목적으로 따랐는지 알 수 있어요.)

    상공업, 무역의 부진 -> 농업 중심의 자급자족 경제구조(근본적인 원인), 사대부들의 성리학적 경제관...(생략)
    김윤수의 탐구한국사 내용 참고

    오늘 고려 배우면서 들은 내용이라 혹시 답변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다른 분들이 고쳐주세요!ㅜㅜ
  • 작성자내고장2월은 파리똥2 | 작성시간 17.02.17 1. 화폐의 중요성은 이미 초기철기(오수전, 반량전 등)부터 알고 있었을 것 같은데요. 고려시대도 열심히 찍어보지만 안됐고, 고려말 공양왕 때도 저화를 찍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세종 때 조선통보를 찍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공업이 통제되는 상황에서 즉, 상업이 통제되는 상황에서 돈은 의미가 없다고 보이죠. 제가 흥부인데 농사짓고 세금으로 쌀 같다 줬더니 관청에서는 돈만 받는다고 하네요. 돈은 어디에? 한국은행도 없고.. ㄷㄷㄷㄷ 여하튼 성리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인보제, 5가작통으로 농민들 발목잡고, 세금을 열심히 걷는 방법은 주거지가 명확해야됩니다. 장사한다고 딴지역가면 휴대폰도 없고 찾을 길이 ㄷ
  • 답댓글 작성자내고장2월은 파리똥2 | 작성시간 17.02.17 결국, 유통경제가 발달하지 않았고, 화폐유통은 백성들에게 편리하기보다 불편한 것이었고, 농본억상 정책에서는 화폐유통은 힘들다고 보입니다.
    3. 문과는 3년에 1번입니다. 9급 공무원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즉, 문과인 대과에서 수석하면 종6품으로 수령(정읍 현감 이순신, 종6품)이 될 수 있습니다. 9급 공무원 수석하면 ㄷㄷㄷㄷ? 이렇듯 어려운 시험이기 때문에 양인이면 응시가 가능하지만 불가능 한 것이죠. 조선시대 향리를 열심히 지위가 격하되는데요. 향리 함부로 문과 못봐요. 일반 백성보다 페널티가 있습니다. 따라서 서얼 이런 사람들은 잡과를 보든 아니면 유호산수, 무원부지 열심히 그냥 놀지 않았을까 싶은데요..ㄷㄷ
  • 작성자꿈의music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2.17 다들 답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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