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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2, 3번이 왜 틀렸나요?

작성자소리초롱| 작성시간17.02.18| 조회수436|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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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소리초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02.18 4번이 답인것은 알아용.
    보기2번과 3번이 입장이 어떤 사건일때 나온 것인지 알고 싶어서 질문한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 소리초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02.18 내사랑올라프 내사랑울라프님

    학원가서 물어보라니 . . .

    이런 댓글 왜 다시는건지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작성시간17.02.18 초롱님은 답을 맞히려고 하는 게 아니라 틀린 게 왜 틀린지 알고 싶으신 거잖아요
    답만 찍고 넘어가자고 이 게시판이 있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걸 질문하라고 있는 게시판인데 말이 심하신 거 같네요
    올라프님이 올리신 스크린샷을 봐도 초롱님이 딱히 앞뒤 자른 게 아닌 거 같은데요
  • 답댓글 작성자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작성시간17.02.18 내사랑올라프 꼭 욕을 해야만 심한 말이 되는 건 아니지요
    부드러운 표현으로도 비수를 박을 수 있는 게 말 아니겠습니까
    저도 괜한 오지랖 부린 거 같네요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 참 많죠
    그냥 가던 길 가겠습니다
  • 작성자 내고장2월은 파리똥2 작성시간17.02.18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료의 내용은 청과 친하게 지내자와, 아니다 청과 싸우자의 두 대립 구도로 보입니다. 따라서 인조 때로 보입니다. 인조는 광해를 쫓아내고 왕에 오른 것입니다(인조반정). 인조 때의 집권당은 서인입니다. 숙종 이전까지는 우리는 조선의 정치를 붕당정치라고 배웁니다. 그렇다면 정묘호란이니 병자호란이니 이런 호란이 발생한 것은 붕당 정치에서의 여론이 척화주전론이었다는 것입니다. 서인이 숙종 이전까지는 계속 집권을 했으니, 척화주전론을 외친 세력은 서인이라는 소리가됩니다. 그와 반대로 청과 친하게 지내자고 이야기한 세력은 남인이라고 봐야되겠지요. 그런데 인조 때도 서인이 정권을 잡아서 척화주전론을
  • 답댓글 작성자 내고장2월은 파리똥2 작성시간17.02.18 그리고 효종은 병자호란 이후 포로가 되어 청으로 가게됩니다. 그러면서 왕이 된 이후에는 북벌론을 주장합니다. 이 때도 서인이 집권을 계속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 했던 것 처럼 숙종 이전의 현종 대의 갑인예송 때 남인이 집권을 하기 전까지는 서인이 계속 주도를 합니다. 따라서 3번 선지는 잘못된 것입니다. 즉, (나)는 서인이 주장한 내용인데요. 패전 이후에도 북벌이라는 명목으로 서인 정권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용을 합니다. 병자호란 이후 패하고 효종이 정권을 잡았을 직후에는 여전히 북벌입니다. 따라서 북학운동이 나올 수 없습니다. 북학운동은 숙종 이후 경신환국으로 노론과 소론이 분화되면서 이후 노론이 갑술환국으로
  • 답댓글 작성자 내고장2월은 파리똥2 작성시간17.02.18 내고장2월은 파리똥2 정권을 잡게되면서 남인과 소론을 다 제거하고 그 이후에 노론들만의 세상을 맞이하게됩니다. 그런데 일부 노론이 청을 오가면서 알게된 것이죠. 워~ 청 대단하네... 야들 보통 사람들이 아니네.. 청에게 배워야할 것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세력이 북학학파입니다. 따라서 2번 선지의 패전 "직후"와는 거리가 멀다고 보여집니다. 결론만 말한다면, "차라리 ~ 빡공!!"님의 이야기가 맞다고 보입니다. 저는 좀 길게 썼을 뿐이고요.
  • 작성자 소리초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7.02.18 댓글 달아주신분들
    친절히 답해주시고
    신경 써주시공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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