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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간과해선 안 될, 수험생의 식사 이야기

작성자잘하고있잖아|작성시간19.01.19|조회수4,448 목록 댓글 4



제 창피한 사실 하나를 고백할게요.


한동안 저는, 대부분의 수험생이 맨날 고시원 쪽방에서 거의 삼각김밥이랑 라면을 주로 먹는 줄 알았어요. TV에서는 항상 그렇게 묘사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수험생은 오히려 소수라는 것을 안 건 오래 되지 않습니다. 인터넷에 수많은 수험생분들이 매일 올리는 그 많은 인증샷을 보니 오히려 수험생들이 제일 잘 드시길래 정말 깜짝 놀랐어요.


비아냥 전혀 아니에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시는 분들께 제가 무슨 이유로 못마땅한 감정이 있겠어요. 다만 수험생에게 좋지 않은 식사 습관에 대해서 한 차례 언급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때보단 조금 가벼운 느낌으로 읽으실 수 있겠네요.



  (1) 제발 적당히 먹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시절부터 인간은 그냥 굶어죽고 얼어죽는 게 일이었어요. 인류역사를 하루로 환산하면 먹는 문제가 숨통이 트인 건 고작 몇 분도 되지 않아요. 인류역사의 99%도 넘는 기간은 오로지 굶어죽고 얼어죽고 이거였습니다. 그러니, 배부르고 따뜻하면 인간은 내가 위기상황에서 벗어났다 여기고 생존본능은 희미해져서 드러누워 자고 싶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거죠.


따라서, 적정수준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공부하려면 과식/폭식은 절대 금물입니다. 외식을 하면 내게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게 아니라 대부분 뱃가죽이 늘어날 정도로 먹기 때문에, 아예 공부 쉬는 날 아니면 자제하는 게 좋습니다. 갔다오는 총 시간도 길지만, 일단 포만감이 생기면 발라당 드러누워 뒹굴고 싶어지고, 이쯤에서 '오늘은 자고 내일 할까..' 이 치명적인 유혹이 스물스물 엄습합니다.


"잘 먹어야 공부도 하잖아요?"라고 하실 분이 분명 계실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시다. 내가 남들보다 더 잘 먹어서 남들보다 공부를 더 잘하고 있다고 생각이 드시나요? 정말요? 매일매일 무슨 맛집탐방을 하듯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먹어서 나오는 그 에너지가 실제로 공부할 때의 더 강한 집중력으로 터져나오던가요, 아니면 허벅지와 아랫배의 살로 가던가요?


"야이, 먹는 것까지 그렇게 치사해야 돼?"라고 버럭버럭 할 일이 아닙니다. 식사도 결국엔 공부에 필요한 힘을 얻자고 하는 것인데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니겠느냐?"라는 미명하에 오히려 식사 자체가 목적처럼 되고, 식사를 위한 식사가 되어 버리면 이건 그야말로 '먹기 위해 사는' 것일 뿐이니까요. 이걸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자기조절능력 자체가 낮은 사람이고, 대개 아래와 같은 특징이 함께 나타납니다.


- 대인관계 축소나 SNS 절제를 좀처럼 하지 못한다.

- 생활을 단순화하지 못하며, 공부를 할 수 없는 이유가 자주 발생한다.

- "내일부턴 진짜 열심히!"라는 말을 자주 한다.

- 나름 자주 반성을 하는데, 그 반성 내용이 항상 똑같다.


운동선수에게 밥이 그냥 밥이 아니듯, 수험생에게도 밥은 그냥 밥이 아닙니다. 운동선수가 잘 먹어야 힘을 쓴다고 와구와구 포식할까요? 이거 천만의 말씀이고, 일반인들이 완전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대회의 승자가 되기 위해 생활 속의 모든 것을 거기에 최적화하는 것이 그들의 생활입니다. 방식은 조금 다를지언정, 그 절제의 필요성 자체는 수험생도 하나도 다를 게 없어요.


만약 정말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수험생의 경우라면, 오히려 복으로 생각하실 수 있었음 좋겠어요. 그런 환경을 이겨내신 분들이 항상 공통적으로 하시는 얘기가 뭐냐면, 다른 수험생들처럼 여기저기 맛집 찾아다니며 이것저것 딴생각을 할 뭣도 없었고 누구 만나는 것도 뭐해서 자연스럽게 수험생활이 단순화되었고 그 힘으로 붙을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가끔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참 감사하다고들 말합니다. 실제로 그런 케이스의 합격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2) 지나치게 매운 건 X


'매운 것은 스트레스를 확 날려 버리는 효과가 있다'고들 말하죠. 그런데, 이건 사실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문제는 내가 공부하는 데 써야 할 에너지도 함께 날아간다는 거죠. 에너지는 쏙 남고 스트레스만 쏙 골라 날아가면 얼마나 좋겠냐만, 이게 되면 신비의 명약이지 그게 음식인가요? :)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소주 한판 때리며 왕창 매운 안주로 모든 걸 확 날려 버리고 그날을 접는 거라면 몰라도, 또다시 열공에 돌입해야 하는 수험생의 생활에서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요즘 이런 거 유행이죠. 몇 단계, 몇 단계 하며 매운 맛이 단계별로 있는 거. 한국사회가 곳곳에 워낙 스트레스가 많으니 그런 것도 인기 있는 건데, 그렇게 자기를 흠씬 고문해 놓고 책상 앞에 앉으니 나는 간 곳이 없고 대신 해골 한 마리가 멀뚱멀뚱 앉아있더란 말이죠. 그냥 멍해요. 그날은 공부 다 한 거죠.


건강에 좋고 말고는 여기서는 논외! 이건 웰빙칼럼이 아닌 수험칼럼이고, 내 생활습관 중 뭔가가 공부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마이너스가 된다면 자제하는 게 수험적으로 옳다는 얘기로 이해해 주세요.



  (3) 문제는 아침식사


혹시 아침식사 하시나요? 전 사실 그때 아침식사를 한 적이 거의 없어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요. 이러면 누군가는 이러실 것 같습니다. "아니? 아침을 안 먹는다고? 수험생은 아침을 무조건 먹어야지!"


사실은 저도 다 해봤어요.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무지하게 애썼습니다. 하지만 몇 달에 걸친 노력 끝에 결국 포기. 눈은 떴어도 몸은 깨어나지 않은 그 상태에서 음식물을 몸에 투여하면 큰 피로감이 몰려와서 오전 공부 능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걸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도 머리만 깨어있을 뿐 몸이 완전히 깨기까지는 3~4시간 정도 더 걸리는데, 이때 억지로 뭔가를 먹으면 그날 오전은 그냥 날립니다.


괜찮냐고요? 네. 괜찮았어요. 오전 중에는 데자와(그날 기분에 따라 티오피)로 몸을 천천히 달래기. 그러다가 시간 지나 몸이 풀리면 그때 먹기. 오전을 잘 활용하기 위한 저의 최적화된 루틴이었습니다.


제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아침을 먹지 말고 공부하라는 게 아닙니다. 유연하게 생각하라는 얘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침을 거르면 완전 망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여러 공부법책이나 고시신문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어르신들은 지금도 이렇게 주장합니다. "아침은 무조건 먹어야 하고,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 그 세대가 어릴적 배고팠던 경험 때문에 식사에 민감하기도 하고(오죽하면 '밥 뭇나?'가 인사말이겠습니까?), 게다가 전통적으로 농경 사회였던 우리네 특성상 새벽부터 농사일 나가서 종일 중노동해야 하니 아침 든든하게 먹고 나가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던 거죠. 그러니 '한국인은 아침밥의 힘!'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거지만, 농사꾼도 아닌 수험생에게도 그게 무조건 옳다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난 아침을 먹지 않으면 허기져서 공부고 뭐고 아무 것도 못하는 분이면 아침을 챙겨 드세요. 그러나 눈은 떴어도 완전히 깨어나지도 않은 몸으로 억지로 쿰척거리면 오전 공부를 망치는 슬로우 스타터면 과감하게 아침식사는 생략하고 도서관 자리에서 부드러운 음료 정도로 대체하는 것도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어느 유형인지 현명하게 판단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다는 것'과 '모든 사람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자주 혼동합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본질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고 합니다. 원시시대부터 인간이 무리지어 살며 생긴 동질적 본능에서 오는 일입니다.


특히 수험생의 경우,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지 않으면 마치 나 혼자 잘못하고 나 혼자 낙오되는 듯한 불안감에 지배되어서 이 본질주의적 오류에 빠질 가능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이렇게 되면 나 자신에 대한 분석과 거기에 따른 맞춤형 생활패턴, 그리고 독자적 수험전략을 짜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수험에서 지피는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오로지 지기(知己)만이 있을 뿐입니다. 정작 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부터 쳐다보는 사람이 수험생활에서 승자가 될 가능성은, 제가 보아 온 바로는 극히 희박합니다.


수험생활을 하다 보면 내게 도움되는 것과 안되는 것의 선을 명확히 긋기가 항상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선 긋는 일을 포기하고 그 경계가 마치 서쪽 하늘을 저녁놀처럼 그러데이션으로 물들이게 해선 곤란합니다. 저녁놀이 지나면 어두운 밤이 오듯, 그 시뻘거무루죽죽함이 나중에는 캄캄한 암흑이 될 테니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막막함은 덤입니다.


99%가 떨어지는 시험에서 99%를 따라할 까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승자는 결국 나에 대해 분석을 잘했던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내게 맞는 루틴, 내게 맞는 식사법, 내게 맞는 수면패턴, 내게 맞는 공부장소, 내게 맞는 수험계획은 반드시 스스로 찾길 바랍니다.


그리고, 승리하는 1%가 되시길 바랍니다.


2019. 1. 19.

by 잘하고있잖아


아마도 웬만하면 아시는 것들이겠지만,

칼럼에 쓰인 말들 가볍게 확인하고 끝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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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위드영 | 작성시간 19.01.26 공부하기 싫으니까 잘 먹어야 돼!!라는 핑계로 더 먹기에 집착하는거 같아요. 오전에 배부르게 많이 먹으면 10시부터 책상 앞에서 졸려서 오전 시간 날리는게 맞아요ㅜㅠ 이런 깨알같은 칼럼도 좋아요~~
  • 답댓글 작성자잘하고있잖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01.26 네. 정확하게 표현하신 것 같아요. 공부하기 싫으니 잘 먹어야 한다는 핑계로 먹기에 더 집착하지만 먹는 만큼 비례해서 공부 더 잘하는 건 전혀 아닌 것을요. 아침은 그냥 바나나 하나 먹고 말거나, 적당히 느끼하고 적당히 자극적이고 적당히 포만감있는 데자와로 몸을 천천히 깨우면서 시동걸어 주거나, 아니면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예 안 먹어도 크게 지장 없죠. 어차피 대부분의 수험생은 점심을 일찍 먹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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