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천안중앙교회 주일 설교 말씀을 옮깁니다.
로마서 6장 1절부터 11절까지로 ‘그럴 수 없느니라.’라는 주제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간다고 하여도 가끔 전능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문득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도 하나님은 즉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다는 임재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찬양을 부름으로 다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갈 수가 있으므로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할렐루야!
[너의 하나님 여호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해.
너의 하나님 여호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 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물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너의 하나님 여호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해.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할렐루야!
아차산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및 광진구와 구리시에 걸쳐 있는 산(동서가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간혹 가보았던 산)입니다
아차산의 유래는 3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가 조선 명종 때 유명한 점쟁이인 자신이 죽을 것으로 알고 조심하여서 살았는데 그만 그것을 잊어버려서 홍계관은 죽기 전에 ‘아차’하였다고 합니다.
“아차, 내가 잘못 알았구나!”라는 탄식에서 아차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화 중의 하나입니다.
북한에서 기독교 탄압으로 장로회 신학대학을 남산 신궁 터로 옮겼고 나중에 아차산 근처로 옮겨서 이곳이 하나님의 일꾼들을 배출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설립 당시 운동장을 만들려고 학생들이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곳이 과거 공동묘지여서 해골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세메터리(Cemetery)’ 묘지가 ‘세미너리’(Seminary) 신학대학이 된 것입니다.
죽음의 땅에서 생명을 살리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바울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으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예수님을 전하는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부터 5장까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는 죄의 종으로 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으려고 계속 죄를 지어야 하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로마서 6:1~3)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하였으므로 우리도 틀림없이 부활할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묻힌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도 함께 죽었다면 그분의 부활하심과 함께 우리도 틀림없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4~5)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옛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에 매인 육체를 죽여서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인 줄 압니다.
죄에 대하여 이미 죽은 사람은 죄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아날 것도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므로 다시는 죽으실 수 없고 죽음이 더 이상 그분을 지배하지 못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6~9)
그리스도와 연합을 요한복음에서는 거듭남으로, 갈라디아서에서는 세례로, 베드로전서에는 산 소망으로 구원을 가져다주는 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가끔 육신의 연약함으로 죄에 넘어질 수는 있지만 죄가 지배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을 따르는 것을 옛 자아라 하며 이제는 그리스도인으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옛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에 매인 육체를 죽여서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인 줄 압니다.>(6)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살아감으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죄에 대해서는 죽고 지금도 살아 계시어 역사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에 대하여 단 한 번 죽으시고 하나님을 위해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이와같이 여러분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 있다고 여기십시오.>(10~11)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서는 죽었고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간다.’라고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이 세상의 모든 죄를 이기셨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오늘을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