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심리전이 북한 체제에 미치는 영향
1985년경 필자가 요덕 정치범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할 때 남한에서 보내는 풍선을 처음 접했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갑자기 요덕 수용소 상공에 기구 모양의 대형풍선과 거기에 달린 네모난 형태의 지함이 터지면서 전단('삐라')과 함께 여러 가지 물건들이 쏟아져 내렸다. 요덕 수용소 일대는 전단으로 덮였고 각종 내의류와 영양제, 육포, 라면 등 먹을 것들은 정치범들의 눈을 놀라게 했다. 이들 전단은 비도 젖지 않고 불도 붙지 않으며, 찢어지지도 않는 특수 비닐로 제작된 컬러 형태의 전단지였다.
북한 체제 자체가 워낙 폐쇄된 상황인데다 수용소는 그야말로 외부와의 모든 것이 단절된 곳으로 정치범들에게는 외부의 정보는 고사하고 북한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조차 알 수 없었다. 그들에게 전단은 전율을 느끼게 하는 하나의 무기였고 외부와의 소식이 전달되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정치범들은 남한에서 수용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그 자체가 위안이 됐고 힘이 됐지만 국가보위부 요원들에게는 외부에서 날아오는 전단은 심각한 위협이 됐다.
1987년 요덕 수용소를 출소한 이후에도 남한에서 보내오는 전단을 지속적으로 보게 됐다. 1990년 초 요덕군 읍광장에서 수천 명의 주민들이 집회를 하고 있었는데 그 위로 전단이 살포됐다. 당시 광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그 속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전단의 내용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국가보위부는 전단을 모두 수거하기 위해 주민들을 모두 철수시켰다. 당시 동구권 유학생들이 대거 남한으로 탈출한 사실이 전단으로 알려져 북한사회는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전단지의 효과
북한은 극단적인 정보통제 국가로 라디오를 비롯한 일체 외부 소식을 접하는 행위 자체가 국가반역 행위로 규정돼 있다. 특히 김일성이나 김정일 등 김씨 왕조를 비판하거나 거론하는 것 자체가 죽을죄이기 때문에 북한 내에서는 김씨 왕조에 대한 그 어떤 비판적인 것을 본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다. 동네 반정부 인사들이 개별적으로 낙서하거나 자그마한 전단 한 장이 붙어도 국가보위부는 총 비상 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북한주민들이 전단을 보면서 가장 크게 충격을 받는 것은 첫째, 일체 거론할 수 없는 김씨 왕조에 대한 전면적 비판을 전단을 통해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충격이다. 특히 김정일에 대한 사생활은 젊은 군인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다. 그 많은 부인들과 화려한 음식들, 온갖 악행들이 적나라하게 알려지는 것은 김정일을 떠받들고 있는 군대가 김정일을 불신하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둘째, 철저한 주민감시와 통제로 집단행동이 불가능한 북한 내부에서 주민들이 김씨 왕조를 반대해 들고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에 정권에는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1997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북한의 김정일로부터 대북 심리전을 중단해야만 모든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제안을 받고 전단 살포를 중단하게 되는데 이는 무너져가던 북한체제를 살려주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전단 살포는 내륙의 수용소들에 집중되다가 평양으로 옮겨갔고, 1994년경 이후부터는 휴전선 일대에 집중적으로 살포됐다. 당시 북한은 식량난으로 휴전선 일대의 정규군단에도 식량공급이 제대로 안 돼 사실상 군대는 와해상태에 직면했었다.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뿌려진 전단지와 식품은 북한이 자랑하는 사상적 무기를 와해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됐다.
외부 정보와 단절돼 있던 휴전선 군단의 인민군 병사들은 남쪽에서 날아오는 전단지를 보며 체제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위기 속에서 체제 붕괴에 직면했던 김정일 정권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 심리전 중단으로 기사회생할 기회를 얻게 됐다.
이명박 정부 이후 북한의 대남전략 변화
북한은 이명박 정권 등장을 막기 위해 대남공작부서를 총동원해 한국 좌파가 집권하도록 도왔지만 결국 실패하자 한동안 충격에 빠졌고 그 이후 북한의 대남전략은 이명박 정권을 흔들고 5년 후 다시 친북적인 정권을 세우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을 통해 강성대국 완성을 위해 전력하면서 대남협박을 강화하게 되는데 결국 대북지원이 중단되고 국제적 고립을 자처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북한당국은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의 대북지원에 도취돼 과거 10년 대아사 시절을 망각했고, 체제를 개혁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함으로서 결국 똑같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북한의 이런 위기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 이후 한국 정부까지 가세한 대북 심리전이 시작되면서 걷잡을 수없는 사태에 이르고 있다.
탈북자들이 한국 정부가 중단한 전단지 살포를 시작하게 된 것은 2003년부터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유엔인권위가 상정한 북한 인권결의안에 기권하면서 탈북자들은 분노하게 됐고, 당시 탈북자들은 북한인권 단체를 결성하면서 전단지 살포와 같은 행동으로 넘어가게 됐다. 탈북 과학자 이민복씨와 박상학씨가 주축이된 전단지 살포는 원시적인 풍선에 의한 적은 규모의 전단 살포였지만 국민들의 지속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상당한 규모로 발전하면서 북한 정권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북한당국은 군부를 동원해 탈북자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전단지 살포에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남북관계를 고려해 탈북자들의 전단지 살포에 대해 자제시키는 방향에서 넘어가려고 했지만 결국 북한은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 도발까지 자행하면서 그에 대한 보복수단으로 대북 심리전 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1997년 김대중 정부 이전처럼 정부가 직접 나서서 대북 심리전을 재개할 경우 민간에서 하는 것보다 상상할 수 없는 위력이 나타날 수 있다. 일단 기구가 정교해지고 전단지 내용이나 물품 살포 등도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것만큼 민간이 하기에는 사실 벅찬 사업이다.
3대 세습 단행 이후 체제 급변사태 가능성
2009년 11월 단행한 화폐개혁은 체제를 혼란 속에 몰아넣었고 시장이 무너지면서 시장상인들은 물론 국영기업소와 국가기관 외화벌이 회사들까지 모두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기에 대외적인 압력이 가시화되면서 이중 삼중의 압력에 직면한 북한은 작년 태풍 콘파스에 의해 황해도 곡창지역의 농사까지 망치면서 식량난은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단행한 2010년 9월 당(黨)대표자회는 체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무리하게 28세의 김정은과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 등이 인민군대 대장 칭호를 받자 군인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3대 세습은 명백한 봉건주의로의 회귀이기 때문에 인민군 병사들조차도 3대 세습을 경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민군대의 구호가 '인민을 위해 복무함'에서 '수령결사옹위 총폭탄이 되자'로 바뀌었고 인민의 군대에서 김정일의 군대로 공식화됐다.
이 모든 것은 군대에 배급이라도 제대로 주면서 떠들면 괜찮겠지만 식량난에 군인들이 굶주림에 노출되면서 당국의 선전은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탈영병이 급증하고 10년 전처럼 영양실조 군인들이 창궐하면서 대북 심리전은 그 효과가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탈북자들이 보내는 전단지에 이어 정부차원에서 전단지 살포가 시작되자 북한은 군부의 이름을 빌어 전단 살포 근거지에 대한 조준사격 위협까지 가하고 있다.
이집트에 이어 북한과 가장 유사한 독재국가인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붕괴위기에 내몰리며 김정일 정권은 극도의 위기감에 내몰리고 있다. 특히 리비아 군부가 카다피가 아닌 인민의 편에 돌아서면서 카다피의 친위대가 인민들을 향해 무차별 살상을 벌이는 소식이 북한 내부에 전해질 경우 그 파장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북한의 변화 중심에 인민군이 서게 되고 그들은 절대다수가 인민을 지지하지만 결국 김정일 정권에서 최대 호의호식했던 김정일 친위대와 호위부대가 끝까지 저항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북 심리전 수단은 김정일 정권에 대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무너뜨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에 북한의 협박에 굴하지 말고 북한 군인들을 우리 편으로 돌리기 위해 전단지 살포는 더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강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