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쉘라흐 (정탐꾼을 보내어) / 살아있는 교회 / 안제우 목사

작성자Shalom Jerusalem|작성시간26.06.12|조회수30 목록 댓글 0

https://www.youtube.com/watch?v=KsUkxdHD4CI

 

토라포션 이름 (파라샤)모세오경 (토라)예언서 (하프타라)신약 (브리트하다샤)
쉘라흐 / 보내다민 13:1-15:41수 2:1-2:24막 10:1-45

<단락 1> 1. 민 13:2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미 주신 약속의 땅을 정탐하게 허락하십니다 (완료형).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믿음으로 취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보내다’의 히브리어 ‘쉘라흐’의 뜻은 ‘파송하다, 보내다’ 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어 ‘쉘라흐’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와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그 뜻은 ‘보냄을 받은 자, 사도’ 입니다. 즉, 히브리어 ‘쉘라흐’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과 사명을 이 땅 가운데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거룩한 신부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이 땅 광야와 같은 곳에서 성령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아 거룩한 신부로 단장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 20절에 ‘...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예슈아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이 땅 가운데 보냄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슈아를 영접하는 이는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과 동일한 법적 능력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예슈아는 제자들에게 그 능력을 주셔서 세상 이들이 제자들을 영접한다면, 예슈아를 영접하는 것으로 여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슈아는 우릴 향해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땅으로 가라고 (히 : 레크 레카, 너의 비전을 찾으러 가라) 말씀하십니다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하지만 이번 토라포션의 주제 ‘쉘라흐 레카’의 뜻은 ‘너를 위하여 보내라’ 입니다. 신명기 1장 22절에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약속의 땅으로 정탐꾼을 보내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중심 가운데에는 무엇이 있어서 정탐꾼을 보내자고 말한 것일까요? 하나님을 향한 불신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된 계기는 다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슈아의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하였고 우리의 인생이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믿는다면, 더 이상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 들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결혼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났는데도 자기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면, 그는 십자가의 원수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슈아는 우리의 자아를 끝장내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아를 날마다 십자가에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올바른 길이 아닌 그릇된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정탐꾼을 보내라고 허락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의견을 존중하십니다 (자유의지). 그러나 어떤 이는 예슈아의 피를 통하여 자유케 되었기에, 마음대로 사는 것을 ‘자유’ 라고 오해합니다.

 

야고보서 1장 25절에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말씀합니다. 야고보는 율법을 가리켜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 이라고 말합니다. 토라는 그것을 어기면 묶이지만, 지켜 행하면 자유케 되어지고 그가 행하는 일에 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자신을 파괴하는 이기심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길입니다.

 

1) 민 13: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10명의 정탐꾼은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 라고 말하는데, ‘우리보다’의 히브리어는 ‘밈넨누’이며, ‘그 보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들이 보았을 때에는 가나안 족속들은 하나님보다 강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10명의 정탐꾼은 자신들의 뜻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약속하신 땅을 부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환경을 다스리는 분입니다. 히브리서 3장 12절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마음은 ‘악한 마음’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약하다, 못한다, 어렵다’고 평가해 버리면, 우리의 믿음과 정체성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 결과 눈에 보이는 데로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0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족속들은 우리 하나님보다 강하다’라는 고백한 이유가 있습니다.

 

(1) 민 14: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갈렙과 10명의 정탐꾼 차이점은 다른 영 (히 : 루아흐 아헤렛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가 가지고 있었던 영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말씀합니다. 갈렙은 하나님의 언약을 가진 자이며, 동시에 성령의 충만한 자였습니다. 하지만 10명의 정탐꾼이 가지고 있었던 영은 불순종의 영입니다. 10명의 정탐꾼은 무엇을 잃어버립니까? 하나님의 언약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처럼 사단의 목적은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지 못하게끔 우리의 부르심을 도둑질 합니다.

 

민수기 13장 32절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땅을 거주민을 삼키는 땅으로 여깁니다. 약속의 땅을 싫어하고 믿음의 조상들의 유업을 이어가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것을 보고 왔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마음의 중심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그림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2) 민 14: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갈렙은 불평불만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용히 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30절에 ‘올라가서’의 히브리어는 ‘올라 올라’이며 이를 2번 강조하였고, ‘능히 이기리라’의 히브리어는 ‘약홀 약홀’이며 이를 2번 강조하였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에 마음을 정렬한 갈렙의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은 달랐습니다.

 

<단락> 2. 수 2: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을 위하여 두 번째 정탐꾼, 2명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기생 여인 ‘라합’을 만나게 되는데, 기생 라합은 목숨을 걸고 두 명의 정탐꾼을 자신의 집에 숨겨 줍니다. 그리고 2명의 정탐꾼은 기생 여인 라합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1) 수 2: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여리고 성에 있는 이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과 아모리왕 시혼과 옥을 멸하신 기사를 듣게 되어서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 땅을 너희에게 주었다고 말합니다 (수 2:9).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요단강도 건너지 않았고, 여리고성의 벽돌 한 장조차 무너뜨리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라합은 단호하게 ‘하나님께서 이미 이 땅을 너희에게 주셨다’ 선포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라합의 이 고백을 통하여 우리가 마주한 삶의 여리고를 어떻게 바라보고 정복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의 믿음의 시작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들음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롬 10:17). 그래서 우리는 세상 이들의 말과 내 자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려 우리가 마주한 삶의 여리고성을 믿음으로 정복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믿음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관심이 없는 것과 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자주 이 땅에서 배운 지식으로 인해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데,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기생 라합은 이방 나라에 속하였고, 이스라엘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음으로) 취하게 됩니다 (한 새 사람의 모형). 즉,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스라엘 나라의 일원이 되기를 갈망하였습니다. 이는 이방인이 이스라엘에게 접붙힘 받는 사건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롬 1:16, 롬 11:17, 엡 2:11-22).

 

(1) 히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기생 라합의 믿음은 두 명의 정탐꾼을 목숨을 걸고 숨겨주는 믿음의 행위로 나타나게 됩니다. 즉, 라합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기준은 그녀가 어떠한 행동을 하였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에 있는 백성들과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에 있는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회개하지 않아서 멸망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생 라합은 믿음으로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게 됩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 여리고 성과 같은 세상 나라들은 무너지게 될 것이며,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계 11:13). 하지만 열방 교회는 세상 나라들과 함께 멸망 당하는 것을 거부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2) 약 2:24 ...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

 

사도 야고보는 기생 라합이 2명의 정탐꾼을 여호와의 사자들 (히 : 말라킴)을 접대한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들을 영접한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접한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생 라합의 믿음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을 서로 하나 (히 : 에하드)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성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동의는 합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자신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2) 수 2:18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두 명의 정탐꾼은 라합에게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달아 놓고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붉은’의 히브리어는 ‘샤니’입니다. 히브리어 ‘샤니’가 사용되어진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전에 문설주에 어린양의 붉은 피를 발라진 곳에는 장자가 죽는 죽음의 영이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히브리어 ‘샤니’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막을 만들 때 천과 천을 연결시키는 실을 붉은 실로 만들었습니다 (출 26:1-3). 그리고 제사장의 옷을 만들 때 사용되었습니다 (출 28:4-5). 그리고 나병환자의 집을 정결케 할 때 붉은 실을 사용했습니다 (레 14:48-57). 그리고 붉은 줄에서 ‘줄’은 히브리어 ‘티크바 (소망)’입니다. 그래서 붉은 줄의 끈을 매라는 것은 붉은 줄을 소망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두 명의 정탐꾼이 말한 붉은 줄은 누구를 상징합니까? 예슈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라합과 같은 이방인들이 예슈의 피로 구원을 받아 이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생 라합은 메시야의 계보를 이어가는 믿음의 조상이 되어집니다 (마 1:5). 이처럼 하나님은 이 시대 라합처럼 붉은 줄 되신 예슈아를 기다리고 사모하는 신부들을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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