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라포션 이름 (파라샤) | 모세오경 (토라) | 예언서 (하프타라) | 신약 (브리트하다샤) |
| 코라흐 / 고라 | 민 16:1-18:32 | 삼상 11:14-12:22 | 롬 13:1-7 |
<단락 1> 1. 민 16:1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 (히 : 코라흐)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2.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고라 자손은 출애굽 당시에 많은 부를 소유하였고, 서열도 높았고, 레위 지파로서 장막 봉사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장막을 이동하게 되면서 무거운 짐들을 들고 이동해야 했으며, 자신들은 장막에서 헤드렛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대제사장의 자리에 오르려고 하였고,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결핍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고라 자손은 영적 권위에 대한 결핍이 있었습니다. 영적 권위는 하나님을 머리로 두는 공동체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절 (새 번역) ‘1.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왕이신 하나님이 다스리고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서열과 질서와 권위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 (히 : 토라)에 의해 운영되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가 완벽하기 때문에 그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실수도, 연약함도 많은 리더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보여주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에게 권세를 허락하십니다 (계 12장).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정결케 하시고 거룩한 신부로 단장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둘째, 고라 자손은 하나님께서 맡겨 놓으신 일에 만족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섬기는 특권을 부여 받은 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경험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16장 10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말씀합니다. 충성의 헬라어 ‘피스토스’이며, 그 뜻은 ‘신실함’ 입니다. 그래서 충성은 누가 시켜서 되는 것보다 충성의 대상이 얼마나 신실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명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의지할 수 있으며, 신뢰할 수 있으며, 충성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작은 일을 계속하다보면,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일수록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름부으심의 시작은 작은 것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고라 자손은 작은 것에 충성하는 것을 시시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것 안에서 충성할 때에 임하는 기름부으심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성장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의 규모와 사역이 크고 작음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되며, 모든 사역의 중심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9절에 ‘19.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말씀합니다. 천국에서 작은 자란?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란? 계명을 지켜 행하며 계명을 가르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이유는 신부로 단장하기 위함이며,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함이며, 진리가 우릴 자유케 하기 위함이며,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함입니다. 예레미야 9장 24절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말씀합니다. 우리의 자랑거리는 가장 귀하고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1) 민 16:4 (새 번역) 모세가 이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기도하고 나서
모세는 고라 자손의 말을 듣고 나서 자기를 변호하거나, 방어하거나, 핑계 대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모세는 고라 자손의 뒤에 조정하고 있는 사단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말씀합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가 가장 많이 방해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이 나에게 어떠한 유익이 있는지, 또는 손해가 있는지를 계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시작할 때, 당장 우리에게 주어지는 유익은 많지 않습니다. 그 때, 사단은 우리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나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킵니다. 그 결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하는데 실패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이 지역 가운데 복음을 전파하고, 경배하기 시작할 때, 이 지역과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 어둠의 세력은 벌벌 떨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단과 싸우는 여호와의 군대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즉, 교회는 사단과 영적 전쟁함으로 지역과 도시, 사회의 각 영역과 나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며, 어둠의 나라가 떠나가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모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때까지 의를 위하여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을 알았습니다. 사도행전 14장 22절 ‘...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핍박 (헬 : 디오코)의 의미는 죽을 때까지 올바른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끔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실패란? 예슈아의 십자가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골치 아픈 숙제로 여깁니다. 그래서 죽지 않는 자아의 전형적인 문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안에 계신 예슈아의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아를 예슈아의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된 안식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1) 민 16:12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더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14.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모세는 고라 자손과 손을 잡고 있었던 다단과 아비람에게 거기에서 나와 함께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에게 ‘올라가지 않겠노라’ 말합니다. ‘올라가다’의 히브리어는 ‘알리야’ 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을 만나러 예루샬라임 성전으로 올라갔을 때에 사용됩니다. 즉, 모세는 고라 자손과 250명의 리더들에게 육체의 생각을 내려놓고, 다시 약속의 땅을 향하여 올라가자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의 권면을 거절합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새 예루샬라임 성전을 이 땅 가운데 내려보낼 때까지, 우리는 날마다 ‘알리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예슈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우리 자신을 흔들어 깨워야 합니다.
<단락 2> 2. 삼상 11:15 ...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하나님을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택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는 무리와 인정하지 않는 무리로 나뉘게 됩니다. 이 때, 사울은 암몬의 위협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을 전쟁을 통하여 구원케 합니다. 그리고 사울은 이 전쟁을 통하여 이스라엘 12지파에게 왕의 기름부으심을 받게 되며, 사무엘은 사울에게 모든 권위를 넘겨주고 연설하게 됩니다.
1. 삼상 12:12 ...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13.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암몬 왕 나하쉬의 강력한 리더쉽을 보고 인간 왕을 구한 것은 하나님의 왕되심을 거부한 것이기에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 (재판관)에 의해 대리 통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신 33:2 그가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오시고 ...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4.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령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5. 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수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 한 때에로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을 이스라엘로 칭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과 결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5절에 ‘여수룬의 왕이 있었으니 (히 : 봐이히 비슈룬 멜렉)’의 뜻은 하나님은 여수룬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즉,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신부로 여기셨으며, 이스라엘을 친히 사랑하셨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참고로 4절에 총회 (히 : 케힐라)의 뜻은 ‘교회 공동체’ 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구약에서는 총회라고 하며, 신약에서는 교회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는 예슈아의 십자가 은혜로 야곱의 총회에 속해 있으며, 이스라엘에 접붙여진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왕되심을 거절하고 그들이 구하고 택한 사울을 왕으로 세우길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를 허락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가장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왕이 타락할 경우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타락하여 멸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순종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1) 삼상 12:14.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왕이 자신의 마음대로 백성들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스릴 것을 말씀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매 시대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리더들을 세우십니다. 그리고 리더쉽은 자리가 주어지는 힘과 지위가지고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리더쉽을 가지고 이끌어 가야 합니다. 리더쉽은 낮아짐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것이 그 사람의 성품이 되며, 그것이 그 사람의 영성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영향력은 자리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슈아를 따라갈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질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질서의 결과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한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 배우고, 훈련하고, 깨지면서 다시 복음으로 일어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에 근거한 순종이 되어야 합니다.
(1) 신 17:14 ...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15.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필요로 할 것을 알고 계셔서, 왕의 자격조건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땅에 오셔서 왕이 되실 분의 이름은 누구입니까? ‘예슈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