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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6년 여호와의 달력

4번째 달 : 탐무즈 (Tammuz) / 살아있는 교회 / 안제우 목사

작성자Shalom Jerusalem|작성시간26.06.13|조회수58 목록 댓글 0

https://www.youtube.com/watch?v=OdsNkE3D1nY 

 

 

Ⅰ. 월삭 예배 (ראש חודש : 로쉬 호다쉬,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날)

 

<단락 1> 1. 겔 38:12 ... 지금 사람이 거처하는 땅과 열국 중에서 모여서 짐승과 재물을 얻고 세상 중앙에 거하는 백성을 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세상의 중심을 예루샬라임 성전으로 두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 세계적인 정렬을 예루샬라임 성전을 향하게 하며, 바른 질서를 세우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슈아께서 다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는 곳의 이름은 예루샬라임 성전이며, 하나님께서 집중하고 있는 일에 우리도 집중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개인, 가족, 도시, 나라에 가운데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길 원한다면, 하나님의 질서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가정 가운데 설계하신 질서를 벗어나면,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기름 부으심과 축복이 흘러가질 못합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먼저 그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관점으로 보게 되어졌을 때에는 하나님 나라는 어디를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약속의 땅, 이스라엘 입니다.

 

Ⅱ. 탐무즈 (Tammuz) 월 : 4번째 달

 

<단락 1> 탐무즈월의 히브리어는 ‘헤트 : ח’ 이며, 뜻은 ‘생명과 보호, 양의 울타리 입니다. 히브리어 ‘헤트’는 상형문자로 출애굽 당시 어린양의 피를 문지방과 문설주에 바르라고 말씀한 것과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양의 울타리 안으로 ‘헤트 : ח’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구를 찾아야 합니다. 그 입구는 오직 예슈아를 통하여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해 시작되었으며, 구원받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은 교회 라는 양의 울타리를 만드셨습니다. 교회에서 양들은 목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라나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는 울타리 안으로 적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잘 치고 (중보기도로 파수), 무너진 부분이 없는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이웃 사랑).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고난과 핍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1. 행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첫째,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이유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알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에게 비추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하나님 말씀의 계시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민 6:25). 그리고 여호수아 1장 8절에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사단의 어두운 영역을 흔들며, 영적인 것들을 저항하는 모든 것을 심판하고 제거하십니다 (엡 6:17).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에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권능을 풀어내도록 결정하셨습니다

 

둘째,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교재는 가벼운 사교계를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단단히 결속되는 운명 공동체적 연합인 것입니다. ‘교제하다;의 히브리어는 ’하 히트하브루트‘이며, 그 뜻은 ’연합하다‘ 입니다. 그렇다면, 서로가 다른 우리가 어떻게 연합해야 할까요? 에베소서 4장 4절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장 21절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말씀합니다. 내 자아와 고집을 내려놓고 교회의 주인이신 예슈아께 무릎을 꿇으며, 연합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는 사라지지만, 예슈아를 얻게 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5절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말씀합니다. 예슈아를 나의 왕으로 결정하며, 나의 머리로 두고 있는 교회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기 시작할 때, 그 교회 공동체는 예슈아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서로 사랑하는 것의 시작은 교회 공동체에서부터 입니다.

 

셋째, 서로 통용하고 서로 나누어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통용하다‘ 라는 것은 나의 권리와 소유를 주장하기보다는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나의 것을 기꺼이 공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내 것과 네 것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사람의 욕심과 죄가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사역입니다. 그러나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예슈아의 사랑으로 영혼들이 깊이 연합될 때에만 나타나는 기적입니다. 사도행전 2장 45절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군가의 결핍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형제 자매의 아픔과 부족함을 나의 아픔으로 여겼기에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아낌없이 팔아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이는 억지나 인색함이 아니라, 주님게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자원함으로 흘려보내는 나눔입니다.

 

넷째,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마지막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를 힘쓰자)‘ 말씀합니다. 마지막 때는 결국 성경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중 하나는 교회 모임입니다. 그러나 주님 오시는 때가 되어지면, 각종의 바이러스의 위협에 의해 교회모임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교회 안에는 계속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국가 정부 기관 또는 군부가 신앙과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고 (공산주의), 또는 지진이나 화산 폭발 같은 자연 재해를 통해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없는 날도 올 수 있습니다. 만약에 전기도 끊기고, 인터넷이 끊긴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교회는 이 때를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환란과 핍박 가운데서도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더 열심히 전도하고, 예배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흩어져서 각자의 자리에서도 예배할 줄 알아야 하는 때가 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슈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마지막 대 일어날 일에 당황하지 않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어 ’헤트 : ח‘는 히브리어 ’바브 : ו : 계시‘ 와 ’자인 : ז : 빛, 무기, 자르다‘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헤트’에서 시작된 단어가 ‘비전’ 입니다. 잠언 29장 18절에 ‘묵시 (비전)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말씀합니다. 비전이 없는 사람은 자기 즐거움과 세상 즐거움에 빠져 사람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됩니다. 이것을 성경은 ‘방자히 행한다’고 말씀합니다. ‘방자히 행하다’의 히브리어 단어의 뜻은 ‘벌거벗겨지다, 망하다’ 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7절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말씀합니다. 즉, 빛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말씀 (토라)이 없으면, 가정과 직장과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 못해 벌거벗은 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눈에 보이는데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탐무즈월 (4월), 아브월 (5월), 엘룰월 (6월)은 여름에 속한 달이며, 이 달은 많은 과일들이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뜨거운 여름 태양을 잘 견디며 자란 과일과 곡식들은 가을 절기에 풍성한 추수를 가져오게 합니다. 우리 또한 여름의 기간 (탐무즈월, 아브월, 엘룰월)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끔 하는 사단과 싸워야 합니다. 사단과 싸우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항복해야 하며,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하며, 우리의 손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손을 깨끗이 하라는 것은 거룩한 행함을 의미하며,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것은 생각과 감정을 예슈아의 보혈로 덮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함으로 전신갑주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엡 6:11-17). 그러나 어떤 이는 예슈아께서 십자가에서 사단을 패배시켰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면 승리할 거라 생각합니다. 스가랴 4장 6절에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말씀합니다. 우리 자신은 사단을 무찌르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항복할 때에 마귀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Ⅲ. 하나님께서 이번 달 쓰시는 지파 : 르우벤 지파의 달

 

<단락 1> 야곱의 첫째 아들은 르우벤이며, 그 뜻은 ‘아들을 보라’ 입니다. 이번 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슈아를 바라봐야 하는 달입니다. 특별히 이번 달 토라포션에 핵심 문장은 ‘눈으로 보이는데로 반응하지 말라’ 입니다. 그래서 이번 달10명의 정탐꾼의 잘못된 보고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1. 마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산을 옮기다, 산을 뿌리 뽑는다’ 의 히브리어는 ‘오케르 하림’ 입니다. 히브리어 ‘오케르’의 뜻은 ‘뿌리를 뽑는다’이며, 히브리어 ‘하림’의 뜻은 ‘’ 입니다. 즉, 사람의 지혜로는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인생의 거대한 산과 같은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평지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이 ‘산을 옮기다’의 뜻입니다. 그래서 산을 평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열쇠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스가랴 4장 7절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성전 재건이라는 거대한 산이 가로막고 있었으며, 그들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인해 거대한 산이 평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앞에 있는 산이 아무리 높아도,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면 그 산은 무너져 내릴 평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예슈아는 ‘제자들의 믿음이 작다’ 라고 질책하십니다. ‘작다’의 헬라어는 ‘올리고 피스티아’이며, 헬라어 ‘올리고’의 뜻은 ‘작다’ 입니다. 이는 단순히 부피가 작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요동치며, 결핍된 상태를 말합니다. 즉, 환경의 날씨가 좋으면 하나님을 찬양하다가도, 조금만 바람이 불어오고, 경제적인 위기가 오고 인간관계에 금이 가면 온 영혼이 사정없이 흔들립니다. 이 상태가 믿음이 작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예슈아는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서 이 산을 명령하여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겨자시 또한 매우 작습니다. 하지만 겨자씨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씨앗은 땅속 어둠에 갇혀도, 거친 비바람이 불어도 요동치지 않습니다.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자라납니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황을 뚫고 나가 거대한 나무가 됩니다. 그래서 진짜 믿음은 상황을 보지 않습니다. 상황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지갑이 비어있어도, 우리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도, 우리의 앞길이 캄캄한 산으로 막혀 있어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슈아를 바라보며 중심을 지키는 믿음이 바로 산을 옮기는 겨자씨 믿음입니다.

 

Ⅳ. 성경에 나오는 이번 달 사건들

 

<단락 1> 1. 겔 8:14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에스겔 선지자는 환상 중에 여인들이 예루샬라임 성전에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들이 담무스를 위해 애곡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 갈 때에 그들의 언어와 종교와 역사를 다 버리고, ‘담무스’를 태양신으로 섬기게 됩니다. 참고로 ‘담무즈’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바벨론이 세운 ‘니므롯의 아들’ 입니다 (창 10:6-12).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담무스가 부활해야 가을에 다시 비가 내리고, 이듬해 봄에 대지가 다시 푸르러지며 농작물이 풍성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 하나님을 만나는 예루샬라임 성전 안에서 이방 신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명기 8장 17절에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밤낮으로 수고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닫으시면 땅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은혜의 결과입니다.

 

1) 겔 1:1 서른째 해 넷째 달 5 (2026년 6월 20일)에 ...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2. ...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우리는 탐무즈 월에 예배를 드리면서 하늘이 열리는 것과 권능의 영 (돌파의 영)을 경험하게 되며, 하나님의 형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이 열리고, 권능의 영을 구하는 이유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공급자로 알기 원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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