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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자녀의 삶

11강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에 동참하기 - 6

작성자Shalom Jerusalem|작성시간26.06.06|조회수45 목록 댓글 0

https://www.youtube.com/watch?v=qjA7RzPhXuk 

 

 

11강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에 동참하기 - 6

 

<단락 1> 1. 고전 1:27 ...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릴 성령으로 사로잡아 사용하실 때에 우리는 뭔가를 하려고 애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릴 사용하고자 하실 때에 그 사람의 나이, 학벌, 재정 등이 전혀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우릴 단숨에 정상으로 끌어 올려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인 (열매) 것입니다. 그 과정 가운데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영적 갈급함이 우리의 심령 안에 깊이 자리 잡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은 한 번에 한 단계씩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밑바닥에서 정상으로 훌쩍 뒤어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16절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리라’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슈아를 먼저 알았고 율법도 가졌지만, 예슈아를 거부함으로 나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중 되었던 이방 민족은 예슈아를 맞이함으로 먼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상 기준으로 늦었거나 부족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진심으로 돌이키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서 앞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고 계시는 위대한 일에 우리 자신을 드리기를 소망한다면, 우리는 영적 급성장이 일어날 것입니다.

 

시편 42편 1절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말씀합니다. 사슴은 체내에 열을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물을 자주 먹지 않으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영혼이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점점 메말라 죽게 됩니다. 그러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우리에게 예슈아를 주십시오. 예슈아가 없이는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방법은 우리의 영적 갈급함입니다. 이 때, 성령님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갈망함에 반응하고 역사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함을 더욱 타오르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데 어떠한 배고픔도 느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일까요? 우리가 교만함으로 배를 채우면 어떠한 배고픔도 느기지 못하게 되며, 그 결과 육체의 욕심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4장 7절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말씀합니다. 운동이 사람의 식욕을 자극하는 것처럼 경건의 연습은 우리의 영적인 식욕을 증대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나라를 선교하거나 여행하면서 많은 음식을 맛보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먹어보지 않은 음식이기 때문에 그 음식을 경계하고 싫어합니다. 물론 우리 모두 싫어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싫다고 맛조차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식성을 제한시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다 보면, 그 음식이 맛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즐기게 됩니다. 또 다른 예로 차를 운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핑계를 대면 운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운전 연습을 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좋은 곳으로 여행할 수 있으며, 급한 일이 일어났을 때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후천적으로 개발시킬 수 있는 기호 식품이 있는 것처럼 영적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아 안 자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1장 9절에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릴 당신의 보좌로 직접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 때, 우리는 ‘, 주님’ 하면서 반응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지친 일상에서 활력과 재미와 쉼을 얻기 위해 텔레비전과 게임을 합니다. 그러나 남는 것은 결국 공허함뿐입니다. 또 목회자의 설교를 듣기 위해 예배에 참석하지만 이 또한 공허함만 남습니다. 물론, 이러한 설교와 가르침은 우리의 덕을 세워주고 신앙의 지식을 넓혀 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그 분의 음성을 듣게 되었을 때에 우리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는 우리 안에 있는 불평과 불만, 갈등과 미움, 모든 두려움을 내어 좇습니다. 이것이 ‘예, 주님’의 대답함의 비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면, 즉시, 온전히, 기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순종의 히브리어는 ‘샤마’이며, 그 뜻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다’ 입니다. 그래서 순종의 첫 시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은 하나님과 더 큰 친밀함을 낳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합니다. 우리의 순종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증거이며, 그 사랑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깊은 친밀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순종은 우리의 믿음을 요동치지 않게 하는 기초가 됩니다. 마태복음 7장 24절 ‘24.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말씀합니다. 예슈아의 말씀대로 순종한 자와 순종하지 않은 자 모두 다 인생의 폭풍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나는 그 폭풍을 견딜 수 있는가’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쌓아 놓은 기초는 과연 비바람과 홍수를 견딜 만큼 강한가?’ 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 10절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말씀합니다. 무익한 종은 주인이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일을 맡겨도 절대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 일을 당장 할지 말지, 기분이 내킬 때 할지 말지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 일을 할 뿐입니다. 마태복음 25장 23절에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무익한 종에게 당신의 영광의 자리에 동참하길 원하십니다.

 

둘째, 우리의 생활 방식을 단순화 시켜야 합니다 (정렬). 하루는 24시간이며, 1시간은 60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물리적인 세계의 초침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헬라어로 ‘크로로스’ 라고 하며, 이는 물질적인 시간을 뜻합니다. 그러나 예슈아의 재림의 때가 가까울수록 영적 세계의 시간 (헬 : 카이로스)은 엄청난 가속도가 붙게 될 것이며, 우리는 이 가속도에 올라타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의 시간은 부족하며, 매 순간이 금과 같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복잡했던 관계와 일들을 제거하고 정렬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지 하나님께 우리의 미래를 맡겨드릴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을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 ‘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 (경외함)으로 지내라’ 말씀합니다. 나그네의 특징을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나그네의 삶은 단순하며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합니다. 둘째, 나그네의 삶은 세상에 안주할 곳이 없어도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합니다. 이들은 잠시 후에 사라지게 될 땅의 것을 바라보지 않고, 영원한 것을 바라봅니다. 우리 또한 곧 사라져 버리는 세상의 것을 구하는데 우리의 기도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그 의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나그네의 생각은 단순합니다. 생각이 복잡한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정말 이루어질까? 이루어지지 않을까? 될까? 되지 않을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육체의 생각안에 갇혀 있다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생각이 단순해 지기 시작합니다.

 

셋째,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이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박국 2장 14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이 일이 일어나도록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관심이 없는 것과 싸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자주 이 땅에서 배운 지식으로 인해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데 제약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3장 18절 ‘18. 그 땅이 어떠한지 정탐하라 ...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 33. ...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 말씀합니다. 약속의 땅으로 파견된 12명의 정탐꾼 중에 10명은 그 땅을 바라보며 정확한 보고를 하였습니다. 실제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무기, 전쟁전략, 여러 가지 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 강했습니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꾼이 가장 큰 실수를 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선포하지 않은 것입니다. 즉, 10명의 정탐꾼은 진리에 반응한 것이 아니라 사실에 반응한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 거부 사건의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의 징벌을 받게 되었고, 약속의 땅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받은 자가 있습니다.

 

민수기 13장 30절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말씀합니다. 갈렙은 불평 불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용하게 하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그리고 노아는 아직 이 땅에 오지 않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였지만, 이 땅의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노아의 가족들은 노아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고,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쉼과 안식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시편 122편 6절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말씀합니다. 현재 예루샬라임 성전의 상태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인해 혼돈과 분열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50% 이상은 이스라엘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예루샬라임 성전의 평안과 사랑을 선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샬롬의 왕이신 예슈아께서 다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실 것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신랑 예슈아와 영원히 살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방법을 가지고 동일하게 가정, 직장, 교회, 이 나라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며, 하나님께서 부흥을 일으키실 것을 담대하게 선포하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1장 19절 ‘19. 그의 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슈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린 힘과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시는 힘과 권세와 능력을 우리의 삶 가운데 풀어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6절 ‘16. ...이 복음은 ...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말씀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슈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끊어졌던 하나님과의 깊고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어졌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세상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4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말씀합니다. 교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을 보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믿어야 합니다. 믿는 것 안에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어졌을 때,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에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시편 19편 1절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말씀합니다. 다윗은 하늘을 바라보며 놀라운 영적 비밀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늘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의 영광과 위대하심을 외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궁창 (해, 달, 별들)’이 하나님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들의 변화, 즉 월삭과 개기일식과 개기월식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우리 또한 이 땅에서 샤밧 (우리의 모든 일을 멈추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시간)과 월삭 (우리의 계획을 멈추고 하나님의 계획으로 돌아가는 시간)과 절기 (하나님의 시간표를 통해 예슈아의 재림을 기다리는 시간)를 지킴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편 19편 4절에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를지라도 서로 통하게 되며, 그의 말씀은 세상 끝까지 이르게 되어 온 열방을 통치하고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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