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이 예배일이므로 안식일 예배 회복은 잘못인가?
거듭난 이후 그리스도인들이 초기 단계에서부터 빨리 깨달을 수 있는 진리들 중의 하나는
바로 로마서 12장에서 언급된대로 그들의 삶 전체로 드리는 것이 예배이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일주일내내, 평생 내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쉬는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날이 안식일입니다.
로마서 12 장
1 그러므로 형제들아,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내가 너희를 권면하노니 너희 몸들을 살아있고, 거룩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희생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의 합당한 예배이니라. 2 너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너희 생각의 새롭게함으로 변형되어져서, 너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완벽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함에 이르라.
세상을 좇아 우상종교가 정해준 날짜 일요일에 예배하고 모이는 것이 세상을 본받지 아니하며 새롭게 변화된 삶으로 예배드리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완벽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함에 이르는 것이겠습니까?
모든 날이 예배일이므로 어느날에 예배하든 왈가 왈부하지 말라는 분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1)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날들이 안식일입니다. 또 매일 매시간 매순간 예배를 마음 속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2)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일주일에 7일동안, 매순간, 매시간 모여서 함께 모임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할수도 없습니다.
(3) 그러므로 그런 이유로 예배요일을 왈가왈부 하지 말라는 분들은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동문서답이거나, 올리브와 사과를 비교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4) 개인이 모든 날에 예배하고 있는가와 모임의 예배요일의 문제는 별개입니다.
모든날, 모든 사람이 계속하여 평생동안 쉬지 않고 한 자리에 모여 예배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5) 신약모임들의 예배는 구약의 희생제사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은 안식일에 어린양으로 희생제사를 드렸으며, 진설병을 교체하여 배설하였습니다. 그 모든 희생제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벽히 영원한 효력으로 십자가에서 성취하셨습니다.
(6)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그분의 피흘리심과 죽으심을 갖고 나아가는 제사장들입니다(벧전 2:9, 계 1:6, 5:10)
(7) 매주일의 희생제사는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에 이루어졌습니다. 신약에서는 일요일로 바뀌었다는 가르침을 찾아볼수 없습니다.
(8) 계시록 1장 10절에서 말하는 주의 날은 안식일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며, 그분은 일요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9)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캅은 안식일에 체포되어 큰 안식일에 처형되었으며 살았을 때 안식일의 예비일에 준비하였다고 기록들은 전합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말한 주의 날은 안식일임이 분명합니다.
(10) 사도행전 20장 7절에서 말하는 안식후 첫날 저녁은 토요일 저녁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예배하고 오후에 쉰다음 저녁, 두 저녁들 사이, 곧 토요일의 끝인 저녁과 일요일의 시작인 저녁 사이를 합달라라고 부르고 새로운 한주를 시작하기에 앞서 가정집들에 초대되어 애찬을 가졌습니다. 그것을 합달라 모임이라 불렀습니다. 바울은 다음날 아침, 일요일 아침에 여행을 떠났습니다.
(11) 고전 16장 2절은 안식일들중의 하나에, 자기집에서 저축하여 특별헌금을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날에 모임에 나와서 예배하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12)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토요일 대신 일요일에 모였다는 말도 성경에서 찾아볼수 없습니다. 오히려 고전 11장 26절은 < 주의 죽으심을 오실때까지 전하는 것이라> 하셨지, 부활을 오실때까지 전하는 것이라 하시지 않았습니다.
(13)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하셨다는 증거도,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자신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시점이 일요일 새벽이었다는 뜻입니다.
(14) 성경기록시대 이후의 역사는 주후 140년경 마르시온파에 의해서 최초로
유월절 대신 부활절 행사 시도가 있었으며 그외에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산발적으로 일요일 예배를 시도한 흔적들이 보입니다. 그러나 다수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예배일은 363년의 라오디게아 공의회 이전까지 안식일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15)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은 실상은 카톨릭 공인이었으며, 기독교 최대의 모임들이었던 도나티스트들은 그때로부터 2년이 못되어 무자비한 탄압을 콘스탄틴 치하에서 받았습니다. 도나티스트들은 오늘날의 침례교도에 해당됩니다.
(16) 콘스탄틴은 321년 3월7일 존경스러운 무적의 태양의 날에는 모든 공무원이 휴무를 취할 것을 포고하였는데 농민들에게는 약간의 예외를 허용하였습니다. 콘스탄틴은 죽을때까지 태양신을 숭배한 사람이었으나 카톨릭의 세례를 죽기 전에 받았습니다.세례 받은 후에는 죄를 지으면 안된다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17) 콘스탄틴의 공휴일 선포이후, 로마 카톨릭의 로마 감독 실베스터는 일요일이 바로 주의 날이라고 말함으로서 콘스탄틴의 공휴일 정책을 인정하고
카톨릭 교인들이 그에 따르도록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무렵이었습니다.
(18) 363-364년 터키의 라오디게아에서 열린 공의회에는 약 30명의 감독들이 참석하였는데, 그들은 일요일에 예배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결의하고 토요일 안식일에 예배하는 자들은 유대교와 율법주의에 회귀하는 것이므로 그들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아나떼마를 선포하였습니다. 그 근거로 율법아래 있는 자는 저주아래 있는 것 (갈3:10) 이라는 말을 인용했을 것입니다.
(19) 그 이후에도 안식일 예배 모임들은 상당수 존재하였으나 차츰 쇠퇴하였고, 세월이 흐를수록 안식일에 모이는 예배모임들은 자취를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20) 로마 교황 그레고리 1세는 603년에 선언하기를 앞으로 적그리스도가 온다면, 그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아도나이)이시라는 말에 정반대됩니다.
(21) 로마 카톨릭은 성경 어디에서도 예배일이 일요일이라는 말을 찾아볼수 없다고 시인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문명세계의 거의 모든 교회들이 일요일에 예배하게 된 것은 자기들의 공헌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22) 카톨릭이 그렇게 예배요일을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바꾼 것은 성경을 따른 것이 아니라, 교황의 교도권, 즉 교황은 하느님의 대행자로서, 지상에서 하느님의 일을 행하며, 하느님의 율법을 변경시키거나 폐하거나 개정할 수 있는 권위와 권한을 갖고 있기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23) 그러한 카톨릭의 예배요일에 순종하여 일요일 예배가 정당하다고 하는 것은
교황이 하느님의 대행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교황의 권위와 권한이 하나님의 율법보다 우위이며, 하나님이 정해놓은 예배의 시기를 우상종교의 교황이 그 우위에 있어서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교황을 하나님보다 우위에 놓는 것입니다.
(24) 일요일 예배에 대하여, 아무 날이나 어떻겠느냐? 일요일이 공휴일이기 때문에 그 날을 이용하여 모인다, 하는 것은 악을 용인하고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본회퍼의 말을 잠시 빌리면, 악의 면전에서의 침묵은 악입니다.
왜냐하면 교황의 권위가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예배일을 바꿀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5) 모든 날이 예배일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은 안식일을 특정하여 인자는 안식일의 주 (아도나이)이시니라(마가 2:27) 하셨습니다. 그분은 인자는 부활한 이후로는 안식후 첫날 곧 일요일의 주이시니라, 하시지 않았습니다.
(26) 사도 요한은 모든 날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들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특정한 한 날을 지명하여 주의 날이라고 하였습니다(계 1:10) 그날이 안식일임은 이미 설명되었습니다.
(27) 구약시대에 모이는 모임을 에두트, 또 모여진 모임 또는 만남을 모에드라 하였습니다. 그것은 시간과 장소와 방법을 정해놓고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만남을 말하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은 그냥 무턱대고 아무날이나 아무때나 아무렇게나 만나시는 분이 아님을 구약을 깊이 공부한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28) 구약에서 성막을 오헬 모에드, 라고 불렀으며, 또는 미쉬칸으로도 불렀습니다. 미쉬칸은 단순히 성막이라는 뜻입니다만, 오헬 모에드란, 만남의 장막, 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시간과 장소와 방법을 정해놓고 만나는 장막이라는 뜻입니다.
(29)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실 때 인간들이 지켜야 할 방법은 바로 빈손으로 나아가서는 안되며(출 23:15, 34:20) 그것은 돈이나 헌금을 갖고 오라는 말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와 죽으심을 의지하여 그것을 믿고 기억함으로, 그 피를 갖고 하나님께 가까이 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30)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분명히 예배받으시는 요일이 정해져 있었으며 그것은 안식일이었던 것입니다.
(31) 사도 바울은 안식일마다 기도 모임을 가졌으며 (행 16:13) 안식일마다 설교하였습니다(행 17:2, 18:4) 안식일에 설교한 다음 다음날인 일요일에 모이도록 하지 않고, 다음 안식일에 다시 모여 설교하였습니다.
(32) 그러므로 다시 확언하거니와 예배요일이 성경안에서는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바뀐 적이 없습니다.
(33) 예루살렘에서 모인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은 안식일에 읽혀지던 모쉐의 경에 대해 말할 때 그 안식일의 모임이 변경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행 15:21)
(34) 사도행전 15장에서 사도와 장로들이 언급한 지시사항은
우상을 멀리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바로 예배요일을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변경시킨 사람들은 우상들의 제사장들이며, 그들의 우상교 정신에 따라서 일요일로 바뀌었음은 이미 설명된바와 같습니다. 일요일 예배에 굴복하는 것은 우상제사장이 자칭 하느님의 대행자라고 하면서, 존귀하신 우리의 하나님의 율법을 바꾸고 변개시킬 권위와 권한이 있으며 우상제사장이 그점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변경시킬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35) 그러므로 우상교에서 제정해놓은 일요일 예배가 옳다거나 침묵하며 따르는 것은 우상제사장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보다 위에 두는 것입니다.
안식일 대신 일요일에 예배함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예배요일을 우상교 제사장들이 바꾼 것을 인정하고 승인하는 것이 됩니다.
(36) 우리는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길수 없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푸른 나무아래에서 아세라 목상을 놓고 섬기던 풍습이므로 그것을 축제로 행사할 수 없듯이, 일요예배는 안식일 예배로 변경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도 비진리는 비진리입니다.
(37) 당신이 아무날이나 예배일로 어떠랴? 하시면서 안식일 예배에 반대하신다면, 일요일 예배에 대하여 그렇게 항의해보셨습니까? 그렇지 않으셨다면 그만큼 세뇌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38) 그러므로 모든 날이 예배일이므로 안식일 예배주장은 공연한 율법주의라는 비판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모든날이 예배일임을 여전히 믿으면서도, 안식일에 예배할 수 있고, 일요일에 예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39) 모든 날이 개인적 예배일인것과 안식일이 모임의 공식, 공적 예배일임은 전혀 별개의 사안입니다. 안식일에 모임 예배를 갖고서도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평생 내내, 일주일 내내, 214시간 내내,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습니다.
(40) 끝으로 꼭 한마디 더 추가한다면, 안식일에 예배하지 않고, 일요일에 예배한다하여 구원을 잃는다거나, 일요일에 예배한 사람들의 신앙고백이나 저술들은 읽을 필요가 없다거나, 일요일에 예배한 사람들보다 안식일에 예배한 사람들이 항상 우위라는 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가 더 믿음생활에 충실하였는가는 하나님이 종합적이고 입체적이며 영적이며 실질적인 여러 행실들을 보시고 판단하실 문제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이 원래 성경적인 예배일이었다는 것과 일요일 예배로의 변경에 우상제사장들이 관여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신념에는 변합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죽을때까지 해결하지 못한다 해도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성령님께 합당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의탁드리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만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시고 실행해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율법준수믿음이란 인간이 율법을 준수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께서 그 길을 가도록 성취해주실 것입니다.
주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분들에게 풍성히 임하기를 하나님께 의탁드립니다. 아멘.
2015. 1. 8 하토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