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이 읽은 책 '서울도시계획이야기 1권' 중 박흥식의 남서울 신도시계획안 전말 중
박흥식에 대해 서술한 부분을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
박흥식이 차리고 박길룡이 설계한 화신백화점은 과연 민족자본으로 세운 한국인 건축가의 기념비적인 대표작으로 찬사받아 마땅할까요?
1.기업가 박흥식과 불광 - 수색 신도시 계획안
박흥식의 일생
○ 1903년 8월 6일 평안남도 용강 출생 (2천석 부농의 외아들?)
○ 1920년 5만원 자본으로 인쇄업 시작 (18세)
○ 1926년 경성 황금정 (현 을지로)2가 180번지 ‘선일지물’ 종이회사 차림 (식산은행 일부 임대, 24세)
○ 1932년 5월 자본금 100만원으로 (주) 화신상회 인수, 화신백화점 차림 - 1932년 7월 화신상회 옆 건물에 있던 동아백화점 상호와 경영권을 인수
○ 1934년 전국 300여 잡화점을 화신연쇄점으로 모집, 선정 (식산은행에서 3천만원 대부함, 현가 1천억정도 추산)
: 일본의 생산공장에서 저가로 수입한 물품을 공급, 물품전시하는 견본시장, 창고를 통해 상품선정, 주문체제운영
: 일제 침략행위에 적극 참여한다는 서약을 의미함
○ 1935년 1월 화신백화점 화재, 270평 가량 전소
○ 1937년 10월 연면적 이천평, 지하1층 지상6층으로 새 건물 준공 (조선총독부, 식산은행,보험회사 적극협조로)
:설계 박길룡, 제1급 친일파가 지은 화신백화점은 조선민족 전체의 자랑?
* 근,현대건축 역사연표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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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
○ 소련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 헌법 채택 ○ 스페인 인민전선파 내각집권후 내란 발발 ○ 중국 시안 사건 ○ 迷國 루스벨트 대통령 재선 ○ 작가 루쉰, 막심 고리키,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 ○ <라이프> 창간 ○ |
○ 안익태 <애국가> 작곡 ○ 일제의 황민화 정책 강화 ○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 <동아일보> 일장기 말살사건 ○ 좃선사상범 보호관찰령 공포 - 현 남한 존두환 군사정권에 의한 ‘사회관찰보호법’의 초기형태 ○ 신채호(뤼순감옥) 사망 ○ 1935년 경성재건그룹 검거(박진홍체포)
○ 1936년 이재유체포,경성재건그룹 60여명 |
○ 3.26. 좃총, 경성부시가지계획 공포 (좃총 고시180호) ○ 배달준 출생 (북한 건설기술전문 행정관료, 현 북한 국가건설위원회 부위원장) ○ 김재철, 경성고공 건축과 졸업 / 좃총 취직 ○ 박동진, 좃총 영선계 ‘기사로 계급(?) 상승 ○ |
○ 부산시청사 ○ 명치좌 (영화상영 전용극장 / 설계: 카와자와 건축사무소) ○ 경성 일출공립 소학교 ○ 보성전문학교 도서관 (현, 고려대 / 박동진) ○ 중앙고등학교 본관-2 (박동진) - 1934 화재로 재건축 ○ 임가장빌딩 (유원준) ○ 화신백화점 (박길룡 /12.4.완공) |
○ 창씨개명 : ‘조선인 개개인 충성심의 발로‘라는 총독부의 계략에 의해 친일파중 박흥식을 포함 몇을 의도적으로 제외
○ 1945년 해방후 화신무역(주) 설립 - 홍콩과 같은 지역에 해산물, 인삼, 흑연 수출함
○ 1947년 흥한피복(주) 설립, 장학재단 흥한재단 설립
○ 1949년 ‘반민족행위처벌법’으로 구속, 3개월 후 병보석으로 풀려남, 1949년 9월 무죄선고
: 무죄선고이유 - 어려웠던 일제하 겨레의 상권을 수호하고 민족자본 육성의 기수로서 한민족의 긍지와 명예를 떨침, 그러므로 친일파로서 기소는 편파적이었음
○ 한국전쟁후 화신백화점 불탄 자리 옆 (현재 제일은행 본점 자리) 신신백화점 신축하여 재기함
○ 1961년 박정희군사 쿠데타 부정축재혐의로 구속?
○ 1962~1966년 흥한화섬 (비스코스 인견사공장) 실패
○ 1980년 10월 300억원 부도로 화신그룹 도산으로 종로구 가회동집 177-1번지 처분 (대지900평, 건평120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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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철거된 친일파 박흥식의 동상
▲ 2001년 12월 철거된 박흥식의 동상. 광신학원은 동문회의 건의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동상을 전격 철거했다. 서울 관악구 소재 광신고교는 지난 2001년 12월 말 이 학교의 설립자 겸 초대 재단이사장을 지낸 친일파 박흥식의 동상을 철거했다. 이 학교의 이사장은 박흥식의 아들 박병석씨.
이에 앞서 민족문제연구소 관악동작지부 회원 등은 학교 앞에서 박흥식의 동상철거를 요구하며 수개월에 걸쳐 시위를 벌였다. 학교측은 결국 고심끝에 동상을 철거키로 결정하고 이같은 사실을 민족문제연구소측에 통보한 후 그해 말 철거했다. 학교측은 박흥식의 동상이 동문회 기증 형태로 세워진 것을 감안, 동상 철거문제에 대한 모든 결정을 동문회에 위임했으며, 동문회는 다시 회의를 통해 동상을 철거키로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박흥식 동상 이외에도 교육계 친일전력자들의 동상이 더러 철거된 바 있다. 지난 2000년 7월 서울 중앙여고는 일제말기 제자를 정신대로 내보낸 황신덕씨의 동상을 철거한 바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