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공간의 역사

[펌] 종로통(鍾路通)이라고 할 때 '통(通)'은 원래 무슨 뜻일까?

작성자들 풀|작성시간08.04.17|조회수212 목록 댓글 0

'중앙통..시장통...'

30-40대 엄마아빠의 표현을 들으며 자란 초딩 조카놈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 단어를 쓰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는 놀라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했습니다.

 

통(通), 정(町), 정목(丁目)이 일본식 행정지명 중의 하나인 것으로만 막연히 알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차분한 분석과 설명을 발견하여 우리 까패에도 소개합니다. 

 

퍼온 곳은  '일그러진 근대 역사의 흔적'이라는 다음까페( http://cafe.daum.net/distorted )인데요

이곳 주인장은 오마이뉴스 기자이시기도 합니다.

바보근성에서 눈여겨 살펴볼 소중한 자료들이 참 많습니다.

짬나실 때 한번 마실 다녀오시길...

-------- * --------

 

 

 

종로통(鍾路通)이라고 할 때 '통(通)'은 원래 무슨 뜻일까?

 

 

<경성부사> 제2권 (1936)

(293~294) 경성부의 시가에 관해서는 이조 국초 이래 부내에는 5부(部) 49방(坊)으로 구분되었고,

여기에 계(契), 동(洞), 기타의 명칭이 있었으나, 해가 지남에 따라 각종의 공칭(公稱), 속칭(俗稱)이 생겨나고

여기에 일본거류민단(日本居留民團)이 명명(命名)했던 공칭도 섞여 서로 착종(錯綜)이 혼란하여 거의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함에 이르렀다. 

 

융희 4년(1910년) 임시토지조사국 관제(臨時土地調査局 官制)가 제정되면서, 경성시가와 기타 시가지는

명치 45년(1912년)부터 대정 2년(1913년)의 사이에 정리를 완결했는데, 경성에 있어서는 좌기(左記)의 6항(項)을 방침으로 삼았다.

 

1. 정동(町洞)의 구역은 원칙으로 하여 구역주의(區域主義)를 가미할 것.

2. 경복궁(景福宮)을 중심으로 삼아 사방(四方)으로 정(町)·동(洞)의 방향을 정할 것.

3. 남북(南北)으로 걸쳐있는 대로(大路)에 접한 구역을 통(通, 토리)으로 하고, 기타는 모두 정(町)·동(洞) 등의 명칭을 부여할 것.

  단, 종로(鍾路)는 별도로 정, 동의 명칭을 부가하지 않을 것.

4. 동일구역으로서 일본 조선 양측의 명칭이 있는 경우에 있어서는 그 일본명이 민단(民團)에서 상당한 권한에 의해 부여된 것일 때는 그 일본명에 따를 것.

  단, 민단에서 부여했던 것일지라도, 그 보통에 사용되지만 도로를 사이에 두고 그 정명(町名)을 달리하는 것과 같은 경우에는

도로를 낀 양정(兩町)은 이를 동일칭호에 따라 정리할 것으로 하며, 비교적 널리 행해지고 있는 어느 일방의 정명에 따를 것.

 더욱이 이 경우에 정명의 하나가 민단에서 부여한 일본명으로서 보통 사용되고 있는 것일 때에는 그 정명에 따를 것.

5. 양구역이 교차하는 경우에 있어서 교차지역은 그 중요한 구역의 명칭에 따를 것.

 

이리하여 지형에 따라 도로, 하천, 구거 등을 고량하여 그 구역을 결정하고, 지역의 명칭은 이를

정(町), 동(洞), 통(通), 로(路)의 4종(種)으로 하여 구래의 360개를 정리하여 186개로 하였다.

이 가운데 로(路)로 칭한 것은 종로(鍾路)의 하나였을 뿐이다.

 

통(通)이라고 칭한 것은 

광화문통(光化門通, 코카몬토리), 태평통(太平通, 타이헤이토리), 남대문통(南大門通, 난다이몬토리), 의주통(義州通, 기슈토리), 삼판통(三坂通, 미사카토리) 및 한강통(漢江通, 칸코토리)의 6개소가 있었는데,

이들의 명칭 및 구역은 대정 3년(1914년) 4월 1일에 결정되었다.

이 명칭은 단지 지적상(地籍上)의 명칭이었을 뿐만 아니라 민적(民籍), 기타 일반의 호칭이 되어

경성부의 시구는 이로써 시작되어 획연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지번(地番)에 관해서는 종래의 자번호(字番號)라는 것이 있어서 천자문자(千字文字)를 순차대로 집어서 여기에 숫자를 부가했던 것이다.

 

이 법은 통상 일부군(一府郡)을 단위로 삼아 객사(客舍)를 천자 일호(千字 一號)로 하고 순차적으로 그 기호를 붙여나갔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착란이 되어 토지조사국(土地調査局)의 지적조사 때에 지번은 한 동(洞)을 일괄하여 일필지매(一筆地每)에

순차로 이를 부여하였던 것이며, 경성부에는 대체로 정(町)·동(洞)의 동북(東北)에서 순차로 지번을 부여하고,

큰 정(町) 또는 통(通)에 있어서는 다시 이를 정목(丁目, 쵸메)로 나누어 정목마다 지번을 부여하였는데,

정목(丁目)은 우선 경복궁에 가까운 부분부터 시작하여 차례대로 먼쪽으로 나아감을 법으로 삼았다.

 

다만, 도로(道路), 구거(溝渠), 하천(河川) 등에 대하여는 지번을 부여하는 것이 드물었다.

그리하여 지번(地番)은 정(町), 동(洞)의 명칭과 마찬가지로 단지 지적상(地籍上)의 번호에만 그치지 않고

민적 호번(民籍 戶番), 기타 일반에 이를 사용하여 지번과 호번과는 상호 어긋남이 없는 것이 되었다.

 

(정리 : 2008.4.4, 이순우, http://cafe.daum.net/distorted)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