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아티스트
박보나
일상과 예술의 경계, 상황적 퍼포먼스
박보나 작가의 작업실에 마주 앉아 가장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무엇을 하는, 어떤 아티스트인지. 영상의 한 조각, 설치의 한 단면, 퍼포먼스의 한 상황 등 인터뷰 전 수집할 수 있었던 사진 몇 컷으로는 작가의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장르도 매체도 어느 것 하나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었기에 툭 터놓고 물었다.
하지만 예술적 상상력을 구현하는 도구는 작가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적어도 박보나 작가에게는 그랬다. 그녀는 영상, 사운드, 설치, 퍼포먼스 등 매체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이 갤러리라는 공간적 개념의 틀을 깨고 전시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새로운 관람 태도를 제안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런 자신을 두고 상황적 재현을 하는 아티스트라고 했다. 그리고 이후 모든 이야기가 장르와 매체, 현실과 예술을 가로지르는 상황적 재현이 무엇인지에 대한 한 방향으로만 향했다.

어느 블로거가 제 작업을 ‘상황적 퍼포먼스’라고 표현한 것을 본 적 있어요. 많은 사람이 퍼포먼스라고 하면 으레 춤이나 음악 등 공연적 퍼포먼스를 떠올리지만, 저는 주로 상황적 재현을 토대로 한 설치 작업이 많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을 말해드립니다 1(I tell what you believe 1)]에서는 관객을 안내하고 작품을 지키는 배경 같은 존재인 갤러리 도우미들에게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는 탭댄스 슈즈를 신게 했죠. 작품을 통해 점잖고 정적인 전시 공간의 리듬을 깨고 분위기를 환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신발마다 각각 ‘I’, ‘tell’, ‘what’, ‘you’, ‘believe’ 등 작품명을 구성하는 다섯 단어를 따로 새겨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관객들에게 보이는 단어가 재조합되게 했어요. 이처럼 갤러리에 전시되는 저의 작품들은 대체로 그날 그 현장에서 완성이 돼요. 갤러리라는 특정적 공간에서 펼쳐지는 일상에 미묘하게 예술적 의도를 가미해 상황을 살짝 비틀기 때문에 현실과의 경계가 모호해요. 누군가는 제 작품을 금세 눈치채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인지하지 못한 채 돌아가기도 하죠. 많은 사람이 그 상황 역시 하나의 작품임을 알아봐 주면 좋겠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그 역시 제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현실과의 모호함 속에 존재하는 것이 제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학부에서 인문학을 전공했어요. 이후 현대 미술을 공부하면서도 회화나 조소 등 전통적인 매체는 익숙하지 않았기에 개인적으로 재미나 매력을 느끼지 못 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현대미술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시점에서 솔리드한 고체에 집착하기보다 시대적 상황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그것을 미술적 문맥에 맞게 표현할 수 있는 저만의 또 다른 매체로의 확장을 선택한 거죠. 그리고 미술도 결국 소통이라는 내용적인 측면도 반영되었어요. 제가 어떤 결과물을 생산해내면 그것을 읽는 관객이 있듯 사회적이거나 관계적인 소통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고 싶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시 공간 그리고 상황, 문맥을 작품에 반영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작업하고 싶은 주제가 생기거나 전시 일정이 정해지면 인터뷰, 취향 조사 등 그 공간과 사람에 관한 리서치부터 시작하죠. 그리고 전시 맥락을 대입하고 그 틀 안에서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매번 주제를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는 적합한 매체를 뽑아내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형의 작품이 아니므로 갤러리에 들여놨을 때 작품 간에 어떤 관계가 생길지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봉지 속 상자(The box in a plastic bag)]는 어떻게 진행된 작업이었나요?](https://img1.daumcdn.net/relay/cafe/R400x0/?fname=https%3A%2F%2Fncc-phinf.pstatic.net%2F20140818_73%2F1408338832669LUPj3_PNG%2Fq03.png)
전시 오프닝 전, 전시에 참여하는 또 다른 작가들과 큐레이터 그리고 목수와 미술관 사무실 관계자들에게 설문지를 돌렸어요. 그들의 저녁 식사 취향부터 누구와 함께 먹을 것인지, 심지어 치아 건강 상태에 이르기까지 디테일한 항목들에 대한 응답을 받았죠. 그리고 전시장 인근에 있는 마트에서 그들이 집에 돌아가서 저녁을 지어먹을 수 있도록 장을 본 다음 오프닝 리셉션 날 음식재료가 든 주황색 비닐봉지를 2시간에 걸쳐 손에 들고 있게 했어요. 이 작품은 한국과 뉴욕에서 두 번 전시되었는데, 특히 뉴욕의 경우 전시회 오프닝의 참석자들이 하나같이 정장 차림으로 갖춰 입고 오는데, 그 격식 있는 차림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노란색과 주황색 비닐봉지가 그 무리 안에 배치되어 시각화되면서 기품 있는 공간의 흐름을 깨뜨렸어요. 그뿐만 아니라 하나의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그 이면에서 일하는 무수한 사람을 눈에 띄게 공적인 장소로 불러냄으로써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을 드러낼 수 있었죠. 사실 당일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많아 비닐봉지가 묻히는 듯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나중에 촬영된 사진으로 확인하니 여기저기서 주황색 봉지가 눈에 잘 들어오더라고요. 제목은 뒤샹의 ‘가방 속 상자 (La boîte-en-valise)’에서 차용한 것이고요.

노동 관계, 계약 관계, 협업 관계 등 예술 작업을 완성해가는 과정도 사회 구조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요. [2’33”]에서는 그랜드피아노가 놓인 전시장에 전문 피아니스트를 고용해 두고 닳아빠진 음악 중에 하나인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고 싶을 때 연주해달라고 주문했어요. 누군가가 일부러 부탁하거나 제가 등장했을 때와 같이 그녀가 중요하게 여긴 몇몇 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연주를 하지 않더라고요. 대부분의 시간 그녀는 책을 펴놓고 공부하거나 독서를 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넓지 않은 전시장에 놓인, 상대적으로 큰 그랜드피아노와 그 앞에 앉아 있는 피아니스트는 관객들에게 굉장히 지루하게 느껴졌을 거예요. ‘돈을 얼마나 받길래 온종일 저렇게 앉아 있나?’ 라는 생각을 한 사람도 분명 있었을 거고요. 작가가 퍼포먼스를 고용하고 무언가를 지시하면 그들은 고용되었기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견뎌내야 하는 지점이 있죠. 바로 그 모순적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 목표였어요. 함께 전시된 [쉽게 끝나지 않는 순간(Indestructible moment)]도 마찬가지예요. 구두닦이 아저씨가 제 구두를 닦는 퍼포먼스인데, 메트로놈 소리를 넣어 전시장에 틀어두고 저는 전시 오프닝에서 그 영상 속 구두를 신고 다녔어요. 누군가가 내 작업을 위해 시간을 들여 노동을 하지만 결국 그 빛나는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은 저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현대미술은 곧 지금의 이야기인 듯해요. 작가가 지금의 상황이나 현상을 포착하고, 여러 가지 감각으로 표현해 낸 결과물인 셈이죠. 그럼에도 관객들이 현대 미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경험할 기회가 적었던 탓이 아닐까 싶어요. 익숙하지 않은 매체에 대한 생소함에서 비롯된 막연한 낯섦이 어려움으로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죠. 하지만 현대미술이 동시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기에 흥미롭고 대중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만한 지점이 있어요. 둘러보면 우리 주변 곳곳에서 좋은 현대 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어요. 관객들이 열린 마음으로 갤러리에 가서 충분한 정보와 시간을 가지고 작가의 생각과 의도를 고민해 본다면, 분명 현대 미술을 좀 더 즐겁게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글 전수희 / 문화예술전문기자
추천의 변
토탈미술관 신보슬 큐레이터에 의해 소개되는 박보나 작가는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이다.
현대미술에서의 작가는 더 이상 화가나 조각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많은 작가들은 특정 매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면서 글도 쓰고, 연기도 하고, 상황을 만들기도 하며, 첨단 테크놀로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작가들의 활발하고 광범위한 작업은 종종 관객들을 당혹스럽고 현대미술이 어렵다는 편견을 공고히 하기도 한다. 하지만, 박보나의 작업은 관객을 곤혹스럽게 하기보다, 긴장을 풀어주고, 행복하게 만든다. 거창한 장치나 어려운 설명이 아니어도 관객은 쉽고 자연스럽게 작가가 만든 세팅안으로 들어와 작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하고, 작가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예를 들어 [봉지 속 상자]는 전시를 만드는데 도움을 준 목수, 큐레이터, 디자이너들에게 설문지를 돌리고, 설문을 바탕으로 무대 뒤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저녁 장거리를 마련하여 오프닝 날 당사자에게 전달했다. 전시를 보러 와서 찬거리를 받아가는 낯설지만 행복한 상황, 찬거리가 담긴 봉지를 든 사람들로 가득한 오프닝 풍경은 분명 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박보나의 작업이 단순한 이벤트에 그치지 않는 것은 작업구상의 바탕에 깔려있는 치밀한 예술사적 맥락이다. 뒤샹과 만레이 등 선배작가들의 훌륭한 작업이 그녀에게 늘 영감이 되기 때문에 단순한 상황 안에서도 계속 무언가 곱씹어보게 하는 맛이 있다.
박보나는 그런 작가다. 굳이 그럴싸하고 근사하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고, 자신이 작업을 하는 환경과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시선을 건낼 줄 아는, 그러면서도 주어진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그런 작가. 그래서 박보나의 작업은 엉뚱하지만 즐겁고, 즐거우면서도 뭔가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추천인 신보슬 / 헬로!아티스트 작가선정위원
작가 소개
박보나
서강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이후 전공을 바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 예술을 수학했으며, 영국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수료했다. 이탈리아와 대만 등의 국제 레지던시를 포함한 국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2013년 뉴욕 뉴뮤지엄 트리엔날레에 한국 작가 대표로 참여하는 등 국내외 다수의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www.bonapark.co.uk)

![박보나,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을 말해드립니다1 (I tell what you believe 1)], 2014년](https://ncc-phinf.pstatic.net/20140818_62/1408329416623vIVwt_JPEG/3.jpg)

![박보나, [봉지 속 상자(The box in a plastic bag (La boîte - en - sac plastique))], 2010-2012년](https://ncc-phinf.pstatic.net/20140818_198/1408329462728Ju2xW_JPEG/5.jpg)
![박보나, [2’33”], 2013년](https://ncc-phinf.pstatic.net/20140818_143/1408329484876UlT2C_JPEG/6.jpg)
![박보나, [쉽게 끝나지 않는 순간(Indestructible moment)], 2013년](https://ncc-phinf.pstatic.net/20140818_290/14083295099388NH29_JPEG/7.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