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스토리
앤드루 와이어스
처음으로 백악관 개인전 연 화가
[ Andrew Newell Wyeth ]
| 출생 - 사망 | 1917.7.12. ~ 2009.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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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단순한 것부터 먼저 봐야
사물을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저 포지션이 적절한가? 내가 이 오브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느낌과 같은 것을 표현하는가? 그런 생각이 언제나 마음속에 있습니다. 심지어 밤에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런 꿈을 꿉니다. 그저 앉아서 사물이나 인물을 요모조모 포지션을 바꿔 가며 연구만 해도 내 상상이 노니는 공간이 아주 야들야들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종이 한 장, 패널 하나를 구해 이리저리 위치를 바꿔 가며 대봅니다. 어떤 사이즈가 나올지는 전혀 모르죠. 우표딱지만 하게 될 수도 있고, 12피트짜리가 될 수도 있고. 미리 정해 스스로 옭아매지 않습니다.
그림이 타당한가 아닌가는 썩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정말요.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 다른 작가들한테는 중요하겠지만. 하지만 나는 내 세계가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 옭아매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위촉 작품도 안 해요. 물론 해보기야 했죠. 그때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판박이로 정해져 있는데, 나는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거든요.
아버지는 [크리브너 클래식] 시리즈 삽화를 하셨지요. 그러다 상업그림으로 빠져 럭키스트라이크 담배, 코카콜라 같은 걸 하셨는데, 다 시키는 투였어요. 이래라, 저렇게 해라…. 난 화가 났죠. 아버지같이 훌륭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저렇게 얽매여 있다니… 나는 절대로 그런 상황에 들어가지 않으리라고, 그러느니 차라리 그림을 관두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런 작업 하는 사람을 업신여기지는 않아요. 그럴 수 있다는 게 놀랍다뿐이지.
몇 달씩 되도록 이거다 하는 게 안 보일 때도 있습니다. 영감이라는 것이, 눈앞이나 저기 고속도로에서 나뭇잎 하나만 날려도 떠오르기도 합니다. 일단 필이 꽂히면 막가는 겁니다. 영감이라는 건 또 말로 하려면 참 허황되고 거짓말 같기도 합니다. 사랑을 하는 것하고 비슷하달까. 어떨 땐 되고, 어떨 땐 안 되고. 왔다 싶으면 온 거고. 가만히 앉아서 뭘 할까 생각하는 일, 그런 일을 몇 번 해봤는데, 싫더라고요.
아버지가 내 유일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아주 엄격하셨지요. 매형인 피터 허드가 맥아더 장군이 교장일 때 육군사관학교를 다닌 사람인데, “육사도 힘들었지만 자네 아버지한테 배우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했습니다. 재밌죠. 가차없고, 직설적이고. 아버지 말씀에 항상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아버지의 지적은 옳았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사람 머리가 나를 쳐다보는 걸 그리다가 이 조그맣게 반들거리는 것까지 다 그려 넣다 보니 좀 지나치게 됐지요. 아버지가 들어오시더니 “앤디야” 하시고선 맨엄지로 팔레트에서 황토색이랑 똥색을 묻혀서는 그림자를 다 단순화시켜 버리셨습니다. “너는 사물을 보면서, 실제보다 더 복잡하게 하고 있어.” 이런 식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놀라웠죠. 간단한 것을 먼저 봐라.
아내 몰래 그린 ‘헬가 누드 시리즈’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예술가한테는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아내 베치와 나는 매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베치한테는 힘들었으리란 걸 알고 있어요. 나는 뭘 그리든 절대로 자유가 필요했으니까. ‘헬가 시리즈(1970년부터 1985년까지 15년 동안 헬가를 모델로 그린 누드 시리즈)’를 그릴 때 베치는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베치도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나는 평소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 좀 벗어나고 싶었는데, 결혼하고 애까지 딸린 독일 여자를 데려와 옷을 벗게 하고 내가 시키는 대로 온갖 자세를 취하게 한다면 베치가 기분이 상할 거라 생각했지요. 절대로 자유. 내 아버지가 그랬듯 내 아내도 나를 옥죄어 오기 시작한다는 느낌을 나는 받았고, 좀 벗어날 필요가 있었습니다. 결혼은 엄청난 일이어서, 일단 지켜야 할 몇 가지 윤리가 있습니다.
나는 아주 강하고 지적인 여자하고 결혼했습니다. 아내는 내 작업의 열렬한 옹호자입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둘 다 젊고, 결혼은 했고, 그림은 그려야겠는데 형편은 어렵고, 베치도 형편이 어렵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고.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일을 좀 맡겨 보겠다고 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순전히 상상으로, 플라타너스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걸 그린 겁니다. 아버지께 보여 드렸더니, “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텐데… 좋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부를 건데?” “천 달러요.” “절대 못 받을 거다.” 그렇게 그림을 갖고 편집장한테 가서 책상 옆 바닥에 깔아 줬더니, 편집장이 가서 사람들을 몇 데리고 오더니 같이 보았죠. “얼마면 되겠습니까?” “천 달러요.” 편집장이 자기 자리 쪽으로 손을 뻗더니 책상 위 뒤편에 세워 놨던 종이를 구겨 버리더라고요. 나는 속으로 ‘앗싸!’ 하고서, “그건 복제하는 값이고, 그림은 내 겁니다” 하고는 집으로 왔습니다. 이 그림을 천 달러에 팔았다는 데 아버지는 짜릿해 했고, 아내도 “너무 좋아” 했습니다.
후에 전화가 왔는데 편집장이에요. “우리 모두 당신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일 년에 열 개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표지 그림을 맡기려고 합니다.” 베치가 나를 보고 말했습니다. “그거 받아들이면, 나, 완전히 떠날 거야. 당신 절대 화가 못 돼.” 게임 끝. 거절했지요. 그 그림은 지금 톨레도 미술관이 갖고 있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편집장이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매직 리얼리스트’ 전시를 보고, 내 그림이 최소한 6, 7천 달러는 나갈 줄 알았다네요. 그 전화 한 통이 나를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나에게 맞지 않았고, 베치는 그런 나를 알았죠.
이제까지 그린 ‘헬가’ 그림을 다 모으던 날을 기억합니다. 우리 방앗간 갤러리 2층에다 모아 놨는데 드로잉이랑 페인팅 다 해서 250장 되더라고요. “베치, 사실은 말야….” 그동안 한 일을 얘기했더니 충격 먹은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는 2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못 그리기만 했어 봐라!”
자신을 믿으세요. 사랑을 믿으세요. 무언가를 사랑하세요. 무언가를 깊이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강대국으로서, 미국과 미국이 상징하는 것을 내세우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려면 이 길밖에 없습니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난 비극이라고 봐요. 집에 틀어박혀 어릴 때부터 늘상 보던 것만 그리라는 게 아니라, 현실의 본질은 무언가를 깊이 사랑하는 데 있다는 겁니다. 나는 그렇게 믿어요. 외국에 가서 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본질은 그대로 갖고 다니는 겁니다. 사랑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센티할지 모르지만 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뭇잎 하나, 나뭇가지 하나, 말똥 한 덩어리, 뭐를 그리든 상관없어요. 그것이 드리우는 그림자조차 멋들어질 수 있습니다.
앤드루 와이어스 (Andrew Wyeth) - 화가
1917~2009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 유명한 삽화가인 아버지로부터 정식 미술교육을 받았다. 주로 수채와 에그템페라를 사용했으며, 1937년 메인 주 포트클라이드의 가족 여름별장 주변을 그린 수채화 개인전을 필두로 일련의 성공적인 개인전을 가졌다. 생존 당시 현존 화가 중 가장 소장가치 높은 작가로 꼽혔으며, 1970년 미술가로서는 처음으로 백악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1988년 미 의회 명예훈장 수훈.
출처
제공처 정보
글·사진 앤드류 쥬커만 사진작가, 영화감독
1977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다. 2007년 8월부터 2008년 5월까지, 65세 이상의 세계의 명사(名士) 60명을 인터뷰하는 ‘위즈덤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인터뷰와 사진을 60분짜리 동영상 DVD와 함께 [Wisdom 위즈덤]으로 7개국에서 출간했다(한국판 샘터 刊, 2009). 영화 [High Falls](2007우드스탁 영화제 최우수 단편영화상), 저서 [Creature](2007) 등이 있다. (이경희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