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인류】발효빵의 첫 페이지를 연 위대한 베이커들〈고대 이집트인〉 - 권력의 상징이자 노동의 대가, 저항의 불씨인 천연 발효빵
작성자뿡어님작성시간16.01.22조회수336 목록 댓글 0
“뭘 찍으러 왔다고요?”
“빵이요. 빵 찍으려고 왔어요.”
이집트 공항부터 길이 막혔다. 나는 ‘빵’이라는 단어를 연신 강조했지만 현지 담당자는 경계태세를 풀지 않았다. 촬영허가를 위해 관청으로 안내하면서도 ‘얘들 뭐야?’라는 의구심어린 표정이었다. 공항 창밖으로 집채만 한 장갑차들과 기관총을 든 군인들이 보였다. 계엄령이 풀리면서 가까스로 비자를 받아 도착했지만 카이로는 여전히 위태로웠다.
몇 번을 확인하고서야 촬영허가가 떨어졌다. 관청 담당자의 동행을 조건으로(단순 동행이 아니라 감시가 목적이다). 덕분에 골목 풍경 하나도 마음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그런데 더 기막혔던 건 촬영비용이었다. 3시간 촬영에 우리 돈 몇 백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요구했다. (삽시간에 수상한 취재진에서 제 발로 굴러들어온 ‘봉’ 신세가 된 듯했다.) 불안한 나라 정세와 경제 위기가 사람들의 마음마저 박하게 만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찬란한 인류 문명의 발원지를 따라가는 거대한 여정의 첫 걸음. 나는 피라미드가 처음 태어났다는 카이로 남쪽의 사카라 고분으로 향했다.
제빵 레시피가 정교하게 새겨진 파라오의 미용사 ‘티의 무덤’
사카라 고분에는 이집트학을 전공하다가 이집트 남자와 결혼까지 한 후 아예 미국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고고학자 니콜 한센 박사(Nicole Hansen)가 있었다. 우리는 함께 ‘티(Ti)의 무덤’이라 불리는 고분 속으로 들어갔다. 좁은 통로를 따라 작은 방들이 이어져 있었다. <인디아나 존스>나 <미이라> 같은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묘사된 황금으로 된 벽과 휘황찬란한 보석이 가득한 무덤은 그저 현대인들의 상상일 뿐 실제 무덤 속은 흙 천지에 협소하고 어두컴컴했다.
여러 개의 방을 지나 드디어 거대한 벽화가 눈앞에 펼쳐졌다. 벽화 속에는 빵을 만드는 방법이 마치 요리책에 쓰인 레시피처럼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 정도의 정교한 묘사라면 티의 직업은 제빵사나 요리사일 것 같았다.
“지금 우리는 티의 무덤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티는 부자였고, 왕과의 관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어요. 그는 왕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파라오의 미용사였습니다.”
“네? 여기가 미용사의 무덤이라고요?”
“당시의 관점으로 보면 미용사는 가위를 들고 왕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사람, 신처럼 받들어지는 파라오의 몸에 손을 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지요. 그만큼 특권도 많았습니다.”
사후 세계를 믿었던 고대인들에게 무덤을 짓는 일은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것과도 같았다. 재력과 권력을 쥐고 있던 티는 현생에서 누렸던 모든 것을 사후 세계에 가져가길 원했다. 그 욕망은 5천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벽화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그림은 빵을 만드는 장면이다. 실제로 티의 무덤은 이집트에 남아 있는 무덤 중 빵에 대한 묘사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곳 무덤에 묘사된 빵은 피라미드가 지어지던 고왕국 시기에 인기가 있었던 종류입니다. 남자가 곡식을 옮기고 있네요. 아마도 곡물 창고에서 에머 밀((emmer wheat) 을 옮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두 명의 남자에게 주는데, 이들은 나무 절구와 막자로 곡식을 갈고 있어요. 토기를 데우는 장면도 있죠. 오늘날 오븐을 미리 달구어 놓는 것과 같은 이치죠. 다음 단계에서는 여자가 체질을 하고 있네요. 그 옆에는 걸러낸 가루로 반죽을 하는 여성도 보이고요. 그리고 빵을 굽기 시작하는데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있어요. 불이 너무 뜨거워서 보호하려고 했던 거겠죠.”
제빵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티의 벽화는 장식을 위해 그려진 것이 아닌, 죽은 자를 위해 진짜 빵을 만든다는 확신으로 무덤 속에 건설된 또 하나의 빵굼터처럼 보였다. 무덤 어딘가에서 티의 영혼이 5천 년의 세월을 숨죽여 지켜보며 빵을 굽고 있을 것만 같았다.
곡식을 재배하고 토기에 빵을 굽는 5천 년 전 인류의 모습은 오늘날의 우리와 같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티Ti’는 고대 이집트어로 ‘빵’을 뜻하는 단어다. 티의 무덤은 빵의 무덤인 셈이다.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와 가장 중요한 먹거리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혹, 그 시대의 빵은 음식 이상의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것은 아닐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서둘러 무덤 밖으로 나왔다.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만들었던 노동자들의 집단 거주지, ‘데이르 엘-메디나’
어린 시절부터 고대문명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는 테드 브룩(Ted Brock) 박사는 30년 전 고고학 전공 학생으로 처음 이집트를 방문했다. 그리고 니콜 한센 박사처럼 이집트가 좋아서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 왕가의 고분을 전공하는 그를 이집트 서안에 위치한 룩소르 신전(Temple of Luxor)에서 만났다. 룩소르 신전 뒤편, 메마른 계곡에 가려진 집단거주지, ‘데이르 엘-메디나(Deir El-Medina)’ 일명 ‘노동자의 마을’에 남겨진 빵의 과거를 되짚기 위해서였다.
“이 마을은 신왕조 시기의 왕과 왕비의 무덤을 장식하고 만들었던 노동자들이 살던 곳으로, 이집트 18왕조인 기원전 1570년부터 신왕조인 기원전 11세기까지 존속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무덤이 완성될 때까지 고립된 채로 살았는데, 왕과 왕비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지요. 비밀스러운 곳인 만큼 접근이 제한되었을 겁니다.”
지상보다 낮은 곳에 조성된 마을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입구에는 망루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파라오나 귀족들의 무덤과 달리 이곳은 그 시대 평범한 사람들이 꾸려가던 공동체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당시의 일상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연구되고 있다. 거주지였던 만큼 이곳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공동 부엌이다.
“굉장히 압축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방이 여기 있죠. 뒤에는 맷돌 기구가 설치되어 있고요. 그 뒤로 벽을 지나 흙벽돌로 된 구조가 아마도 화덕이었을 겁니다. 마을의 화덕은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죠. 각 가정에서 곡물로 반죽을 만들어 베이커리에 가져가면 그곳에서 공동 화덕을 이용해 빵을 구워주었습니다.”
빵을 만들어 먹기 위해서는 곡물을 기르고, 수확한 후 저장을 해야 하며 가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누군가는 가루를 빻을 맷돌을 만들어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빵을 굽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먹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마을을 위한 조건이 형성되는 셈이다. 빵으로 인해 마을이 조성되고 마을 덕분에 빵의 지속적인 생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푸드 스트라이크, 빵 파업
빵은 음식의 근원이었다. 그래서 노동의 대가가 되기에 적합했다. 이는 피라미드를 건설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일 배급 형태로 빵과 맥주가 피라미드 노동자에게 지불되었다는 기록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먹거리를 넘어 노동의 대가가 된 빵은 그래서 저항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람세스 3세 재위 27년. 정부가 제대로 급료(빵)를 주지 않자 노동자들의 파업이 시작됐다. 인류 최초의 푸드 스트라이크라 평가 받는 고대의 빵 파업. 파라오와 같은 강한 권력 하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이 가능했을까. 테드 박사는 당시 신전을 짓던 노동자들의 지위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고대 이집트의 왕과 왕비의 무덤과 같은 중요한 기념물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 필요성이 보통 사람보다 많은 권력과 자유를 갖게 하고, 그들의 안전을 담보해주었습니다.”
그로부터 2000년 후인 1970년, 이집트에서는 이른바 ‘빵 폭동‘이라 불리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빵과 정의’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시위는 정부가 보조하는 빵의 가격이 갑자기 오르자 삶의 근간인 빵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원전 16세기 노동자 마을에서 벌어진 빵 파업의 구호는 그렇게 시대를 넘나들며 이어졌다. 최근 이집트 소요사태도 정부의 빵 보조금에 그 원인이 있었다.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빵이 얼마나 핵심적인 존재인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막 한복판에서 전통요리 연구가의 손으로 재현된 고대 이집트의 발효빵
이집트의 고대 천연발효빵을 재현했던 아이다호의 효모 전문가 우드 박사의 집에서 맛보았던 빵의 풍미가 떠올랐다. 반갑게도 이집트 전통요리 연구가 마그다 메흐다비(Magda Mehdawy)가 기원전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용했던 빵굼터에서 당시의 빵을 재현해주었다. 그늘 한 점 없는 사막 한복판에서 마그다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반죽을 빚었다.
“이 빵으로는 맥주를 만들 겁니다. 준비된 반죽은 토기에 옮겨 담을 거예요. 그러면 야생 효모가 햇볕에서 활동하며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하지요. 이렇게 커다란 빵은 겉과 속이 똑같이 익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건 주로 맥주를 만드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고대인들이 어떻게 납작한 빵이 아닌 부풀어 오른 발효빵을 먹게 되었는지 그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들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발효빵을 먹은 주인공들이란 사실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발효는 맛의 진화를 넘어 신의 존재를 느끼는 영적인 체험이었을지도 모른다. 작은 반죽이 여럿이 먹을 수 있을 만큼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보며 ‘기적’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훗날 예수님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였다는 그 기적의 이야기처럼.
“고대 이집트인들은 밀이나 보리와 같은 곡물을 가루로 만들어서 물을 붓고 효모를 넣어 반죽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동안 두어 반죽이 발효가 되도록 했어요. 이를 통해 빵을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반죽을 토기에 담습니다. 토기는 그릇과 뚜껑으로 나뉘어 있지요. 뚜껑은 안쪽의 열을 보호해서 오븐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아래부터 위까지 똑같이 익게 됩니다.”
피라미드 건설이 한창이던 그때, 이곳 빵굼터에서는 빵들이 쉴 새 없이 구워졌을 것이다. 매일 밀가루 반죽들이 효모와 만나 부풀어 오르고, 반죽이 담긴 수십, 수백 개의 토기들이 화덕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파라오가 주는 빵은 수만 명의 노동자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고 이로 인해 파라오는 절대 권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밋밋한 플랫 브레드에 비해 맛과 향, 질감까지 뛰어난 발효빵은 그렇게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전통 빵 ‘에이시’를 만드는 살아 있는 빵의 장인을 찾아서
유적지를 떠나 다시 카이로 시내로 향했다. 최고의 문명을 자랑했던 고대 이집트. 그렇다면 오늘날의 이집트인들은 어떤 빵을 만들고 있을까? 전통 빵 ‘에이시(Aish)’로 명성이 높다는 오래된 빵집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천 년 전의 빵집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오븐이 아닌 거대한 화덕에서 엄청난 양의 에이시가 쉴 새 없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갓 구운 빵의 냄새가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멍하니 서서 그 풍미에 흠뻑 빠져버렸다.
전체 인구가 8600만 명인 나라에서 하루에만 2억 개의 빵을 소비한다는 빵 마니아들의 땅. 에이시는 빠르고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는 이집트인들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난보다 더 얇은 이 빵은 화덕에 넣고 부풀어오르면 바로 빼내야 한다. 대개 화덕에서 금방 나온 빵을 두 겹으로 탁 벌려 그 속에 야채나 고기 등 기호에 맞는 음식을 넣어 먹는다. 물론 그냥 빵만 먹어도 그 풍미가 깊고 진하다. 이 담백하고 구수한 빵에 홀려 넋을 빼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수북하게 쌓인 에이시 뒤로 액자에 걸린 코란(Koran)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부여한 양식 중 좋은 것을 먹어라.’
매일 아침 이집트인에게 건강한 빵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빵집 주인의 철학이 엿보이는 구절이었다. 나는 빵집 주인 함디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이집트인에게 에이시는 어떤 빵인가요?”
“이집트인들은 하루 세 번 에이시를 먹습니다. 쌀을 먹거나 국수를 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이시를 먹어요. 에이시라는 단어가 ‘삶’이라는 뜻입니다. 이집트인들에게 에이시가 없으면 삶도 없습니다.”
이곳 빵집은 화덕에서 갓 빠져나온 에이시를 근처 소매점으로 발 빠르게 배달한다. 빵 배달부가 머리 위 가득 에이시를 쌓아 올리고 뛰쳐나가는데 나도 본능적으로 쫓아나갔다. 복잡한 거리 위를 요리조리 피하며 달리는 빵 배달부 뒤로 나와 촬영감독은 함께 달렸다. 그렇게 한참을 쫓아 달리는데 갑자기 거리의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몰려들어 삿대질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굵은 땀을 흘리며 빵을 머리에 이고 시장통을 달리며 배달하는 모습이 이들에게는 외부 세계에 들키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일상이었던 모양이다. 오늘을 사는 이집트인들은 잔뜩 날이 서 있다.
촬영 마지막 날. 힘겹게 이집트까지 와서 피라미드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관광객으로 바글거려야 정상인 피라미드는 텅 비어 있었다. 붉은 빛을 남기며 저무는 태양과 대조적으로 외롭게 서있는 피라미드의 풍경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카메라를 드는 순간 저 멀리 누군가가 쪼르르 달려왔다.
“촬영비용은 한 시간에 팔백만 원이에요.”
“네?!”
이집트 유적 담당관이었다. 한참을 흥정 끝에 간신히 비용을 조정했다. 영원히 빛날 것 같았던 이집트 문명이 그랬던 것처럼, 피라미드의 태양은 곧 사막의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아버렸다. 인류 최초로 발효빵을 만들었던. 그야말로 인류의 식문화사에서 화려한 첫 페이지를 연 위대한 요리인류의 흔적도 어둠 속에 묻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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