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어디서나 틀기만 하면 콸콸 나오는 수돗물.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수돗물을 쓰는 것은 상수도관이 땅에 묻혀서 각 가정까지 연결돼 있는 덕분이다. 그런데 상수도관을 통해 물이 전달되는 중 상당수가 누수 된다. 2012년 한 해 동안 6억2600만 톤의 수돗물이 중간에 샌 것으로 집계됐다. 금액으로는 5100억 원에 달한다. 이러한 낭비를 막으려면 재빨리 누수 지점을 찾아서 복구해야 하는데, 수도관이 지하에 있어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지하에서 새는 수돗물을 귀신같이 잡아내는 전문가들이 있다. 누수탐지사들이다. 이들은 1.2m 깊이에 상수도가 깔린 길 위에 청음봉을 대고, 소리만으로 누수 지점을 찾아낸다. 기계로 찾으면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단다. “기계로 누수 된 구역을 좁힐 수는 있어도, 결국 정확한 누수 지점을 찾아내는 건 사람 귀예요.”
어떤 일을 하나
기자는 누수탐지사를 만나기 위해 충남 논산시의 수자원공사 논산상수도센터를 찾았다. 논산시의 위탁을 받아 상수도를 관리하는 곳이다. 여기에 9년 경력의 누수탐지사 이영우 대리와 4년 경력의 이성호 주임이 일하고 있다. 땡볕이 내리쬐는 날씨에 두 사람을 따라 누수 탐사에 나섰다. 논산의 상수도 길이는 총 900㎞다. 그 긴 구역을 두 사람이 다 책임지고 있다.
누수가 의심되는 지역은 새벽에 파악한다. 누수탐지사들은 논산시를 면이나 동 등 행정구역과 별개로 수도관 보급로에 따라 바둑판 모양으로 갈라 22개 블록으로 나눠 관리하고 있다. 굵은 수도관에서 각 블록의 입구로 연결되는 곳에 계량기가 있는데, 주민들이 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새벽 3시~4시에 계량기 수치가 크게 늘어나는 블록이 있다면, 누수를 의심해야 한다. 밤새 누수 의심지역이 체크되면, 날이 밝은 뒤 두 사람이 출동한다. 그리고 블록 주입부부터 시작해 각 가정에 이르기까지 새는 곳이 있는지 쭉 훑는다. 단박에 누수 지점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꼬박 하루가 걸리는 날도 있다.
현장에 도착한 이 대리는 머릿속에 수도관의 위치를 그린다. 그는 눈을 감고 논산시 지도를 떠올리면, 그 위로 22개의 블록과 수도망이 겹쳐진다고 했다. 그 정도는 돼야, 척하면 척, 누수가 예상되는 지점을 찾아낼 수 있다.
탐사 초반에는 기계가 유용하다. 여러 지점을 동시에 점검해 다른 곳과 소리가 이질적인 곳을 기계가 알려준다. 두 사람이 타는 수자원공사 승합차에는 이런 장비가 여러 개 쌓여 있다. 그 장비 값만 합쳐도 1억 원이 넘는다.
하지만 정확한 누수 위치를 찾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이 대리와 이 주임은 담배 굵기의 관에 길이가 1m가 넘는 청음봉을 바닥에 대고, 귀를 기울여 가만히 들었다. 골목을 지나던 할머니가 두 사람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두 사람은 익숙하다는 듯 할머니께 ‘상수도 새는 곳을 찾고 있다’고 설명 드린 뒤, 작업을 계속했다.
이 곳 저 곳 대보기를 여러 차례, 이 대리가 “여기”라고 외친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걸까. 기자가 한 번 들어봤다. 들리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거예요?”
“전 잘 들리는데요.” 이 대리가 웃었다. 그는 수도관에서 물이 샜을 때 주변의 흙이나 자갈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수도관과 1m 이상 떨어진 도로 위에서 청음봉에 의지해 그 소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기자가 다시 들어봤지만, 역시 귀가 멍했다.
옆에 있던 이 주임이 말했다. “저도 처음 몇 개월 동안은 헤맸어요. 대리님은 들린다는데, 전 안 들려서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있어요. 직접 경험하면서 그 느낌을 찾는 수밖에 없어요.”
두 사람은 콘크리트 바닥에 얇은 구멍을 뚫어 더 정확한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찾아낸 누수 지점 4곳에 파란색으로 물 수자(水)를 표시하고, 상수도 공사 업체에 연락했다.
공사하는 현장에는 누수탐지사도 함께 나간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누수 지점을 잘 찾았는지 파보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대리는 “땅을 파서 누수 지점이 확인돼서 잘 고쳐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고, 이렇게 더운 날 땀을 흘려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하나
2012년 현재 전국에는 총 17만9000㎞의 지방 상수도가 깔려있고, 지방자치단체 별로 지방 상수도를 관리한다. 지자체 별로 상수도의 유수율(상수도가 중간에 새지 않고 주민에게 도달하는 비율)을 높이는 것이 주요한 과제가 되다 보니, 누수탐지사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현재 22개 지자체의 상수도 업무를 위탁받고 있는데, 총 40명의 누수탐지사를 두고 있다. 다른 지자체는 직원들에게 누수탐지를 맡기지만, 전문성은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지자체는 사설 업체에 누수 탐사를 맡기기도 한다.
논산시는 누수탐사를 강화한 후로 54%(2004년)였던 유수율이 10년 만에 85%로 올랐다. 시 입장에선 한해 500만 톤의 수돗물을 아껴 20억 원의 재정을 절약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
“처음엔 논산에 수돗물 새는 곳이 많았으니까, 하루 나가면 4~5곳 새는 곳을 찾아내고 그랬어요. 그때 정말 바빴죠. 지금은 80% 넘어가니까 그래도 좀 여유가 생겨요.”(이 대리)
이 대리와 이 주임은 각각 2005년과 2010년에 누수탐사를 시작했다. 누수탐지사는 특별한 자격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수자원공사나 지자체에서 누수탐사를 담당하면서 일을 시작하게 된다. 두 사람도 누수탐사팀에 속하면서 일을 시작했다. 누수탐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설 업체도 있지만,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는다. 누수탐사는 업무를 숙지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장기간 맡으면서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이 대리도 처음엔 수도관이 어디 묻혀 있는지 충분히 숙지가 안돼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본인만의 노하우를 갖게 됐다고 했다.
논산처럼 여건이 괜찮은 지역의 누수탐지사들이 열악한 지역을 도우러 가기도 한다. 매년 열리는 누수탐사 경진대회가 그것이다. 수돗물 누수가 많은 도시를 지정한 뒤, 전국의 누수탐지사들이 모여 그 곳에서 누수 된 곳을 찾는 것으로 대회를 연다. 실력도 뽐내고, 유수율도 높이는 일석이조의 행사다. 누수탐지사들은 2박3일 동안 모여 각 지방의 노하우도 공유하고, 친분도 쌓는다.
어려움
누수 탐사가 항상 쉬운 것은 아니다. 베테랑도 진땀을 흘릴 때가 있다. 가장 힘든 곳은 수도관 소재가 스테인리스인 곳이다. 금속이라서 물새는 소리 말고도, 다양한 소리가 울리고 뒤섞여 들린다. 근처 가정에서 물을 틀 때 나는 소리가 누수 되는 소리로 잘못 들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최근엔 스테인리스 관이 깔린 블록에서 작업을 하다가 땅을 4번이나 판 끝에 누수 지점을 찾기도 했다. 그 지점을 찾느라 하루를 꼬박 다 보낸 것이다.
비도 누수탐지사들에겐 ‘넘을 수 없는 벽’이다. 비가 올 땐 빗소리 때문에 물이 새는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주임은 “바닥에 물만 있어도 소리가 잘 올라오지 않아서 탐지가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장마철에는 작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표면의 재질도 중요한데,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가 잘 들리고, 비포장도로는 도로가 지하의 소리를 흡수해버려서 탐지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누수 지점을 쉽게 탐지해 내는 비결은 상수도의 연결부위에 있다. 상수도 누수의 80% 이상이 두 개의 상수도관을 연결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특히 연결 지점에서 물이 새는 것을 막아주던 고무링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상수도관의 길이가 10m라고 하면, 시작 지점부터 10m 떨어진 지점들을 차례로 체크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누수탐지사들이 가장 바쁠 때는 겨울이 끝나고 날이 풀리는 3월이다. 겨우내 수축됐던 수도관이 팽창하면서 물이 새는 사고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에는 다른 때보다 수도관 점검도 자주 나간다.
점점 물이 귀해지는 세상이다. 물 부족이 21세기 세계의 화두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현재 한국의 평균 유수율은 83% 정도다.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50~60% 수준에 머무르는 지자체도 많다. 공들여 정화한 수돗물이 새나가지 않도록 지켜주는 ‘수돗물가드’, 누수탐지사들의 활약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