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주일 Fahisoi 제 2일 : Betulau, Hautbititalau, Nameleso
어제는 Bermelau 공소를 방문했고, 주일인 오늘은 베뚤라우, 하비스딸라우, 나멜레소를 방문했다. 참, 아침 9시에 주일 미사는 파히소이에서 함께 했다.
파히소이 주일미사에 모여든 교우들
오전 9시 주일 미사를 파히소이 이곳 공소에서 드렸다. 인근에 사는 교우들 약 300명 정도가 참석하였다. 성가대의 성가도 훌륭했다. 다른 공소에서도 느낀 것인데, 이곳 사람들이 노래를 잘 하는 것은 타고난 자질인 것 같다. 오선 악보도 없는데, 화음도 능숙하게 넣는다. 기교가 전혀 없는 생목소리가 듣기 좋다. 공소 건물 입구에 매달아 놓고 종으로 사용하는 자동차 바퀴의 쇠로된 속부분이 소리도 좋다. 베뚤라오 공소 문 앞에 걸린 폭탄 껍데기 종도 괜찮았다!
11시 30분 경 베뚤라우로 출발했다. 비포장길이 몹시 험했는데, 대략 한시간 반~두 시간 정도 걸렸다고 기억한다. 그곳은 남쪽으로 능선 길을 따라 한참 가다가 아래로 내려가 도달하는 강가에 있었다. ‘산 아래’라 해도 대략 해발 7~800미터는 되는 성 싶은, 작은 분지였다. 거긴 산 위처럼 대놓고 서늘하진 않았다. 강이라고 했지만, 낙동강 상류 내성천 인근을 연상케 하는 큰 내였다. (물론 우기에는 훨씬깊고 넓어지는 강이다) 황신부님의 고향이 상주 인근 낙동강가인데, 회룡포가 이곳과 너무 닮아 여기서 살기로 했다고 말했다. 내 맘에도 썩 드는 곳이었다. 이런 곳이면 수도원이 있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밭농사도 산 위 마을들보다 많이 지었고, 황신부님 말대로 우선 짐승들이 산 위처럼 비쩍여위지 않고 제법 살진 모습이다. 어떻든 내 느낌으로도 전체적으로 산 위보다 더 유복한 곳이며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인 장소인데, 이곳 사람들에겐 잘 실감나지 않는 말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여기는 강을 건너야 하는 곳이라 교통이 불편하며(특히 딜리 방면으로), 전기도 아직 들어오지 않는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을 따라 서북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이곳 Liquidoe 지역 공소들이 소속된Aileu 본당이 나온다. 아일레우는 꽤 큰 도시라고 한다. 공소는 규모가 꽤 컸는데, 이곳 사람들은 여기만 유일하게 개신교 신자가 하나도 없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베뚤라오 공소 측면. 사진 찍은 쪽이 강과 가깝다.
황신부님의 배려로, 사람들이 성대한 환영식을 베풀어 주었다. 예쁘게 단장하고 곤지까지 찍은 아이들이 민속춤을 추었고, 직접 짰지 싶은 영대(같이 생긴 머플러)를 목에 걸어 주었다. 단촐하지만 감동적인 환영식 후 성당 바로 옆 ‘레지덴사’(공소마다 있는 일종의 게스트하우스나 사제관을 그리 부르는듯 했다)에서 커피를 한 잔씩 대접받고 미사를 시작했다. 아래는 환영식 후 사람들과 성당에서 찍은 사진이다.
베뚤라오에서 내게 베풀어준 환영식
미사후 피부병에 걸린 아이를 치료중인 황신부님. 이런 피부병에 걸린 아이들이 많다.
미사 후 ‘레지덴사’에서 밥을 대접해 주었다. 반찬은 상추 비슷한 채소를 잘게 썰어 기름과 소금 등으로 무친 (물기많은) 일종의 나물, 밀가루와 계란과 라면 면발을 섞어 튀긴 일종의 부침개, 이 두 가지뿐이었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
식사 후 황신부님은 베르말레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아픈 사람들에게 약을 발라주고 나누어주는 일을하였다. 특히 아이들이 심한 피부병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감기 환자도 많은데, 타이레놀 한알이면 대부분 다 낫는다고. 신부님이 ‘불법 의료행위(^^)’를 하는 동안 나는 통하지도 않는 말로 ‘카테키스타’(본당 일꾼을 이렇게 부르는 듯했다) 자매님과 성소자들이라는 젊은이들에 둘러싸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히소이에서 현재 필리핀에 보내 공부를 시키고 있는 복자회 젊은이는 두 명인데, 그 외에 약 스무명 정도의 성소자들이 있다고 한다. 조만간 이들 중에서 선발을 하여 파이소이 사제관 옆에있는 성소자용 숙소에서 머물게 할 생각이라고. 성당에 나오는 아이들은 여학생들이 수가 훨씬 많은데, 이렇게 남자 아이들도 꽤 있다.
베뚤라우 미사를 마치고 잠깐 아픈 사람 집을 방문한 후 하비스뚤라오 공소로 갔다. 이곳은 강을 건너오기 바로 전의 언덕에 있는 게, 거리로 보자면 베뚤라우가 눈 아래 보일 만큼 가깝다. 하지만 행정구역이 다르고, 게다가 아마도 강으로 가로막혀 이렇게 따로 공소를 운영하는 것 같았다. 이 공소는 베뚤라우처럼 크진 않다. 규모가 대략 베뚤라우의 반 정도 되어 보였다. 그리고 공소 땅도 협소했다. 이곳에서도 조촐한 환영식을 열어주었고, 역시 영대를 선물로 받았다. 이곳도 미사 후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그러니까, 주일은 밥을 여러 끼(다니는 공소의 수만큼) 먹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로구나… 국물이 많은 채소 샐러드라고 해야 할지, 감자도 약간 든 이 나물 요리가 유일한 찬이었다. 삶은 계란도 있었다. 여기서도 나는 한 그릇을 맛있게 다 비웠다. 인사치레가 아니라 정말 맛도 있었다.
이곳 미사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나멜레소가 있다. 이곳은 파히소이보다 규모가 더 큰 마을이라 보건소도 있는데, 조형균 신부님은 원래 사제관을 여기다 지으려 했다고 한다. 마을 규모로 봐서도그렇고, 지리로 봐도 다른 공소들의 한 중간에 자리잡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땅을기증해주지 않는 바람에 파히소이에 자리잡게 되었는데 지금은 나멜레소 사람들이 몹시 후회한다고.
그런데 하비스딸라우의 경계선이 이 마을과 바로 붙어있어, 거의 한 마을인데도 행정구역이 다른 집들이 있다. 놀랍게도, 오늘 하비스딸라우 공소 미사에 온 사람들 중 꽤 많은 이들이 실제로는 나멜레소인 이 마을부터 산길을 걸어서(차로 걸린 거리를 생각하면 걸어서는 적게 잡아도 두 시간은 걸렸을 것같다) 왔다는 것이다. 그 중 일부를 차에 태워 여기까지 바래다 주었다. 구역이 다르다고 해서 20분 정도 밖에 안걸리는 나멜레소 공소를 두고 그렇게 멀리까지 걸어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잘 모르겠다. 황신부님도 같은 느낌인 듯 했다. 어떻든, 그 먼 거리를 걸어 성당에 오는 데에는 신심과열심이 필요한데, 그건 도시 사람들이라면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
하비스뚤라우 공소에서 내려다보이는 베뚤라오 공소(오른 쪽 끝)
하비스뚤라우 공소에서 해 준 환영식
나멜레소 공소와 사제관. 멀리 첩첩으로 이어진 산줄기들이 보인다.
나멜레소 인근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강변 지역
그런데 나멜레소 공소의 레지덴사에는 한국의 복자회 수녀님 한 분이 와 계셨다. 두 달 전에 이곳에 왔다고 하신다. 아이들 공부방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수녀원에서 이 분을 보내 일종의 사도직 탐색을 하는 중이리라. 남자들에게도 쉬운 곳이 아닌데, 수녀님이 혼자 와 계시니 놀랍기도 하고 살짝 염려가 되기도 한다.
어떻든, 오늘의 방문으로 이제 일곱 군데의 공소 중 파히소이를 포함하여 다섯 군데는 본 셈이다. 이곳산마을 교회의 모습을 가까이서 어느 정도 살펴보기는 했다. 아쉬운 것은, 내가 미리 공부를 못해왔다는 점도 있지만, 모두 세 개의 교구밖에 안되는 이 작은 나라의 다른 지역들에 대해 이번에는 거의 전혀 알지 못하고 만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나라 사제들이나 교회 일꾼들도 만나보고 싶은데, 잘하면 떠나기 전 발리에서 방송국 소임을 한다는 사제 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안토니오 신부님이 소개해준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