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 마광수(1988년 12월) / 자유문학사
2026년 6월 22일 오후 6시 종묘공원, 금빛수다의 책이다.
마광수가 쓴 책머리에 글부터 동의와 비판의 요소가 부딪친다. 마광수는 1951년 생이다. 한국전쟁의 한복판에서 태어났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고 죽는다. 인생은 사랑이다. 사랑은 인민이다. 인민은 하늘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인민은 하나님이며 석가모니, 공자, 예수, 마호메트 등 종교의 절대자 그 무엇이다. 나는 <사랑이 아니라면 분노하고 투쟁할 이유가 무엇이랴> 하는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마광수가 말한 대로 ‘배가 고플 때도, 배가 부를 때도, 자나 깨나 나의 궁극적 관심의 대상은 언제나 사랑이었다.’라고 하는 지점과 맞닿을 수 있다.
젊은 날 한때는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 대해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한 사랑의 방정식 또는 사랑의 이해를 논하기도 했었다. 사랑의 이해는 다양하다. 복합적이다.
마광수는 ‘먹는 문제보다도, 사랑의 문제가 우리의 모든 삶을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나는 점점 깨달아가고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랑이 모든 삶을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사랑은 관능적 욕망 그 자체일 뿐이라는 것, 행복은 오직 관능적 쾌감에서 온다는 사실이라고 하는 부분이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아마, 사랑의 대전제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행복에 관한 개념 규정의 차이까지 이르게 하고 있다.
마광수는 ‘야하다’의 의미를 ‘야(野)하다’로 사용하고 있다. 자연의 본성, 원시적인 정열, 벌거벗은 아프리카 원주민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 등이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해의 영역이다.
마광수는 관능적 영역으로서 ‘손톱’의 이미지를 말하고 있다. 길고 치장한 손톱은 관능적 백치미, 손톱은 원시시대에 가학적 무기로 사용되었을 수 있지만, 이제는 화사한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그로테스크한 관능미의 상징으로 변했다는 점에서 인류의 장래를 밝게 바라볼 수 있는 어떤 희망적인 예감을 얻는다고 하고 있다. 골목마다 네일 숍이 있는 시간을 살고 있다. 마광수가 말한 대로 ‘손톱’뿐만이 아니라 관능미가 멋지고 아름답게 비치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은 이렇게 바뀌었는데 마광수는 ‘즐거운 사라’ 소설 이후 국가 폭력과 교수 집단의 왕따 등을 견뎌내지 못하고 우울증 그리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천재성을 가진 문학 작가를 멍텅구리 교수들과 국가가 희생양의 제물로 삼았다. 마광수가 탄압에 좀 더 담대하고 힘차게 맞섰으면 하는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다.
인간의 가학성이 미의식과 합치되어 아름다운 판타지로 승화될 수 있을 때, 근원적 에너지로서 ‘판타지’는 평화, 전쟁이 없는 세계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관능적 아름다움과 관념적 사랑이 성애적(性愛的) 사랑으로 합치될 수 있을 때, 이데올로기의 질곡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당당한 쾌락 추구에 기초하는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이룰 수 있다고 마광수는 주장한다. 마치 천국에 이르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말과 비슷하게 다가온다. 세상의 복잡성이 어찌 ‘판타지’에 근거한 성애적(性愛的) 사랑으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다만, 개개인의 당당한 성애적(性愛的) 사랑에 대해서는 응원하고 싶다.
차례를 보면 잊혀지지 않는 여자, 솔직한 배설을 위하여, 시와 성, 정신주의와 육체주의, 작은 것도 아름답다, 그 여자의 손톱 6장으로 되어 있다. 재미나게 읽을 것 같다. 마광수와 생각의 차이가 많을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을 것도 같다. 올림픽이 한창이었던 1988년,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의 30대 마광수가 그려진다. <2026. 0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