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의 귀에 비정상적으로 들릴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시간은 돈이야. 이봐, 정말이라구!]
그러나 시간이 순전히 추상적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고서는 요리나 식사
혹은 그 밖의 다른 예술이나 즐거움을 위하여 올바른 정신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일 당신이 시계의 마법에 걸려 있다면 당신에게 현재는 없을 것이다.
[지금]이란 미래가 과거로 되는 기하학적인 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기술을 완벽하게 성취하기 위해서는 이런 영원한 현재의 느낌을
뼈 속 깊이 체득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적절한 [타이밍]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급히 달리지 말라. 빈둥거리지도 말라. 앞서 나가지도 않고
뒤에 처지지도 않으며 음악에 맞춰 춤추는 그런 방식으로 사태의 경과와
함께 흘러가는 그런 느낌일 뿐이다.
개별 존재라는 이런 특수한 생각은 하나의 착각이다.
생명체와 환경의 관계를 연구하는 특수한 학문분야(생태학)는 개별 유기체
와 그의 환경이 에너지의 연속적인 흐름 혹은 장(場)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려 준다. 벌과 꽃에서 새로운 교훈을 생각해 보자.
이 두 생물은 매우 다르게 보인다. 하나는 땅에 뿌리를 박고 향기를 퍼뜨
리지만, 다른 하나는 공중에서 윙윙거리며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가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단일한 생물의
양면이라고 말해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
우리가 뇌, 심장, 폐, 그리고 위를 가져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기, 물, 식물, 곤충, 새, 물고기, 그리고 다른 포유동물도 우리에겐
필수적이다. 앞이 것들이 우리 내부의 기관들인 것과 똑같이 뒤의
것들은 우리 외부의 기관들이다. 만일 그러하다면 우리는 내부의
것들 없이 살아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부의 것들 없이 살아갈
수가 없다. 여기서 간단히 추론해 보면 [나]와 [나 자신] 이라는 단어는
이 양 측면을 포괄해야 한다. 태앙, 지구, 그리고 숲은 당신의 뇌와
똑같이 당신 몸의 일부분이다.
진정한 지성인은 어떤 문제도 강제적으로 행하지 않는 법이다.
진정한 지성인은 폭력을 쓰는 대신 바람을 타고 항해하듯,
결을 따라 나무를 쪼개듯 부드러운 방법을 쓴다.
폭력에 대한 우리의 대안은 바로 이러한 지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