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선택한 곳
제11군이 분리(分離)되어 작전을 펼치더라도 당연히 남부집단군의 여타 부대와 보조(步調)를 맞추어 진격하여야 했습니다.
당시 대다수의 부대들은 키예프 공략에 투입되어 있었기에 루마니아 제3군을 포함한 제11군은 남부집단군 본진(本陣)과의 간격(間隔)은 물론 길게 늘어진 진격로(進擊路) 우측 측면인 흑해 연안 일대를 혼자서 엄호(嚴護)하여야 했습니다.
따라서 소련의 저항(抵抗)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지만 속도를 낼 수 없었습니다.
↑키예프 전투 동안 제11군은 길게 늘어져 드네프르 강까지 전진했습니다
8월 30일이 되서야 소련 제9군, 제18군이 담당하는 드네프르 강 하구(河口)까지 간신히 다가갔습니다.
제11군 사령관 쇼베르트(Eugen Ritter von Schobert, 1883년 3월 13일~1941년 9월 12일)는 소련군을 격퇴(擊退)할 자신은 있었지만 후방(後方)의 키예프와 오데사 점령이 완료(完了)되지 않은 상황(狀況)에서 이곳을 건너 불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합리적(合理的)이었던 남부집단군 사령관 룬트슈테트(Karl Rudolf Gerd von Rundstedt, 1875년 12월 12일~1953년 2월 24일)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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