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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된 안식

작성자평안|작성시간26.06.20|조회수10 목록 댓글 0

마태복음 1128-30

 

멍에의 사회적 의미와 복음의 역설

 

예수님은 안식을 약속하신 뒤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여기서 “멍에”는 헬라어 ζυγός, 쥐고스입니다.

 

멍에는 본래 소나 짐승의 목에 얹어 노동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멍에는 지배, 복종, 노동의 상징이었습니다.

 

구약과 유대 전통에서도 멍에는 어떤 권위 아래 들어가는 것을 상징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제국의 멍에, 종의 멍에, 율법의 멍에라는 표현들이 그런 배경을 가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멍에를 벗어 버리라”고만 하지 않으시고

“나의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본문의 역설입니다.

참된 안식은 아무 권위도 없는 방종이 아니라,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게 배우라”는 말은 μάθετε, 마데테입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배우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초청은 단순한 심리적 위로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자도의 초청입니다.

 

그러나 이 제자도는 정죄와 억압의 체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스승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온유하다”는 말은 πραΰς, 프라우스입니다. 성경적 온유는 약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절제된 힘입니다.

자기 힘으로 타인을 짓누르지 않는 왕의 성품입니다.

예수님은 군마가 아니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온유한 왕이십니다.

 

겸손하다”는 말은 ταπεινὸς τῇ καρδίᾳ, 타페이노스카르디아입니다.

 

직역하면 “마음에 있어서 낮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외적 태도가 아니라 존재의 방향입니다.

예수님은 높은 자리에서 사람을 평가하신 것이 아니라,

지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30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여기서 “쉽다”는 χρηστός, 크레스토스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히 난이도가 낮다는 뜻이 아닙니다.

선하다, 친절하다, 유익하다, 해롭지 않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사람을 망가뜨리는 멍에가 아닙니다.

정죄로 짓누르는 멍에가 아닙니다.

영혼을 살리는 선한 멍에입니다.

 

가볍다”는 말은 ἐλαφρόν, 엘라프론입니다.

예수님의 짐이 가벼운 이유는 제자도의 길에 아무 책임도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도 순종이 있고 자기 부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짐이 가벼운 이유는 주님께서 함께 지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고립의 멍에가 아니라 동행의 멍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안식은 주님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삶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배우는 삶입니다.

 

세상이 지운 정죄의 멍에를 벗고,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선한 멍에 안으로 들어가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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