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흐르지 못하는 강
세월이 흐를수록 당당함은 엷어지는 것 같다.
아침 밥상머리부터 시작된 아내의 잔소리는 끝날 기미가 없었다. 참을성을 시험당하는 기분이었지만 부부간의 예의를 생각해 다리를 떨며 버텼다. 결국 아내가 결정적인 한마디를 내뱉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정말 이러실 거요?” 아내의 설교는 쉼이 없다. '탕아의 귀환'부터 온갖 성경 구절이 쏟아진다. 주일 사수와 술·담배를 끊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기세였다. 나는 입을 꾹 닫았다.
주말이면 아내와 나의 일정은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 나는 지인과의 만남이 우선이고, 아내는 하나님 경배가 최선이다. 아내의 불만이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올 즈음,
'참을 인(忍)' 자가 바닥나기 전에 얼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더딘 조금 첫날이다. 우럭 명당인 간출암 건너편에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갈바람이 스치자, 아내에게 받았던 스트레스가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서둘러 낚싯대를 폈다. 아차, 급하게 나오느라 예비 낚싯바늘과 도구 가방을 챙기지 못했다. 바늘이 없으니 치명적이었다. 갯바위 틈새를 뒤져보았지만 허사였다.
낚시를 포기하고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급하게 흐르는 게 비가 올 징조였다. 30년 넘게 바다에서 살아온 양 선장에게 배운 바다의 언어다. 학꽁치 무리가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며 씁쓸히 군침을 삼켰다.
시선을 돌려 바람도 자고 간다는 닭 섬 끝자락의 낭떠러지를 보았다. 벼랑 끝에 뿌리를 내린 자주색 해국의 웃음이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아름다웠다. 가까이 보고 싶었지만, 절벽이 가파르고 갈매기들의 쉼터라 접근을 포기했다.
문득 식사 자리에서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내는 성경 구절을 읊은 뒤,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알고 있는 건 지식이란 이름의 허울 좋은 쓰레기일 뿐이에요. 이제 다 비워 내세요. 지금 당신이 암에 걸린 건 때가 왔음을 알리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당신을 보면 마치 바다로 흐르지 못하는 강 같아요.”
아내의 고차원적인 핀잔에 식욕이 달아났었다. 언제나 믿음으로 가득 찬 아내의 당당함이 차라리 부러웠다. 가파른 절벽을 보며 아내라면 저 절벽도 믿음으로 오를 수 있을 거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갈등의 본질이 선명해졌다. 아내의 진짜 목적은 담배가 아니라 기도원 동행, 그것도 금식 기도였다. 원래 소식(小食)하지만 4박 5일간 생으로 굶는 것은 암 환자인 나에게 위험한 모험이었다. 통증 없이 병을 고치고 싶다는 얄팍한 계산으로 결국 아내를 따라 오산리 기도원으로 향했다. 수많은 환자가 병을 고쳤다는 곳답게 기도원은 인산인해였다.
우여곡절 끝에 남녀 숙소를 따로 배정받았다. 내가 들어간 방에는 위아래로 12개의 침대가 있었다. 22개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선참인 듯한 남자가 “장로님이신가요?” 하고 물었다. 달콤한 호칭이었지만,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아닙니다. 아내와 함께 온 이태호라는 평신도입니다.” 모처럼 진짜 말만 골라서 했다.
가방을 정리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점심도 굶었는데 저녁부터 먹읍시다.” “아니, 4박5일 금식하기로 했잖아요! 이제 전화하지 마세요. 핸드폰 꺼둡니다.”
뚝 끊겼다. 굶기로 약속한 기억은 없는데, 사람을 굶겨 죽일 작정인가 싶어 눈앞이 캄캄했다.
기도원 매점은 문을 닫았고, 밖으로 나가니 온통 혼자서는 먹을 수 없는 흑염소 구이 집뿐이었다. 터덜터덜 걷다 멀리 반짝이는 24시 편의점을 발견했다. 구세주였다. 사발면 한 그릇에 맥주 한 캔을 비우니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절로 나왔다. 맛동산과 초콜릿을 사 들고 나와 으슥한 곳에서 담배를 피우니 그 순간만큼은 천국이었다.
숙소는 엄숙했다. 살금살금 2층 침상으로 올라가 무료함을 달래려 성경책을 폈다.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건성으로 읽는 척을 했다. 그러다 가방 속 맛동산이 생각났다. 조심스럽게 봉지를 뜯고 과자를 입에 넣어 소리 내지 않으려 어금니로 조심조심 깨물었다. 달콤한 평화가 찾아왔다.
다섯 개째 먹으려는데,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고막을 흔들었다. “아저씨! 여긴 금식하는 사람들 숙소입니다. 바스락거리지 좀 마십시오!” 내가 배정받은 곳이 금식자 전용 숙소일 줄이야. 인간의 ‘무지(無知)’라는 병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 면목이 없었다.
이튿날, 친구 모친상을 핑계로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기도원을 탈출했다. 들통나겠지만 당장 빠져나가는 게 상책이었다. 차 시동을 걸며 본당의 거대한 십자가를 올려다보았다. 마음이 무거워 혼잣말처럼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잘할게요.”
4박 5일간의 금식을 끝낸 아내가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일회용 죽을 데우고 동치미와 간장을 챙기는 모습이, 마치 승리하고 돌아온 개선장군처럼 당당했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아내의 숟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아내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기이한 말들을 중얼거렸다. 말로만 듣던 방언 기도였다. 만약 그 방언을 통역할 수 있다면 아마 이런 문장이지 싶다.
“하나님, 저 철없는 내 남편을 제발 구원하여 주옵소서…….”
*술과 담배를 끊기 전인 15년 전에 쓴 수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