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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신발을 버리며 김명기

작성자이상목|작성시간25.03.14|조회수11 목록 댓글 0

신발을 버리며

 

김명기

 

 

십 년 넘게 신은 신발을 버린다

부리는 대로 몸을 받아내느라

굽은 허리처럼 휘어버린 뒤축과

굵고 깊게 파이고 미어진 상처

비정규직 삶의 몸통을 받치는 동안

재계약하듯 몇 번이나 밑창을 갈고

안감을 덧댔지만 도저히 더는

못 버티겠다고 아가리처럼 벌어진

밑창 사이로 늙은 혓바닥같이

늘어난 양말이 흘러나왔다

바닥이 바닥을 밀며 보낸 세월의 전모가

고스란히 드러났으나 뭉클함보다 앞선

난감함이란 갈 곳 잃고 엉망이 되어

돌아온 수취인 불명의 우편물 같았다

비난할 수 없는 비루함처럼

처참한 것이 어디 있을까

축축한 음지 속을 살아내느라

깊숙이 감추어두었던 지독한

냄새까지 토해내며 어둠 끝에서

불구가 되어버린 내 생의 한 귀퉁이는

이제 불명의 발신자로 세간을 떠돌 테지

신발을 버린다 말끔히 닦아 가혹했음을 감추고

돌아오지 못하게 소인 없는

봉투에 밀봉한 채 더 이상 바닥 같은 것은

만나지 말라고 발을 빼고 버린다

 

 

김명기

2005년《시평》등단, 제2회 작가정신 문학상 수상, 고산문학대상 수상.

시집『북평장날 만난 체게바라』 『종점식당』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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