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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휘파람 행진곡 / 양미경

작성자이상목|작성시간25.11.01|조회수32 목록 댓글 0

휘파람 행진곡 / 

양미경

 

 

 

 몇 년 전에 갔다 온 태국을 다시 간 것은 순전히 ‘콰이강의 다리’ 때문이었다. 여행 코스에 그곳이 포함되었음을 알고는 기쁘게 따라 나섰다.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콰이강의 다리」는 내게 감동을 주었고, 여태껏 지우지 못할 환상으로 남아 있던 터였다.

 

 끝없이 흘러가는 푸른 강줄기에다 신비롭게 비춰지던 정글, 이국적인 정취가 호기심으로 다가왔었다. 게다가 영화 주제 음악인 휘파람 행진곡은 얼마나 경쾌하던지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이웃에 휘파람을 잘 부는 청년이 있었다. 그도 그 영화를 보았던 것일까. 「콰이강의 다리」를 휘파람으로 가끔씩 부르곤 했었다.

 

 해안선이 아름다운 산호섬과 에메랄드성, 코끼리트래킹을 건성으로 즐기면서 ‘콰이강의 다리’ 보기만을 기다렸다. 방콕으로 간 넷째 날이 되어서야 우리는 칸차나부리로 가기 위해 돈부리역으로 갔다. 하루에 두 번밖에 없다는 열차시간에 맞춰서 피부색이 각각인 사람들끼리 작은 국기를 앞세우고 서 있었다. 국적은 다르지만 표정만은 하나같이 호기심에 차 보였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애타게 기다리던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폐차 직전의 열차였다. 노란 페인트칠은 군데군데 벗겨졌고 레일 위를 달려오는 모양새 또한 영 엉성해 보였다. 그렇지만 기적 소리 하나만은 꽤 힘찼다. 2차대전 당시에는 군인과 군수품을 운송하다가, 지금은 오지의 주민과 관광객을 실어 나르니 절로 신이 났나 보다.

 

 세 칸짜리 열차는 인종을 가리지 않고 순식간에 받아 삼켰다. 나도 열차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딱딱한 나무 의자와 닫쳐지지 않는 창문들. 다행스럽게도 천장에서는 쉴 사이 없이 대형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광은 수시로 바뀌었다. 금세 사막인가 싶더니 울창한 정글이 보였고, 적갈색의 광활한 대지를 스치고 사탕수수와 파파야 나무 군락을 지나쳤다. 가끔 이름 모를 간이역에 학생 몇을 토해 놓는 일 말고는 쉬지 않고 달렸다. 삐거덕거리는 열차에 몸을 맡겼더니 나는 어느새 난타亂打 연주자가 되어 있었다. 열차와 레일이 부딪치며 내는 둔탁한 소리와 나무의자가 내는 목관악기에 온몸으로 연출해 내는 그런 열띤 공연장이다.

덜커덕거리며 신나게 달리던 열차가 속도를 줄이더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왼쪽으로는 깎아지른 된비알이 보였고, 오른쪽은 보기조차 아슬아슬한 낭떠러지였다. 그때 누군가가 “죽음의 계곡이다!”라고 소리쳤다.

 

 미얀마와 접경인 이곳은 정글지대인지라, 열대 풍토병이 만연한 곳이란다. 그런 지리적․기후상의 악조건으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를 냈기에 죽음의 철교라는 오명이 붙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간을 거의 맨손으로 건설했다기에 유심히 살펴보다가 엄청 놀라고 말았다. 열차를 버티고 있는 다리가 각목으로 떠받쳐져 있는 게 아닌가. 저런 엉성한 나무로 열차를 받쳐주고 있다니! 알고 보니 원형 그대로를 보존키 위해 그렇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아슴푸레하게 다리가 보였다.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콰이강의 다리」다. 그때 꿈인 듯 생시인 듯 까맣게 잊어버린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옛날에 들었던 바로 그 감미로운 휘파람소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같이 간 남편이 「콰이강의 다리」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한참 후, 열차가 다리 위의 궤도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떠나기 전날에 어렵게 구해서 본 「콰이강의 다리」 영화 장면들이 떠올랐다. 다리가 완성되면 일본군이 군수품을 원활히 공급케 되므로 연합군 측은 다리의 폭파를 계획하게 된다. 드디어 결행의 날이다. 개통식날, 유격대에 의해 ‘콰이강의 다리’와 함께 기차가 무너져 내리던 장면은 웅장했고 통쾌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 이내 전쟁의 참상에 숙연해졌고 전쟁의 무상함을 되새기게 했다.

 

 열차에서 내려 다리로 갔다. 조심스레 레일 위를 걸으며 전쟁 후에 복구됐다는 구간을 보니, 애초의 것은 원통형이었고 복구된 두 구간은 각진 스팬으로 되어 있었다. 징용간 우리 동포의 목숨도 이곳에 바쳐졌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눈시울이 촉촉해지면서 밟고 지나는 것조차도 죄스러웠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다가 현실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콰이강의 다리’는 지난날의 내 환상을 모조리 깨뜨리고 말았다. 휘파람 행진곡은 내게 있어 더 이상 신나게 여겨지지가 않았다. 그 소리는 애써 태연한 척하려는 포로들의 아우성이요 울부짖음이 아니던가.

 

 우울한 감정을 억누르며 강둑 위에 있는 ‘제스 전쟁박물관’으로 향했다. 제스(JEATH)라는 이름부터 전쟁을 실감나게 한다. 전쟁에 참여했던 일본․영국․오스트레일리아․태국․네덜란드의 앞 글자를 따서 붙었단다. 포로수용소를 복원한 이 박물관은 제2차 세계 대전사를 벽화로 그려 놓아 후손들이 그 치욕을 되새기게 했다. 전시되어 있는 포로들의 옷과 퇴색된 장신구에서는 아직도 그들의 한숨과 눈물이 배어나는 듯했다. 내 눈길은 일본군이 포로를 학대하는 사진 앞으로 가 꽂혔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에 무언지 모를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나오려는데 팻말 하나가 영화 속의 자막처럼 시선을 사로잡았다.

 “Forgive. But Not Forget”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자!)

 용서해야 한다. 그러나 전쟁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렇지만 분노는 좀체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어서 ‘연합군 묘지’로 발길을 옮겼다. 철로를 건설하다가 죽어간 연합군 병사들의 공동묘지였다. 칠천 명에 가까운 군인들이 잠들어 있다 했다. 온갖 화려한 꽃들로 치장되어 있지만 그래도 슬펐다. 가족인지 모를 사람 몇이 어느 묘비 앞에 서서 묵념 올리는 모습도 보였다. 전쟁이 끝난 지가 어언 반세기가 지났건만 이곳에서는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영원히 지울 수 없으리라.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칸차나부리는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콰이강의 다리’와 ‘제트 전쟁박물관’과 ‘연합군 묘지’가 없다면, 전쟁의 흔적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강 위에 조각배들이 그림같이 떠 있어 예전에 치열했던 격전지로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하나 저 푸른 강물은 유유히 흐르면서 침묵하고 있지만 일본군의 광기서린 채찍 소리와 포로들의 절규를 잊지 않고 있으리.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내 나라가 아닌 먼 이국땅에서 일본의 만행에 치를 떨게 될 줄 어찌 알았으랴. 감상에 치우쳐 ‘콰이강의 다리’를 아름답게만 채색하려 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황혼에 물들어 가는 ‘콰이강의 다리’를 보며 만 가지 상념에 젖어 있으려니 휘파람 행진곡이 환청인 양 들려왔다. 때에 절고 낡아빠진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곡괭이를 들고 휘파람을 불면서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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