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도사通度寺에서 통通하다 / 문광섭 한국스카우트연맹 훈련교수회가 주관하는 춘계 연찬회에 참석하기 위해 경상남도 양산에 있는 통도사를 찾아갔다. 첫날 행사로 설법전에서 주지 현덕 스님의 특강이 준비되어 있어서다. 통도사는 몇 차례 다녀간 곳이지만, 20여 년 만에 다시 가는 터라 설레었다. 축령산 자락에 자리한 사찰은 잘 보존된 운치 있는 소나무가 여전히 경내를 감싸고 있었고, 고색이 창연한 법당들이 천년 사찰로서 빛을 발했다. 더구나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모셔 온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 경책을 모시고 있는 불보사찰로서 2018년 6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안내문을 읽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설법전 넓은 법당에 100여 지도자가 좌정한 가운데 현덕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다. “500마리 원숭이가 연못의 달을 잡으려다 모두 물에 빠져 죽었는데,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여 수행하고 설법을 깨닫게 됐다”는 설화를 시작으로, “인간은 말, 생각, 행동으로 스스로 업業을 만들고, 업은 습관화되어 성격이 되고 ‘나’라는 아집을 형성하는데, 이게 괴로움과 욕망의 근원이 된단다. 따라서 삶은 생로병사生老病死로서 괴로움의 연속이며, 이 괴로움을 해결하려면 이치를 깨닫고 지혜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깨달음’이다.”라고 설파했다. 스님의 법문 가운데 ‘인간은 말, 생각, 행동으로 스스로 업業을 만든다’라는 어휘가 솔깃하게 들렸다. 왜냐하면, 난 가톨릭 신자여서 미사 때마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라고 늘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법문이나 기도문의 용어가 일치하는가? 궁금해져 귀를 쫑긋하니 세우고 경청했다. 스님은 인생의 괴로움은 업에서 비롯되는 욕심 때문인데, 수행을 통해 ‘참된 나’를 찾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단다. 참된 나를 찾기 위해선 부모님으로부터 몸을 받기 전 본래 나의 모습이 무엇인가? 화두를 던지고, 수행을 통해서 자기 본성(참된 나)을 깨닫게 되는데, 그 소중한 인연을 오늘 갖게 되었다고 법문을 마쳤다. 설법전을 나와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대웅전 뜨락 금강계단으로 향했다. 현덕 스님의 법문을 잠시나마 생각해 보며 돌아보려고 해서다. ‘참된 나’를 깨닫기 위해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선뜻 떠오르질 않았다. 이는 철저한 수계 생활과 수행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졌다. 다만, 욕심에서 비롯되는 업(생각, 말, 행동)만은 평소 교회 안에서 신부님의 강론을 통해서도 듣고 새겼던 말씀이 현덕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또 한 번 들었지 싶다.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해야 할 일은 바로 ‘욕심’을 내려놓거나 비우는 일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한숨이 일었다. 말은 쉬운데 실천이 쉽지 않아서다. 지켜지다가도 일순간에 무너지며, 심리적 갈등을 겪어서다. 난, 1997년 IMF 경제 위기 때 동기간 일에 휘말려 큰 어려움을 겪었고, 2006년엔 관상동맥 수술로 인해 오랫동안 병치레를 치렀다. 그동안 어렵사리 병고를 극복하고 사회활동을 다시 시작하기까지 7년 가까이 힘든 시절이 있었다. 더구나 힘든 시기에 어머님과 하나뿐인 동생마저 떠나보내는 고통까지 겹쳤다. 생전 경험하지 못한 일들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신앙생활이 크게 힘이 되었다. 그렇게 기사회생하여 처음 시작한 게 복지관서 가곡 배우기였다. 복식호흡으로 시작하는 가곡이 협심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는데, 문학 공부로 이어지며 생기를 찾았다. 한데, 인간이란 게 참 간사한 탓인지 건강이 좋아지고, 세월이 약이라고 고생하던 시절이 까마득하게 잊혀가니까 이런저런 생각과 더불어 욕심이 다시 생겨나는 것이다. 나이도 어느덧 팔순 초반에 들었다. 삶의 경지에 들 법도 한데, 가끔 작은 일에도 분심이 들거나 심사가 뒤틀릴 때가 더러 있어서 후회하기 일쑤다. 힘들던 시절에 다짐했던 게 ‘다시 활동할 수만 있다면? 절대 불평하거나 뭘 탓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었다. 다만 주위에서 나에게 ‘무슨 즐거운 일이 있느냐?’고 묻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고와 낙천적 삶을 살고자 하는 습관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가끔 한계를 드러내는 부족함이 있어서 아쉬울 때가 많다. 오늘, 이 소중한 인연을 기회 삼아 앞으로 ‘참된 나’를 찾는 데 힘써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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