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弓 / 김응상 활터로 가는 길, 은행나무가 길게 도열하고 있다. 은행잎이 수북이 쌓인 길을 따라가면 넓은 운동장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산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길옆 시냇물은 조용히 흐르고, 숲을 이룬 나무들이 키재기를 한다. 홀로선 버드나무는 눈웃음을 짓고 있다. 안개가 과녁을 희미하게 가릴 때는 꿈속을 걷는 기분이다. 사계절 내내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활을 쏘며 편안한 안정감을 얻는다. 활을 배우기 전에는 배드민턴을 했다. 한게임만 하여도 땀이 흐르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위를 향하는 스윙은 머리를 맑게 해주었지만, 무릎엔 부담이 있었다. 통증이 찾아왔고 의사는 다른 운동을 권했다. 어느 날 TV에서 활을 쏘는 백세 어르신을 보았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차분하게 과녁을 조준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무릎에 부담도 적어 보였고, 나이 들어가며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적절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활터를 찾았다. 넓게 트인 벌판과 멀리 산자락, 그 앞에 묵직해 보이는 과녁이 있었다. 연초록 풀잎이 싱그러움을 더하고, 푸른 잡초 사이로 새들이 날며 노래한다. 시원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바로 입회를 결정했다. 선배 궁사께서 오는 길에 찾았다며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주었다. 덕분에 산뜻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인류는 오래전 야생 동물로부터 신변을 보호하고 사냥을 위해 활弓을 사용해 왔다. 활은 가장 오래된 무기다. 영화 최종병기에서는 활이 가장 우수한 무기로 그려진다. 이순신 장군도 활을 중요한 무기로 다루며 부하들에게도 활쏘기를 독려하였다. 지금은 도道를 중시한 정신 수양과 신체 단련을 주로 하는 스포츠다. 활은 목표에 집중함으로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중력을 길러준다. 실패를 극복하며 반복적인 연습을 이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인내심이 자란다.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활쏘기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평온한 마음을 되찾게 한다. 곧게 서서,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고 과녁을 바라볼 때, 내 안의 혼란도 가라앉는다. 오른손은 시위를 당기고, 왼손은 활의 몸을 밀어준다. 탄력을 받은 시위가 팽팽하게 긴장될 때, 오른손은 턱밑까지 당기고, 왼손은 앞으로 쭉 뻗는다. 균형이 맞는 순간 가볍게 활시위를 놓는다. 화살은 깃털처럼 가볍게 하늘로 날아오른다. 꼬리를 흔들며 날아간 화살이 과녁을 때리는 경쾌한 소리는 짜릿한 만족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세월이 쏜살 같다’고 한다. 왜 세월을 화살에 비유했을까. 화살처럼 날아가고,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인가. 아니면 화살의 궤도는 목표 없이 계속 돌면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인가. 끊임없이 순환하며 돌고 도는 세월과 닮아서 인지도 모른다. 장난감이 귀하던 시절, 포장용으로 쓰인 동그랗고 노란색 고무줄로 만든 활에 종이를 화살 삼아 쏘던 기억이 있다. 동생과 장난치다 얼굴을 맞추어 울리기도 했다. 지금도 활을 잡으면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동생은 이제 저 하늘 어딘가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까. 탁 트인 하늘이 보이는 활터는 그리운 마음도 일깨운다. 숨바꼭질, 딱지치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어린 시절의 놀이는 밝고 순수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활쏘기는 순수함을 되찾는 시간여행이다. 나를 들여다보고 어린 날의 해맑은 웃음을 떠올리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활을 쏘기 위해 사대에 서면 늘 긴장된다. 과녁을 조준하지만, 화살은 언제나 같은 곳으로만 가지는 않는다. 어떤 명궁도 시위를 당길 때마다 관중貫中할 수는 없을 것이다. 활은 일순간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활쏘기는 내 몸과 마음이 얼마나 정직한지, 얼마나 유연한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리고 목표에 닿았을 때 얻는 성취감은 내 안의 자신감을 단단히 세워 준다. 탁 트인 공간에서의 활을 쏘는 일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서,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우고 삶의 균형을 되찾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숙련되어 익숙해질 때까지 함께 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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