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장 소나무 / 박정희
둘레길을 걷는다.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 물 따라 선 길에서, 발 짐을 푸는 동안 눈은 강섶을 살피게 된다. 사람 발자국을 거부하고 여축 없는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아가는 세상이다. 이곳은 강물이 가끔 범람하는 지대인지라 물이 빠져나갈 때까지 견뎌낼 수 있는 식생이어야 생존할 수 있는 땅이다.
풀숲의 둔치에 우뚝한 나무가 눈길을 붙잡는다. 연한 색만큼이나 한들거리는 풀밭에 농밀한 색조의 소나무는 도드라지고 낯설다. 아직 수형(樹形)을 잡아가는 중인 듯, 어린 티를 벗지 못한 듯, 어른 키 정도의 곰솔은 식솔을 거느린 족장처럼 늠름하고 의롭게 보인다. 솔아~ 솔아~ 푸른 솔아~ 물을 좋아하지 않는 성정에 어찌 살아갈거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소나무가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끼리끼리 모여 살아야 하는데···. 바람이 여기로 데려다주었을까. 유독 잡풀들이 우북한 세상에 안착한 이유가 뭘까. 일부러 물드는 날을 예견하여 스스로 자처했을 수도 있겠다. 멍하니 보고 있자니 민족정신의 상징인 ‘남산 위의 저 소나무’ 못지않은 푸르름으로 꿋꿋한 기백까지 전해 온다. 사철 변함없는 지조로 선비의 강건한 이미지를 갖는 소나무는 여러 나무 중에서도 믿음의 표상이다. 습지를 둘러보니 버드나무 군락과 몇몇 이름을 알 수 없는 큰 나무들이 군데군데 일렁인다.
싫든 좋든 이미 주어진 길이라면 살아내야 한다. 생명체에게는 늘 평온한 날만 기대할 수는 없고 비 오고 바람 불고 얼음 어는 날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견딘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버텨내는 것이라면 큰물 드는 때라도 지금의 기상으로 여여할 수 있어야 하리라. 강물이 습지를 점령하는 날 소나무 걱정을 하는데, 일전에 들렀던 이육사문학관에서 본 중절모에 안경을 쓴 신사가 겹쳐 어른거린다.
일본 유학 중이던 이육사 선생은 관동대지진을 조선인의 폭동으로 꾸미고 닥치는 대로 학살하는 사실을 접하고 선비정신의 혈맥을 짚는 계기가 되었다. 중과부적인 줄 모를 리 없었겠건만 구국 운동에 앞장서지 않을 수 없었겠다.
견위수명(見危授命)의 표본이 되었다. 자기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만 젊은 선비가 목숨 걸고 독립운동에 앞장설 수 있었던 것은 일제 침략의 부당함에 맞서 단식투쟁 끝에 기어이 순국한 집안의 내림이었을까. 선비의 핏줄과 시대정신으로 무장한 어른은 정의를 앞세웠을 것이니 몸에 밴 호국정신으로 자신의 영달은 안전(眼前)에도 없었다. 생명이 부지하는 한 국권 회복이 우선이고, 민족단결이 최선인 시대의 부름을 좇았으니 생명체의 순리보다 역사의식을 앞세운 삶이다. 선각자는 민중을 이끌어야 한다는 일심으로 만세운동을 선두지휘했을 것이고 총부리 앞에서 의연하게 사라져갔다.
이육사는 잘살다간 삶이었을까.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것일까.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용기일까. 후손이나 후세들이 기리는 삶이면 될까. 편안한 시기에 살았다면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어떤 질문도 선생 본인의 생각에 따를 뿐이고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가득한 광야에 노래의 씨앗을 뿌리는 사명의식으로 분골쇄신하였고, 백마 타고 올 초인을 함께 부르는 구심점이 되었다. 시대적 격랑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고뇌가 남다른 민족 시인이었기에 시로써 나라를 잃은 울분을 토했고 독립운동단체 참여로 나라의 독립에 앞장서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발자취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한 바를 중시하며 관철하려는 의지를 지닌다. 그 의지는 학식과 경험에서 우러나오고 시대와 어우러진다. 일본의 만행을 눈으로 확인한 이상 자신의 한 몸은 이미 독립을 위한 단초가 되어야 한다고 맹세한 그였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이고 서릿발 칼날 진 극한 상황에서도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강단은 겨우 사십여 년을 사는 동안 열일곱 번이나 감옥을 드나들게 하였으니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고달픈 몸으로나마 손님이 올 것으로 확신하였고, 바라는 손님이 올 것을 대비해 은쟁반에 모시 수건까지 준비하라고 하였지만,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결국 베이징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뜬 눈으로 목숨줄을 놓고 말았다. 통탄할 시대가 만들어낸 우리 기억 속 푸른 솔이 되었다.
세월 따라 세태도 변하기 마련이다. 눈앞의 현실만 최우선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역사마저도 무심해진 세대에게, 오늘이 어떻게 흘러왔는지에의 관심은 가르치지 않아도 될까. 앞세대의 목숨을 담보한 국권 회복이었기에 국가의 존폐위기였던 날들을 건널 수 있었을 것이며, 오늘이 있고 우리가 건재할 수 있지 않은가.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민족의 시련인 까닭에 대대손손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기념일 행사마저 생략하는 동안 국가의식도 점점 희미해지는 세태이다. 과연 풍요롭게 잘사는 자들은 희생된 성현들의 발자취에 무심하고 외면해도 될는지.
소나무는 상시 푸르다. 북풍한설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속앓이를 하더라도 겉으로는 태연자약하기에 우리 민족의 정서가 서린 나무이다.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정신을 고수하는 선비들은 사철 푸르름을 지켜내는 소나무의 절개를 숭상하였고 항상 어려운 일을 만나면 소나무의 꿋꿋함을 닮고자 할 만큼 믿음직한 나무로 여겨왔다. 습지 식물의 파수꾼을 자처한 곰솔도 독야청청하기를 기대해도 되려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고 했다. 역사의 현장은 더욱 그렇다. 눈에 보인다고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시대의 소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참 선비의 기개가 찾아지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