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울림있는 글과 문학

잃어버린 한 마리 양 / 권오훈

작성자이상목|작성시간26.06.07|조회수20 목록 댓글 0

잃어버린 한 마리 양 / 권오훈

 

아이는 서당 체험 수업 시간 내내 혼잣말을 중얼거려 내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심지어는 나눠준 얇은 교재를 양손으로 뭉쳐 던지기도 한다. 바로 옆에 전담 보호자가 앉아 조용히 하라고 귓속말로 달래며 아이의 팔을 잡아 제지한다. 옆자리 아이들은 불안한 눈초리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그 아이의 행동을 살핀다.

조용히 하라 몇 차례 주의를 주었지만 막무가내다. 무시하고 수업을 진행하려니 말이 버벅거리고 아이들도 집중하지 못한다. 마침내 보호자가 아이를 데리고 나간다. 수업을 재개하지만, 허비한 시간을 메꾸느라 몇 대목은 생략하니 내용이 부실해져 아쉽다. 장애우가 없는 반과는 사뭇 다른 수업 분위기이고 내용이다.

이전에는 특수학교에서 전문가인 특수교육 교사들이 전담했다. 오늘날은 소수 약자의 차별 없는 세상, 자유와 인권이 강조되면서 그들을 배려하고 보호하는 법과 제도들이 속속 만들어져 시행되고 있다. 장애우들의 인권과 평등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상아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통합교육도 그 일환이다.

통합교육의 목적대로 장애우가 비장애우와 함께 수업하고 어울리면서 차별 없는 인권과 평등한 교육권이 보장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비장애우들은 다행스럽게도 장애 없이 태어나 정상적인 활동을 하며 행복을 누리니 그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장애우들의 힘든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인성을 갖추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어떤 제도라도 그 목적은 좋지만, 역기능도 생길 수 있고 그로 인한 피해자도 따르게 마련이다. 장애우가 배치되지 않은 반 아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수업 환경에 대한 불만과 피해 의식은 있게 마련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관점에서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인지상정이다. 자기가 직접 겪지 않는 고통은 피상적일 뿐이다. 오죽하면 남의 다리 잘린 아픔보다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프다는 속담까지 있을까. 남의 고통이나 어려움에 동정심을 가지다가도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수업 진도에 문제가 생긴다면 아이들이나 부모로서는 불만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 내가 또는, 내 자식이 장애우라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지체 또는 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를 가진 부모의 참담한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도 실감도 어려울 것이다. 그 아이인들 무슨 원죄가 있기에 천형의 장애를 지닌 채 태어나 평생을 불편과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가.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을 것이다.

“얘들아, 네가 저 친구라면 어떨까?”

“엄청 힘들 것 같아요.”

“친구가 너무 불쌍해요.”

그 어떤 스트레스나 불편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반 아이 중 누구 하나 장애우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불평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그날 수업한 반 아이들은 사전에 그런 과정과 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지금 잃어버렸던 한 마리 양을 찾아와 함께 집으로 가고 있다. 그 아이는 결코 특별대우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함께 걷고 싶어할 뿐이다. 물론 이 길은 쉽지 않다. 누구도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모두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조금만 마음을 열어 나눈다면, 불편함은 차별이 아니라 포용과 이웃 사랑, 동행의 원천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애우는 더 이상 내어줄 게 없는데 반해, 비장애우는 마음먹기에 따라 상대 입장 공감 능력과 동정심을 바탕으로 배려와 인내심을 나눠줄 수 있을 것이다.

인성 예절 체험학습, 이 수업의 목적이 아이들에게 주변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사회성, 그런 인성을 갖추는 데 있다. 아이들은 이미 그걸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을 응원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