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욤감나무를 슬퍼함 / 나태주
고욤감나무 한 그루가 베어졌다 올봄의 일이다
해마다 봄이면 새하얀 감꽃을 일구고
가을이면 또 밤톨보다도 작고 새까만 고욤감들을
다닥다닥 매다는 순종의 조선감나무
아마도 땅주인에게 오랫동안 쓸모 없다
밉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이 나무를 안다
삼십 년 가까운 옛날의 모습을 안다
지금 스물여덟인 딸아이
제 엄마 뱃속에 들어 있을 때
공주로 학교를 옮기고 이사갈 요량으로 이 집 저 집
빈 방 하나 얻기 위해 다리 아프게 싸돌아 다닐 때
처음 만났던 나무가 이 나무다
빈방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 딸린 나 같은 사람에게
못 주겠노라 거절당하고 나오면서 민망하고
서러운 이마로 문득 맞닥뜨린 나무가 바로 이 나무다
저나 내나 용케 오래 살아남았구나
오며 가며 반가운 친구 만나듯
만나곤 했었지 꽤나 오랜 날들이었지
그런데 그만 올봄엔 무사히 넘기지 못하고
일을 당하고 만 것이다
둥그런 그루터기로만 남아 있을 뿐인 저것은
나무의 일이 아니다
나의 일이고 당신의 일이다
고욤감나무 사이
나 홀로 여기와 오늘 슬퍼하노니
욕스런 목숨을 접고 부디 편히 잠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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