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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샘 좋은 글

고욤감나무를 슬퍼함 / 나태주

작성자이상목|작성시간26.06.06|조회수14 목록 댓글 0

고욤감나무를 슬퍼함  / 나태주 


고욤감나무 한 그루가 베어졌다 올봄의 일이다 
해마다 봄이면 새하얀 감꽃을 일구고 
가을이면 또 밤톨보다도 작고 새까만 고욤감들을 
다닥다닥 매다는 순종의 조선감나무
아마도 땅주인에게 오랫동안 쓸모 없다
밉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이 나무를 안다
삼십 년 가까운 옛날의 모습을 안다
지금 스물여덟인 딸아이
제 엄마 뱃속에 들어 있을 때
공주로 학교를 옮기고 이사갈 요량으로 이 집 저 집 
빈 방 하나 얻기 위해 다리 아프게 싸돌아 다닐 때
처음 만났던 나무가 이 나무다 
빈방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 딸린 나 같은 사람에게 
못 주겠노라 거절당하고 나오면서 민망하고 
서러운 이마로 문득 맞닥뜨린 나무가 바로 이 나무다 

저나 내나 용케 오래 살아남았구나
오며 가며 반가운 친구 만나듯 
만나곤 했었지 꽤나 오랜 날들이었지 
그런데 그만 올봄엔 무사히 넘기지 못하고 
일을 당하고 만 것이다
둥그런 그루터기로만 남아 있을 뿐인 저것은 
나무의 일이 아니다
나의 일이고 당신의 일이다

고욤감나무 사이 
나 홀로 여기와 오늘 슬퍼하노니 
욕스런 목숨을 접고 부디 편히 잠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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