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물 / 김남수 금의 값어치는 일정하여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그 시세대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넉넉한 사람들은 은행 이자가 바닥을 칠 때 자산의 값어치로 금을 사들여 부를 축적하기도 하지만, 가난한 서민은 당장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금붙이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오래전 집을 며칠 비워 둔 일이 있었다. 친정집 혼례가 있어 일손을 도와주고 돌아오니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장롱의 옷이 사방에 흩어져 있고 서랍장도 삐딱하게 놓여있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숨겨둔 패물이 걱정되었다. 집에서는 가장 값나가는 물건이었다. 결혼할 당시에 남편 될 사람은 고가의 예물은 꿈도 꾸지 못할 처지에 있었다. 직장과 학교, 두 곳을 다녔기에 사정이 여의찮았다. 그런데도 언감생심 삼 부짜리 다이아몬드 백금 반지와 금목걸이, 금반지 한 쌍을 해주었다. 예물을 받으면서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알고 보니 미리 탄 곗돈으로 산 것이었다. 굳게 닫혀 있어야 할 찬장 문이 활짝 열려 있어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다. 국그릇 밥그릇 하며 뒤집힌 그릇을 살피고 있는데 뒷줄 몇 개가 쌓아 둔 대로 반듯하게 있다. 떨리는 손으로 뚜껑을 열어보니 우려했던 패물은 주머니 속에 손 타지 않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한테 놀라면 약도 없다 하질 않던가. 도둑이 다녀간 후 누가 엿보는 것 같아 현관문을 잠그고 고리까지 걸어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반지를 끼고 다닐까 생각은 했지만 직접 맞추지 않아 반지가 헐거웠다. 패물 숨기는 것도 담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뉴스에서 금은방에 손님으로 가장한 강도가 반지를 끼고 줄행랑치는 것을 보니 이래저래 사람을 옭아매는 족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금은보화가 싫으냐고 묻는다면 싫다는 사람이 있을까? 친정어머니는 손녀 손자가 태어나자, 아기 보는 재미에 푹 빠진 듯 주말마다 대구에 오셨다. 백 일이나 돌 때 아이 몫으로 금팔찌 금가락지를 해주시고 동생도 덩달아 조카의 선물을 사 왔다. 아이가 셋이나 되니 금붙이도 여러 개가 되었다. 자식이 해 드려야 하는데 거꾸로 부모에게 받기만 하니 썩 유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손사래를 치지도 못했다. 인생살이는 굴곡이 많다. 잘해보려고 하던 일이 곤두박질을 쳐 어려울 때가 생겼다. 당장 교육비는 들어가고 통장은 마이너스일 때 생각나는 것이 금붙이였다. 꼭꼭 숨겨놓은 아이들 반지를 꺼냈다. 금은방에 들고 가면 두말 하지 않고 현금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 신기했다. 집안에 대소사가 생겨 감당이 안 될 때도 아이들 팔찌가 힘이 되어주었다. 떳떳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절박한 순간이라 살아남아야 하니 딱히 다른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어려울 때도 결혼 예물만큼은 패물 주머니 속에서 우리들과 함께했다. 세월이 흐르니 자연히 남편의 퇴직 메달과 기념 메달도 채워졌다. 젊은 시절에는 빈손으로 다녔는데 노년에 드니 목이며 손가락이 호강했다. 치장은 번질나게 하고 다니지만, 근본은 숨길 수가 없었던 탓일까? 나 자신이 다람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산에 도토리와 밤나무가 많아진 것은 다람쥐의 건망증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자연 낙하의 원인도 있고, 짐승이 열매를 먹고 씨를 배설한 것도 있지만, 유독 다람쥐는 숨기는 습성이 강해 낙엽 속이든 땅속에 먹을 것을 감춰놓았다고 한다. 나중에 제대로 찾아 먹지 못해 싹이 났다고 했다. 어느 화창한 봄날, 겨우내 닫아두었던 창문을 활짝 열고 대청소했다. 따뜻한 볕살에 이불 홑청도 뜯어서 말리고 농에 들어있는 베개라는 베개는 다 들고 나가 볕을 쬐었다. 잘 말린 베개를 보니 슬그머니 다람쥐 습성이 발동했다. 왕겨 속에 패물 주머니를 넣고는 이보다 좋은 장소가 없다고 쾌재를 불렀다. 그 후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모든 것이 맞지 않아 커튼도 새로 맞추고 이불도 새로 장만하고, 묵은 베개는 버리고 새로 나온 건강 베개를 샀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귀하게 여기던 것을 떠나보내면서도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떨어진 밤송이가 다람쥐의 노력으로 되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듯이 말이다. 가난한 누군가가 패물을 발견해 어려운 살림에 보태었을까? 아니 그 집 자식의 입학 자금이나 부모님의 용돈으로 썼지 않았을까? 나날이 금값이 치솟으니 자주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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