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彼岸)으로 간 메뚜기
양 미 경
떨어뜨린 자동차 키를 주우려 허리를 굽히다가 나는 멈칫 그 상태 그대로 정지하고 말았다. 바싹 마른 메뚜기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부러진 더듬이, 너덜너덜 갈라진 날개, 여섯 개의 다리 중 성한 것은 한 개뿐인, 메뚜기.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집으려 하자 바람이 휙 불어오더니 메뚜기를 쓸어가 버렸다. 마치 인간의 더러운 손으로 신성한 메뚜기에 손대지 말라는 신의 경고처럼.
캐럴 용품을 전시한 상점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낼모레가 성탄절인데도 예전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상점은 비었으며 갈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로 자선냄비의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차에 올랐다. 멀리 남망산 등성이가 화려한 도시의 불빛에 묻혀 흐릿하게 드러났다. 어쩌면 그곳에서 뛰어놀았을 메뚜기가 바람의 도움을 받아 저곳으로 갈 수 있을까.
어림없는 일이다. 살아서 제 날갯짓하며 여기까지 오는 것은 가능했을지 몰라도 사람들과 자동차를 피해 저 남망산 기슭까지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설사 바람이 그런 것들을 피하게 해준다 해도 사방으로 꺾이는 길을 지나 저 기슭에 닿으려면 이 겨울 내내 아스팔트 위를 굴러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메뚜기는 희망봉 같은 기슭에 닿기도 전에 바스러져 한줌 바람 되어 사라질 터이다.
시내를 벗어나 해안도로로 접어들었다. 시내와는 달리 해안도로는 크리스마스 불빛에서 밀려나 있다. 작은 어촌 마을들이 올망졸망 엎디어 삶의 아궁이에 소박한 불을 지피고 있을 뿐, 산 그림자들이 차창을 스치고 지나갔다. 차의 전조등은 그 산까지 미치지 못하고 단지 코앞의 아스팔트만을 간신히 비춘다.
문득 여기서 탈선하면 나도 그 메뚜기처럼 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영혼은 흐린 전조등에 의지해 고작 코앞이나 비추면서 달리는 아스팔트 위의 메뚜기와 다를 게 뭘까.
어느 날 이승에서 내가 삶을 끝냈을 때 가족들은 슬퍼하고 친구들이나 이웃들은 몇 방울의 눈물로 조문하고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평소처럼 살아갈 것이다. 가끔은 술 한 잔 마시다가 그저 그런 사람,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사라진 사람쯤으로 잊혀질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도시 한복판에서 바싹 마른 채로 바람에 날리는 메뚜기의 사체와 무엇이 다른가. 한 줄기 바람조차도 외면하는 인간의 죽음은 어쩌면 메뚜기보다도 더 가련한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잃어버렸다. 내 삶이 시작된 곳은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조등은 막막한 어둠 속에 코앞만을 비추어 줄 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바람이 데려간 메뚜기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 그의 육신과 분리된 영혼은 왔던 곳으로 돌아갔을까.
갑자기 앞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듯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타이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무엇이 튀어나온 게 아니라 도로만 보며 달리다보니 커브로 꺾인 시커먼 언덕이 물체처럼 보였던 것이다.
우리네 살아가는 과정에는 이처럼 무시로 튀어나오는 위험이 상존하지 않던가. 문제가 생겼을 때 곰곰 생각해보면 실제로 무엇이 튀어나오기보다 한치 앞만 보고 살다보니 이미 다가와 있는 위험들을 미처 알지 못해 그 자체로 너부러진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 모두가 우리의 삶이 본질에서 너무 멀리 떠나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 자연 속에 살며, 자연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자연 속의 나무처럼 아이들을 키우다가 낙엽처럼 떨어져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생의 과정에서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 우리는 지금 길을 잘못 든 메뚜기처럼 생의 고향에서 너무 멀리 와 있다. 왜 몰랐을까. 그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영혼은 생의 고향 쪽으로 한발 성큼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바다를 향해 섰다.
비록 구름에 가려 흐릿했지만 달빛은 바다와 낮은 산들을 뚜렷이 비춰주고 있다.
가슴을 쭉 펴다가 미미한 날개 소리를 들었다.
순간 메뚜기 한 마리가 산등성 그림자 사이로 나는 모습이 보였다. 환청이고 환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 가슴에는 향기로운 전율이 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지없이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