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값진 선물 김경순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더욱이 젊은 날의 만남은 우리 인생에 큰 영향력을 끼치며 삶의 방향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만남은 곧 축복이 된다. 내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내가 속한 동아리인 전주 CCC에서 전남 여천군에 있는 애양원을 방문하였다. 기차를 타고 율촌역에 내리니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가는 비를 맞으며 한참을 걸어가 동네 어귀에 이르니 수목이 우거진 오솔길이 한가하다. 높은 나뭇가지 위에선 새들이 어서오라고 목청을 돋운다. 그 수목들 사이로 보이는 낡은 닭장과 깨어진 슬레이트 지붕은 가난에 시달리는 그들의 삶을 말해주는 듯하여 애잔함이 느껴졌다. 드디어 우리가 찾아온 곳이 보였다. 돌로 지어진 예배당,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건물이다. 어디서 보았을까? 아 맞다.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영화 <사랑의 원자탄>에서 본 그 교회당이 아닌가. 학창시절에 그 영화를 보았는데 손양원 목사님은 두 아들을 여순반란 사건 때 순교자로 천국에 보내고 10가지 감사를 드렸다. 거기에다 자기 아들을 죽인 그 학생을 양아들로 삼다니....... 그 진한 감동이 지워지지 않은 터였다.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니 6.25 기념예배가 진행 중이다. 예배가 끝나자 우리 학생들은 그곳 성서반원들과 교육관으로 모였다. 성서반은 모두 한센병으로 인해 양 눈을 볼 수 없는 분들로 약 30 명쯤 된다고 하였다. 아마도 교회당 길과 동네로 가는 길을 가운데만 시멘트로 포장한 것은 그들을 위해서리라. 지팡이가 그들의 눈인 셈이다. 눈이 없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으련만 그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곳에 모여 녹음기를 들어가며 성경을 외우고 기도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드린다고 했다. 그들 중에는 신약 성서를 다 외우는 분들도 8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날은 에베소서 5장을 다같이 암송했는데 내가 성경을 찾아보니 세상에나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어느새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찬양을 부르고 있다. 모두 따라 부른다. 그들은 비록 눈은 감고 있지만 얼굴엔 환한 웃음이 가득하다. 굽어지고 문드러져 펴지지 않는 손바닥을 치면서 몸을 흔든다. 어떤 이는 어깨를 들썩이다 가만있질 못하고 일어나서 신명나게 춤을 추며 부른다. 박자도 음정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진정 감사하는 마음이 흘러넘치는 거 같다. 그들을 바라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부끄러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나는 이렇게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서도 얼마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 소리 없는 눈물이 뺨을 적신다. 사회자의 소리가 들린다. 다 일어서서 원을 만들고 성서반원들 사이사이로 들어가 손을 잡으란다. 이곳은 음성 나환자들만 있어 전염될 염려가 전혀 없다지만 손이 쉽게 나가질 않고 머뭇거려진다. 나는 속으로 우리 일행이 곁에 앉길 바랐다. 하지만 원 만들기가 끝난 뒤 내 옆에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한센병으로 몹시 일그러진 모습의 그들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씩 짝을 하라기에 얼른 좌우를 살펴보았다. 오른쪽을 보니 눈에 흰 창이 없고 빨간 창만 보이는데 도저히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었다. 왼쪽을 보니 눈이 움푹 들어가고 손이 굽어져 있다. 슬그머니 왼쪽으로 가서 짝을 했다. 순간 나의 연약함을 또다시 발견하면서. 그날 내 짝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십 년간 교제해온 이태묵씨를 나는 그렇게 만났다. 신기하게도 그분의 연세는 우리 어머니와 같고 생일은 나와 같았다. 목수로 살던 삼십대 어느 날 갑자기 나병으로 판명되어 가족을 떠나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이태묵씨, 대화를 할수록 그분의 해박한 성경지식과 신앙인격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처음 이곳에 올 때 내 마음은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얻은 것이 더 많다는 생각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정오가 되자 어느덧 이슬비는 그치고 초여름 햇살이 따스하다. 내린 비 때문인지 손목사님 부부의 묘소를 덮은 잔디가 파릇파릇하다. 어색했던 마음도 점점 사라지고 준비해간 김밥과 찰밥을 먹으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대화가 한창이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낮의 태양도 기울고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려 할 때 그분은 나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한다. 이곳은 닭을 많이 키운다는데 계란인가 나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성경말씀 빌립보서 4장 4절을 외운다. 그리고는 그것을 선물로 준다고 하였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우리들은 하나님께 한 달란트 받았습니다. 눈이 멀어 볼 수 없고 손이 굽어 일할 수 없으니 기도할 수밖에 없는 한 달란트, 그 한 달란트를 두 달란트로 남기기 위해 매일 새벽과 낮에 모여 기도합니다. 그런데 자매님은 5달란트 받았으니 10달란트로 남겨야 합니다.” 선물을 받고서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건강도 재물도 가정도 없는 그분이 받은 게 한 달란트라면 내가 5달란트 받지 않았다고 어떻게 반박할 수가 있단 말인가. 연약한 분에게서 나온 말이 어떻게 그렇게 힘이 있을 수가 있는가. 순간, 평소에 품었던 좋은 환경과 뛰어난 재능이 왜 내겐 없을까 하는 불만스러웠던 생각이 다 사그라지고 말았다. 아쉬운 작별의 악수를 하였다. 석양 노을을 뒤로하고 다시 오솔길을 지나오자 잘 가라고 인사하는 새들의 지저귐이 정겹다. 애양원 가족들이 외롭고 아플 땐 저 새들이 위로해 줄 것만 같다. 그들은 아마도 저들이 있어 덜 외로울 것이다. 그 후 대학 3학년 때 나는 다시 애양원을 찾았다. 이태묵씨에게 다가가 내 이름을 대니 생생히 기억하고 반가워한다. 2년 전에 겨우 한 번 만나고 눈으로 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잊지 않고 기억할 수가 있느냐고 여쭈었다. “날마다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랬구나! 그들은 나라와 교회와 그리고 당신들에게 다녀간 사람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면서 받은 한 달란트를 두 달란트로 남기기 위해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최선의 삶을 사는구나! 순수했던 대학시절에 애양원을 방문했던 일은 나의 삶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애양원은 내게 건강한 몸을 가진 것만으로도 5달란트를 받았다는 것과 최고가 아닌 최선의 삶도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면 그분으로부터 받은 값진 선물을 꺼내본다. 해 묵은 선물은 어느새 걱정근심, 불평불만의 이끼가 가득 묻어있다. 손바닥으로 문질러본다. 수세미로도 박박 닦아본다. 그러면 그 때의 감동이 되살아나 내 마음은 다시 기뻐할 수 있는 일들로 가득 채워지고 촉촉한 단비를 맞은 듯 생기를 얻곤 한다. 창밖엔 이슬비가 부슬부슬 가로수를 적시고 있다. 이 가는 비에도 저 초목들은 먼지를 다 털어내고 더 높이 하늘로 솟아오르겠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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